서부 티벳 여행에 필요한 허가서가 자그마치 4종류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 우리의 출발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로울 것이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9시에 출발하기로 정해놓고 이미 짐을 몽땅 꾸려 준비된 차에 실어놓았는데도 낮 12시가 넘어가도록 언제 나올지 모르는 마지막 허가서 발급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자 모두들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서둘러 챙겼던 아침 식사가 어느새 꺼져버려 결국 점심 식사를 하고서야 여행사 manager인 DaChung(‘Tibet Mountain   River International Travel Service’ / Tel : 86-891-6826953 / dachung10@yahoo.com)에게서 오늘 오후 3시 이후에나 마지막 4번째 허가서의 발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오늘 라체까지 가기로 한 일정을 변경하여 시가체까지만 가시는 것이 어때요? 제가 다른 차편으로 오늘 저녁에 허가서를 시가체로 보내드릴 테니…”
이 말을 들은 Yifat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냐며 펄펄 뛰어댔지만 오빠는 나를 보고 살짝 웃는 것이 아무래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사실 오빠는 카일라스 코라 자체 보다도 서부 티벳을 오가며 여유로운 여행을 하고자 했기에 조급하게 카일라스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일정에 내심 불만을 가진 터였다. 게다가 암드록쵸나 남쵸 같은 호수들 역시 우리 곁을 멀리 떠나간 터여서 티벳 제 2의 도시라는 시가체에서 하루라도 묵고 가기를 줄곧 주장해 왔었다(물론 다수결의 법칙에 따라 묵살되었다 ^^;). 그런 중에 오늘 이 같은 일이 벌어져 뜻밖의 수확을 거두게 된 것이다. Grace와 Marc가 일단 떠나고 보자는 우리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4종류의 허가서를 완벽히 구비한 후에야 비로소 떠나겠다는 Yifat이 의지를 굽힐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출발, 앞으로!

 

시가체작년, 오빠와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했을 때 오빠가 국제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안 된다는 오토바이 대여점 주인 아저씨를 살살 꼬드겨, 미리 준비해 간 면허증이 없이도 오토바이를 빌린 적이 있었다(처음엔 절대 안 된다며 다음 날 경찰서에 가서 시험을 본 후 면허증을 따 가지고 와라 마라 하다가 얼마간 돈을 더 지불하겠다고 했더니 출발 전에 경찰한테 걸리면 보여주라며 가짜 면허증까지 슬쩍 챙겨 주더라만… ^^;;). 어렸을 적, 작은 아빠 뒤에 얹혀 타보고는 처음 기대보는 낯선 남자, 아니 신랑의 등. 덕분에 따가운 햇살에 드러났던 모든 피부가 벌겋게 익고, 그것도 모자라 껍질이 벗겨지도록 한참을 내내 고생했었지만, 여하튼 내 머리 속에 ‘오토바이’라는 단어를 떠올릴라치면 여지없이 발리가 동반 수직 상승하여 떠오르곤 했다. 그런데 여기에 오늘 하나 더 추가, 바로 라싸에서 시가체 가는 길!

 

노면 상태 자체로는 발리보다 못하지만 주변 경치만큼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을 수준이다. 게다가 지나다니는 차조차 없으니 오토바이를 타고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하긴 심지어 라싸에서부터 네팔에 이르는 길까지를 자전거로만 다니는 여행 상품도 있다니 이미 그 가치를 인정 받은 듯 싶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티벳 전역을 누비는 오토바이 여행은 아직 시기상조, 하루 빨리 티벳 여행이 자유로워질 날만을 다시금 기대해 보는 수 밖에…

 

시가체라싸에 조캉 사원이 있는 것처럼 시가체에는 타쉴훈포 사원이 있다. 이 곳에는 11대 판첸 라마가 살고 있는데 비록 달라이 라마가 티벳 제 1의 영적, 세속적 주권자이기는 하여도 이 판첸 라마라는 존재를 무시하지 않고 더불어 서로 대등한 관계로서 티벳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티벳을 아니, 비록 현재는 중국의 다른 성으로 편입되어 있을지라도 지난 날 티벳의 땅이었던 곳을 여행하였었을 때, 티벳인들이 생활하는 곳이라면 어렵지 않게 동일한 한 인물의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그가 바로 10대 판첸 라마이다. 처음에는 완전 살찐(?) 중국인 모양새를 한 그가 티벳인들이 말하는 대로 ‘라마’라는 것이 이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0대 판첸 라마는 중국에서 환생했다고 한다(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로 판첸 라마도 환생한다). 그러니 당연히 중국인 얼굴일 수 밖에… 처음 그는 티벳인들로부터 진정한 판첸 라마의 환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후 중국 치하에서 고생하는 티벳인들을 위해 노력하다 북경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할 정도였기에 티벳인들이 그를 인정, 존경하게 되었고 심장마비로 알려진 그의 사인에도 분명 중국의 음모가 있을 거라 티벳인들은 의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현재 시가체 타쉴훈포 사원에 살고 있는 11대 판첸 라마는 티벳인들이 찾아낸 인물이 아니라 중국이 내세운 인물이기에 우리가 만나 본 많은 티벳인들이 그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었다. 언제쯤이나 티벳인들이 인정하는 진짜 11대 판첸 라마가 현재의 옥중 생활을 끝내고 시가체로, 자신의 터로 돌아올 수 있을까? 너무 요원한 일이 아니기만을, 그래서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티벳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부처로, 희망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Tip


교통 : 라싸-시가체 / 5시간 / 공공 버스를 이용하면 6~7시간 걸린다고 한다
★ 라싸에서 시가체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북쪽 고원 길을 이용, 5시간 만에 도착했는데 남쪽 길을 이용하면 암드록쵸와 갼체를 둘러볼 수 있다. 다만 요즘 중국에서 수력 발전을 이유로 공사 중이어서 평소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숙박 : 텐진 호텔은 공사 중, 저우펭 호텔은 더블룸을 자그마치 140원, 도미토리의 경우 침대당 50원을 불러 과감히 돌아섰다.
Holy Land Hotel (聖康飯店) / 더블룸은 85원까지, 도미토리의 경우 침대당 35원까지 깎을 수 있다 / 화장실과 욕실 공동 사용 / 라싸에서 시가체로 들어와(靑島路) 직진을 하다 보면 왼편으로 산동로(山東路)가 뚫리는데 좌회전하여 다시 왼편 초입에 위치해 있다(Tel : 0892-8822922 혹은 8828004). 겉 모습은 으리으리하지만 분명 우리가 찾는 저렴한 방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 것 ^^

쇼핑 : LeBaiLong shopping center / Yak Hotel을 나와 포탈라 방향으로 야시장 골목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면서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백화점 (건물 내부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것이 보이면 OK) / 컵으로 된 신라면 구입 가능(개당 4.5원)

★ 서부 티벳의 여행 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고 칼로리의 스낵, 음료, 과일(사과 이외의 과일은 상하기 쉽다) 등을 라싸나 시가체에서 충분히 준비해 가도록. 우리는 상기 백화점에서 사과 잼을 하나 구입해서는 그래도 어디서나 그나마 구하기 쉬운 편인 티벳식 빵이나 중국식 만투에 요긴하게 발라 먹었다(둘 다 밍밍하기가 앞 뒤를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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