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무력적 침공 이후의 티벳은 결코 여행하기 쉬운 나라가 아니다. 중국은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들에 대해 티벳에 들어오는 데에도 복잡한 절차를 마련해 놓았거니와 막상 들어왔다고 해도 티벳 내의 모든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도록 제한 조치를 취해 놓았다. 이것이 외국인 여행객들로 하여금 가고자 하는 여행지까지 갈 차량을 구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할 친구를 찾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라싸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게시판 문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보통 본인이 원하는 일정을 적고 관심 있어 할 다른 여행객들이 본인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함께 남기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우리 역시 매일, 여행자들이 많이 묵는 호텔들 입구에 위치한 너덜거리는 종이들을 보고 또 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서부 티벳 여행 일정이 혹 나붙었나를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서부 티벳 여행에 대한 구인광고(?)가 안 보이길래 어쩔 수 없이 목말라 하는 우리 스스로가 우물을 팔 수 밖에 없었다. 라싸 시내의 여행사를 돌아다니고, cafe에 붙어 있는 차량 제공 전화 번호를 수집, 비교하기를 한참 한 끝에, 결국 우리도 라싸를 출발, 현재 힌두교, 불교, 본교, 자이나교, 이렇게 자그마치 네 개의 종교의 숭배 대상인 카일라스 산까지 갔다가 네팔로 넘어가는 15일의 일정을 꾸릴 수 있었다. 흰 종이에 삐뚤삐뚤 원하는 일정과 우리의 정체(Two Korean ^^)를 적어 넣고 스카치 테이프를 빌려 들고 라싸 한 바퀴에 나섰다. 우리의 목표가 되는 호텔들은 우선 우리가 묵고 있는 Yak 호텔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키레이 호텔, 그리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바낙숄 호텔과 스노우랜드 호텔까지 네 곳. 게시판의 빈 공간을 찾아 광고문을 붙이며 빙글빙글 라싸를 돌던 우리들이 마지막 목적지였던 스노우랜드 호텔에 들렀을 때 그만 우리와 비슷한 일정으로 동반자를 찾고 있던 한 여성이 붙여 놓은 광고문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었던 Yifat은 이스라엘인으로 오직 카일라스에 가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서부 티벳 여행에 꼭 필요한 허가서도 없이 hitch만으로 중간 지점인 ‘사가’까지 갔다가 결국 공안에게 걸려 다시 라싸로 돌아온 불운의 여성이다. 티벳 불교의 한 종파인 카규파의 고위직 승려(카규파 역시 그들만의 라마를 모시고 있는데 이 라마를 가르치는 네 명의 스승 중 한 명)로부터 사사까지 받은 불교도이면서 어울리지 않게도 이스라엘에서는 TV 드라마도 만들고, 사람들의 사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죄의식을 느끼긴 하지만 돈이 되는(?) 광고도 만든다고 한다. Yifat과의 여정을 비교하여 본 결과, 우리와는 조금 어긋나는 면이 있긴 했지만 Yifat이 알아본 요금이 1,000원이나 더 저렴한지라 그녀와 한 팀이 되기로 했다. 이제 3명이 된 우리에게는 짚차의 남은 한 좌석을 채울 한 명을 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직 비자 기간에 여유가 있는 우리와 달리 Yifat은 돌아오는 5월 30일 이내로 출발하지 않으면 비자가 만료되어 문제가 복잡해지고 만다. 당연 우리보다 맘이 급한 Yifat이 그간 말을 트고 지낸 다른 외국인 여행객을 만날 때마다 서부 티벳을 함께 가자고 찔러보지만 티벳 여행에 있어서도 워낙 비용이 고가인지라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Yifat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그렇게 만 이틀이 지났을 무렵, 우리에게 날아든 낭보! 자신들을 영국인이라 밝힌 사람이 우리 일정에 관심이 있다며 글을 남긴 것이다. 어느새 한 팀이 된 우리가 그 사람이 묵고 있다는 숙소를 서둘러 찾아가자 놀랍게도 그들은 두 명의 흑인 남매, Grace와 Marc였다. 앗, 그럼 모두 5명인데?

 

Yifat이 아무리 설득을 해 봐도 여행사에서는 5명은 절대 안 된단다. 서부 여행은 운전사에다 가이드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차량 사정상 모두 해서 6명을 초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를 뺄 수도 없는 노릇,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조금 비싸긴 했지만 모두 8명까지 가능하다고 했던, 기존 우리 둘이 알아봤던 곳에 다시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어진 긴 협상, 결국 다국적, 다인종의 5명은 돌아오는 5월 29일, 자그마치 4종류에 이르는 허가서 발급 비용과 운전사와 가이드가 딸린 짚차까지를 모두 포함해서 17,000원에 15일 간의 서부 티벳과 네팔 국경에 이르는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육로로 티벳에 들어와 동부를 여행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포기했겠지만, 금지된 동부 티벳에 발을 대어보지 못한 이상 우리에게 남은 건 그 다음으로 허가서 받기가 까다롭고 접근하기 힘들다는 서부 티벳이었다. 이렇게 서부 티벳 여행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자 여유가 생긴 오빠와 나는 남아있는 며칠을 더욱 알차게 보내기 위한 2차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라는 ‘남쵸(‘하늘 호수’라는 뜻)’나 조장(육신을 토막 내고 뼈는 짓빻아 볶은 보릿가루에 버무려 새가 먹을 수 있도록 던져주는 티벳 특유의 장례 풍습)을 볼 수 있다는 ‘드리궁 틸’에 같이 갈 친구들을 모집하는 것이 바로 그것.

 

몇 군데 호텔에 광고를 붙인 지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4명이 우리 방문을 연달아 두드렸다. 1등은 지난 3월, 1년의 여정으로 한국을 뜬 박순창씨, 2등은 오스트리아의 전형적인 아줌마 Angela, 3등은 네덜란드의 재미난 아저씨 Dror, 4등은 무뚝뚝한 독일인 체육 선생님 Gunter까지… 이렇게 해서 - 26일 일요일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이른 것을 기념하는 티벳의 축제 ‘사가 다와(Saga Dawa)’가 열리는지라 - 27~28일에 이르는 1박 2일의 남쵸 여행을 할 또 하나의 멋진 다국적 그룹이 탄생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빠는 Yifat과 함께 이스라엘 정세에 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데 지식이 딸리는 나로서는 그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다. 그저 옆 좌석에 가득 모인 이스라엘 여행객들의 금요일 저녁마다 치룬다는 유대교 의식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Yifat에게 물어볼 뿐이다(아마도 Yifat은 그 의식에 참여하지 않은 라싸의 유일한 이스라엘인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더듬거리나마 영어를 할 줄 알아야 일어날 수 있는 일, 영어를 좀 더 잘 구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외국인 친구 만들기가 쉬운 티벳에서…

 

Tip


여행사 : Yak, 키레이, 스노우랜드, 만다라 호텔 등이 호텔 내 여행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중 스노우랜드 호텔 내 여행사가 가장 저렴하고 믿을 만 하다. Caf eacute; 벽면에 붙어있는 여러 개의 전화 번호들은 이미 expire 되었거나, 한 대 밖에 없는 보유 차량이 이미 여행을 떠난 터라 현재 불가능하거나, 아예 통화가 안 되거나 했다. 서부 티벳 여행으로 우리와 계약한 사람은 Tashi II restaurant의 여종업원에게서 소개를 받은 DaChung. 그 역시 무슨 여행사의 manager란다. 성수기냐 비수기냐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니 가격 협상은 필수! 참고로 서부 티벳 여행은 15일을 기준으로 가격 폭이 심하게 오르니 일정을 짤 때 고려할 것.
         * ‘남쵸’나 ‘드리궁 틸’에 필요한 짚차 수배는 Yak Hotel의 수문장이자 doorman이라 할 수 있는 TenChoe(삐삐 번호 95828-82651, 혹은 reception desk에서 불러달라고 청해보자)를 통해서 했다. 구겨서 6명까지 탈 수 있는 짚차를 1박 2일의 여정으로 남쵸 1,000원, 드리궁 틸 900원에 수배해 주는데 우리가 광고문에 썼던 제목처럼 명실공히 ‘The cheapest price in Lhasa’이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 모으기가 수월했을 듯…


허가서 : 현재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 중에서 허가서가 필요한 지역은 우(U)지방의 사미에 사원, 네팔로 가는 길 중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이 곳을 제외하고 네팔로 가는 일정을 짠다면 허가서 불필요), 서부 티벳으로 가는 길 중 ‘라체’의 외곽 지역 등이다.


PC방 : Yak 호텔을 나와 오른쪽으로 걷다 만나는 첫번째 작은 골목 입구에 ‘Cyber Point’라는 아주 작은 PC방이 있다. 이외 다른 곳에서도 쉽게 PC방을 찾을 수 있지만 우리는 숙소에서도 가깝고 한글이 완벽 지원되는 이 곳만을 이용했다(오빠가 오늘 전해준 놀라운 한국 소식 하나, 영화배우 이경영의 미성년자와의 성 접촉 사건! ^^;;). 속도가 좀(많이?) 느린 것이 흠.


야시장 : Yak 호텔을 나와 오른쪽으로 걷다 만나는 첫번째 큰 사거리에서 오른쪽 골목에는 밤마다 야시장이 들어선다. 양고기 꼬치가 별미(김원장의 취향은 오직 기름칠과 소금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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