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상품을 이용하여 라싸로 온 탓에 이틀간에 걸친 라싸 tour가 보너스처럼 딸려 왔다. 오직 영어를 하는 가이드만 제공될 뿐, 입장료나 교통편, 식사 등 기타 아무런 포함 사항이 없는 tour이다. 별로 내키지 않는, 그래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라싸 tour는 티벳인 가이드인 ‘직미’를 만나면서부터 무척이나 유쾌해졌다. 사실 직미는 직무 유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널럴한 일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제 공항에는 아예 다른 사람을 보내 우리를 pick-up 했고, 이틀 중 첫 날인 어제는 오전 10시에 나타나 포탈라 궁만을 소개한 후 오후에 사라졌으며, 오늘은 아예 오후 2시에 나타나 세라 사원만을 함께 갔을 뿐이지만, 직미가 나에게 심어준 티벳에 대한 인상만큼은 무얼 주고도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라싸티벳에 도착, 라싸 시내로 들어오면서부터 이제부터 당분간은 오빠만 따라다니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맘이 푹 놓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는 이미 6년 전 티벳에서 네팔을 거쳐 인도까지 여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항 밖을 나서면서부터 오빠의 인상이 심상치 않아 그 이유를 물으니 공항 밖에 있는 상점들이 다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차가 잘 닦인 길을 쌩~하니 달려 라싸에 도착할 때까지, 오빠는 라싸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는 포탈라 궁이 시야에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있는 이 곳이 라싸임을 부인하고 싶어했다. 그 이유를 오빠의 설명으로 듣기도 전에, 나 역시 밖에 펼쳐지는 라싸 시내의 전경이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눈으로 느끼고 있었다. 거리는 온통 중국어 간판에, 크게 잘 닦인 대로, 매연을 내뿜고 달리는 많은 차들, 길을 걷는 중국인들…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지금껏 내가 상상해 왔던 티벳이, 라싸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오빠는 오빠대로 알아볼 수 없도록 크게 변한 라싸의 모습에 더욱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이 길이 포장되었다니, 이렇게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니, 중국인이 운영하는 티벳 기념품 상점이라니, 오빠가 끊임 없이 눈 앞의 광경이 정말 현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 늦게 도착한 나의 현 상황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정형화된 tour에 참여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직미는 달랐다. 우리 민족만큼이나 슬픈 역사를 지닌 민족이면서도 달라이 라마가 그의 자서전에서 언급했듯이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티벳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중국어를 쓰고, 중국어를 말하고, 중국인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고, 중국 화폐를 사용하면서도 내가 우려하듯이 중국화 되지 않은 그 무엇을 직미는 가지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포탈라 궁과 세라 사원을 돌아다니며 라마 불교의 기원이나 역사에 대하여 설명을 할 때에는 지극히 객관적으로 보이던 그와는 달리, 우리와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나라싸의 구시내 지역 코라(성지를 도는 순례길. 토착 종교인 뵌교도를 제외한 불교도들은 모두 성지를 오른쪽에 두고 시계 방향으로 돈다)를 함께 하는 그는 지극히 티벳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아직도 티벳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면 중국 경찰이 나타나 모두 감옥에 가두고,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로 망명하는 티벳인들 역시 들키면 총살이라며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직미. 과연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탕카아침 저녁으로 티벳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긴다는 조캉 사원에 출퇴근을 하며 끊임 없이 온 몸을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가며 오체투지를 하는 그들을 지켜 본다. 이미 수 없이 해온 터라 사원 입구부터 내부까지 돌 바닥이 다 반질반질하다. 차마 그토록 진지한 그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 하고 먼 발치에서만 바라본다. Tour를 맺으며 직미는 이 복잡한 티벳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결국 “착하게 살자”로 귀결될 수 있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현재 40년이 넘도록 인도 다름살라에 망명해 있는 달라이 라마가 지속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비폭력 독립 운동을 해 온 것과 맥이 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직미의 말처럼 비록 중국 정부의 중국화 정책에 의해 이주해 온 한족이 전체 인구의 반을 넘어서고, 95%에 달하는 모든 티벳 내 기업이 중국인들 소유라고 해도, 티벳인들 정신까지는 아직 소유하지 못 한 채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중국인들조차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미는 다섯 남매 중 막내 아들이다. 제일 맏형은 티벳에서 승려로 살다가 죽었고, 큰 누나 역시 여승으로 포탈라 궁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다음 두 형은 인도로 망명하여 살고 있는데 이 중 바로 윗 형도 인도에서 이미 죽었다고 한다. 티벳에서 인도로 가는 길,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하기만 하다. 이번 겨울, 히말라야를 넘는 직미의 인도 망명이 그의 소망대로 성공적이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인도에 도착하기만을 빈다.

 

Tip


관광 : 포탈라 궁 / Yak Hotel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20분 소요 / 1인당 70원(사진이 있는 학생증 비슷한 게 있으면 49원) / 이외 옥상에 올라가는데, 박물관에 들어가는데 각각 10원씩 더 받는다


세라세라 사원 / Yak Hotel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 10원(타기 전 흥정 필요) / 시내에서 5 Km 정도의 거리 / 1인당 35원(학생증 내나 마나 T_T) / 오후 3~5시 사이 승려들의 유명한 토론 모습을 볼 수 있다 / 돌아올 때에는 사원 입구에서 5번(2원)을 타고 종점에 내리니 Yak Hotel 서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야시장이 열리는 골목)이었다 

 

 

★ 티벳의 사원들 중 상당수는 오전 일찍 찾아가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조캉 사원의 경우 오후 늦게 찾아갔을 때에는 무료였으나 이후 직미의 “가이드가 딸린 단체 여행객에게만 입장료를 받는다”는 설명 대로 낮에 개인적으로 다시 찾아가니 입장료를 요구하더라…

★ 개인적으로 관광지를 찾았을 때 혹시 알아들을 수 있는 나라의 말을 구사하는 가이드가 있으면 슬쩍 해당 팀에 끼는 게 좋다. 안내서에는 없는 풍부한 이야기를 덤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포탈라 궁에서는 네팔 사람들이 여럿 우리 팀에 끼어 직미의 설명을 듣던 중, 석가모니가 인도의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는 대목에서 그만 실랑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룸비니 동산은 인도가 아니라 네팔에 있다나? 직미가 현재 룸비니는 네팔에 있지만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인도에 포함되어있었다는 설명으로 흥분한 그들을 무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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