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덴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가지지 않은 사람이든 살면서 ‘이단(異端)’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이단이란 말 뜻 그대로 정통 학파나 종파에서 벗어나는 설이나 교파를 가리킨다. 나 역시 내가 속했던 그룹이 이단으로 명명 받았던 씁쓸한 기억이 있지만 티벳에 와서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이단이라는 말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를…

 

‘티벳’하면 보통 ‘달라이 라마’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현재 티벳에 있는 몇 불교 종파(우리 나라에도 조계종, 천태종 등이 있듯이)중 겔룩파 제 1의 영적, 세속적 주권자의 위치를 지닌 존재를 일컫는 말이며, 이외 티벳의 토착 종교인 본교(책에는 뵌교라고 나와 있는데 발음이 ‘뵌’에서 ‘본’으로 교정 되었다나?), 티벳 불교에 있어 가장 오래된 종파인 닝마파, 밀라레빠로 유명한 카규파(이 중 가장 강력한 종파가 출푸 사원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카르마파이다), 사캬파 등 각각의 종파들 역시 달라이 라마와 같은 존재를 따로이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직미의 설명을 듣자면, 샤머니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본교를 제외하고는 이 모든 티벳의 불교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승불교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처님을 가운데 크게 모시는 우리나라의 사원들과는 달리 분명 뿌리는 같을지언정 이곳에서는 달라이 라마나, 혹은 그 종파의 창시자를 불상보다도 더욱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 법당의 가운데에 모시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당연 불상은 그 옆 자리를 차지하거나 훨씬 작게 만들어져 있기도 한데 아마도 현존하는 여러 라마들이 천수관음보살(티벳어로 아발로키테스바라)이나 아미타불의 살아있는 화신으로 여겨지는 티벳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 일런지도 모른다. 당장 눈 앞에 살아있는 부처님이 있는데 굳이 예전의, 이미 열반에 드신 지 한참이 지난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모실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잘 달리던 버스가 오르막 흙 길로 접어들면서 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를 틀은 간덴 사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목처럼 간덴 사원은 겔룩파 종파의 창시자인 ‘총카파’가 세운 사원으로, 당연히 이 겔룩파 사원의 주인은 현재 인도에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일 것 같지만 의외로 따로이 원장을 가진 독립적인 사원이다. 안내책자를 들고 사원 내를 거닐면서 여기 저기 건물마다 들어가 보다가 문득 직미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안내책자 이외에 정보를 습득할 길이 없는 이상, 결국 우리의 행보는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정보의 재확인, ‘정말 이게 여기 있구나’ 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대학 시절 유럽 여행을 했을 때,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안내책자를 들고 다니면서 주어진 제한된 시간 내에 책 속에 소개된 모든 명소를 보기 위해 동분서주 했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꼭 그런 방법 만이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간덴 사원을 둘러 보는 지금 이 순간 다시 그 시절 생각이 났으니…).

 

간덴우리는 과감히 사원을 나와 차라리 코라를 하기로 했다. 간덴 사원에는 코라를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간덴 사원을 마주 바라보고 서 있는 산 봉우리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high’ 코라이고 다른 하나는 간덴 사원을 안고 있는 봉우리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big’ 코라이다. 아무리 ‘high’ 코라라고 해도 간덴 사원 자체가 해발 4,300m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코라반대편 정상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눈 높이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high 코라를 반쯤 하다가 아무래도 ‘big’ 코라가 더 좋을 것 같아 다시 내려와 big 코라 길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우와, 바로 이것이 간덴 사원을 찾는 여행객들을 매료시키는 길이 아닐까 싶다. 순례길이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키츄 계곡의 멋진 경관을 숨겨 가지고 있는 것이다. Big 코라를 하는 길이야 말로 앞으로 간덴 사원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단, 경관에 눈이 팔려 길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우리가 그랬거들랑^^;;).

 

간덴간덴 사원을 감싸고 천천히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 다시 사원으로 돌아왔다. 출구를 찾아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은근한 북 소리와 맑은 징 소리가 난다. 어디에서 나는 걸까?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옆에 있는 작은 법당 남최캉(워낙에 이곳은 1417년 총카파가 간덴 사원을 지을 당시에는 본관 자리였다고 하는데, 현재의 대법당에 비교하면 아주 작다)에서 나는 소리이다. 티벳 특유의 가리개가 쳐진 법당 내를 들여다 보기위해 살짝 가리개를 올려 들었더니 스님 두 분이 박자 맞추어 열심히 경전을 외우고 계시는 중이다. 앗, 실례, 하며 어두컴컴한 법당으로 들이밀었던 고개를 빼내려는데 경전을 외우시던 스님들이 웃으며 들어오라 손짓을 하신다. 이렇게 좋을 데가, 우리는 사양 않고 손짓대로 얼른 스님들의 잠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경전을 외우는 것은 아마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 듯, 이 법당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분은 입으로는 계속 웅얼웅얼 경전 문구를 외우시면서도 고정된 하체를 제외한 나머지 상체는 완전 따로 움직인다.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실로 너무 재미있다. 두 분은 경전을 외우시는 가운데 주전자에서 틈틈이 차를 따라 마시기도 하고, 다른 물건을 집거나 악기를 다루기도 하고, 심지어 하품을 하거나 졸기도 하신다. 한 분이 졸다가 깨어나면 다른 한 분이 외우고 있는 부분을 얼른 따라 잡아 다시 함께 암송을 하는 식이다. 방글거리며 두 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관심이 많으신 건 물론이다. 경전을 외우다 말고 어디에서 왔냐, 이름이 뭐냐를 물으시더니 급기야 우리가 펴 들고 있던 안내책자를 달라고 하신다.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으로는 우리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시면서, 입으로는 끊임없이 경전을 외우신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부분에서인가, 우리 책자에 고정되어 있던 두 분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암송 소리가 끊기는 변이 일어났다. 두 분 중 한 분이 우리 책자 내의 사진에서 바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해 내신 것!

 

손짓에 얼른 스님 곁에 다가가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간덴 사원의 여러 승려들을 찍은 몇 장의 사진 가운데 정말 여기 앉아계신 이 스님의 모습이 있다. 두 분은 이외에도 여기 이 승려는 누구고, 저기 저 승려는 누구고, 한참 동료 스님들의 얼굴과 이름을 짜맞추느라 바쁘시다. 어쩜, 이런 인연이 있을까? 분명 당신의 모습이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알려져 있음을 모르셨으리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오빠가 가방에서 얼른 가위를 꺼내 들어 스님께서 아쉬운 듯 한참 만에 돌려주신 우리 책의 해당 쪽을 찾아 그 사진을 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하시며 오빠를 말리시기도 했지만, 오빠가 전해 드린 사진을 받으시고는 어린 아이마냥 즐거워 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행복해진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안내책자의 효용이다.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다시 가라앉히고 각기 북과 징을 듣기 좋게 치시며 경전을 외우시는 스님들을 뒤로 하고 간덴 사원을 나서는 우리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Tip


교통 : (우리 안내책자, 가이드인 직미와 호텔 프런트 담당 직원의 말이 모두 실제와 달랐으니 현지에서 꼭 확인할 것) 라싸 조캉 사원 앞 광장 - 간덴 사원 / 오전 6시 30분, 40분, 50분에 각 한 대씩 모두 세 대의 버스(출발은 각각 6시 45분, 7시, 7시 15분에 하드라만) / 편도 10원(샤메로 트레킹을 할 경우 구입), 왕복 20원(당일 오후 2시에 나란히 세 대가 다시 라싸를 향해 출발하니 타고 왔던 차를 찾아 올 때 나누어 주었던 왕복용 노란 좌석 표를 제출) / 편도 1시간 10분 소요 / 간덴 사원 행의 경우 예매를 꼭 하라고들 하는데 비수기라서인지 예매 없이도 승차하여 버스 내에서 차장에게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참고로 조캉 사원을 마주 보고 오른쪽(2시 방향) 벽에 붙어 있는 간덴 사원행 양철박스 매표소는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사이 문을 연다.


관광 : 간덴 사원 / 라싸에서 타고 온 버스가 간덴 사원 주차장에 세워준다 / 외국인 1인당 35원(학생증 소용 없음) / 주차장에 숙박 시설과 식당이 있으나 라싸에서 빵이나 과일 등의 간식을 준비하는 게 나을 듯. 음료수는 가게에서 살 수 있다 / 사원을 돌아다니며 ‘Welcome’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볼 것(신의 예민한 감각을 흩트린다며 군데군데 여성 입장이 불가한 곳이 있다. 같은 돈 내고…T_T)

       * 만약 사원 관광을 안 하고 오직 코라만 할 예정이라면 입장료를 안 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차가 아예 사원 내 정차를 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기 위해 뛰어오는 승려에게 설명을 잘 해야 할 것이다. 

안내책자 : 사진작가 여동완님의 ‘티벳속으로’. 티벳에 와 보면 알겠지만 겉 표지의 헌사들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정말 멋진 책이다.


한국 식당 : 있다 없다 논란이 있었지만 조선족이 경영하는 음식점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라싸에서 제일 유명한 restaurant이라고 하면 단연 Tashi restaurants을 꼽을 수 있겠는데 이 중 키레이 호텔 내에 위치한 ‘Tashi II’ restaurant에서는 성도에서 공수해 온 신라면을 맛 볼 수 있으며(비록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새우맛’이지만 그래도 매일 한 끼씩 밥 말아 먹고 있음), 한국 여행자들이 손수 마련한 여행 정보 노트가 비치되어 있어 눈도 혀도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단, Yak 호텔 오른쪽 맞은편에 위치한 Tashi I에는 라면도, 정보도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