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티벳에서 배를 탄다? 그것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 강, 얄룽 창포를 건넌다면? 상상만 해도 즐거울 것이다. 티벳을 찾는 여행자들이 사미에 사원을 빼놓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역시 바로 그 점이다.

 

물론 사미에 사원은 티벳 최초의 사원으로도 그 의미가 각별한 곳이다. 8세기 후반 경 세워져 인도인 사원장 밑에서 인도 학자들 뿐만 아니라 중국 학자들까지 모여 불교 경전을 티벳어로 번역함으로써 티벳에 불교를 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4층으로 이루어진 사원의 중심 건물, 우체(Utse)는 매우 독특하게 지어졌는데 1, 2층은 티벳식으로, 3층은 중국식으로, 4층은 인도식으로 사이 좋게 어우러져 있음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강중국이나 티벳을 여행하면서 소요 시간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노면 상태라는 것을 익히 알았기에 우리는 편도 6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정보만을 입수하고 처음 계획했던 당일치기 여행을 1박 2일로 변경했다. 자, 그럼 출발! 버스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늦장을 부릴 만큼 부리고서야 떠날 채비를 한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티벳 공가 공항에 도착, 라싸로 들어왔던 길을 고대로 다시 되짚어 버스는 달리기 시작한다. 3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왼편으로 사미에 사원 어쩌구 저쩌구 쓰인 표지판이 보인다. 어라, 벌써? 6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분명 사람들이 강가에 서서 배를 기다리는 모습이(처럼?) 보이는데 아주 잠깐 멈추어 섰던 버스는 아니나 다를까 부르릉 다시 시동을 건다. 그러면 그렇지, 여기가 아닌 게야. 하지만 그 표지판은 뭐지? 앞 뒤 앉아 있는 다른 승객들에게 여기가 사미에 사원이냐고 물어 본다. 앞에 앉은 사람은 아니라고 하고, 뒤에 앉은 사람은 맞다고 한다. 잉? 버스 차장을 불러 재차 물어 본다. “여기가 사미에 사원?”. 차장은 더 가야 한다는 시늉을 한다. 결국 오빠와 내가 새로이 세운 가설은 방금 지나 온 곳이 본래의 선착장은 맞지만 준비된 배에 비해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또 다른 선착장을 찾아 가는 중이라는 것. ^^;

 

하지만 우리의 가설과는 달리 버스는 도무지 설 생각을 안 한다. 결국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멈추어 선 곳은 산남(山南)이라는 제법 큰 도시. 아무리 봐도 강과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에 왜 차를 세웠을까? 맙소사, 밥을 먹고 간단다.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제 만난 코끼리 아저씨(박순창씨의 별칭)까지 세 명의 한국인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결국 다리를 찾아 건넌다. 이제야 알겠다. 이 버스 승객들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사미에 사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사미에 사원에 가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늦은 밤, 식당에서 만난 티벳인 가이드 ‘두첸’을 통해 알게 되었다. 26일, 내일이 ‘사가 다와’ 축제라 모든 순례객들이 참배를 위해 한 보따리씩 짐을 들고 사미에 사원을 찾았고,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차에서 내려 다시 배를 타고, 또 다시 차를 타고 하는 번거로움을 겪기가 싫었던 것. 덕분에 배를 타고 건너고자 했던 우리는 얼떨결에 돌아 돌아 바퀴 달린 차만을 이용하여 사미에 사원에 도착한 것이다.

 

사미에밤 늦도록 두첸과 서로의 건국 신화부터 월드컵까지 맥주를 번갈아 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직미에게서 익히 들었던 바이지만 역시나 티벳의 현 상황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 티벳으로 몰려드는 중국인 가이드들은 티벳인 가이드들의 일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티벳의 역사에 대하여 마치 일본이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늘어놓기가 일쑤이며, 그런 중국인 가이드들에게 안내를 받는 중국인들은 십중팔구 티벳의 역사나 문화, 종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불상이 진짜 금불상이냐, 저 불탑을 치장하는데 든 보석의 금전적 가치는 얼마나 되느냐 따위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많은 티벳의 부모들은 현재 티벳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식 교육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의 다름살라로 자녀들을 보내 교육 시키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런 시도는 매우 위험하지만 실제로 많은 티벳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인도로 보냈고, 그곳에서 정통 티벳식 교육을 받은데다가 영어까지 구사하는 티벳의 어린 아들 딸들은 자라서 다시 티벳으로, 사미에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단다. 이렇게 다시 조국을 찾은 티벳인들은 중국인들과 달리 영어를 잘 구사하기 때문에 최근까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관광업 관련 직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인들이 영어를 배워 티벳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고, 중국 역시 인도나 네팔에서 다시 조국을 찾아 입국하는 티벳인들에 대해 입국을 불허하거나, 취업을 막는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어두운 이야기 끝에 내가 두첸에게 물었다.


“혹시 외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티벳을 찾는 많은 유럽인들을 위해 스위스에서 공부를 하고 싶긴 해요. 하지만 1년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요. 1년간 그 나라 언어를 공부한 후 다시 내 나라, 티벳으로 돌아올 거여요.”


강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상, 티벳의 미래는 분명 어둡지 만은 않을 것 같다.

하룻밤을 사원 내에서 보낸 후, 아침 일찍 라싸로 돌아오기 위해 배를 탔다. 소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뱃길이다. 만지면 사르르 부스러질 것만 같은 산들 속에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듯 존재하는 강이라니… 믿기지 않는 강, 믿기지 않는 하늘이다.

 

Tip


교통 : 1) (역시나 안내책자와 각 호텔 프런트 담당 직원의 말이 모두 실제와 달랐으니 현지에서 꼭 확인할 것) 라싸 조캉 사원 앞 광장 - 사미에 사원 / 오전 6시 30분 버스 나타남, 7시 30분까지 대기, 8시까지 버스 터미널로 옮겨 매표(좌석이 비어있을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매표하지 않아도 차장에게서 표 구입 가능) / 편도 40원 / 8시간 소요(중간에 점심 1시간) / 배를 타고 가고 싶다면 라싸 출발 후 3시간 30분 정도 지나 도착하는 사미에 사원 ‘도구(渡口)’에서 내리면 됨
2) 사미에 사원 - 라싸 조캉 사원 앞 광장 / 오전 8시, 사원에서 출발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30분(5원) -> 도착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시간(5원) -> 다시 버스타고 3시간 30분(30원)


* 원칙적으로 사미에 사원을 가기 위해서는 ‘허가서’가 필요함. 허가서 없이 갔다가 공안(경찰)에게 걸리면 허가서 발급 비용에 해당하는 벌금 50원(혹자는 500원이라고도 하는데)을 내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의 경우 주말이라서인지 아니면 축제 기간이라서인지 공안에게 걸리지 않고 무사 통과! ^^(100원 아꼈음)
관광 : 사미에 사원 / 라싸에서 타고 온 버스가 사미에 사원 내에 세워 준다 / 1인당 30원(그러나 학생증으로 2인 1매 구입^^) / 맨 꼭대기까지 꼬옥~ 올라가 볼 것! / 주차장에 숙박 시설(Samye Monastery Hotel)과 식당(Samye Monastery Restaurant)이 있음


숙박 : Samye Monastery Hotel / 몇 인실이냐, 방에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 바닥에 카페트가 깔려져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침대당 10원에서 25원 / 우리는 한비야님이 추천한 대로 218호(침대당 25원)에 묵었는데 그새 방이 바뀐 건지 남향이 아니라 북향임(하지만 전망은 good!) / 물론 화장실 공동 사용(욕실? 설마…)
식당 : Lonely Planet이나 우리 안내책자에서 추천하는 Gompo’s restaurant은 이미 문을 닫았고 쪽문을 통해 나간 동문 밖에는 Snowland restaurant만이 덩그러니 있었음 / 숙박 시설 내 식당인 Samye Monastery Restaurant의 모모(티벳 만두)는 맛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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