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체지난 밤 결국 허가서가 우여곡절 끝에 도착은 한 모양인데 이번에는 가이드인 ‘츠링’이 사라졌다. 분명 갈 길이 멀다며 오전 7시까지 숙소 로비로 모이라더니 대체 꼭두새벽부터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영어를 못 하는 티벳인 운전사가 짐을 몽땅 꾸려 들고 짜증나는 얼굴로 서 있는 우리들 앞에서 혼자 가이드를 찾아 헤매느라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한다. 서부 티벳 여행에 있어 허가서와 더불어 가이드가 필수 요구 사항만 아니라면 그냥 확 버려버리고(?) 우리끼리만 그냥 떠날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신세의 우리는 결국 모두 차에 타고 츠링 찾아 동네 한 바퀴에 나선다. 하지만 어디에도 안 보이는 가이드 얼굴. 한 바퀴를 돌며 어젯밤 들렸음 직한 술집을 뒤져 보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정문 앞에 차를 세우려는데, 막 우리 앞에 선 택시에서 헐레벌떡 츠링이 뛰어 내린다. 우와, 술 냄새. 멀리에서도 진동을 하는 걸 보니 어제 거하게 한 잔 한 모양이다. 때는 오전 8시 30분, 약속보다 1시간 30분이 늦은 시각이지만 어쨌든 이렇게라도 츠링이 나타났으니 출발, 이틀을 머무른 시가체를 차는 서둘러 벗어난다.

 

라체힘들게 커다란 고개를 하나 넘어서고야 라체(Lhatse)에 다다른다. 이 곳에서 네팔로 가는 여행자들은 남쪽길로, 우리처럼 서부 티벳을 가는 여행자들은 곧장,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을 위한 식당들이 주르르 늘어서있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우리 역시 앞으로의 긴 여정에 앞서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서둘러 점심을 먹는다. 다시 출발, 이제 본격적으로 서부를 향해 떠나볼까 하는데 경찰들이 차를 막고 선다. 드디어 우리가 떠나기 전 받아 온 허가서들을 검사 받을 때가 온 것이다. 얼마 전 허가서 없이 이 곳을 통과한 적이 있었던 Yifat이 그 때의 상황을 실감나게 설명한다.


“시가체에서 버스를 타고 여기 라체까지는 잘 왔는데 라체에서 나가려니까 바로 이 곳에 checkpoint가 있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라체에서 하루를 자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혼자 일어나 짐 져 들고 몰래 checkpoint를 빠져 나갔지. 그리고 사가를 향해 2시간쯤 걸었을까? 마침 지나가던 트럭이 있어 히치를 할 수 있었어.”

 

차

허가서를 보유한 우리 차는 아무런 문제 없이 유유히 checkpoint를 통과한다. 옆으로 강 줄기가 약하게나마 흐르면서 몇 가구 안 되지만 ‘카가’나 ‘상상’과 같은 티벳인들의 작은 마을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얼마나 달렸을까, 그리고 또 다시 펼쳐지는 황량한 초원. 사람이 사는 흔적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간혹 유목민들만이 양이나 염소 떼를 몰고 있을 뿐인데 그 수 많은 동물들을 관리하는 유목민은 오직 한 사람씩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것으로 보이는 하얗거나 검은 천막 - 요즘은 방목철이라서인지 장기간 머물 때 친다는 검은색의 천막보다는 이동 중임을 나타내는 흰색의 천막이 월등히 많이 눈에 띈다. 천막 안에는 보통 중앙에 난방을 위해 불을 때는 난로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땔감으로는 주로 야크면 야크, 염소면 염소 등의 그들이 방목을 하고 있는 짐승의 똥을 사용한다. 천막안쪽으로는 약식이나마 부처님 상을 모신 작은 제단이 있고 그 제단 위에는 작은 버터 램프가 타고 있다. 천막 가장자리로 식구들이 몸을 누일 수 있도록 딱딱한 나무를 이용하여 직육면체의 침대들을 만들어 두었는데 천막 내부 어디에서나 버터 냄새,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가 짙게 배여 있다. 가끔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자 버터향 가득한 그들의 천막 내로 들어가 버터차를 부탁하면, 자연스레 중앙의 난로는 그대로 가스레인지가 되고, 그들의 침대는 우리의 식탁이자 의자가 된다.

 

라체오늘은 그래도 길 상태가 좋은 편이라는 데도 사가에 도착하자 온 몸이 쑤셔오는 것이 한 시라도 빨리 어서 몸을 누이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이 꽤나 많은 탓인지 방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 5명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을 겨우 하나 구하기는 했는데 먼저 방을 둘러본 Grace가 경악을 금치 못 하며 하얗게(사실 그녀는 흑인이다 ^^;) 질린 얼굴로 돌아서 나온다. 본인은 절대 저런 방에서 잘 수 없다나? 오빠와 함께 뒤따라 방에 들어서자 우선 매우 어둡다는 생각이 든다. 조명이 있나 고개를 들자 나뭇가지를 촘촘히 얽어 만든 천장 사이로 알전구 하나가 달랑 내려와 있는 것이 보인다. 오늘 저녁에 비가 오면 큰일이겠군, 하면서 스위치를 찾는데 보이지를 않는다. Yifat이 이거야, 하면서 방 입구에 실처럼 내려온 줄을 잡아당기는데 안 들어온다. 바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해놓지 않아서 맨 얼굴, 흙 바닥 그대로인데 날이 가물어서인지 발을 세게 구르면 흙먼지가 풀풀 난다. 벽은 또 어떻고… 침대 위에 있는 이불과 베개는 도무지 본래의 색을 짐작할 수 없을 지경이다. Grace가 유난을 떨 만하군. 그렇다고 가이드인 츠링이나 운전사처럼 차 안에서 자기에도 난감한 일이 아닌가? 결국 우리가 제 자리를 잡고 침대 위에 다시 개인의 침낭을 깔고 들어가 누워 방 모양새에 대해 낄낄거리도록 Grace는 본인의 침낭 안에서 한 치의 움직임이 없이 벽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앉아있을 뿐이다. 아마도 저렇게 밤을 새우려는가 보다.

 

Tip


교통 : 시가체-라체(점심, 출구에 허가서 checkpoint) / 3시간
라체-카가(주유) / 1시간 10분
카가-상상(잠시 휴식) / 1시간 40분
상상-라가(북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마을) / 3시간
라가-사가(입구에 허가서 checkpoint) / 1시간
* 차를 탄 시간만 total 9시간 50분

숙박 : 사가는 H 모양으로 생겼다. H자의 오른쪽 아래 즈음에 있는 checkpoint를 통과하여 마을 중심부로 좌회전을 하면 바로 오른쪽으로 티벳식 guesthouse 두 개가 연달아 있고 맞은편으로는 중국식 정부 초대소가 위치해 있다. 입구쪽보다는 두 번째 위치한 티벳식 guesthouse가 인기 있으며 이외에도 이 숙소들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넌 뒤 나오는 삼거리에서 네팔로 가는 지름길 쪽으로 좌회전을 하면 왼편 우체국 위와 오른편 중국전신(中國電信) 안쪽으로도 숙소가 있다. 이 중 중국전신 내 숙소는 오늘 open하여 그나마(?) 깨끗한 편인데 우리가 사가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12년 만에 찾아오는 성수기 중 성수기라 방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장 입구의 티벳식 guesthouse에 자리를 잡았다 / 그냥 흙 바닥에 나뭇가지 삐죽 거리는 천장을 가진 각 방마다 5인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침대당 25원 / 공동 화장실은 상태가 매우 열악하고 욕실은 아예 없음 / 전기는 저녁에 자가 발전기를 돌려 잠깐 들어옴

식당 : 라체에도 (그 어디와도 상관없어 보이는) Tashi No. 2 restaurant이 있으나 계란볶음밥 한 그릇에 22원(한국으로 따지면 4,000원 가량)이나 하는 통에 맞은 편에 즐비한 다른 중국 식당에서 8원 주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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