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수요일


우리가 문명으로 돌아온 날, 제일 먼저 한 일은 우리의 티벳 허가서를 받고자 都吉가 주인인 Snowland restaurant에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都吉의 누나만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국말로) 두지(都吉를 이렇게 부르는 것 같아서) 있어요?”
“두지 없어요. @#$%^ *~~”

없다니? 요 근처 어디에 갔나? 뒤에 대체 뭐라고 떠드는 거야? 내일 떠나려면 어서 우리 허가서부터 손에 넣어야 할텐데… 우리는 미리 수첩에 써 둔 바 있는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을 불러 주셔요’를 누나에게 보여준다. 얼마 후,

 

누나가 소개해준 두지 친구 A : (유창한 영어로) 무슨 일이죠?
우리 : (더듬거리며) 이번 월요일, 두지가 티벳 허가서를 받아준다고 했는데 눈 사태가 나는 바람에 우리가 향성에서 지금에서야 도착했어요. 향성에서 계속 전화를 했었는데 두지 핸드폰이 안 터지더라고요. 두지, 어디 있어요?
A :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두지, 티벳 라싸 갔어요. 그래서 전화 안 되요.
우리 :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라싸라니요? 왜요? 언제요?
A : 라싸로 간지 5일쯤 되요. 손님들 모시고 짚차 타고 갔으니까 앞으로 3일은 더 가야 라싸에 도착할 거여요. 그때까지 핸드폰 안 터져요. 3일 후 토요일 저녁쯤 전화 해 봐요. <참고로 두지는 이 restaurant의 주인이자 guide일을 함께 병행하고 있음을 다시금 밝혀 둔다>
우리 : (멍하니 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럴리가요? 분명히 우리가 지지난 주에 허가서를 부탁했고 지난 주 월요일, 두지와 함께 문 닫힌 관공서를 방문한 적도 있는걸요? 그 때는 축제 때문에 안 되고 이번 월요일, 이미 도착해 있는 허가서에 도장만 받으면 된다고 했어요. 벌써 수요일이니 최대한 빨리 두지와 통화를 해야 해요.
A : (또 다른 친구 B, C와 쑥덕거리다) 두지 전화는 지금 안 터져요. 혹시 아는 다른 사람 있어요?
우리 : (기억을 더듬으며) 두지 말고 두지 친구랑 허가서 문제로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이름도, 전화 번호도 몰라요.
A : 두지는 친구가 많아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데요?
우리 : 키가 크고 머리가 길고, 얼굴이 당신보다 더 커요. 얼굴빛도 당신보다 더 검구요. ^^;;
A : (또 다른 친구 B, C와 한참 의견을 나눈 후) 그렇다면 아마도 켈상일거여요. 켈상 핸드폰 번호는 이거구요. 켈상도 오늘 손님들 모시고 이 근처 투어를 하는 중이니까 이따가 저녁때 한 번 통화해 봐요.
B : (A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로) 아니면 그 관공서로 직접 가서 허가서를 한 번 달라고 해 봐요. 아, 지금은 이미 문을 닫았겠군요. 내일 아침 가보던지요. 하지만 역시 켈상하고 통화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restaurant을 나오는데 왜 그리 발걸음이 무겁던지, 지고 있는 가방은 천근 만근이고, 오빠 얼굴을 살펴 보니 이미 격해진 감정을 자제하려는 빛이 역력하다.

오빠 : 아무래도 그 놈이 우리 일 팽개치고 돈이 더 되는 일 따라 나선 것 같다. 그냥 비행기 타고 가자.
나 : 그러지 말고 이따가 저녁때 켈상하고 통화해 보고 결정하거나 내일 아침 관공서 갔다 온 다음 결정하자.
오빠 : 그러면 이번 토요일 비행기 신청에 늦을지도 몰라.

 

그러더니 오빠는 말꼬리도 제대로 맺지 않고 휑하니 숙소 내 여행사로 발길을 돌린다. 정말 힘들게 그 허가서 한 장 받겠다고 이 곳까지 다시 돌아왔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오빠 : (여행사 문을 나오며) 지금 벌써 두 자리 밖에 안 남아 있단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가려면 일인당 전체 경비 2450원 중 200원씩을 예약금으로 지금 내야 한데. 만약 이후 취소하면 그 반만 우리에게 되돌려주고.

 

오빠는 200원을 날리더라도 일단 비행기 좌석부터 잡을 생각인가 보다. 하긴 두 자리 밖에 안 남아 있다니 오빠 맘이 얼마나 다급해졌을까… 오빠한테 그렇담 켈상하고 지금 당장 한 번 통화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돌린다. 아, 그러나, 나와 한참을 얘기하던 켈상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만났던 그 사람이 아닌가 보다. 아무리 상황 설명을 해도 우리가 누구인지, 만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기억이 잘 안 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오빠는 얼른 여행사로 뛰어가 400원을 내밀며 예약부터 하고 온다. “우리가 보기 좋게 당한 거야.” 그럴리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우리에게 여행사 직원이 퇴근하면서 친절하게 한 마디 한다.

 

“허가서 신청에 필요한 여권 사본은 내일 오전, KangBa Hotel에 있는 본점에 가져다 주시겠어요?” 결국 우리는 비행기를 타게 되나 보다. 숨겨져 있던 티벳 동부를 육로로 가로질러 가기 위해 이 근처에서 자그마치 2주일이나 보냈는데…

 

5월 16일 목요일

 

여권 사본을 덜렁덜렁 들고 본점에 간다. 먼저 와 있던 일본인 남녀가 들어서는 우릴보고 “곤니찌와” 한다. 일단 “곤니찌와” 받아 치고 “그런데 우리는 한국인이지롱”한다(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중국 여행을 하면서 중국인들로부터 완전 중국인처럼 생겼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그런데 일본인이 보기에는 우리가 일본인처럼 생겼다 이건가? 반면 어쩌다 한국인을 만나면 놀랍다는 듯 “한국 분이셨어요?” 한다. 그 이유가 우리의 헤어스타일 탓인지, 옷차림 탓인지 잘 모르겠다). 꼬리를 물고 우리 뒤를 따라 들어 온 영국 남자와 호주 여자까지 금방 좁은 사무실이 가득 찬다. 일본인 남녀는 지금 막 샹그리라에 도착하자마자 티벳 가는 방법부터 알아보기 위해 여기 들른 참이었고 우리를 포함한 나머지 넷은 모두 항공편 예약 확정을 위해 온 사람들. 절실히 바랬던 육로로의 여행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일 모레 토요일이면 드디어 티벳으로 들어간다 생각을 하니 묵혀두었던 변비가 시원하게 해결된 듯한 기분이다. 에라, 기분인데 한식도 먹고, 과일도 한아름 사 가지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어라, 영국 남자와 호주 여자도 우리와 같은 숙소였구나. 우리가 의료인이라며 같은 티벳행 비행기 뿐만 아니라 인도까지 동행해야겠다며 농담을 했었던 영국 남자가 우리를 알아보고 얼른 다가와 말을 건넨다.

영국 남자 : 소식 들었니? 우리 비행기 표가 3장 밖에 없데.
우리 : (순간 당황하여) 엥? 그게 뭔 소리야?
영국 남자 : 방금 숙소로 전화가 왔어. 혹시 아까 너희 돈 다 냈니?
우리 : (순식간에 맘이 놓이며 자신 있게) 응. 다 지불했지(사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중국 화폐가 부족하여 미국 화폐로 일을 처리하려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했었다).
영국 남자 : 그렇구나, 우리는 아직 다 안 냈거든. 아마도 우리가 잘못되게 생겼네.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희희낙락해 하고 있는 나에 비해 오빠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왜 그래?

오빠 : 아무래도 불안하다. 우리 다시 한 번 본점에 가보자.
오빠에게 어떤 신비한 영적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본점에 가니 어럽쇼, 오빠의 예지 능력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한다. 아까 그 일본인들까지 모두 6명이 신청을 했는데 좌석이 3장 밖에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나? 비록 우리가 모든 경비를 다 지불하기는 했지만 영국 남자와 호주 여자가 먼저 예약을 했고 그 다음이 우리란다. 이게 대체 뭔 소리라냐… 미안하다만 반복하며 담당 직원이 내 놓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1) 일본인 2명과 함께 4명 단체를 만들어 오늘 저녁 밤차를 타고 곤명으로 가 내일 오후 곤명-성도 간 비행기를 타고, 모레 아침 성도-라싸 간 비행기를 탄다(이 경우 오늘 저녁 곤명으로 가는 버스비와 성도 공항에서의 하루 숙박비만을 추가 지불하면 된다고 함)
2) 일주일을 더 기다린 후 다음 주 토요일 비행기를 탄다
3) 경비를 돌려준다

 

대안이라고 내 놓은 게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든다. 만약 일본인들이 거절하면(오늘 아침에 도착했다는데 오늘 밤 다시 곤명으로 가라면 가겠냐?) 단체가 안 만들어지므로 1번은 안 되고, 이미 2주일을 보냈는데 1주일을 더? 2번도 너무 무지막지하고, 3번은 그야말로 책임감 없는 소리다. 담당자는 이 문제로 2시간 후에 일본인들과도 다시 만나야 한다며 우리 의사를 묻는다. 한숨만 푹푹 쉬던 우리는 포기하고 있던 육로 여행을 다시 떠 올린다. 그래, 허가서내 지정된 여행 기간이 부족하면 어떠냐, 이왕 엎질러진 물, 허가서만 나왔으면 경비는 돌려 받고 내일 육로로 가자.

 

일단 2시간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기억을 더듬어 그때 그 관공서를 찾아간다. 예전과 달리 열려 있는 관공서 내부는 활기차다. 두지가 없어도 설마 본인이 왔는데 돈만 지불하면 안 주겠냐…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찾아 아마도 여기에 라싸에서 fax로 보낸 우리 허가서가 이미 도착해 있을 텐데 우리 일을 담당해 주는 사람이 라싸에 가서 없으니 직접 우리에게 도장을 찍어 달라고 설명을 늘어 놓으니 그 사람이 황당해 하며 대답한다.

“뭔가 잘못 알고 오셨나 본데 여기는 그냥 여행사이지, 허가서에 도장을 찍어 주는 일은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티벳 여행과 관련된 항공 업무는 KangBa Hotel에서 하고 있어요. 당신들이 말하는 육로 여행에 대한 허가서라면 아마도 공안국에서 취급할 겁니다. 도장도 공안국에서 찍어주어야 여행이 가능할 거여요.”
“속았다, 보기 좋게 속았어.”

 

오빠는 모든 것을 알겠다는 투로 허망해 하지만, 아직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공안국에 한 번 더 가보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 힘없이 처져있는 오빠를 끌고 나오는데 갑자기 우박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일 분 일 초가 소중한지라 그냥 우박을 맞으며 공안국을 찾아간다. 젖은 몰골로 다시금 한참 열심히 설명을 하자 시종일관 진지하게 듣고 있던 공안 왈,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외국인이 그런 방법으로 동부 티벳을 여행하는 것은 현재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정 티벳을 가고 싶으시면 KangBa Hotel로 가서 허가서를 재발급 받아 항공편이나 짚차를 이용하셔요.”


정녕 우리는 두지에게 속고 만 것인가? 산 너머 산이라더니 힘겹게 돌아온 샹그리라에서 이런 엄청난 복병을 만나게 될 줄이야… 확 그냥 두지를 여기 공안국에 찔러버려?

“오빠, 우리 그냥 여기 샹그리라에서 기다려 보자. 분명 비행기 좌석을 취소하는 사람이 한 명은 생길 거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
“안 돼. 만약 그랬다가 아무도 비행기 좌석을 취소 안 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일주일을 여기에서 더 기다려야 해. 곤명으로 되돌아 가자.” 이미 확고하게 결심이 선 오빠.

이렇게 된 이상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그 일본인 둘 뿐이다. 서둘러 KangBa Hotel로 돌아가니 이미 설명이 끝났는지 우리와 비슷한 표정으로 황망해 하는 두 일본인. 우리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들의 결정을 기다려 보는데 한참의 망설임 끝에 우리와 함께 곤명으로 돌아가겠단다. 이들도 최대한 빨리 티벳으로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정말 다행이지 싶다. 몇 번 예매를 안 한 탓에 고생한 경험이 있는 우리는 최대한 빨리 곤명행 야간 침대 버스표부터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게 웬 엎친 데 덮친 격, 우리가 내일 오후 6시 곤명발 성도행 비행기를 타려면 늦어도 5시까지는 곤명의 여행사 사무소에 도착해야 비행기표를 수령할 수 있는데 오늘 있는 곤명행 야간 버스표가 모두 동이 났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내일 꼭두새벽 곤명으로 가는 첫 버스를 잡아 탄다고 하더라도 오후 5시까지는 곤명에 도착할 수 없다. 모두들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가운데 갑자기 일본인 남자애가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어제 우리가 대리에서 밤 버스를 타고 여기에 도착했으니까 오늘 일단 대리까지 밤 버스로 간 후 내일 새벽 대리에 도착해서 다시 곤명행 버스를 타면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아, 그래. 좋은 생각이다. 오후 8시에 출발하는 대리행 야간 침대 버스표 역시 이미 몇 장 밖에 안 남아 있는 상태지만 연달은 좌석 번호를 구하고 자시고 따질 때가 아니라 일단 구입부터 하고 본다. 이제야 한 시름 놓겠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인지 이제서야 통성명을 청한다. 남자애는 14개월째 세계를 여행 중인 다카, 여자애는 6개월째 여행 중인 미키로 6개월 전 호주에서 만난 이후로 계속 함께 여행 중이란다.

 

곧 late check out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야간 침대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가야 한다. 티벳으로 가기 위해 하루 종일 정신 없이 뛰어 다녔다. 대체 두지는 왜 일을 이렇게 만든 걸까? 어쩌면 티벳에서 만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티벳에서 우리를 딱 마주쳤을 때의 두지 얼굴이 정말 궁금하다. 여하간 서두르자, 다시 대리로, 그리고 곤명으로 돌아가야 한다!

 

Tip

 

숙박 : Tibet Hotel의 late check out은 오후 6시까지이다(반 값)
교통 : 샹그리라 - 대리 / 샹그리라 터미널에서 야간 침대 버스 / 1인당 62.5원 / 생각보다 버스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어디로 뜨던 간에 예매를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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