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5월 12일 오전 6시
알람 소리에 기상.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어제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이래서는 오늘 ‘샹그리라대협곡’에 가더라도 샌들을 신은 우리로는 구경이 수월치 않을 판이다. 오빠와의 상의 끝에 좀 무리가 되더라도 샹그리라로 그냥 곧장 가기로 한다.

 

5월 12일 오전 7시
숙소 주인 아저씨께 ‘多雨, 安全路?’ 써보이고 확인 받고서야 하루 한 번 오전 7시에 있는 샹그리라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나옴. 매표 후 문 닫힌 차 앞을 어슬렁거리려니 웬 아주머니 한 분이 기사 아저씨가 주무시는 중이라며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 부인).

 

5월 12일 오전 7시 50분
40분에 터미널을 나선 버스는 마을 초입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출발. 날씨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현지인들인걸 보니 걱정은 기우인 듯. 속도가 문제지, 길이 안전은 한 모양. 휴, 다행…

 

5월 12일 정오
4,200m에 달하는 첫 고개를 오르면서 비가 눈으로, 눈은 점점 그 크기가 더해지면서 바닥을 덮음. 제 승객을 모두 채운 버스는 쌓이는 눈 위에서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 하고 이런 우리를 휭~ 하니 앞질러가는 빨강 짚차를 오빠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 봄. “저거 타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차5월 12일 오후 1시
정오부터 차를 세우고 감기 시작한 Snow Chain. 한 시간 만에 뒷바퀴 두 개에 감는데 성공, 재출발. 흡족해 하는 오빠, “저거 감으면 이제 잘 올라갈 거야.”

 

5월 12일 오후 1시 30분
오빠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은 버스, 계속 눈 위에서 헛바퀴 질만... 해발 4,100m, 눈은 5cm 넘게 쌓임. 사람들 내려서 차가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눈을 치움. 삽이며, 행선지를 가리키는 푯말이며, 근처 나뭇가지까지 다 동원됨. 열린 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발을 시리게 할 정도로 매우 차가움. 춥고 배가 고프다.

 

5월 12일 오후 2시 30분
한 시간 동안 가다 서다 파다, 가다 서다 파다, 100 m나 전진했을까, 눈은 10cm도 넘게 쌓이고 갑자기 맞은 편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걸어오는 두 사람, 그리고 그 뒤로 멀리 아까 지나갔던 빨강 짚차가 힘겹게 우리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음. 우리 차 안에 올라탄 사람들은 척 보기에도 부티가 줄줄 흐르는, 다행히도 영어가 가능한 베이징 출신의 젊은 남녀. 우리가 가는 앞 쪽으로 눈사태가 나서 아무리 노력해 봐도 도무지 자기들 차로는 갈 수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마찬가지로 샹그리라로 향하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향성으로 되돌아갈 예정이라며 본인들 차로 돌아감. 이후 연장을 빌리기 위해 연달아 뒤 따라온 짚차 운전사 두 명의 몰골이 그들의 고용인과는 다른, 그들의 고생을 온 몸으로 보여 줌.

 

눈5월 12일 오후 3시 30분
눈사태가 난 지점을 걸어서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온 우리 운전사 아저씨, 머리 꼭대기까지 눈이 쌓여 있어 도무지 전진이 불가능하다는 몸짓. 말이 안 통하는 우리 둘을 제외한 승객들을 상대로 뭔가 표결에 부치는 듯. 눈이 안 내려도 차 두 대 엇갈리기가 힘든 상황에 눈이 내리자 우리와 마주보게 된 빨강 짚차까지 100여 m를 발목 한참 위로 쌓인 눈을 밞으며 걸어가 우리 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 달라며 도움을 요청. 지금 우리 차는 전진이 불가능하니 되돌아갈 예정인데 다시 향성으로 갈지,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산 아래에 있는 동왕(東旺)이라는 마을로 갈지를 다수결에 부치는 중이라고… 오호… 다시 차로 돌아와 보니 우리 앞에 앉은 한 부자(父子)만이 향성을 외치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동왕을 외치고 있음. 그렇게 우리 차는 산 아랫마을로 내려가기로 합의를 본 모양인데 이 때 짚차, 지나가면서 고맙게도 우리 의향을 물음. “향성 가려면 태워 줄 테니 타렴.” 오빠를 쳐다보니 “우리는 동왕 간다”고 하네. 내 그럴 줄 알았지. 이렇게 우리는 민주주의의 법칙에 따라 동왕으로 가기로.

 

5월 12일 오후 4시 30분
기사 아저씨가 거북이처럼 창 밖으로 목을 내밀고 오는 눈이란 눈은 다 맞으면서 뒤를 바라보며 후진으로 눈이 어느 정도 녹은 곳까지 한 시간을 내려 옴. 마주 기어오던 빨강 짚차, 공간이 생기자 향성으로 내달리며 빠이빠이~

 

5월 12일 오후 5시
감을 때는 한 시간이 걸리던 Snow Chain, 풀 때는 30분이 걸리고, 차를 겨우 거꾸로 돌려 동왕으로 출발

 

5월 12일 오후 7시
산 아래로 난 작은 길을 따라 2시간을 내려가면서 뭐 이리 머냐는, 워낙에 향성을 주장하던 부자에 의해 승객들간의 작은 실랑이. 아닌게 아니라 모두들 지쳤음. 산 위에서 만난, 마찬가지로 산 넘기를 포기하고 되돌아가던 동왕발 샹그리라행 버스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니 분명 길은 맞을텐데 가도 가도 안 나오니 그럴 수 밖에… 때묻지 않은 모든 곳이 그렇듯, 이 또한 가는 길은 아름답지만 우리를 포함, 지칠 대로 지친 승객 모두는 구경도,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일 힘도 없는지 조만간 잠잠해짐. 오빠 역시 더 이상 버스를 타고 싶지 않다며 샹그리라로 돌아가는 대로 허가서를 취소하고 비행기를 타고 티벳 라싸로 들어가겠다고 하여 나는 심히 걱정이 됨. 그렇게 꾸불꾸불 산을 내려오다 해가 어둑어둑 질 무렵, 드디어 동왕에 도착. 산 아래라더니 푸헐~ 해발 2,400m… 뭐 하긴 그래도 4,000m가 넘어가는 고산지대 입장에서는 여기가 바닥이겠지. 동왕에는 우리처럼 산을 못 넘고 발길을 돌린 트럭 및 짚차들이 이미 대 여섯 대 주차 중.

 

5월 12일 오후 8시
워낙 작은 마을인지라 먼저 내려온 차들에 타고 있던 승객들로 인해 우리 버스의 승객들은 숙박지를 구할 수 없음.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잘 곳부터 구하고 싶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심정으로 우리 승객들이 모여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음식점으로 뒤늦게 들어감. 되는 음식은 오직 국수 뿐이라고. 나는 국수, 오빠는 라면. 여기는 일반 라면도 사발면처럼 그릇에 라면과 스프를 먼저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몇 분 후 먹는 식. 나는 국수를 다 먹고, 오빠는 두 개의 라면 스프 중 묘한 냄새가 나는 한 개의 스프는 버린 채 밍밍한 라면을 먹는 둥 마는 둥. 결국 계란 후라이를 2개 더 몸으로 시켜 먹고서야 간에서 기별이 왔음을 알림. 어디서 자야 하나 모두들 눈치를 보는데 음식점에서 함께 운영하는 침대 9개로 우리 승객 18명 모두가 자는 방법은 한 침대에 2명씩 자는 법임을 알게 됨.

 

5월 12일 오후 9시
엉성한 네 개의 받침대 위에 딱딱한 나무 판자 하나, 그리고 언제 빨았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가는 침구. 드디어 싸 들고 온 침낭이 빛을 발하는 순간. 배 부르고 등 따스하니 모두들 여유가 생기는 모양. 승객 중 유일한 외국인인 우리에게 이제야 질문 공세가 이어진다. 한참 걸려 알아들은 건 이들이 세계배(世界杯), World Cup 축구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중국이 16강에 진출했다더니 여기에서도 축구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얼기설기 나무판자로 이어 만든 벽 사이로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긴 하루를 맺는 잠에 빠짐.

 

5월 13일 오전 7시
먼저 일어난 다른 승객들의 떠드는 소리에 따라 일어남. 기쁘게도 어느새 날이 활짝 개었다. 아이, 좋아라~ 운전사 아저씨부터 찾아 언제 출발하느냐를 물으니 본인도 모른다며 일단 밥이나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어제 먼저 와 있던 짚차들은 벌써 출발을 하는데… 어쨌든 이 집의 유일한 메뉴인 국수를 아침부터 먹기가 부담스러워 다른 식당을 찾아 나서니 다른 집은 ‘만투’가 된단다. 만투라면 커다란 만두처럼 생겼으나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마치 속을 까먹고 안 넣은 찐빵 같은 음식. 일단 한 접시를 시키고 미숫가루 같은 분말이 가득 들어있는 통이 하나씩 놓여 있는 식탁 하나에 앉으니 역시나 버벅거리는 우리를 신기해 하는 옆 식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야크 버터티를 한 잔씩 따라준다. 그러면서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가루와 섞는 시늉을 하며 ‘짬파’한다. 짬파? 말로만 듣던 티벳인들의 주식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 가루의 정체가 보릿가루란 말이지. 오빠 말에 의하면 티벳 사람들은 삼시 세끼를 야크에게서 짜낸 젖으로 만든 버터를 이용해 끓인 차에 이 보릿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먹거나 ‘툭파’라는 담백한 국수를 먹는다고 한다. 한 접시에 3개가 나온 만투 하나를 집어 살짝 가루를 찍어 맛을 보니 고소한 맛이 난다. 어제의 그 춥고 배고팠던 기억에 둘이 하나씩 집어 먹고 하나는 챙겨 도시락마냥 싸 들고 식당을 나섰다.

 

5월 13일 오전 9시
떨어져가는 기름을 채우기 위해 30분 전 이미 승객을 모두 태우고도 마을을 전전하던 차가 기름이 있다는 집 앞에 섰는데 그 집 아줌마가 들고 나온 건 경유가 아니라 석유. 한바탕 웃음을 뒤로 하고 일단 다시 산 정상을 향해 출발, 4,200m의 고개만 넘으면 기름을 넣을 수 있단다.

 

5월 13일 오전 11시
어제 동왕으로 빠졌던 길을 다시 벗어나 샹그리라로 향하는 본 궤도에 재진입. 해발 4,000m가 넘으니 날이 개였음에도 여기는 아직 어제 내린 눈이 안 녹았다. 운전사 아저씨, 다시 승객들의 의향을 묻는데 이번에는 만장일치, 당연히 뚫고 나가자!

 

5월 13일 오전 11시 40분
어제보다는 20분 단축, 40분 만에 다시 Snow Chain을 감고, 근처 사람들에게서 커다란 낫처럼 생긴 삽을 몇 개 빌려 더 실은 채 어제의 고지를 향해!

 

5월 13일 정오
어제 더 이상의 전진을 못하고 후진을 해야만 했던 눈물의 장소에 도착, 삽을 든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고 정강이까지 쌓인 눈을 헤쳐내어 길을 만들며 전진, 또 전진!

 

5월 13일 오후 1시
미끄러운 길을 넘어서기 위해 가다 서다를 힘겹게 수십 번 반복하던 우리 차,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기름이 떨어져 버리다. 운전사 아저씨를 비롯한 세 사람이 주섬주섬 차에서 내려 왔던 길을 되돌아 기름을 구하러 정처 없이 떠남.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이…

 

오빠5월 13일 오후 2시
운전사 아저씨, 웬 트럭을 타고 우리 차 뒤에 도착, 트럭에서 20 liter 가량 기름을 빼내어 우리 차에 주입. 부르릉, 시동이 다시 걸리고 300m쯤 힘겹게 전진한 후에 드디어 눈사태 지점에 도달. 눈이 조금 녹기는 한 것 같은데 아직도 높이는 우리 허리 이상, 길이로는 10m 가량 눈이 쌓여 길을 완전히 차단함. 오빠도 바라보고만 있기가 미안하다며 차에서 내려 양동이를 들고 모두 함께 눈을 퍼 냄.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있어 선글래스 없이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이다. 오빠는 본인의 안경 위에 내 선글래스를 덮어 쓰고 발이 젖는지도 모르는 채 내 몫까지 열심히 일을 하지만, 중국인들이 보기에도 오빠가 힘겨워 보이는 듯, 오빠의 양동이를 빼앗아 번갈아 일을 하곤 함.

 

5월 13일 오후 3시
모두의 환호성 속에 드디어 눈사태 지점을 차가 통과하다. 차 안으로 돌아온 오빠는 완전히 뻗었음. 쉬지 않고 일하는 남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일진대 본인 말로는 이런 일을, 그것도 산소가 부족한 해발 4,100m에서 하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고 함(머리털 나고는 처음 해보는 막일이라나?). 하긴 날이 맑아도 밖은 엄청 춥기까지 하다.

 

5월 13일 오후 5시
역시나 가는 둥 마는 둥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땅을 파고, 차를 밀고 하여 500m쯤 전진하던 우리에게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우리는 눈사태가 한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앞에 떡~하니 한 곳이 더 나타난 것이다. 두 번째 눈사태에 다들 어안이 벙벙, 어찌할 줄 모르는데 이 때 용감히 나서는 운전사 아저씨 부인(처음부터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탑승했었음), 큰 소리로 뭐라 꾸짖는 듯 말하자 다들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말리던 젖은 발을 다시 신발 속으로 쑤셔 넣고 나갈 채비를 한다. 죽은 듯 뻗어있던 오빠도 젖은 양말을 휴지로 감싼 채 샌들을 신고 다시 노동의 현장에 투입, 아까보다 높이는 낮지만 길이는 더 긴 눈사태를 인간의 힘으로만 치워댄다. 완전 전 승객의 민공화. 눈을 퍼낼만한 모든 도구가 동원된 채, 우리의 아줌마는 앞장서 맨손으로 눈을 퍽퍽 퍼내어 들어낸다. 이제 차 안에 남은 사람은 오직 나 혼자.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미 버스 내 부족한 식량을 조달하는 일. 우리가 먹기 위해 산 사이다 한 병을 현장에 공급했지만 당연히 모자라고 나머지 목이 마른 승객들은 수없이 널린 눈을 한 조각 떼어내어 베어 먹는다. 이 무슨 영화 ‘alive’도 아니고…

 

눈5월 13일 오후 6시
드디어 4,200m의 정상이 100m 정도 남았음이 눈에 들어옴. 저기까지만 가면 ‘샹그리라대협곡’까지는 일단 내리막길이니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하리라. 해가 지기 전에 어서 서둘러야 하는데 어제 눈사태로 넘어가다만 짚차 한 대가 마주보고 서 있음(차 주인은 이미 어제 차를 돌려 다시 내려오려다가 이래저래 눈에 막혀 그냥 차를 버리고는 걸어서 한참 헤매고 있던 우리 차까지 와 함께 동왕에서 머물렀었다). 눈 속에 장시간 그냥 세워둔 탓인지 시동을 걸기도, 그 차를 다시 본 방향으로 돌리기도 무척 힘이 든다.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오빠와 몇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들 내려 차를 들다시피 돌려 세워 앞 세워 먼저 보내고 다시 우리도 따라 정상으로 출발.

 

산5월 13일 오후 7시
결국 남은 100m도 1시간이나 걸려서 정상에 도착. 걸어도 30분이면 도달할 2 Km의 거리를 차를 타고도 자그마치 8시간 만에… 꼭대기 봉우리에 해가 걸쳐지는 모양이 곧 날이 저물기 시작할 것 같은데, 정상에는 눈이 더 많이 내린지라 무릎 이상씩 빠지는 곳에서 아래로 향하는 길을 내기가 무척이나 힘겹다. 설상가상으로 앞서던 짚차가 고장으로 서고, 오빠와 더불어 먼저 내리막길을 살피던 사람들이 돌아와 내리막의 첫 굽이 지점에 한 대의 짚차가 버려진 채 서있다고 한다. 오빠가 자세히 보니 차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발자국만이 내리막길을 향해 나 있고 그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흔적이 없다며 한참 눈이 내렸던 어제쯤 반대 방향에서 차가 올라오다가 결국 눈에 갇히고 이후 눈이 그친 뒤 넘기를 포기한 운전자가 걸어 내려간 것 같다는 추리 아닌 추리를 한다. 안 그래도 좁은 길인데 눈이 와 복판으로만 겨우 기어 달리던 차에 주인이 없는 차라니… 춥고 배고픈데다 이제 곧 우리를 덮칠 어둠을 생각하니 별 생각이 다 난다. 산 정상에서 이렇게 밤을 지새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물음에 오빠가 그나마 우리는 침낭이라도 있어 얼어죽지는 않을 거라며 다행이라 대꾸한다. 내가 느끼는 공포에 별로 도움은 안 되는 대답이었지만 그렇다고 “차라리 걸어 내려가볼까? 사람 사는 곳이 나오기만 하면 재워는 주겠지”하는 오빠의 대안은 더더욱 끔찍스럽다. 눈이 무릎 이상 올라오는데 짐 둘러메고 샌들 하나 덜렁 신고 얼마나 내려가야 할지도 모르는 곳까지 내려가자고? 이 상황에서 빨리 결정을 안 내리고 밖에서 우왕좌왕하는 승객들이 - 이들 대부분의 행색으로 볼 때 한 눈에 보기에도 샹그리라로 가는 것에 온 가족의 생계가 달린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 원망스러울 뿐이다.

 

5월 13일 오후 8시
마침내 우리 차는 방향을 되돌려 다시 내려가기로 했나 보다. 어두워지는 정상에서 차를 돌리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나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중국 차들 대부분이 변변한 light 기능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우리 차가 head light를 켠다. 정말 정말 다행이다.

 

5월 13일 오후 9시
기름을 넣기 위해 끌고 왔던 트럭은 후진으로, 겨우 차를 돌린 우리는 전진으로 한 시간을 내려와 눈을 퍼내는데 썼던 삽과 트럭을 돌려주고 Snow Chain을 벗겨내면서 다시 의견을 모은다. 운전사 아저씨 설명이 동왕은 이미 먹을 것이며 잘 곳이 마땅치 않으니 향성으로 가자는 것 같다. 모두 힘 없이 동의하는 가운데 아저씨는 1인당 20원씩 더 걷는다. 하루 종일 밖에서 열심히 일하던 한 아저씨가 심하게 충혈된 눈에서 끊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 한다. 아마도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린 눈에서 엄청나게 반사 시킨 빛 때문에 눈이 상한 탓이리라. 누군가가 Quinolone계 항생제(Cyprofloxacine)를 꺼내 준 모양인데 오빠가 그나마 여기까지 챙겨온 타이레놀 650mg 2알을 꺼내 일단 추가 복용하도록 했지만 그리고도 한동안 통증에 어쩔 줄 몰라 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새 한 가족이 된 승객들이 너도 나도 하루 종일 아껴두었던 음식들(내 얼굴보다도 더 큰 빵인데 말이 빵이지, 그냥 밀가루 반죽을 아무 추가 양념 없이 두꺼운 빈대떡 모양으로 구워낸 것이다)을 꺼내 서로 서로 나누어 주는데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특별히 하나 밖에 없는 배가 통째로 주어진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칼까지 주면서 깎아 먹으라고 한다. 결국 오빠가 배를 받아 들고 조각 조각을 내어 앞 뒤 승객 모두와 다시 나누고 아무 맛 안 나는 빵으로 하루 종일 시달린 민생고를 대략 해결한 후에야 차는 향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5월 13일 오후 11시
밝을 때 달려도 불안했던 길을, 차는 양 줄기 head light에 의존한 채 끊임 없이 꼬불꼬불 내려간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하루 종일의 노동에 지쳐 일찌감치 잠이 들었지만 나는 일도 안 한데다가 바로 옆이 천길 낭떠러지라 생각하면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나와는 달리 오빠는 무척이나 피곤할 텐데도 승객들이 깰 때마다 어김 없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오늘따라 달이 안 떠 더욱 주위는 어두운데, 별은 세상에나, 태어나서 이토록 많은 별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5월 14일 오전 12시 30분
차가 향성에 무사히 도착했다. 어제 향성을 출발한지 자그마치 40시간 40분만의 일이다. 무척이나 피곤할 텐데도 끝까지 안전하게 우리를 향성에 도착하게 해 준 운전사 아저씨께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아직까지 열려있는 식당부터 찾는데 우리는 그럴 기운이 없다. 터미널 문이 잠겨 있어 우리가 계속 묵었던 숙소로 갈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이 곳에서 제일 큰 ‘파모산 빈관’으로 기어든다. 오빠는 이런 상황에서 티벳으로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며 내일은 절대로 다시 그 길을 안 간단다. 그래, 때려죽인다 해도 내일 다시 또는 못 가겠다. 정말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편한 데가 없다. 우리가 뻗었다고 적에게 알리지 말라…

 

Tip


교통 : 매일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전(샹그리라) - 동왕 간 버스가 있긴 하다. 하지만 동왕은 볼 만한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오지이다. 전기조차 제대로 공급이 안 된다.
숙소 : 5월 13일 / 동왕 다리 건너편 초입에 위치한 숙식 겸업 업소 / 한 침대당 10원(여기에서 둘이 잤다) / 온수? 화장실? 다 웃기는 소리다. 세수는커녕 이 닦기도 힘들다
5월 14일 / 향성 터미널 맞은 편에 위치한 파모산 빈관 / 2인실은 240원, 3인실은 침대당 60원, 4인실은 침대당 30원이라고 해서 4인실 선택(그래도 4인실에 우리 밖에 없다) /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저녁 시간부터 중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뜨거운 물이 철철 나와 샤워다운 샤워가 가능하다. 화장실 공동 사용.
PC방 : 향성 터미널에서 시내 쪽으로 걷다 보면 Y자 길을 만난다. 이 중 왼편 길로 거의 시가지 끝까지 가면 오른쪽으로 ‘Green net’이라는 PC방이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오락을 하고 있어 기다리다 지쳐 나왔다 / 1시간 4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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