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성어제 하루 여정에 지친 탓인지, 막상 지도에는 가깝게 그려진 다음 목적지 리당(里唐/LiTang)이 이 곳 향성에서 차로 적어도 10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오빠는 마음을 바꿔 이 곳에서만 머무르다 다시 샹그리라로 돌아간다고 한다. 중간에 한 시간 쉬긴 했지만 비포장 도로 9시간도 결코 만만한 여정은 아니었는데 10시간이라니… 흐음… 나 역시 자신은 없지만 또 한 구석 섭섭한 마음도 생기는 게 사실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향성을 둘러보는데 정말 작은 마을이다. 운남성에서 넘어온 우리에게는 사천성의 첫 도시라 그만큼 기대가 되었겠지만, 사천성 입장에서 보면 여지없이 사천성의 끝자락이니 또한 그만큼의 오지일 터이다. 하긴 걸리는 시간만 보아도 여기서 리당가는 시간 보다는 오히려 운남성 샹그리라로 가는 시간이 더 짧으니, 비록 행정구역은 사천성이라 할 지라도 기타 다른 면으로는 오히려 운남성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 이 곳 역시 예전에는 티벳 땅이었을 터, 결국은 이 곳이나 그 곳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향성특별히 할 일도 없어 마을 끝 산 자락에 보이는 사찰에 가보기로 한다. 대충 헤아려 보기로 산 자락에 있으니 산 쪽으로 길을 찾아 오르는데 막상 들어서니 자꾸 자꾸 막힌 길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손바닥에 오직 한 글자, ‘寺’자 만을 써 보이며 어림짐작으로 길을 찾아 가는데 어찌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이번에는 완전 호도협 생각이 절로 나는 산길이다. 이게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고지가 바로 저긴데… 우리는 결국 등산 아닌 등산을 하면서 손바닥에 흙 묻혀 가며 산을 기어 올라 이름도 모르는 사찰에 도착했다. 헉헉헉.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나니 완성이 안 되었는지 한참 공사 중이다. 게다가 우리를 더 힘 빠지게 하는 건 편하게 걸어 올라오는 길이 눈 앞에 펼쳐졌다는 슬픈 현실… 이럴 때 우리를 다잡는 건 다름아닌 이솝 우화 한 꼭지다. 바로 ‘여우와 신포도’ - “저 길은 편하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을 거야”, “그래, 그래”

 

우리는 이 곳 향성에 한 조각 정보 하나 없이,향성 그야말로 길이 나 있길래 무작정 온 터라 사실 이 사찰이 공사 중인지, 사찰 명이 뭔지도 모르는 채, 그것도 부들부들 떨며 길 아닌 길로 올라왔다 치자. 땀에 절은 오빠가 웃통을 벗고 쉬고 있을 무렵, 우리를 약 올렸던 편한 길로 백인 두 명이 올라오고 있다. 우하하~ 우리는 금방 놀부 심보가 되고 만다. 하지만 끝에 가면 놀부는 꼭 벌을 받는 법, 우리는 편한 길로 내려오다가도 그만 길을 잃어 빗장 쳐진 학교 안을 헤매다가 학교 밖으로의 탈출을 위해 넘던 울타리에서 다리 짧은 내가 그만 못에 긁히고 만다. 아, 꼭 피를 보고야 만다. T_T;

 

영광의 상처로 숙소에 돌아와도 아직 시간이 튄다. 오후에는 또 무얼 하면서 시간을 때우나…하면서 하릴 없이 약식 지도 - 샹그리라에서 만든 지도라 사천성 도시로는 딱 4곳만 나와 있는데 이 곳, 향성과 이 곳에서 10시간이 걸린다는 리당, 그리고 그 곳에서도 더 가는 것으로 나와 있는 파당(巴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 모르는 한자(O城)로 이루어진 한 곳, DaoCheng이 전부다 - 를 들여다보다가 DaoCheng이라는 도시를 발견한다. 그럼 여기나 한 번 가 볼까? 숙소 앞에 나가서 아무 아저씨나 붙들고 그림을 섞어가며 몇 시간이 걸리는지, 오늘 가는 차 편은 있는지 알아보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우리를 두고 순식간에 구름처럼 사람이 몰려든다. 오호, 또 동물원 원숭이가 되고 말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을 맞게 알아들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오후 3~4시쯤 들어오는 공공버스로 6시간이 걸리는데 공공버스가 안 좋으니 타지 말라는 것 같다. 공공버스가 안 좋으면 대체 뭘 타라는 걸까? 

 

일단 3시에 짐을 싸 들고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터미널로 나오니 마침 공공버스는 아닌 것이 틀림 없는데 DaoCheng 푯말을 건 작은 승합차 한 대가 한참 수리 중이다. 마침 영어를 약간 하는 중국인 승객이 타고 있어 중간 통역을 거쳐 우리가 얻어 타고 갈 수 있을지를 물으니 운전사 아저씨가 흔쾌히 허락, 얼떨결에 수리가 끝나고 3시 40분에 출발하는 그 차에 몸을 싣는다. 아, 그런데 럴수 럴수 이럴수가! 길이 어제 길과 형님, 아우님 하는데 험한 만큼 너무나 멋지다. 오빠는 앞으로 우리가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어제와 더불어 이 길 이상을 넘나들지 못 할 거라 장담을 하며, 세상 사람들이 손 꼽아 아름답다 일컫는 티벳-네팔 간 도로도 이 정도 수준이란다. 오빠의 호언장담이 아니더라도 4,600m에 달하는 고개를 넘는 이 길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길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순박하기 그지 없는 민공들을 만날 수 있는 보너스까지!

 

민공민공은 중국의 일용직 노동자를 일컫는 말인데 굳이 이 길이 아니더라도 가슴이 떨릴 정도의 으슬으슬한 길을 지나노라면 여지 없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중국의 도로망이니 철로망을 만드는데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데 듣자 하니 형편 없는 보수를 받고 하루하루 일한다고 한다. 일의 난이도는 보는 것처럼 엄청 난데, 현장의 한 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흙먼지로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든 길인데, 이런 곳에서 무너져내린 낙석을 치우거나 길을 넓히거나 한다. 전기도, 물도, 심지어는 공기조차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산간 벽지 오지에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달리는 차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일하는 곳 근처에 드문드문 세워진, 이발소를 연상케 하는 하양, 빨강, 파랑 삼색으로 이루어진 천막들이 스쳐 지나간다. 언뜻 들여다본 천막 안은 형편 없는 가재도구에, 난방이라고는 먼 나라 이야기인 듯 어설프게 세운 평상 위로 꼬질꼬질한 이불 몇 채가 있을 뿐이다. 이런 곳에서 맡은 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매일 이런 생활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초등학교 문전에도 가 보질 못하고, 결혼도 꿈꿔보지 못 한 채 총각으로 수절한다는 얘기가 농담이 아닌 듯 싶은데, 그런 우울함에도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해맑음이다. 아마도 하루 종일 일하면서 보는 외지인이라고는 우리 같이 하루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관광객일터, 차가 다가오는 기색이 보이면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서서 손을 흔들며 “헬로”를 연발하는데 급기야 그 중 한 아저씨, 나에게 살짝 보내는 윙크! 혹시나 오빠가 옆에서 눈치를 챘을까 슬쩍 고개를 돌리는데 아니나다를까 오빠가 한마디 한다.
“야, 저 사람은 네가 여자로 보이나 보다.”
그래, 나한테는 바로 여기가 샹그리라다.

 

버스는 향성을 출발하여 숫소 두 마리가 차야 오든 말든 자기네들 뿔을 맞대고 길을 막은 채 한참 싸움 중이라 지체되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3시간 여를 내리 달려 리당과 DaoCheng의 갈림길인 SangDui라는 마을에 도착하고(사실 샹그리라를 떠나는 날 아침, 작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전자수첩이 망가져 버린 것. 때문에 전자계산기 기능이나 영어사전 기능은 고사하고 그나마 유용하게 쓰던 옥편이… 흑흑)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다시 DaoCheng을 향하여 28 Km를 한 시간에 걸쳐 달린다. 이 마을 역시 집 한 채 한 채가 자그마한 성 같이 생겼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재질이 흙 벽돌이라는 것뿐, 나머지는 다른 곳과 흡사하다. 한 마을이 보이는 듯 싶어 저기인가 싶으면 차는 지나치고, 또 저기 보이는 저 마을인가 싶으면 차는 또 지나치기를 몇 번 하다가 커다란 초르텐이 보이고도 몇 굽이를 더 돌아서야 그나마 마을다워 보이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오빠가 감탄 섞인 한 마디를 더한다.
“우와~ 여기가 티벳보다 더 티벳답다.”

DaoCheng은 이런 곳이다. 티벳보다도 더 티벳다운, 비 그친 뒤 그려진 4개의 무지개가 나란히 맞아주는, 그런 곳.

 

Tip

교통 : 향성-DaoCheng / 터미널에서 여행사용으로 보이는 미니버스 / 1인당 45원(걸린 시간에 비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공버스보다는 수준이 훨씬 나았음) / 4시간 20분 소요
숙소 : DaoCheng 터미널에 내리면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 우리는 터미널에서 나와 시내 안 쪽으로 5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위치한 한 초대소에서 묵었다 / 2인실 30원 / (도착하자마자 1분 정도 나오는 듯 싶더니 결국) 온수 사용 불가능, 화장실 공동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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