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난 국민윤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었는데-당시 선생님 별명은 항상 불그스름한 얼굴빛 탓에 ‘불타는 고구마’였다-지금은 아기 엄마가 된 우리 반 반장 성혜는 국민윤리 시간만 되면 어떻게든 날 한 번 띄워주려고 선생님께서 질문 시 무조건 내 이름을 부른다든지 하는 일부러 튀는 행동을 하곤 했었다. 왜 그 때 생각이 났는가 하니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 때문이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 열변을 토하시면서 설명했던 땅 사이에 차 있는 큰 기운, 또는 그 기운이 인격이 높은 사람의 정신 속에 들어가 있는 것, 바로 그 호연지기 말이다.

 

어제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향성(鄕城/XiangCheng) 가는 길을 내심 걱정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은 여전히 흐리지만 비는 그쳤다. 당장 티벳 가는 허가서를 손에 못 넣을 바에야 차라리 그 동안 다른 곳을 여행하고 돌아오자는 쪽으로 오빠와 의견을 맞추고 지도를 꺼내어 살펴보니 이곳 샹그리라에서 세 갈래로 길이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이미 지나온 려강으로 되돌아 가는 길, 또 하나는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티벳으로 가는 길, 그리고 하나는 사천성으로 빠지는 길… 그러니 당연히 우리의 선택은 사천성을 여행하고 오는 것일 수 밖에… 하지만 축제 기간이라는 것을 티라도 내 듯 사천성 첫 도시, 향성으로 가는 버스 표도 하루 전 예매로는 구할 수 없어 하루를 더 보내고 오늘에야 겨우 출발하게 된 것이다.

 

버스하루 한 번, 오전 7시에 출발하는 차는 - 물론 정시 출발은 아니다 - 터미널에서 사람을 가득 태우고도, 아마도 하루에 한 번 밖에 없어서인지 몰라도 시내를 벗어나면서 계속 꾸역꾸역, 더 이상 탈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도 사람들을 태운다. 이렇게 닭장 꼴이 되고서도 오르락 내리락 수 많은 고개들을 넘다가 결국 3,800m에 달하는 큰 고개를 하나 넘는데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가롭고 평화롭기가 그지 없는 풍경이다. 커다란 고개를 넘어서자 누가 한이라도 품었는지 갑자기 진눈깨비가 흩나리는데, 운전사와 맨 앞에 앉은 승객이 번갈아 차 앞 유리를 정신 없이 걸레로 닦아댄다. 이렇게 3시간 반을 달리고서야 아저씨는 ‘샹그리라대협곡’이라는 현수막이 휘날리는 아주 작은 동네에 차를 세우는데 뒤돌아보고 뭐라 뭐라 하는 양이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는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내려 화장실이니, 바로 앞 식당으로 빠져 나가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식사들을 하는데 우리도 내려서 비포장 도로를 달려온 탓에 얼얼한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으려니 내린 승객들 꼴 좀 보소,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면도까지 하고 있다.

 

말을 한 마디도 못 하니 언제 다시 출발하는지 알 수가 없다. 차를 세운 지 근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배를 두들기며 식당에서 나오는 운전사 아저씨의 큰 고함 한 번으로 승객들이 우르르 다시 올라타고 이번에는 4,200m가 왔다 갔다 하는 고개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 때서부터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그야말로 ‘호연지기’를 키우기에 더 이상 좋을만한 course가 따로이 없을 것 같다. 차가 고개를 ‘S’자 모양으로 힘겹게 curve를 그리며 오를 때마다 양 옆으로 펼쳐지는 산세가 너무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건지, 아니면 워낙 저렇게 천년이고 만년이고 견뎌온 건지 알 수 없는 산들이 온통 주위를 감싸고, 산 등성이 가득 들어찬, 전나무 계통으로 보이는 침엽수림에도 아직 눈이 쌓여 있어 베어내는 하나 하나 그대로 Christmas Tree가 될 성 싶다.

 

산멋지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지만 워낙 흔들리는 차라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속상하던 차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탄 차 역시 지나오면서 많이 본 다른 차들 마냥 고장이 잦아, 운전사 아저씨는 몇 번이고 차를 세우고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 쿵쿵 소리를 낸 후 깜댕이를 잔뜩 묻히고 올라타기를 반복한다.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 가운데 내게는 그나마 얼른 버스 창을 열고 사진 몇 장을 찍을 기회가 주어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절벽을 들이받아 반쯤 누운 트럭들을 지나치면서는 긴박한 그 무엇까지 더해져 펼쳐지는 풍경이 더욱 절절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그저 오빠와 내가 번갈아 혹은 동시에 ‘우와’ 소리만 내뱉을 뿐이다.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없이 고원을 내달리던 차가 고개를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저 아래로 지금까지 보아왔던 집들과는 다른 집들이 보인다. 아마도 이제 운남성을 벗어나 사천성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산집 한 채 한 채가 자그마한 성 같이 생겼는데 언뜻 봐서는 들어가는 문 조차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도 한참을 꾸불꾸불 돌아내려온 버스가 마을을 지나칠 때야 좀 더 자세히 볼 기회가 생겼는데, 두터운 흙벽으로 3층 정도 높다랗게 사다리꼴로 지어 올린 집에 하얀 칠을 하고, 다시 그 집을 둘러싸고 높다란 벽을 둘러 작은 문을 내어 정말 아주 작은 하나의 성처럼 만들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마을 가득 하얀 성 투성인데, 이와는 반대로 사방으로 낸 창은 그 색과 창살 무늬에 있어 화려하기가 그지 없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청 분위기가 물씬 나는 창은 하얀 벽과 어우러져 더욱 예쁘기만 하다.

 

마을은 항상 물과 함께 흐른다. 힘겹게 커다란 두 개의 고개를 넘은 버스는 향성까지 맑은 물을 끼고 존재하는 마을들 몇 개를 지나 달린다. 역시나 잘 견뎌온 나와는 달리 오빠는 네 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그 동안의 본인의 괴로움에 대하여 토로한다.산

첫째, 비좁은 차 안에서 3~4명이 동시에 독한 중국 담배를 피워 댄다.
둘째, 4,000m를 넘어서면서 숨이 차고 두통이 생기는 등 고산병 증세가 느껴진다.
셋째, 끊이지 않는 비포장 도로로 인해 차멀미를 했다.
넷째, 알지도 못하는 중국 노래를 내내 엄청 크게 틀어놓고 달려 현재 귀가 찢어질 듯하다.

 

운전사 아저씨가 크게 틀어놓은 음악 탓에 음악이 멈추고도 한동안 귀가 멍멍한 거에는 동의하지만, 나는 차 안에서 과자도 맛있게 먹었고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도 절로 ‘호연지기’를 키워준 풍경으로 기꺼이 상쇄될만하다는 의견이다. 지금 이 순간, 다시 그 풍경이 생각나면서 다시금 국민윤리 선생님이 떠 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 아마도 작가 공지영씨 덕분에 별명이 ‘봉순이 언니’쯤으로 바뀌셨을지도 모르는 선생님, 아직도 ‘호연지기’에 대하여 붉어진 얼굴로 열심히 설명하고 계실까?

 

Tip


교통 : 샹그리라(중전)-향성 / 예매와 승차 모두 터미널 / 1인당 50.5원 / 총 9시간 소요(틈틈이 사람들 태우고 내리고, 중간에 밥 먹느라 한 시간 쉬고, 잦은 고장으로 또 얼마간 지체가 됨)
숙소 : 향성 터미널(터미널이라 부르기엔 좀 의심스럽지만)에서 내리자마자 티벳 장족 할머니 한 분이 영어로 된 Guest House 팻말을 들고 호객 / 터미널 안 쪽으로 50m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전통 티벳식 가옥 /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 티벳식 가옥에 들어서면 1층은 고기가 널려 있는 창고, 2층은 우이동이나 대성리 MT촌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방에 이불만이 잔뜩 깔려(널려?) 있는데 이 이불 한 채 당 15원(우리는 큰 침대가 하나 놓여 있는 방이 하나 있어 50원에 빌림) / 오후 6시 이후로 온수 샤워 가능은 함(물이 엄청 쫄쫄 나와 나는 포기), 화장실 공동 사용, 난방 안 되지만 5월 현재 안 추움(나는 중전 생각하고 작은 짐을 꾸릴 때 침낭을 두 개나 싸 들고 왔다가 오빠한테 꾸지람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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