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전특별히 하는 일 없이 같은 방에 묵는 싱가폴 아줌마 흉을 열심히 보다가 아줌마가 더친으로 떠나고 난 후에는 새로 들어온 덴마크 여자 애의 반팔 차림을 보며 역시 북유럽 출신은 달라~ 하는 둥 남들 얘기를 하거나, 오늘은 군만두를 시켜 보자, 순대를 먹어보자 하는 둥 식도락을 탐하거나 하면서 빈둥거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이게 다 그 놈의 티벳 허가서 때문이다.

 

 

우리가 이 곳, 예부터 티벳으로 가는 길목인 중전에 온 지도 어언 5일 째, 도착한 다음 날부터 우리가 지속적으로 해 온 일이 바로 티벳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티벳은 현재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로 중국 정부와 아주 미묘한 정치 관계에 놓여 있기에 외국인이 티벳 여행을 하려면 중국 정부에서 발행하는 여행 허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허가제를 통해 티벳에 들어가는 외국인을 통제하고 제한하겠다는 얄팍한 수작이다. 그러므로 티벳을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자 모두는 우선 허가서부터 발급 받아야 하는데 이 또한 개인에게는 발급되지 않고 5인 이상의 단체에만, 그것도 개별적으로 신청이 금지되어 있고 티벳 여행을 취급하는 여행사를 통해서만 신청해야 한다. 아.. 복잡하다.

 

그럼 지도를 한 번 살펴보자. 티벳은 매우 큰 나라로 몇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이 중 입국/입경이 가능한 곳은 중국과 네팔 뿐이며 이 또한 정해진 몇 route를 제외하고는 입국/입경이 금지되어 있다. 중국에서 들어가는 길에는 우리나라 배낭 여행자들에게 익히 알려진 청해성 꺼얼무에서 육로로, 그리고 이전 티벳 여행시 오빠가 선택했던 사천성 성도에서 비행기로,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육로로 들어가는 길 등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중전, 운남성의 끝자락이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기 얼마 전, 이 곳에서 티벳 가는 길이 열렸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 저기 힘 닿는 데까지 알아봤지만 어느 한 곳, 시원스레 답변을 주는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길이 앞서 언급한 세 route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길이라고는 하지만 외국인에게 개방된 지 얼마 안 되어 일찍이 이 route를 시도해 본 사람이 없는 데다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 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까닭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허가서라는 것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티벳, 하지만 허가서와 함께 어쩔 수 없이 구입해야 하는 가이드 딸린 티벳 여행 상품이 워낙 고가인지라 보통의 배낭 여행자들은 허가서 없이 입경하는 방법을 택한다. 허가서 없이 하는 입경이라… 쉽게 이야기하면 ‘불법’이라는 이야기다. 허가서까지 필요한 지역이다 보니 당연 입경 경로에는 공안이라 불리우는 중국 경찰들이 군데 군데 초소를 세우고 지키고 있고, 여기에서 들키면 벌금이니 추방이니 하는 중처벌이 가해지기 때문에 불법으로 입경하는 여행자들은 보통 트럭을 히치하여 짐 칸에서 짐들과 함께 추위와 어둠과 싸우면서 그 험한 길을 몇 십 시간이고 달려 티벳 라싸에 도착하게 되고, 이런 모험담 혹은 무용담이 간간히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티벳으로의 여행은 배낭 여행자에게는 너무 비싸다. 그렇다고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가 중전에 도착, 아마도 한국인으로서는 최장 체류가 되지 않을까 싶게 엉덩이를 이곳에서 지지며 알아낸 정보를 소개한다. 안 되는 영어로 어렵게 의사소통 하여 알아낸 정보이니 앞으로 운남성에서 티벳으로 가게 될 모든 후배 여행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우선 중전에서 라싸까지 비행기가 뜬다. 현재 매주 토요일 한 차례 운항 중이다. 우리가 이 곳에 화요일엔가 도착했는데 이미 이번 토요일은 표가 매진이었고, 다음 주 토요일, 11일에나 가능하다고 했다(중국 노동절 연휴 때문인지 이 항공편 이외 다른 지역 항공편 역시 모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한다). 비용은 허가서와 guide tour를 포함하여 2,450원. Tibet hotel 내 여행사를 비롯, 중전 시내의 거의 모든 여행사에서 취급하고 있으며 만약 이를 택할 시에는 보통 2~3일 전에만 예약하면 되는 듯 싶다.

 

그리고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 짚차를 대절하여 가는 방법이 있다. 짚차의 종류에 따라서, 그리고 인원에 따라서 비용은 달라지는데 우리가 려강에서 알아봤을 때에는 차량, 운전사, 허가서 포함하여 4,000원(8인)~4,500원(4인)이었던 것(특이한 것은 이 상품을 Jason이라는 외국인이 취급한다는 것이다. 려강에서 잠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뭐랄까… 중국에 살고 있는 서양인 같았는데 너무 퍼질러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상품 자체에는 믿음이 가도 사람 자체에는 신뢰가 안 가더라만… 여하간 중전보다 가격은 저렴한 것 같으니 원하시는 분은 contact 해 보실 것, Tel 668-4862)이 이 곳 중전에 오니까 같은 조건에 최소 4인 출발 기준으로 1인당 5,000원을 부른다. 참고로 중전에는 터미널 안팎으로 여행사가 몇 군데 있는데 이곳은 영어도 안 통할 뿐더러 이런 상품은 아예 취급을 안 하는 것 같았고, Tibet cafe 맞은 편 쪽에 있는 Yak Bar(참고로 이곳은 중전에서 한국 음식이 되는 유일한 곳이다. 한문과 영어로만 되어 있는 메뉴라 대체 이 음식이 우리의 어떤 음식을 가리키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곤명에서 한국 음식을 배워오셨단다. 돈만 많으면 하나씩 다 시켜 먹고 옆에다 한글로 예쁘게 적어 놓고 갈텐데…)와 우리가 숙소로 삼고 있는 Tibet hotel 내 여행사 이 두 곳은 모두 터미널에서 Tibet hotel 쪽으로 오다 보면 왼편에 KangBa hotel이 있는데 이 hotel 내 306호에 있는 Tibet 여행사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Tibet cafe는 이들과는 따로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비용이나 제공 가능한 교통 수단면에 있어서는 별 다를 것이 없다(짚차의 경우 한 대에 26,000원). 
 
처음부터 우리는 비행기를 이용할 생각이 털끝만치도 없었다. 하지만 육로로의 단순 이동 비용만이 그 두 배를 넘는데다가 숙식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짚차를 이용할 경우 숙식에 대한 하루 예산을 대략 1인당 40~50원 정도 잡으면 된다고 한다)을 고려해 볼 때 이 또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더욱 우리를 가장 갈등 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최소 인원이었다. 여기저기 알아 보았지만 현재까지 짚차를 이용하겠다고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라고는 우리 숙소 여행사에 그 의사를 밝힌 영국인 단 둘뿐이었다. 이들 역시 인원이 채워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데 여행사에서는 이 기간을 최소 일주일을 잡는다. 알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 팀에 join, 그들을 만나 이렇게 단 4명이 떠나겠다고 합의를 본다 하더라도 출발은 앞으로 일주일 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발품과 말품을 팔면서 시내를 몇 번이고 돌아 댕기며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던 우리는 슬슬 짜증이 났다. 대체 어떻게 티벳으로 들어가야 하나… 오빠는 여기서든, 아니면 여기에서 성도로 향하는 길로 다시 차를 타고 내려가 비행기를 이용하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반면, 나는 차라리 그 영국인들을 부여잡고 일주일 정도 이 곳에서 기다렸다가 짚차를 타고 이동하자는 쪽이었다(트럭 히치를 하는 방법은 밖을 전혀 내다 보지도 못한 채 어둠과 추위, 그리고 검문에 대한 공포를 단지 저렴하다는 이유로 택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미 젖혀둔 터였다). 그렇게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무렵, 우연히 숙소 앞에 있는 작은 cafe에 들어가 혹시 이 곳에서도 그런 상품을 취급하지 않느냐 물어본 것이 그만 우리 의견을 일치시킨 계기가 되었다.

 

바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local bus!

 

워낙 티벳으로 가는 육로가 험한지라 중국 정부는 외국인이 local bus를 탔다가 혹 사고라도 나는 경우에 생길 복잡한 문제에 대비하여 local bus 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cafe 주인 왈, 자기가 이 곳에서부터 라싸까지 local bus가 다니는 길에 놓여 있는 모든 도시에 대한 허가서를 발급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여행사가 오직 자기네 짚차를 이용할 때에만 발급 가능했던 지역에 대한 허가서가, 이 주인 아저씨를 통하면 짚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1인당 800원에 해당 허가서 발급만은 해 줄 수는 있다는 얘기였다. 이 곳 중전에서부터 local bus를 몇 번이고 쉬지 않고 갈아타면 라싸까지 5일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불행히도 버스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 중간에 워낙 검문소가 많아 허가서 없이는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다. 하지만 일단 허가서를 받으면 local bus에 타고 가다 걸리더라도 보여주고 넘어갈 수 있다는 소리다. 아, 물론 엄청 까다로운 공안에게 걸리면 다시 되돌아와야 할런지도 모르지만…

 

분명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오빠와 나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허가서 발급에 필요한 시간은 신청일로부터 이틀 정도. 아저씨(라 하기엔 너무 젊지만 유부남이라길래)의 말대로 우리가 가고자 하는 route 상에 있는 도시들에 대해 허가서 발급을 받는다면, 버스표를 살 때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숙박계를 쓸 때마다 주민들 신고에 떨지 않을 뿐더러 보다 떳떳할 것이다. 하지만 공안은?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허가서 만으로 무사히 우리를 통과시킬 것인가? 우리가 중국어를 현지인처럼 못 한다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게다가 다른 route와 마찬가지로 허가서 없이 트럭을 히치하여 얼마 전 이 곳을 떠난 일본인 두 명이 티벳 내 첫 도시, 마캄에서부터 공안에게 걸려 돌아 나와야 한다는 소문마저 들리는 터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오빠가 예전 티벳 여행 시 라싸에서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자 할 때에도 허가서가 필요한데 그 허가서만 받으면 마찬가지로 local bus가 다니는 곳은 local bus를 탈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고 한다. 과연 그 상황이 열린 지 얼마 안 되는 이 곳, 운남성에서 티벳 가는 길에도 먹힐지는 미지수이다. 아저씨 역시 허가서는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우리가 어떤 공안과 맞부딪힐지는 알 수 없으므로 100% 성공을 장담 못 한다고 한다.

 

우리가 이 길에 대한 매력을 충분히 느끼는 만큼(게다가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local bus라니, 이렇게 fantastic할 데가!) 얼마나 고민 했는지 표현력이 짧아 이 자리에서 다 밝힐 수가 없다.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국 우리는 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총 예상 비용은 허가서 발급 이용에 이동 경비 및 숙식비를 모두 포함하여 1인당 1,500원. 만약 걸리면 되돌아 나와 비행기를 타던지 해서 라싸로 재진입해도 짚차보다는 저렴한 비용이다, 그래, 어차피 그럴진대,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을 정했으니 이제 그 cafe 주인장을 소개한다. 현재까지 우리가 알아본 바, 중전에서 유일하게 교통편 없이도 허가서 만을 발급해 주는 곳이지만 우리 생각에 이 역시 100% 완벽한 합법은 아니므로 이후 우리가 아무 탈 없이 라싸에 도착할 경우, 그 때, 이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도 갈 마음이 있으신 분들이 이용하면 된다. Tibet hotel에서 터미널 방면으로 걸어 나갈 때 맞은 편으로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Snowland restaurant”으로 주인장 都吉은 티벳의 변방 바탕인가에서 태어나 8살까지 살다가 인도에서 공부하고 홍콩 등지를 거쳐 돌아와 식당도 하고 tour guide도 하는 사람인데, 우리가 몇 날 몇 일을 괴롭힌 이후 아예 가게 밖 칠판에 티벳으로 가는 허가서를 제공한다고 써 두었다. 그리고 하나 반가운 소식은, 이후 우리가 그 허가서로 아무 문제 없이 성공한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앞으로 이 주인장에게 우리 부부의 친구라고 하면서 우리를 팔 경우, 1인당 700원에 허가서를 발급 받을 수 있다(우리가 성공하면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아저씨를 찾아올 것이라 진짜 열심히 꼬셔서 100원을 깎아 두었다 ^^; 3명이 동업을 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게 아쉽긴 하다. 700원이라도 많이 남기는 걸 텐데…). 파이팅, 코리아!!!

 

여하간 우리는 그래서 지금 그 허가서 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 노동절 연휴라 일주일 동안 은행을 비롯한 상당 수의 가게가 노는 데다가, 5월 4일~5일, 오늘과 내일에 걸쳐 이곳에 엄청 큰 행사가 있는지라 원래 발급일은 오늘 오전이었는데 아저씨 말로는 라싸에서 중전으로 허가서를 보내기는 했으나 그 fax에 도장을 찍어 내어 줘야 하는 이 곳 관공서 직원이 놀고 있단다. 내일은 일요일인데 내일 다시 한 번 와 보라니… 하지만 아쉬운 쪽이 기다리는 수 밖에…T_T 내일 받을 수만 있다면 당장 모레, 우리는 운남성의 마지막 도시 더친으로 7시간이 넘는 길을 떠날 것이다.

 

Tip


* 참고로 우리가 받기로 한 허가서 조건은 다음과 같다.
기간 : 15일(원래는 20일~25일 받게 해 준다고 했는데 이후 어려울 것 같다며 기간이 줄어들었다)
여행 노선 및 지점 : 중전-더친-/운남성과 티벳의 경계선/-마캄-조공-참도-리오체-텡첸-바첸-속샨-낙추-담숭-라싸
비용 : 1인당 700원
발급 소요 기간 : 평소라면 이틀 걸린다는데…(우리는 중국의 황금 연휴 기간에 딱 걸렸다)

 

* 2000년 하반기 이후로 허가서 발급에 관한 내용이 바뀌면서 허가서 발급 자체는 쉬워졌지만, 티벳 여행 시에는 반드시 관청에서 지정해주는 1일 300원 짜리 중국인 가이드를 대동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자가 학생이라면 가이드가 필요 없다는 소리를 주인장 아저씨로부터 듣고 국제 학생증 내밀어 가이드를 없애 버렸다. 뿌듯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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