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위에 폴라텍이라 불리는 난방용 윗도리를 입고, 아래 속옷 위로 타이즈를 겹쳐 입고 기본 침구 위에 우리 침낭을 하나씩 열어 번데기 마냥 들어가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그래도 코가 시렵다. 손을 뻗쳐 온도계를 켜 보니 2.9도. 따로 냉장고가 없지만 방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물이 냉장고에서 막 꺼낸 것만큼 차갑다. 아무래도 방부터 옮겨야지, 이러다 감기라도 겹치면…

 

짐을 다시 짊어지고 맞은 중전의 아침, 어제 느꼈던 대도시의 이미지는 곧 황량함으로 바뀐다. 막상 걸어보니 생각만큼 도시가 크지 않고 드문 드문 다니는 세 개의 노선 버스, 번호도 나란히 1, 2, 3번이 단촐하기만 한데 날이 추워서인지 단단히 동여맨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무표정 속으로 우리도 자연스레 스며든다.

깨끗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따뜻하다는 숙소에 자리를 새로 잡고 시내에서 북쪽으로 5~6 Km 가량 떨어져있는 티벳 사원으로 향한다. 버스는 황량함이 느껴지는 도시를 금방 벗어나고 또 다시 색다른 자연의 풍경에 젖어들 무렵, 송찬림사에 도착했다.

 

송찬림사송찬림사는 달라이 라마 5세의 집정 시절인 1679년에 이 지방에 재해가 무척 심하였는데 이 곳에 절을 지으면 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하여 지어진 절이라고 한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작은 포탈라궁이라고도 부른다는데, 글쎄, 나의 평가는 티벳 라싸에 있는 진짜 포탈라궁을 직접 보고 난 후에야 할 수 있지 않을까…(오빠에게 물으니 그런 것도 같고 안 그런 것도 같단다 ^^;) 가파르게 난 계단을 오르자 어디선가 들어보지 못했던 음악 소리가 난다. 음악 소리를 따라 경내로 들어서니 자줏빛 승복을 입은 한 무리의 승려들이 열을 지어 각기 다른 악기들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보아하니 어떤 행사를 위해 연주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중간에서 선 한 승려의 지휘에 따라 길다란 나팔, 징, 북, 종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열을 지은 채 행진을 하다 무언가 맞지 않는지 지휘자의 꾸지람과 함께 다시 처음부터 반복하고… 라마승우리나라 사찰에서 뵈었던 스님들의 모습과는 달리, 연배도 한참 어리고 또한 그 만큼 표정이 풍부한 승려들이 줄을 지어 행진하고, 실수하고, 반복하고,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승려들끼리 따로 모여 또 연습하고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송찬림사는 온통 황금빛과 자줏빛으로 덮여 있다. 경내로 들어서니 구석 구석마다 계단이 있고 삐그덕 거리는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또 다른 세상이다. 마니차우리는 마치 미로와 같은 경내를 돌아다니며 승려들이 예불을 드리는 곳, 커다란 금불상을 세 분 모신 곳, 승려들의 사적인 공간, 마니차(속이 텅 빈 원통에 기도문이나 불교 경전을 말아 넣어둔 것으로 이 곳 중전 할머니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손으로 돌릴 수 있는 크기에서부터 송찬림사 내에 있는 것처럼 내 상반신만한 것,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큰 것까지 그 크기가 다양하다고 한다)로 가득 차 있는 공간 등을 접한다. 티벳인들은 이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안에 든 기도문이나 경전의 내용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마니차를 돌린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나 역시 아래쪽에 잘 돌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손잡이를 잡고 마니차를 돌리며 방을 한 바퀴 빙글 돌아 본다.

 

불교 중학교를 나와 법회 참석은 물론 법명도 있고, 가톨릭 대학교에 입학한지라 일찌감치 미사에도 참석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동아리 활동은 기독교였으니 제대로 아는 것도 없지만(이 점에 대해서는 오빠 역시 자세한 사연을 밝히길 꺼려하지만 나와 비슷하다. 나는 오빠를 대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났지만 당시 오빠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법명은 물론이고 ^^;) 사찰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모두 내게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고 또한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송찬림사는 한국의 사찰에 비하면 차려 입은 색이 훨씬 화려한 편이지만 경내를 거니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에는 역시나 변함이 없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마을이 가까워서인지 사찰이 위치한 주변 산에는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고 그래서인지 푸른 하늘이 더욱 가깝게 쏟아져 내린다. 앞에는 소와 말이 풀을 뜯는 초원이 보이고, 이 뒤로 중전 시내가 잡힐 듯 내려다 보이는데 일상 생활과 종교가 가까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찰에서 내려와 다시 돌아온 중전 시내에서 또 다른 모습의 티벳 승려들을 만난다. 당구장에서 삼삼 오오 당구를 치는 모습이라거나, 핸드폰을 들고 웃고 떠들며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아직 내가 티벳 불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탓이리라. 티벳 불교 역사에 대해 오늘 밤, 좀 더 공부해야겠다.

 

Tip


숙소 : Tibet hotel (영생반점[YongSheng]) / 터미널 앞에서 길을 건너지 않고 3번 버스(1인당 1원)를 타고 직진하다 좌회전 하면 눈을 부릅뜨고 진행 방향으로 벽돌색 큰 건물이 보이는지 확인할 것(우리가 온 뒤로 건물 옥상에 불이 들어오는 커다란 입간판을 세우느라 숙소 내 전력 공급이 원활치 않고 있음. 아마도 얼마 뒤면 밤에도 찾기 쉬울 듯. 숙소 앞이 원래 정거장인지는 모르겠으나 내린다는 몸짓만으로 숙소 앞에서 세워 줌(우리는 터미널에서부터 걸었는데 왼쪽으로 뚫린 첫 삼거리를 지나고 양쪽으로 뚫린 다음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걸어 15분~20분 정도 소요) / 2인실은 50원이나 방이 없어 4인실에 침대당 20원 지불 / 오후 7시~11시 사이 온수 샤워 사용, 물론 화장실 공동 사용, 행복하게도 전기 장판이 있어 몸 지지면서 잘 수 있음
관광 : 송찬림사 / 숙소 건너편에서 손 들어 3번 버스(1인당 1원)를 세워 타고 다시 터미널을 지나 종점에서 내리면 됨 / 20분 소요 / 입장료 1인당 10원(역시 우리는 학생 할인으로 반 값. 입구 아저씨 역시 학생증 몰라 보지만 깎아 줌) / 혹자는 송찬림사를 마주 보고 난 왼편 길로 계속 올라가 후문으로 무료 입장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지레 포기, 하지만 나중에 나올 때 보니 스님 한 분이 따악~ 지키고 계심 ^^
먹거리 : 터미널에서 숙소쪽(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좌회전 하기 직전에 Tibet cafe가 오른쪽으로 보임. 이에 조금 못 미친 맞은 편으로 ‘산동교자점’라는 작은 만두 집이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우리 입맛에 맞음(동녘 동(東) 글자는 우리가 아는 글자가 아니니 뫼 산(山) 글자를 보고 찾아야 할 듯) /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야채, 삼선 만두 등이 메뉴(우리는 다른 메뉴가 아무 것도 안 된다고 해서 ‘돼지고기’ 찐만두를 먹었는데 남들은 군만두나 물만두도 맛있게 먹더라구요 ^^) / 소 10개(3.5원), 중 15개, 대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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