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구호달빛을 받으며 잔 탓인지 뭔지 모를 충만한 기가 넘쳐 나는 나에 비하여 반대로 오빠는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 쉬기도 할 겸 오전을 한가하게 삼국지를 읽으며 빈둥빈둥거렸는데 정오가 가까워오자 낙수 마을에서 배를 타고 이격촌 구경에 나선 관광객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다. 원래 우리는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한지라 다른 마을로 옮기기 위해 서둘러 짐을 꾸린다. 더 안쪽에 위치한 대취촌이 훨씬 조용할 것 같지만 오빠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좀 더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낙수로 되돌아 가기로 한다. 이용 가능한 레저용 교통 수단은? 말이나 배. 어제 투덜거리며 2시간을 넘게 걸었던 탓에 뭔가 이용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오빤 뱃멀미도 걱정된다며 차라리 말이 낫겠다고 한다. 오빠그래, 말 타고 빨리 가자.

 

이 마을은 말도 여자가 끈다. 말 그대로 ‘끄는’ 일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속도는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흔들리는 말 위에서 어제 힘들게 걸어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 온다. 오빠 말이 차를 무척이나 겁내는 놈이라 차가 지나갈 때마다 오빠가 중심을 못 잡고 몇 번이나 기우뚱하더니 차라리 내려서 걷고 싶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돈이 아까운 우리는 끝까지 타고 간다. 흐흐…

 

말버스 정류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어제와 다르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호숫가 앞으로 형성된 작은 관광촌, 낙수 마을을 거닌다. 물 맑기도, 숙소 전망도, 적막함도 모두 이격촌보다 덜 하다. 차를 대절하여 여기까지 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마을을 온통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생각보다 중국인, 본토 관광객들이 참 많다. 오빠 말로는 중국 인구의 상위 3%가 상위층이라 했을 때 그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고 하니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관광에 있어서 만큼은 시장이 훨씬 크겠지.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전혀 생겨날 성 싶지 않았던 호숫가에 마술처럼 포장 마차들이 줄을 지어 생겨난다. 나무 막대로 대충 네 귀퉁이에 기둥을 만들어 줄무늬 휘장으로 사방을 가려 바람을 막고 변변한 테이블 하나 없이 근처 전봇대에서 끌어 온 전기로 작은 등불들을 밝힌 것이 다이지만 그래도 포장 마차라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저녁마다 마사족의 전통 공연이 열린다는데 그 공연이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좌판을 벌이는 듯 싶다. 포장 마차 집집마다 부산스레 숯불을 키워대는 폼이 아마도 숯불구이가 주종목인가 보다.
“야, 숯불에 굽는데 뭔들 안 맛있겠냐? 우리 저녁, 저기서 먹자”
오빠의 제안에 입 안에 군침이 도는 나. 우리는 일찌감치 setting이 끝난 한 포장마차로 들어선다. 채소류로는 오이, 가지, 호박, 감자, 부추, 토마토 등이 보이고 육류로는 닭다리, 닭똥집, 돼지 염통, 소와 돼지의 내장, 소라류, 노고호에서 잡힌 붕어 정도만 파악이 되고 나머지는 도무지 어느 고기의 어느 부위인지가 파악이 안 되는 재료들이다. 이 모든 재료를 모두 같은 방법으로, 즉 숯불에 구워먹는 거란다.

일단 안전하게 나가자, 우리는 만만해 보이는 호박과 감자를 섞어 10원 어치를 주문한다. 주인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우리가 선택한 재료들 중 얇게 저민 호박부터 숯불에 구워주는데 역시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기름을 열심히 앞 뒤로 발라가며 어수룩한 젓가락 질로 뒤집곤 한다. 포장마차는 지붕이 없어 매캐한 숯불 연기도 빠져 나가기 좋거니와 별이며 달이 그대로 보인다. 잠시 하늘을 쳐다보는 사이, 다 익은 호박을 우리 앞에 한 점씩 놓아준 아이는 앞 접시에 다시다 같은 짭짤한 가루와 고춧가루 같은 매운 가루를 적당히 부어 놓고 찍어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해 보자. 호박이며 감자를 구워주는 대로 그 가루에 찍어 냠냠 모두 먹어치우고 난 후 오빠가 한 말은 이렇다.
“숯불에 구운들 뭐하냐, 결국 재료, 그 이상을 못 벗어나지”


역시 오빠다. ^^; 오빠 말대로 호박이며 감자는 숯불에 구워도 구운 호박과 구운 감자, 그 이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운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마 오빠도 몸 상태만 좋았다면 처음 내 제안처럼 맥주라도 한 잔 곁들였을 것이고, 그랬다면 노고호 포장 마차의 호박과 감자가 더욱 맛깔난 안주로 기억 될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 양을 못 채운 우리는 근처 양식이 된다는 작은 cafe에 들러 계란 후라이에 달달한 중국식 물만두 같은 것을 하나씩 더 시켜 먹고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공연이 끝났는지 밖은 무척이나 시끄럽다. 낙수 마을은 밤이 되어서야 확실히 관광촌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다. 결코 크지 않은 마을인데도 사람들이 몰리다 보면 이렇게 되나 보다. 어제의 조용하기가 그지 없던 이격촌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방 밖 나무 복도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삐그덕 소리가 그치질 않고, 옆 방에서 틀어놓은 TV 소리가 마찬가지 나무벽을 뚫고 우리 방까지 침투한다. 내일 아침, 오빠 상태만 괜찮으면 려강으로 빨리 되돌아 가야겠다.

 

 


 

 

다음 날 아침, 오빠 상태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지만 그래도 려강을 행해 다시금 긴 여정에 오른다. 7시 30분 출발이라던 차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가득 채우고서야(그래 봐야 우리까지 6명) 느지막이 출발하여 또 한 번 오빠의 분통을 터뜨리고 만다. 차는 노고호를 벗어나기 위해 꼬불꼬불 마을 밖을 향해 기어 오르고, 저 멀리 호수 끝으로 풀의 바다라는 초해(草海)가 아스라이 보인다. 차는 또 다시 덜컹거린다.

 

Tip


교통 : 노고호-녕랑 / 내렸던 곳에서 다시 미니 승합차를 탐 / 1인당 20원 / 2시간 30분 소요
녕랑-려강 / 미니 승합차 아저씨가 내려준 곳에서 다시 버스 / 1인당 23원 + 보험료 3원 / 3시간 30분 소요(노고호로 갈 때에 비하여 오는 것이 1시간 정도 적게 걸렸다)
관광 : 이격촌-낙수 / 말 타기 / 1인당 40원 / 걸으나 말을 타나 똑같이 2시간 ^^
숙소 : 낙수 마을 내 숙소 / 침대당 15원 / 주변 숙소 중 샤워가 가능한 곳이 많으나 우리가 택한 곳은 없었음(온수는 사용 가능). 화장실 공동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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