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영국의 소설가 힐턴이 집필을 하고 이후 미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져 성공을 거둔 작품 중에 ‘사라진(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라는 작품이 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보자. 영국 외교관과 동료들이 비행 중 연료가 떨어져 중국 서남부의 눈 덮인 산악 지대에 불시착을 하게 되는데 다행히 현지 노인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그들 앞에 하얀 눈에 덮인 산 줄기, 눈부신 햇살, 소와 양의 무리들이 꽃과 함께 어우러져 더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이와 동시에 그들은 현지인들의 평화로운 삶도 체험하게 된다. 이후 그들은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시간이 흐른 후 그 지역을 잊지 못해 다시 그 곳을 찾아 떠나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만다. 이들이 현지인들로부터 들어 기억하는 단 한 마디, 바로 ‘샹그리라(香格里拉)’만이 남은 채…

 

실제 힐턴이 이런 상황을 겪고 쓴 작품인지, 아니면 실제 이런 상황을 겪었던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럴듯하게 재구성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서남부의 눈 덮인 아름다운 산악 지대에 실제 이런 지명을 가졌던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 곳이 바로 이 곳 ‘샹그리라’, 중전이다.

 

노고호에서 돌아온 뒤에도 오빠의 몸이 계속해서 좋지 않아 이 등지를 여행하면서 우리에게 base camp가 된 려강에서 한식과 함께 어제 하루를 푹 쉬며 보냈다. 오늘, 아직 오빠의 몸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티벳으로 가는 관문 격인 중전에서 티벳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며칠 더 머물러야 할 형편이라 무리해서 짐을 꾸렸다. 중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원래 계획보다 벌써 열흘 정도 처진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가 중전에서 티벳까지 일주일 남짓 육로로 이동하여 아직은 여행자들에게 미개방 처녀지로 남아 있는 티벳 동부를 볼 수만 있다면, 보름 넘게 걸리리라 예상했던 티벳 서부 순례 여행을 다음 기회로 미루어도 그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우리(만의?) 생각이다.

 

차는 지난 번 호도협에서 돌아올 때 들렀던 교두(Qiaotou)를 지난다. 호도협 트레킹때 만났던 중국인 부부가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메고 대구(Daju)에 와서는 New ferry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자마자 그 짐을 말꾼들에게 맡겨 Tina’s G. H로 먼저 보내고 가벼운 몸으로 트레킹을 한 후, 다음 날 역시 Tina 아줌마의 언니가 한다는 교두의 숙박 시설에 차 편으로 짐을 보내고 말을 탄 채 다시 트레킹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 때 우리가 타고 나왔던 Tina네 차 뒤에 그 부부의 배낭이 주인도 없이 덜렁 실려 있었지… 려강에 와서 호도협 트레킹을 하고 중전으로 이동할 사람들이라면 굳이 교두에서 려강으로 되짚어 돌아갈 필요 없이 중국인 부부와 같은 방법을 취하면 경비는 좀 들더라도 같은 길을(그것도 험한 길을) 갔다 왔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교두를 지나면서부터는 보기에도 시원한 빠른 물살을 끼고 달리는데, 려강에 비하면 근 1,000m나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중전이라서인지 내내 오르막길이다. 교두를 지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나무를 많이 베어낸 탓인지 곳곳에 낙석으로 인해 길이 붕괴된 모습, 그래서 한참 복구 중인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교두 이후의 길은 비록 험할지라도 지대가 높아지는 탓인지 여기까지는 사람들 손이 덜 묻은 듯 하다. 나무들이 보기 좋게 자란 사잇길로 간만에 맑은 공기를 마셔가며 산을 오를 수 있었다. 

 

한참을 오르던 차가 갑자기 평지로 들어선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3,000m가 훨씬 넘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라산보다도 1,000여 m 이상 높은 곳이다. 사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왔으니 이제는 내려가야 마땅할 터인데 웬 평지? 눈 씻고 찾아봐도 내리막길은 없다. 풍경도 산을 넘어서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황량한 초원에 모우(털소, 흔히 야크라고 부르는 털이 아주 긴 소 종류)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저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 고원을 감싸고 있다. 구름은 더욱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는데 잘 안 잠기는 버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어느새 매서워져 우리는 서둘러 가방에서 소매가 긴 옷을 꺼내 소름 돋은 우리 팔뚝을 가린다. 사진으로만 봐 왔던 티벳의 독특한 양식의 불탑인 ‘초르텐’(티벳어로는 "신에게 헌납하는 그릇"을 뜻함)도 눈에 들어오고 주렁주렁 널린 말린 야크 고기, 야크 털로 만든 물건들도 티벳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중전도시라고는 도대체 없을 것만 같은데 길은 잘 닦여있는걸 보니 분명 중전이라는 도시로 가는 것이렸다. 아니나다를까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어서자 마술처럼 도시가 생겨났다. 도시에 진입한 차는 터미널을 향해 좌회전을 하는데 완전히 중국의 다른 도시와 다를 것이 없이 생긴 도시가 또 하나 나타난다. 이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대도시라니… 차는 금새 우리를 터미널에 부려 놓는다. 나도 이렇게나 엉덩이가 뻐근한데 오빠의 몸 상태가 많이 걱정이 된다. 일단 터미널과 맞닿은 숙소부터 잡고 오빠를 뉘였다. 차 안에서는 그럴 듯했던 오빠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저녁을 먹으러 나가지도 못하겠단다. 저녁거리를 사 가지고 들어오라는 명령을 받고 숙소 밖으로 나갔는데 이곳에 회족이 많은지 식당에서 묘한 냄새가 풍겨 섣불리 음식을 사러 들어가지를 못 한다. 아, 저기 구운 감자를 판다. 얼마냐니까 하나에 0.5원이란다. 내 주먹보다도 큰 감자가 하나에 0.5원이라니 얼른 두 개 주셔요, 한다. 아주머니가 잘 익은 감자를 두 개 골라 들고 뭐라 물으시길래 그냥 끄덕끄덕 했더니 갑자기 칼로 감자 하나의 배를 갈라 붉은 가루를 퍼억~ 발라주신다. 이런, 그게 아니었는데… 황급히 나머지 하나를 구제해 내고 돌아와 오빠에게 먹이는데 역시나, 오빠는 고춧가루 같으면서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냄새가 나는 소스가 발라진 감자는 거들떠도 안 본다. 결국 그 감자는 비위도 좋고 먹성도 좋다는 내 뱃속으로 다 들어갔다. 우리 돈 170원으로 오빠도 나도 든든하다.

 

지금 우리 방은 3인용인데 둘이 사용하려니까 더 추운 것 같다. 좀 있다 오빠보고 한 침대에서 자자고 해야겠다. 에고 에고, 여기는 너무 춥다. 자판을 치는 손이 다 시렵다.

 

Tip

교통 : 려강-중전 / 예매는 평소 하던 곳에서 했으나 승차는 처음 대리에서 올 때 내렸던 남쪽 터미널(중심점)에서 / 1인당 27원 / 4시간 30분 소요
숙소 : 중전 터미널 나오자마자 왼쪽 교통반점(오른쪽 교통반점은 고가라는 얘기를 들은지라) / 2인실이 없어 3인실을 75원에 통째로 빌림 / 온수는 사용 가능(대야를 이용하므로 샤워는 힘들 듯), 화장실 공동 사용, 난방 안 됨
먹거리 : 중전 터미널 나오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시장이 서고 저녁이 되면 시장 입구에서 아줌마들이 구운 감자를 판다. 크기와 상관 없이 한 개 0.5원
         터미널 근처에 supermarket이 많으나 시장 바로 옆에 있는 2층짜리 supermarket에 현지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아 저렴할 듯(1층은 술과 과자 부스러기를 팔고 있으니 가운데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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