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침대 버스는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버스 내 구조를 살펴 보면 운전석 뒤 양 창 측으로 2층 침대가 각 3개씩 있고, 중간에 마찬가지로 2층 침대가 3개 있다. 그 뒤로는 5명이 한꺼번에 누울 수 있는 자리가 2층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모두 운전석을 향하여 발을 놓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맨 뒤에 눕는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뒷사람의 향기로운 발 냄새를 맡으며 자야 한다.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키가 조금이라도 크면 아예 침대에 자신을 구겨넣을 수 밖에 없을 텐데 그나마 침대의 폭이 너무 좁아서 서양인들은 제대로도, 모로도 눕기가 매우 힘들게 생겼다. 우리 둘은 모두 침대의 2층에 배정되었는데, 1층보다 높이가 한결 낮아 침대 위에서 제대로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조차 없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2층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이 아래로 군것질 부스러기며, 담뱃재며, 심지어 침까지 뱉어대는 통에 차라리 2층이 훨씬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한 예민’하는 오빠를 위해 창측을 양보하고 가운데 줄의 앞에서 세 번째 윗자리에 낑낑거리며 올라가다 버스 천장에 머리를 꽝 부딪혔다. 정신을 차려 침구를 살펴보니 우와, 이걸 덮고 자야 할지, 아님 침낭이라도 꺼내서 자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오만가지 냄새가 풀풀 진동을 하는데 이래서 과연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그 동안 중국의 엄청난 흙먼지와 매연 속에서도 아끼고 아껴왔던 비장의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이 순간 사용하기로 결심을 한다. 흠, 한결 낫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써 보는 마스크인지? 6년 전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때 생각이 다 나는군.

 

오빠늦은 밤 비포장 내리막길을 달리는 차는 심하게 흔들거리고, 점차 양말을 벗는 사람이 많아지는지 흔들릴 때마다 발 냄새가 끝내준다. 밤 운전을 하는 운전사 아저씨는 간혹 차를 세우고 화장실을 간다거나 야참을 먹는다거나 하면서 한동안씩 쉬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깬 승객들은 누워서라도 담배를 피워댄다. 날이 추워 창을 열지 않고 피워대는지라 오빠는 아예 밖에 나가 찬 바람을 맞는 게 나으리라 생각했나 보다. 미리 챙겨 올려 두었던 신발을 다시 들고 아래 복도로 내려가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아래에서 “욱”하는 신음 소리가 들린다. 차 안이 어두워 보이지를 않았는데 출발 당시 운전사 아저씨가 무리하게 과잉 승객을 태운지라 그런 사람들이 더러운 복도에 겹쳐 누워서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군가 갑자기 잠자는 본인의 정강이를 밟았으니 이 어찌 아닌 밤중의 홍두깨가 아닐 수 있으랴… 오빠가 당황스레 나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도무지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자다 깨다 어느덧 밝아진 하늘,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차는 곧 대리에 정차를 한다. 하지만 밤새 흔들린 차 내에서 잠을 설친 승객들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잘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운전사 아저씨도 마찬가지로 그런 승객들을 깨우지 않은 채 쉬러 들어가 버린다. 차가 안 흔들리니 이제야 좀 제대로 자겠다 싶은데 미키가 우리 모두를 서둘러 깨운다. 밖에 나가봤더니 여기는 곤명가는 차편이 오전 11시 반에나 한 편 있는 버스 터미널이란다. 이런, 다른 터미널로 어서 옮겨야겠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 들고 버스 밖으로 나가 서니 재빠른 미키가 또 다른 소식을 전하는데 다행히 이곳에서 오전 7시 반에 출발하는 곤명행 버스를 찾았단다.

 

다시 돌아온 곤명은 진짜 크게만 느껴진다. 택시를 타고 KangBa Hotel 여행사 담당자의 형이 일한다는 사무실을 찾아간다. 우르르 들어오는 4명의 동양인을 보자마자 형이라는 사람이 “You are lucky!”를 인사말처럼 크게 외친다. 럭키라니, 뭐가 럭키야? 자기네들의 시행착오로 밤차타고 샹그리라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보자마자 웬 헛소리? 이유인즉, 원래 자기네들이 말했던 티벳행 우리 항공편은 오늘 오후 곤명-성도, 내일 오전 성도-라싸였는데 오늘 오전 갑자기 내일 오전 곤명-라싸행 직항편을 취소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도 딱 4명이… 뭐? 딱 4명? 이걸 곧이 곧대로 믿어야 하나 싶은데 어쨌든 그렇다면 오늘은 여기에서 편히 쉬고, 내일 비행기를 한 번만 타면 되니까 더 낫긴 하다. 그러나 이 사람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곤명-라싸간 비행기가 중간에 샹그리라를 경유하는 비행기라는 것이다. 뭐야? 그렇다면 원래 우리가 타려고 했던 바로 그 비행기편 아닌가! 오빠야, 그 봐라. 그냥 샹그리라에서 기다렸으면 좌석이 생겼을 것을… 후회는 항상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우리는 운남성의 성도 곤명에 와 있다. 지나다니는 여성들의 옷차림에서도 묻어나는 이 세련된 도시를 누려야지. 오래간만에 피자도 맛있게 먹고, KFC에도 가고, 티벳 여행을 위한 신라면도 10개나 산다. 뜨거운 탕 목욕은 거의 환상이다. 때밀이 수건으로 밀어도 밀어도 끝없이 나오는 그 무엇(?)이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개운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일의 항공편 티켓을 받기 위해 다시 사무실에 들어서니 이미 먼저 와 있던 미키가 울상이 되어 우리를 바라본다. 왜 그러지? 그것은 바로 우리를 또 한번 경악하게 만드는 소식, 1인당 항공편 차액에 해당하는 260원씩을 더 내라는 말 때문이었다. 차액이라니? 물론 샹그리라-라싸간 비행보다 곤명-라싸간이 더 멀기는 하지만 이걸 왜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난 차라리 원래의 곤명-성도, 성도-라싸간 비행기를 타겠어, 해 본다. 돌아온 대답은 더 황당하다. 내일 오전 성도-라싸간 비행기 좌석이 없단다.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이미 어제 그 비행기 예약을 위해 fax를 이리로 보냈는데… “너희는 어제 보냈는지 몰라도 난 오늘 아침 받았어. 그리고 오늘 아침, 대신 난 곤명-라싸간 비행편을 구한 거야. 현재로서는 좌석도 없지만 만약 있다 해도 2번에 걸친 공항 이용료와 성도 공항에서의 하루 숙박비를 포함하면 비용면에는 이쪽이 더 이득일걸?”
열 발 뒤로 물러 fax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든 봐 준다 치자. 공항 이용료라니? 갑자기 열이 확 올라온다. “야! 네 동생이 우리보고 더 이상 돈 낼 필요 없다고 했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에 대한 대답이 날 거의 미치게 만든다. “누가 동생이야? 걔, 내 동생 아니야. 내가 부리는 내 직원이야. 걔가 내가 자기 형이라고 그러는 모양인데 절대 아니야. 걔가 영어를 못해서 그래.” 얼씨구, 잘 논다. “그래, 영어를 못 하는 네 직원이 그렇게 얘기하면 너는 전혀 책임이 없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 그러면 돈 다시 돌려줘?” 마음 같아선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은데 이러는 나를 뒤에서 오빠가 점잖게 말린다. “됐다, 그만 해라. 그냥 돈 더 줘 버려라.” 오빠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 줘 버리자. 말은 접었지만 여전히 씩씩거리는 내가 영 맘에 걸렸는지 형인지, 그저 얼굴이 닮은 주인인지가 크게 인심을 써 준다는 듯 한 마디를 더 한다. “네가 정 그렇게 나오면 내가 내일 공항까지의 교통편을 제공하는 것 말고도 모두의 공항 이용료를 내 주지. 1인당 50원이나 해.”

 

옆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얼떨결에 혜택 아닌 혜택을 본 다카와 미키까지 전부해서 200원을 깎은 것으로 참기로 하는 나에게,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벽에 붙어있는 그 여행사의 곤명-라싸간 광고를 본다. 셈을 헤아려보니 곤명-라싸간 금액과 샹그리라-라싸간 금액의 차이가 230원이다. 뭐야, 30원 왜 더 받는 거야? 내일 잊지 말고 또 따져야지. 싸우느라 영어가 많이 늘겠다.^^;;

 

Tip


교통 : 대리 - 곤명 / 대리(하관)의 한 터미널에서 미니 버스 / 1인당 60원(매표를 한 탓에 깎지도 못 했다) / 7시 30분 차라더니 승객이 일찌감치 다 차버리자 7시도 안 되어 출발했다. 5시간 소요
숙박 : 차화빈관(여행자들 사이에서는 Camellia Hotel로 더 잘 알려져 있는) / 2인 1실 100원(4인실의 경우 침대당 30원) / 장가계 이후 탕까지 딸린 개별 욕실은 처음이라 감개무량 / Youth Hostel 회원증이 있으면 2인실의 경우 90원, 공동 욕실과 화장실을 사용하는 4인실의 경우 침대당 25원

★ Tibet Tour(여행사명)의 곤명 사무소가 차화빈관 내에 있어 곤명 역전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택시 비용은 10원 남짓. 곤명을 찾는 많은 배낭 여행자들 중 동양인들은 주로 곤호반점에, 서양인들의 주로 차화빈관에 묵는데, 역에서 3 Km 정도 떨어진 차화빈관은 한국음식점인 한성관(곤명빈관 옆)을 등지고 왼쪽 건너편에 위치한다. 예전에 우리가 묵었던 곤호반점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그만큼 깨끗하고 쾌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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