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여행보다 즐겁다고 단정짓진 않겠지만, 여하간 요즘 나의 새로운 관심 분야는 <열대어 기르기>이다. 선 넘는 연습으로 저지른 일인데 생각보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성격의 한계상 꼼꼼하게 보살피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벌써 상당수의 물고기를 저 세상으로 보냈지만, 다행히 튼실한 놈들이 많아서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그간 작은 투명 비닐봉다리 안에 들은 블랙테트라 두 마리로 단촐하게 시작한 살림이, 이제는 제법 수십 마리의 열대어들이 담긴 어항 두 개와 큼지막한 락앤락 통으로 늘어났다. 물론 두 마리가 수십 마리가 된 데에는 구피 어미들의 힘이 제일 컸다. 두 마리가 세번에 걸쳐 새끼를 낳았고 - 구피는 난태생이라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낳는다 - 어미를 비롯, 여러 다른 식구들에게 먹히고도 남은 -_-; 스무 마리 남짓한 구피 치어들이 어항을 자유롭게 날라댕기는 모습은 사랑스럽다(물론 나의 잔인한 실험에 의해 몇 마리를 더 잃었다).

 

이제는 구피 암컷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갔기 때문에 짝을 잃은 수컷 두 마리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애꿎은 플래티를 쫒아다니며 구애를 하고 있다.-_-; 11마리로 시작했던 네온테트라도 6마리까지 그 수를 줄여나가더니 이제는 안정적으로 물생활을 하고 있고, 반토막도 더 났던 체리 새우는, 게다가 대부분 알을 밴 채 죽어나가 가슴을 아프게했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숨어있다 나타났는지 6마리의 어미를 닮은 체리빛 치새우로 나를 즐겁게 하기도 한다.

 

어제는 플래티 한 마리가 얼굴에 석고팩을 한 채(정확한 병명을 모르겠다) 이승을 하직했고, 오늘 아침에는 잘 지내던 벌 새우 한 마리가 옆으로 누워 자고 -_-; 있는 걸 발견했다. 체리 새우에 비해 건강하게 잘 지내던 놈들인데 왜 죽었는지 역시나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나는 구피 치어들이 - 미래의 어항내 밀도를 걱정해야할만큼 - 빈 자리를 메꿔나가고 있다.

 

김원장은 한 자 남짓한 작은 어항 두 개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말하곤 한다.

 

이 수조들을 통해 응축된 인생을 또 한 번 보고 있다고.

 

여행보다 즐거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일이 현재 무엇보다도 나의 관심사를 늘여나가고 있음을, 그리하여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아, 밥 줄 시간이다.

'그 밖에 >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했던 이유  (0) 2005.11.03
누구나 아는 말  (0) 2005.10.21
선 넘는 연습  (0) 2005.08.24
배낭족 철새들이여 치열하게 부딪혀라  (0) 2005.08.06
돌고 돌아 제 자리  (0) 2005.08.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