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을 읽다가 상기 제목이 눈에 번득 뜨였다. 끝까지 읽고 나니 의외로 기사 대상과 같은 대학생 기자가 쓴 글이었다. 나처럼 여러분들도 재미나게 읽으시길.

--------------------------------------------------------------------------------------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은 여름철새처럼 한국을 떠난다. 주요 정착지는 유럽이고 그 외에도 중국, 네팔, 오스트레일리아 등 대륙과 대양을 넘나든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홍익대 정한빛(영어교육 4년)씨는 “숙소를 못 구해 암스테르담에서 3~4시간 동안 헤맸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미소짓는다. 예상치 못한 국제행사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외국인 여행자들과 떼지어 암스테르담 거리를 활보했던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 100만원이 넘는 한국행 비행기를 프랑스에서 놓쳤던 이정아(이화여대 생명과학 2년)씨. “직원에게 사정을 한 끝에 9만원을 더 주고 비행기표를 바꾸기까지 불안에 떨며 공항 대합실에서 보낸 그날 밤”을 다른 어떤 기억과도 바꿀 수 없다. 고생의 기억조차 낭만으로 윤색돼 남는 게 젊은 날의 여행이다.

말도 안 통하는 타국으로 배낭 하나 들고 떠나는 장기여행이 대학생만의 멋인 이유다. 젊은 패기가 곧 여행자수표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 굳이 고생을 자처하진 않아 보인다. “대학에 왔으니 당연히 해외여행을 해야할 것 같았다”는 박경은(숙명여대 경영학 3년)씨의 말처럼 이국에서의 한철은 대학생의 방학중 필수과제일 뿐이다.

양념처럼 껴드는 고생담은 달콤하지만 고생으로 점철된 여행은 사양한다. 성균관대 최연균(경영대학원 1년)씨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죽어라 고생하는 여행은 원치 않는다”며 “대학생 여행이래도 여유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려면 ‘부모’란 지원군의 도움은 필수다. 여행이 상품이 될 때는 경비가 200만~300만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유럽여행을 가려고 3개월 동안 과외를 세 개나 ‘뛰었다’는 박경은씨도 경비 절반은 결국 부모님한테 받았다. 간혹 직접 모은 돈으로 여행경비를 충당하는 기특한 대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이 부모님께 절대적으로 지원을 요청한다.

편리한 여행을 위해 ‘호텔팩키지(호텔팩)’를 선택하는 학생도 많다. 호텔예약, 가이드 등 여행의 몸통을 여행사가 즐긴다(?). 호텔팩으로 유럽에 다녀온 서울교대 이효정(초등교육학 4년)씨는 “큰 준비 없이 출발해도 숙소예약을 여행사가 알아서 해줘 편했다”며 “유스호스텔 같은 곳에 비해 깨끗하고 안전해서 마음이 놓였다”고 덧붙였다.

프라임여행사 남연우 차장은 “대학생들이 스스로 숙박을 정하거나 일정 짜는 것에 부담을 느껴 호텔팩을 찾는다”고 설명한다. 돈이나 상품이 적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선배 대학생들에겐 그 ‘부담’이 낭만이나 특권의 다른 말이었다.

편리를 선택한 대신 생동하는 경험은 포기해야 한다. 자유도 지불한다. 숙소가 미리 정해져 여행일정을 변경하기 어렵다. 한양대 최효석(정보사회학 2년)씨는 “유적지 중심으로 일정이 바쁘게 짜여서 인상적이었던 프라하나 빈에서 오래있지 못했다”며 “감정적으로 끌리는 곳이 사람마다 다른데 일정이 자유롭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전한다.

방학 철, 유럽은 한국 대학생들이 지배한다. ‘머리 검으면 무조건 한국인 학생’이란 말이 생길 정도다. 이화여대 송민정(법학 3년)씨는 “뮌헨에서 기차를 탔는데 기차 한 량이 다 한국인이었다”며 “공항 뿐 아니라 마트까지 한국 대학생들이 점령해 어렵지 않게 여행했다”고 말했다. 방학 때, 그것도 인기국가에만 몰리는 한국인들끼리 자연스레 정보를 나누기 때문이다. 혼자서 몽골을 여행한 이화여대 송민진(사회학 3년)씨는 “시내 밤거리가 울릴 정도로 몰려다니며 떠드는 한국인 대학생들을 보면서 정말 난감했다”고 토로한다. “한국인들끼리 뭉쳐서 다닐수록 현지 문화에 온전히 젖어드는 것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송씨의 생각이다.

수백만원의 대가는 무엇일까. 좀 더 편하게, 누구나 가는 것이라 간 ‘철새’에겐 그다지 많지 않아보인다. 물론 대학생이라 해서 전쟁하듯 치열하게 여행할 필요는 없다. 더 나은 현지문화 체험을 원한다면 ‘한국 학생들로 붐빌 성수기 정도는 피해라’라는 여행정보가 지금 대학생들한텐 더 유용한 것일지 모르겠다. 명심하자. 치열하게 부딪칠수록, 전리품은 늘어난다.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http://www.hani.co.kr/kisa/section-005001000/2005/08/005001000200508031751570.html

'그 밖에 >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보다 즐거운 것  (0) 2005.10.11
선 넘는 연습  (0) 2005.08.24
돌고 돌아 제 자리  (0) 2005.08.02
THINKER족  (0) 2005.06.13
Dr. Kim's Lt. Knee MRI Result  (0) 2005.04.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