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레 호수에서 보트 트립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호수 구경을 구석구석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배를 타는 거겠죠. 냥쉐에서는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 여행객들에게 대대적으로 1대 1 마케팅(?)을 펼칩니다. 숙소 프론트에서 뿐만 아니라 냥쉐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다 보면 여지없이 이들 호객꾼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지요. 어쨌든 냥쉐를, 인레 호수를 오는 여행객들은 단체 관광객이든, 개별 배낭족이든 거의 모두들 이 보트 트립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 중 하나였고요.

 


보트 한 척을 빌려 숙소 앞 긴 수로를 따라 인레 호수에 접어 듭니다. 호수 위에서 맞는 아침 바람이 쌀쌀합니다. 한비야님 책에 보면 인레 호수는 모든 게 다 물 위에 떠 있는 곳이라죠. 머릿속에서 상상해 왔던 인레 호수의 모습과 비교하여 보니, 실제로는 호수의 사이즈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기대에 못 미치는 물 맑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여행기를 읽어보면 그 맑음에 여러분들이 찬사를 보내셨던지라...).

 


아침부터 이 주변에 사는 분들이 고기를 잡으러 여기저기 나와 있습니다. 호수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전동의 힘이 없이 발로만 - 인레 호수는 한 발로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있어 유명해 진 곳입니다 - 이렇게 호수 한 가운데까지 와 있다는 것에서 이 분들의 부지런함을 잠시 엿볼 수 있습니다. 통발이 무지 크죠? 고래도 잡을 수 있을 듯 ^^

 



아저씨의 환경 친화적인 배에 비해 우리가 탄 배는 아래 사진처럼 모터가 달린 배입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모터가 달린 배를 타고 다닙니다. 저 쪽에서 바라보면 우리도 대략 저런 모습이겠지요. 배 한 척에 나란히 앞 뒤로 앉은 두 사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요란한 모터.

 

배는 한참을 가로 질러 호수 건너편의 장이 열리는 한 마을로 찾아갑니다. 망망대해처럼 느껴지는 호수 가운데를 달릴 때보다 호수 주변의 마을로 들어갈수록 수로가 좁아지고 복잡해져서 훨씬 재미납니다.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학교에 가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빨래하는 아주머니며, 머리감는 아주머니며, 설겆이를 하는 아주머니까지 바로 가까이에서 그분들의 얼굴을, 삶을 바라봅니다.

 


 

안 그래도 좁은 수로에 장보러 온 손님들의 길~다란 자가용 배가 가득 찼습니다. 트래픽잼이군요. 아니, 수로의 주차장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가용을 주차장 입구에 겨우 대고 장터로 갑니다. 바람막이를 걸친 제가 수로 옆 길을 따라 장으로 가고 있네요. 오른쪽으로는 땔감으로 쓸 장작들을 부리고 싣고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길 옆으로는 '난난빈'이 활짝(?) 자라고 있습니다. 난난빈이 뭐냐고요? 저희가 안녕하셔요, 감사합니다, 의 단 두 마디 할 줄 하는 버마어에서 대망의 3등 자리를 차지한 단어, 바로 고수풀의 버마말입니다. 고수풀, 즉 Coriander / Cilantro 말입니다. 중국의 '시앙차이', 태국의 '팍취'라면 감이 오시려는지요?

 

그러고보니 고수풀에 얽힌 생각나는 사연 하나. 인도에 갔을 때 한 식당의 영어 메뉴에 Korean chicken 어쩌구 저쩌구 하는 메뉴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덜 가는 곳이어서 의외라 생각하면서도 한국 음식을 먹은지 꽤 되는 터라 제 눈 앞에 등장한 코리안이 너무 반가왔습니다. 얼른 그 단어가 들어간 메뉴를, 그것도 두 개나 시키고 기다렸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 제 앞으로 보기에도 그럴싸한 음식이 나타났고, 제 자리에 놓여지기가 무섭게 얼른 포크로 음식을 찍어 제 입으로 가져간 바로 그 순간!

 

그건 고수풀로 범벅된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우웩~ -_-; 아니, 대체 어떤 한국음식에 고수풀이 이토록 왕창 들어간단 말이냐!

 

그 때만해도 고수풀을 영어로 Coriander라고 부르는 줄 몰랐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주문상의 실수를 안 하고자 다음 날 그 동네 시장에 갔을 때 그 풀을 집어 들고 한참 장사에 여념이 없는 아저씨에게 물었더랬죠. 

 

* 아저씨, 이거 이름이 뭐죠?

* 코리안더요.

* 예? 아니, 이거 이름이요.

* 예. 코리안더라니까요.

 

아니, 왜 하필이면 이 풀에 Korean을 붙였단 말이냐...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을 알기나 하는 것이냐... 저는 얼른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전을 뒤적거려 알아내고 보니 Coriander더군요. -_-; 이젠 절대 안 까먹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저 고수풀을 잘 먹어야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텐데... -_-; 저는 아직도 고수풀이 들어간 음식을 잘 먹지 못합니다. 난난빈, 버마에서도 꽤 쓰이는 재료 중 하나로 저렇게 심심치 않게 난난빈 밭을 지납니다. 그 밭을 지날 때마다 그 독특한 향에 취하죠.^^;

 


시장으로 가는 길에 혹달린 소가 한 마리 쉬고 있습니다. 저어기, 이 소를 옭았던 수레가 보이네요. 역시 풀려 있는 소가 더 아름다와 보입니다. 어느새 저 언덕 너머로 사람들 바글바글한 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와, 사람이 진짜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장 안으로 꾸역꾸역 파고 들어갑니다.

 



인레에서 잡아올린 생선들이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합니다. 종류별로, 크기별로, 잔챙이들도 한 가득 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날이 더워서인지, 인레 호수를 코 앞에 두고, 아니 인레 호수 바로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면서도, 굵은 소금 세례를 듬뿍 받은 놈들을 사고 팔고 요리하고 먹나봅니다. 이 대목에서 얼마 전 맛나게 먹었던 안동 간고등어가 생각나는군요(http://cyworld.nate.com/kangyuna에서 사진첩->싸돌아댕기기로 들어가면 4월 어느 날 고등어 자반이 올라온 안동의 아침 식사를 볼 수 있음).

 


물론 생선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야채도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지요. 흥정 역시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품목 중 하나이고요^^ 묘하게 생긴 오이인지 호박인지 수세미인지가 매력적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노점 식당가로 들어가 봅니다. 역시, 제 예상대로 많은 분들이 식도락을 즐기고 계십니다. 꽤나 긴 식탁인데도 좀처럼 끼어 앉을 자리가 보이질 않는군요.

 


   

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배암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장에서는 사라진 풍경 중 하나입니다. 현재 제가 5일장이 열리는 곳에서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고도 있고, 부부의 취미상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5일장이 남아있는 타지역에 장날에 딱 맞춰 방문하게 됩니다. 웬만한 소도시 장날이라면 할아버님들이 모여 돈내기 윷놀이나 장기, 화투판이 벌어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는 있지만, 이렇게 전문적인 판(?)이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게임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 위판에 세 개의 큰 주사위가 있습니다. 주사위의 6면에는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사위 세 개를 받치고 있는 막대기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면 경사진 면을 따라 아래 판으로 주사위들이 굴러 떨어집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더 앞쪽으로는 주사위와 같은 그림이 쫙 그려진 판이 있습니다. 그 판에 돈을 걸고요, 같은 그림이 나오면 돈을 땁니다. 사진을 보니 도박의 현장에서 제가 넋놓고 좋아라~하고 있군요. 저의 잠재된 사행심을 불러 일으키는 현장 25시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사람 많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5일장이 열리는 지역이라 하여도 구석구석 마트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붐비진 않습니다. 5일장을 통해 팔리는 품목들을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으니까요. 이 곳은 규모는 크지 않아도 오직 이 곳을 통해서만 생필품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습니다. 이 점이 제게 많은 점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그 필요에 의해 생성되는 곳. 

 


오호, 드디어 싱싱한 생물 생선이 보입니다. 한 구석에서는 아직 살아 펄떡이는 생선들의 아가미를 나무 줄기 같은 것으로 이어이어 꿰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버마에 오기 전에 인레 호수에서 낚시할 마음이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노라니 좀 찝찝해 지더군요.

 

즐거운 시장 탐험이 끝나고 보트 트립이 계속 됩니다. 배를 타고 물 위에 떠 있는 대장간 구경을 갑니다. 땅~ 땅~ 땅~ 멀리서 듣기에도 쇳망치 소리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대장간에서 실제로 칼을 만드는 장면을 '보여주고' 옆에서는 칼이나 그 밖의 쇠붙이를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풀무질을 하자 화덕에서 시뻘건 불빛이 이글이글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 새빨갛게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꺼내어 모루 위에 올려 놓자 모루를 둘러싼 3~4명의 장정들이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쇳망치를 하나씩 들고 박자에 맞추어 리드미컬하게 쇳덩이를 얇게 펴나가기 시작합니다.

 

옆에서 그들의 땀방울이 튀는 작업을 한참 보고 있자니 '보여주는' 이 장면이 연출성이 짙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이 이런 작업으로, 판매 중인 이런 섬세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알겠지만,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도착할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광경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되풀이 됩니다.  

 

이는 다음에 방문한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곳에서 역시 종이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A부터 Z까지 보여 줍니다. 반죽하고 끓이고 두드리고... 눈 앞에서 나무껍질이 종이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분명 신기하지만 그저 유쾌한 광경은 아닙니다.

 

직물가게, 금은 세공품을 파는 공방, 고양이가 묘기를 부리는 사원, 담배 공장(?) 등등 배는 우리를 수시로 태웠다 내렸다 하면서 인레 호수 위에 떠 있는 여러 곳을 방문케 합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담배 공장입니다. 공장이라기 보다는 가내 수공업의 형태를 띄고 있는 곳입니다. 김혜자님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으면 담배를 마는 어린 아이들이 심한 두통을 호소한다고 하는데요, 이 곳에 있다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나나잎으로 담배를 척척 말아대는 사람들 중 가장 어렸던 아이입니다. 하루 종일 담배를 말면서 하루를 보내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입니다. 우리 나라의 아이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이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이젠 이런 식의 구경이 재미 없습니다. 우리는 장삿속이 뻔히 보이는 보트 트립의 일정에서 벗어나 관광객들을 태운 보트를 모는 사공들과 놀기 시작합니다.

 


한 장소에 관광객들을 부려놓고 나면 그들이 쇼핑을 하는 동안 사공들은 그들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런 그들이 가장 즐거워하며 하는 일명 '알까기'입니다. 당구와 알까기가 버무려진듯한 이 놀이를 너무들 흥미진진해하며 하길래 결국 그들의 판에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_-;

 

보시는 바와 같이 색을 두 가지로 나누어 편을 가르고 내 말로 상대방 말을 쳐서 네모난 판 구석마다 있는 구멍으로 상대방 말을 빠뜨리면 됩니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다 넣은 쪽이 승!

 

막상 신랑이랑 해보니 이들이 열광하는 것 만큼의 재미는 없었습니다(제가 신랑보다 너무 못해서 그렇게 말한다고 하시면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만 -_-;). 그간 제가 너무 대한민국에 만연한 환락의 엔터테인먼트에 익숙해진 듯 싶습니다.

 

여하간 쇼핑은 안중에도 없고 이런 거나 즐기는 저희 부부의 독특한 취향을 눈치챈 저희 사공 아저씨(사진 왼편의 파란 추리닝 아저씨)가 저희를 다시 숙소로 돌려 보내 줍니다. ^^ 

 

여러 일정으로 꽉 들어찼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 빠진 듯한 보트 트립... 인레 호수를 진정 누릴 수 있는 대안은 정녕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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