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없어 보이는데 배우들 사진이 즐비하네요. 버마 지도도 보입니다. 불행히도 버마어라서 읽을 수는 없지만요. 맨 왼편으로 - 작은 스티커 사진처럼 보이는 - 붙어있는 수많은 연예인들은 거의 제가 아는 한국인들입니다. 김지호, 소지섭... 그리고 오빠, 얘 이름이 뭐였지? 아하, 김현주.

 

버마의 산골 구석까지 소지섭이 한 벽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썩 뿌듯하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쪽 벽을 바라보니 이 곳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 절실히 느껴집니다. 빨랫줄에 널린 옷들하며, 제대로 개켜지지 않은 이불들과 한 구석을 차지한 쌀 꾸러미까지. 그러고 보니 쌀 꾸러미 옆에는 뒤주 같은 것도 보이네요.

 


드디어 식사가 나왔습니다. 퉁퉁 불은 싱거운 라면처럼 보이죠? 야채로만 맛을 낸 국물이 기대 이상 시원하니 시장을 반찬삼아 맛나게 먹습니다.

 


신나게 먹어치우고 이젠 낮잠 시간입니다. 한낮의 더위도 피해갈 겸 탁월한 시간 배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대나무로 직물을 짜듯 엮어놓은 바닥과 사방의 벽이 바깥 세상의 뜨거운 열을 차단해 주어 무척이나 시원합니다. 여름에는 이런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빠랑 나란히 누워 비가 내릴 때 저 지붕 위에 떨어져 만들어 내는 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그 물줄기가 작은 흐름을 이뤄 이 벽으로 흐른다면 운치있겠다, 하면서 이런 저런 팔자 좋은 소리도 해 봅니다.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저희는 다시 길을 나섭니다. 저 멀리 인레 호수가 보이네요. 산 중에 있다고는 믿기 힘들만치 커다란 호수입니다.

 

얼마간의 길을 걷자 학교가 나타납니다. 선생님의 선창에 낭랑한 목소리로 따라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잠시 교실 안을 들여다 봅니다. 고만고만한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앉아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반 아이 중 하나가 어느새 우리 존재를 눈치챘는지 미세한 소란이 이는 듯 싶더니 금방 반 아이들이 웅성이며 우리에게 아는 척을 합니다. 밍글라바~ 밍글라바~ 밍글라바~ 이럴 땐 꼭 스타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얼른 자리를 뜹니다.

 


지금 이 사진을 바라보니 꼭 아프리카가 이런 모습과 흡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여기는 버마랍니다. 아프리카는, 다음에 가서 사진을 찍어 비교 분석해 올리도록 하지요. ^^

 


길은 어느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걷다가 뒤돌아 찍은 사진입니다). 간간히 나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이 저희를 신기해하며 가이드에게 묻습니다. 아마도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가이드가 계속 한국이라고 말하거든요. 그러면 대부분의 주민들이 야트막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신기해 합니다. 트레킹 초반에 우리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프랑스 말을 쓰는 커플이 있었는데, 그런 백인들에게는 밍숭맹숭한 반응을 보이던 어른들조차 우리들의 얼굴이 낯익으면서도 낯설었나 봅니다.

 


잠시 나무그늘에 앉아 쉬었습니다. 가이드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하면서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가자고 합니다. 그 <조금만 더 가면>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우리는 조만간 또 하나의 인따족 가정집에 들러 놀게 됩니다. ^^;

 


구조는 흡사합니다. 1층은 이처럼 부엌과 창고로 사용합니다. 우리네 입식 부엌과는 달리 좌식(?) 부엌입니다. 대나무 벽 바깥으로 작은 굴뚝이 나있답니다. 가재도구가 단촐하니 이 집의 살림 규모를 말해 줍니다. 그래도 이 집에는 4분 이상 살고 계십니다. 시어머니, 아들, 며느리와 손녀까지요. 시어머니이자 이 집의 가장 어른이신 할머님은 말도 안 통하는 우리들에게 계속 먹을 것을 권하느라 바쁘십니다. 말 한 마디 안 통해도 그 맘이 너무나 가까이 와닿아 뭉클해집니다. 돌을 막 지난 것 같은 손녀는 아주 귀염둥이고요. 사실 이 집에서 무언가를 계속 얻어먹는 것이 - 나중에 가이드가 돈을 지불하는지는 몰라도(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렇겠지요) -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아장아장 걷는 손녀에게 주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이 집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계몽 포스터(?)입니다. 그림으로 미루어 보건데 객혈, 체중 감소, 발열, 전신피로, 기침 등이 있으면 병원에 내원하여 치료를 받아 건강을 되찾으라는 내용 같습니다. 그렇죠.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죠.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관념이 무너집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7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이전 생활을 직접 겪어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런 시절은 존재했었습니다. 저는 오늘 버마에 와서, 우리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우리의 과거를 살고 있는 분들을 만납니다. 

 


할머님이 계속 챙겨주시던 엿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지 답니다. 더운 나라 먹거리로는 기본 사양인 듯 싶습니다.

 

즐거운 환대와 휴식 후 트레킹은 계속 됩니다. 다음처럼 우리를 막아서는 것들만 없다면 좀 더 속도가 났을텐데요.

 


    

우마차도 지나가고,

 


말타는, 아니 소타는 아이도 지나갑니다. 서로 신기해하죠?

 

이렇게 또 하루가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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