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호수 트레킹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마악~ 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괜찮다고 말하던 김원장이 트레킹 다음 날부터 무릎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트레킹하면서 나름대로 무리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했는데도, 트레킹은 욕심이었나봅니다.

 

이틀째가 되어도 무릎이 아파 제대로 걷지를 못하니 예정대로 껄로로 이동해서 트레킹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럼 어쩌나, 고민을 하던 저희는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아무래도 자꾸 무릎의 통증이 재발하는 것이 서둘러 검사부터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이후 한국에 돌아와 진료와 물리치료를 한동안 받다 결국 MRI를 찍었답니다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2GhX&articleno=1475699).

 

갑자기 인레호수를, 버마를 떠나려니 마음이 괜시리 허전해집니다. 김원장도 마찬가지인지 쩔뚝거리면서도 이 마을 여기저기를 가보고 싶어합니다. 아침이라서인지 아이들은 삼삼오오 부지런히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도 있고, 손잡고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달랑거리며 들고 가는 도시락(?)도 정겹습니다.

 


 

마을에 여러 갈래로 난 길 중에 하나를 골라 끝까지 걸었습니다. 어느새 공항으로 나가기 위해 다시 마을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바닥에 비친 저희 그림자를 찍으며 짧았던 버마 여행을 되새김질해봅니다. 이 곳에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 만약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버마가 민주화가 된 이후였으면 좋겠습니다.

 

양곤으로 날아가기 위해 헤호 공항을 다시 찾았다가 한 한국인 가족을 만났습니다. 버마에 와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들입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양을 보아, 그리고 그 구성원들으로 보아 배낭여행객은 아닌 듯 싶고 버마에 사는 친지 방문겸 관광을 오신 것 같습니다. 나서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으니 그냥 제 상상이 그렇다는 겁니다. 다만 심하게 징징거리는 아이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는 여전히 심하게 흔들리며 양곤에 도착했습니다. 버마에 와서 국내선 비행기 멀미에 몇 번 고생한 김원장은 미리 숙소에 부탁해 약을 복용해 둔 터라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내립니다. 진작에 먹을 것을, 하면서.

 

한국인들에겐 버마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도니님(http://home.freechal.com/myabiz/)께 신세도 갚을 겸 잠시 들러 저녁 식사 대접 약속을 하고, 안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은 양곤 구경에 자의반타의반 나섭니다. 타의반이라 표현한 것은, 평소 양곤 같은 한 나라의 수도급 대도시에서는 저희가 원하는 스타일의 여행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국으로 최대한 빨리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버마에서 항공편을 변경하려면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는 말을 도니님께 들었는지라 더이상 지체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여하간 그 덕분에 양곤을, 그것도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곳곳을 잠시 누벼 봅니다.

 




 

사진상 두번째의 분홍색 건물인 보족 마켓보다 그 건너편에 펼쳐진 시장이 훨씬 정겨운 곳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큰 양곤의 위용에 놀라고, 생각보다 훨씬 번화한 양곤의 모습에 또 한번 놀랍니다. 그러고 보니 양곤마저도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과 닮았네요. 대도시들은 다 거기서 거기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양곤 시내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평생 양곤이 제 '상상'보다 더 크고 번화하다는 '사실'을 몰랐겠지요.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장님이 코끼리를 파악하기란 역시나 어려운 건가 봅니다.

 

버마에서 몇 번 항공편을 변경해보면서, <시스템의 부재>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여러 제반 시설이 부족한 버마이지만,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될 일을 택시를 잡아 타고 장거리를 찾아 와서, 그것도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은 항공권 예약 시스템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너무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버마도 중국과 같은, 드라마틱을 넘어서는 변화를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양곤 시내를 쏘다니다가 도니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일관'이라는 한국 식당에 들어서니 기분이 좋아집니다(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전 세계 요지 곳곳에 한국 식당이 하나씩 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식당에 앉아 한국 음식 냄새를 맡다보니 안 고픈 배도 절로 꼬르륵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도니님 내외분의 모습이 안 보이는군요. 바쁘시다고 하시는 걸 억지로 우긴 ^^; 탓인가 하여 전화를 드려봅니다. 이런이런, 한일관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관'이라나요? 도니님은 약속장소인 한국관에서 저희 부부를 30분 넘게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_-; 전화로 한국관이라 약속을 해 놓고도, 택시를 타고 오다 한일관 간판이 보이자마자 저기여욧, 소리 질러 자신있게 들어왔던 저였습니다. 허겁지겁 한일관을 나와 다시 택시를 잡아 타고 좀 더 가니 그제서야 한국관이 보입니다.

 

이렇게 도니님 부부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4인 모두 CMC(Catholic Medical Center)에서 일했었다는 공통 분모를 가졌지요. 덕분에 도니님께서 저희 부부의 여행을 위해 배려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VIP가 따로 없었지요. 어찌보면 한국에서는 얄팍하다 할 수 있는 인연인데도, 도니님께서는 그 인연을 참으로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준 분이십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꾸벅, 인사 드립니다. 그러나저러나 도니님의 미야비즈 사이트에도 여행기를 올리겠다고 했었는데, 게으름 탓에 아직껏 여행기를 쓰고 있는 저를 용서해 주실라나요? 아참, 더불어 저희가 멍~하니 기다리는 동안 차가운 물수건도 챙겨주시고 하셨는데 전화만 무료로 쓰고 쒱~ 하고 다른 곳으로 뛰어나가 버린 저희 부부를 호탕한 웃음으로 배웅해 주신 한일관 식당 사장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도니님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나눈 시간은 참 짧았습니다. 버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여행이 보다 충만해진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이 말만큼 쉬운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니님이 참 자랑스러운 한국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만 술, 담배는 좀 줄이셔야 할 듯 ^^;

 

버마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벽 비행기로 태국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버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텔이라 부를 만한 곳에서 몇 시간 새우잠이나마 청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부페를 못 먹고 나가야 한다는 게 아깝기 그지 없습니다. 여행 중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묵게 되면 아침 부페 챙겨 먹는 게 쏠쏠한 재미였는데...

 

눈이 잘 떠지지 않는 새벽녘의 공항에서, 헤호 공항에서 만났던 한국인 가족을 또 만납니다. 이번엔 가까이에서 그들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자의 어쩔 수 없는 능력이랄까요. 아까 아는 척 안 하길 잘했다,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만나게 되는 한국인들 역시 한국 내에서처럼 다양한 것 같습니다.

 

비행기는 다시 저희를 태국 방콕에 내려 놓습니다. 방콕에 온 김에 며칠 더 놀다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몸이 아프면, 맘이 불편하면, 심지어 배만 조금 고파도 여행은 즐겁지 않습니다. 공항 내부에서 오늘 뜨는 한국행 비행기 좌석이 남아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다행히 홍콩 경유이긴 하지만 오전에 뜨는 비행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편으로 항공편을 변경합니다.

 

홍콩 공항은 여전히 분주합니다. 10년 전쯤 이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생각이 납니다. 그 때 제일 신기했던 것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손에 들린 휴대폰이었습니다. ^^; 지금은 우리나라가 더 앞서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혹자의 말대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앞서 갈런지도 모르고요. 가끔씩 중국의 단계 추월에 놀랄 때가 많거든요.

 

제 개인만 해도 10년 전에는 TC를 따라 어리버리하게 홍콩 공항을 빠져 나갔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만 하루만에 냥쉐에서 비행편을 변경하고 버마의 헤호에서 비행기를 타고, 양곤에서 비행편을 변경하고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에서 비행편을 변경하고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서 다음 연결편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 역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발전하고 있죠?

 


 

짧았던 버마 여행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앞으로도 그 곳에 사는 모두가 내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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