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시마에서 다카치호까지. 

오늘은 이번 여정 중 가장 먼 운전 거리, 200Km를 달려야 하는 날이다(게다가 다카치호 올레 또한 중상급으로 소요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소문)


원 계획은 미야자키를 거쳐 규슈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다 좌회전하여 내륙의 다카치호에 접근하는 루트로, 달리기로나마 규슈 한 바퀴 그림을 완성해 보겠다는 각오로 짰었으나, 거리가 거리인만큼 내비양이 10분이라도 빨리 안내하는, 히토요시를 거쳐 구마모토 쪽에서 접근하는 루트로 급 변경(했는데 달리던 중 김기사 의견에 따르면 동쪽에서 접근하는 차량 소통량이 서쪽에서 접근하는 차량 소통량보다 적다면, 전자가 더 빨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더라). 고가의 숙소였던 묘켄 이시하라소를 체크아웃 시각까지 꽉꽉 누리지 못 하고 떠나려니 좀 아까웠지만 ㅜㅠ 12시 근방 목적지인 다카치호 도착을 목표로 삼고 - 럭셔리에 취하지 말자, 이번 여행의 주제는 올레다 ㅎ - 오전 9시 출발


김기사가 감탄하고 있는 소형차 연비로 말미암아 아직 엥꼬가 나진 않았지만 갈 길이 머니 일본에서의 첫 주유 시도

다행히 셀프가 아니었기에 아는 단어 총 출동 ; 레규라(레귤러) 이빠이 만땅 구다사이 ㅋㅋㅋㅋㅋ 아 역시 개떡같이 말해도 먹힙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따라하지 마세요


오늘이 신청해 온 KEP 4일권이 커버하는 마지막 날짜야. 오늘까지만 쒼나게 타고 이제 고속도로 있어도 안 탈거야 ㅋㅋㅋ

더불어 일본 여행을 앞두고 신모에다케 화산이 분출하는 바람에 좀 걱정을 했었는데(우리 일정에선 어제의 묘켄 이시하라소가 신모에다케와 가장 가까운 숙소였다) 다행히 폭발 따위 겪지 않고 도망 떠난다. 화산 안녕! 이제 터지려면 터지렴 나만 아니면 돼 응


그간 철이 철이니만큼 규슈의 단풍을 기대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머시여 11월인데 왜 이리 더워... 하며 지난 올레들을 해왔더랬다. 

어제에 이어 열심히 북상하고 있는 오늘에서야, 오옷, 이제야 단풍 좀 볼 만 하겠는데? 싶네. 난다난다신난다


그건 그렇고,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평소 일본에 대해 욕만 하지 별 관심 끄고 살지만 

이번에 이렇게 김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보니... 아아 맞다. 일본 또한 한국처럼 산악국가였었지. 팍팍 와닿는다

그러하니 일본 또한 터널 강국일 수 밖에... 터널도 잦고 잘도 만들었다. 잠깐! 이 대목에서 갑자기 몰아치는 감정의 데자뷔는 뭐지?

 

아하... 작년에 스위스에서 비내리는 고모령 알프스를 넘으며 똑같이 생각했었지. 스위스는 산악국가로 터널 강국이라고. 일본 쌤쌤

아니 근데 내가 스위스를 다녀온게 불과 작년이야? 백만년은 지난 것 같은데


다카치호로 다가갈수록 마치 비라도 내릴 것처럼 날이 흐려져서 불안한 가운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 타임 가진거랑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 산거랑 빼고는 나름 열심히 달려 12시 20분, 다카치호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부터 오늘 이 순간, 대체 다카치호에서 점심으로 간단히 뭘 먹고 올레를 걸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 것인가 고민(?)이 많았는데 ㅎ 

식당들을 찾아보니 가장 끌리는 우동집 마라톤테이(まらそん亭)는 하필 정기 휴일(매 월요일/첫째 셋째 일요일)과 방문 예정일이 겹치기에 포기(돈까스 덮밥과 가케 우동을 먹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거늘 ㅜㅠ), 고추장이 들어간 비빔밥을 내놓는다는 다카치호 식당을 가자니 올레가 시작하는 시내와 좀 떨어져 있는 입지가 영 못마땅... 그래서 카린카(カリンカ)에 가서 치킨난반과 카레카츠를 먹어야지 했었더랬다.



그런데 다카치호 올레는 아래와 같은 모양의, 순환형이나 다름없는 코스로

우리는 렌터카로 여행 중이었고, 주차를 하기엔 (시점인) 다카치호 관광안내소보다 (종점인) 다카치호 가마다세 시장이 훨씬 편리한 상황으로

어지간하면 나는 (기왕이면 숙소 방향이기도 한) 종점에 차를 세워두고 초록색 길을 따라 올레 코스로 합류하면 어떨까 하던 차였는데,

마음에 두었던 식당 카린카는 시점인 다카치호 관광안내소 옆이었고, 거길 간다면 코스는 100% 완성이겠지만 계획보다 1Km쯤 더 걸어야했다. 

그래서 상황이 이러하다 보고하니 김기사 왈, 편하게 주차하고 초록색 길 따라 걷다가 나오는 식당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자고. 흠, 오늘도 탈야마


그렇게 얼떨결에 들어가게 된, 간판에 Coffee & Pizza メルヘン 라 쓰여있던 작은 식당


들어가자마자 너무 작아서 순간 당황. 만화 '심야식당' 생각이 바로 나더라 ㅋㅋㅋㅋㅋ 변변한 테이블석이랄게 없어 우리도 나란히 앉았다


상냥한 두 여인이 이 아늑한 공간에서 아래와 같은 다양한 메뉴들을 눈 앞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놀라운 공간

김원장이 간판에서 Pizza라는 단어를 발견하곤 피자 먹겠다며 들어온건데, 주시는 메뉴판을 받아드니 다행히 한 면은 영어요(헐 이런 곳까지 영어 메뉴판이 준비되어 있을 줄이야), 규모 치고 피자 외에 되는 메뉴도 제법 있었다. 둘러보니 가게 분위기로는 화덕 따위 놓을만한 공간이 절대 안 보이므로 아마도 오븐 피자일텐데... 음... 다른 걸 먹어보자 의기투합(결정적으로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밥 같은 걸 드시고 계셔!). 


나는 추천 메뉴중 하나인 Curry and Rice with Hamburg(880엔), 김원장은 Pasta with Meat sauce(700엔). 김원장 은근 나만큼 양식파란 말이지

우선 정갈하니 입맛을 돋구는 상큼한 샐러드 나와주시고 

오오 이거슨 어릴적 불렀던 반가운 이름, 함박스테키

기대 없이 아무 집이나, 이런 맘으로 들어왔다가 뜻밖의 만족스러운 식사. 김원장거는 맛없어 보여서 내꺼만 처묵했는데 김원장왈 맛있다고 ㅎ

그 말에 얼른 빼앗아 먹어보니 파스타 면발은 그닥이었으나 신기하게 소스가 입맛에 꽤 맞더라 ㅎ 둘 다 완전 썩세스


혼자 오신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매번 마치 짠 듯 감탄사 섞어가며 호응해주는 두 여인들. 어쩜 저렇게, 너무 그러니 오히려 연기같잖아 ㅋ

어쩜 저 아저씨는 배 고파서가 아니라 정 고파서 오신게 아니었을까. 


계산을 하면서 번역기를 돌려 "오늘 여기, 다카치호에 비가 올까요?" 물으니까

두 분중 젊은 언냐가 얼른 본인 휴대폰에 天気 라고 입력하더라 ㅎ 날씨가 (중국어처럼) 일본어로도 天気로구나. 

당장은 비올 확률이 20%였던가 30%였던가, 하지만 밤에는 꼭 올 거라고. 결과를 접한 김원장왈 우산 안 가지고 가되 되도록 열심히 걷자고. ㅇㅋ


@ 거리 : 12.3킬로 (우리는 맨 앞 부분 500m 정도 맘대로 띵까먹음 ㅎㅎ)

@ 주차 : 다카치호 올레는 거의 순환형이나 다름없는 코스로 우리의 경우 종점인 다카치호 가마다세 시장에 무료 주차 (주차장 제법 넓음)

@ 우리 기준 실제 소요시간 : 오후 1시 출발, 시점 기준 6.1Km 지점=오늘 올레의 최고점이자 옵션 코스가 시작되는 무코야마 신사 참배길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옵션 코스는 밟지 않음), 4시 30분 종점 도착, 총 3시간 30분 소요.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시작한 탓에 어두워지기 전에 끝낸다는 마음으로 중간에 거의 안 쉬고 열심히 걷기도 했지만, 그간 다리에 근육이 좀 붙은건가, 예상보다 30분 가량 일찍 도착

@ 내 경우 스탬프는 (현재 종점엔 없다) 시점인 "다카치호 관광안내소"에서 (다음날 아침에 ㅋㅋㅋ) 받았다. 

@ 특이사항 : 다카치호 신사에는 제법, 다카치호 협곡에는 어마어마한 관광객들이 있었다(심지어 한국 패키지+중국 패키지+일본 패키지 쓰리콤보 우왕). 바뜨 여느 때처럼 협곡을 벗어나자 올레길 위에는 아무도 없으. 그렇게 나카야마 산성터 캠핑장까지 오붓하게 걸었는데 무코야마 신사로 오르기 전에 나오는 대나무 수로길 근처에서, 역방향으로 걸어오는 단체 올레꾼 발견 - 누가 봐도 우리 동포. 한 스무분쯤? 오신 것 같더라. 간만에 안녕하세요 한국어 퍼레이드 ㅎ 우리, 사람 많은 북큐슈에 진입한거야? 그런거야? 그건 그렇고 오늘의 걷기는 순방향이 (역방향보다) 나을 것도 같은데 왜들 역방향으로 오시남. 그 분들 지나가고는 또 내내 정적(오토노타니 현수교를 차 타고 구경 온 일본인 부부+애완견이 전부).

참고로 나는 각 올레마다 한국어 지도와 일본어 지도를 세트로 출력해 왔는데, 마루오노 녹차밭으로 표기된 부분에서부터 두 지도 루트가 잠시 갈리더라. 한국어판은 차가 다닐만한 도로로, 일본어판은 마을길을 지나도록 되어 있는데 현재 리본은 한국어 지도 기준으로 펄럭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불편하다 민원이라도 넣은걸까? 

@ 관련 후기

베쯔니님 http://likejp.com/3063

유림님  http://blog.naver.com/8916016/20207265068


김원장과 써티의 다카치호 올레 사진 몇 장

다카치호 신사 내에 있는 커다란 두 그루의 삼나무 주위를, 간만에 김원장 손을 잡아끌질질 남들처럼 세 바퀴 돌았다. 

영문을 모르는 김원장, 안하던 짓 하는 이유를 대라며 어쩐지 불길하다나 뭐라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댁도 궁금하면 500원 내!

 

다카치호 협곡은 꽤 포스가 있다. 그 수많은 관광객들이 바보인가 괜히 왔겠는가. 

이번에 걸은 올레길 통틀어 단일 관광지로는 가장 임팩트가 큰 곳 중 하나가 아닐까 하지만 여기는 축소지향의 일본. 볼 만하면 끝나



                                  다리 3개를 동시에 찍겠답시고 찍은건데 ㅎ


아싸 다카치호에도 단풍이 드는구나!

참고로 다카치'호'의 '호'가 호수인 줄 알았던 1인. 와보니 호수 따위 없어. 지명 高千穂 발음이 저래 ㅋ 



 나카야마 산성터 캠핑장. 눈누난나 그네 타다가 빗방울 두 어개 맞아서 깜놀. 이럴 시간 없어. 서둘러 ㅎ



비록 날은 흐릴지언정 모처럼 걷는 길이 알록달록하니 기분이 33하구나

무코야마 신사 입구. 여기서 들어갔다 나오는 옵션 코스 가능. 계단이 많다(?)는 소문


이론상으로 "오토노타니 현수교"라는 걸 건너기 위해 내려가는 길. 고개를 두리번거려봐도 좀처럼 다리 같은 건 안 보이지(안 보여서 이름만 저렇고 사실 징검다리인줄 ㅋㅋㅋ), 평소보다 덜 쉰 탓에 다리는 아파오는데, 내려가는 만큼 올라와야 한다는 압박감에 길게만 느껴지던 내리막길. 

나중에 다리를 건너고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내리막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지그재그길이 길었던 거고(차량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오르막길은 보다 급경사로 지그재그길이 짧더라. 그래서 걱정에 비해 그럭저럭 잘 올라옴 ㅎ 




이것이 바로 오토노타니 현수교의 실체. 위에선 안 보였는데 막상 눈 앞에 두니 제법 크다(현수교 좀 건너본 녀자)


김원장~ 뭐가 보이는가~~~ 참고로 미리 말하는데 댁한테 자유란 없다~~~


오늘도 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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