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님을 처음 뵌 곳은 돈무앙 공항 게이트 앞이었다. 


화양연화는 어디 가고 이제는 서브 공항으로 전락해버린, 마치 그저 '저가'항공사들을 위한 '저가'공항처럼 느껴지던 돈무앙. 

한 때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문이었던 돈무앙이 원래 이렇게나 후졌었던가 갸웃하며 해당 탑승장을 찾아갔을 때, 대기석의 가장 좋은 앞 열에 그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우리도 비어있던 그의 옆 쪽에 앉을까 하여 기웃거렸으나 등받이에는 이 좌석이 우리와 같은 아무나가 앉아서는 안 되는 자리임을 밝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그와 같은 스님, 혹은 임산부나 노약자 등이 앉을 수 있는 우대석이었던 것이다. 오 신기해. 여기 스님까지 그려져 있다니. 관광지의 화려함에 가려져 문득 잊곤 하지만 태국은 엄연히 불교 국가라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그 스님의 무릎 위에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여기가 이국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눈에 익은 패키지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아아 저것은 바로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아닌가. 


내가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언제 처음 먹었는지, 한 입 물었을 때 맛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는지에 관한 기억은 안타깝게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내게 있어 크리스피 크림 도넛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면, 대전 신시가지에 그 도넛 매장이 처음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던킨과 다르게 매장에서 직접 도넛을 만들어 판매했고, 그 제작 시간대에는 매장 전면 통유리벽 네온 등에 빠.알.간 불이 들어왔다. 그 은은한 빨간 로고는 순식간에 나를 파블로프의 개로 삼으며 동시에 세이렌처럼 부지불식간에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담당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 단순한 사이클의 제작 벨트를 마치 찰리와 초컬릿 공장 급으로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나. 

나는 나처럼 빨간 네온등의 부름에 이끌린 다른 사람들과 묘한 동지의식에 휩싸여 줄을 섰다. 그 시간대 줄을 서면 갓 나온 폭신한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을 한 사람당 하나씩 공짜로 나눠줬는데 때문에 그 때는 김원장도 항상 같이 였다. 무서운 1+1 그리고 너무 맛있는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 


한 입 베어물면 단순한 그 행위만으로 엔돌핀이 쏟아졌다. 볕 좋은 날 30분씩 걸어 힘겹게 얻는 병아리 똥 같은 세로토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안하고 즉각적인 만족감이었다. 아아 맛있어. 제대로 씹지도 않고 - 어차피 도넛이란 입 안에서 녹는 물건이었다 - 꿀꺽 삼키면 눈은 저절로 반달이 되었다. 하지만 딱 한 개, 바로 그 공짜로 받아 는 따끈한 오리지널 글레이지드 한 개, 그게 최고였다. 마법은 거기까지만이었다.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하나를 먹어치우고 바로 두 번째 도넛에 손을 내밀지만 어찌된 일인지 두 번째 도넛을 삼킬 때면 뱃살이 떠올라서일까 죄책감이 둥실 떠올랐다. 간혹 유혹을 못 이기는 날이면 더즌 박스를 사기도 했는데, 그걸 고이 껴안고 집에 오면 시간이 갈수록 천덕꾸러기가 되기 일쑤였다. 내게는 그게 크리스피 크림 도넛의 본질이었다. 


말하자면 한 때 내게 절대선이었던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결국 慾과 이음동의어였다. 그런데 이 스님이 내게 있어 의 상징인 더즌 박스를, 예전의 나처럼 들고 계신 거였다. 뭐야 이게 뭐야 왜 스님이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들고 있는게야.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저렴한 간식거리가 아니었다. 여기는 한국에 비해 1/3 수준이라는 태국이었다. 그런데 '태국'의 '스님'이, 내게는 오욕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 마땅한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라오스 루앙프라방행 승객들을 대상으로 출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스님이 제일 먼저 일어나 게이트 앞으로 갔다. 앗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시는 분이었어! 그렇다면 태국 스님이 아니었구나. 라오스 스님이셨어. 아하, 태국에 볼 일 보러 오셨다가 루앙프라방에는 없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동료 스님들께 혹은 상좌 스님들께 공양하려는 모양이네. 그렇게 생각하자 뭔가 끄덕거려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흔히들 우리보다 잘 산다는 나라 여행하고 돌아올 때 선물 사오잖아. 스님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어?


게이트 앞에서도 스님은 우대를 받았다. 공항을 가로질러 해당 비행기 앞까지 운행하는 셔틀 안에서도 스님은 우대를 받았다. 아니 어쩌면 스님보다 더 우대를 받은 건 도넛일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는 공간 안에서 스님은 행여 도넛들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릴까 노심초사 하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 장면에는 어딘가 모르게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수 십명의 사람이 탑승한 버스 안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게 기껏 도넛이라니.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어쩌다 스님 바로 뒤를 따라 비행기 계단을 오르게 되었다. 승무원들은 두 손 모아 그를 공손히 맞았다. 우리는 그가 어쩌면 바로 내 옆 자리에 앉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번에도 우리는 맨 앞 열로 좌석을 업그레이드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의 좌석은 평범한 일반석이었다. 태국 어디서나 스님을 우대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행기 좌석 업글까지 공짜로 해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좋은 좌석에 앉아 어쩌면 나는 도넛을 깔고 앉은 채 하늘을 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님과 도넛은 뒷좌석으로 사라졌다. 


루앙프라방까지의 짧은 비행후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비행기 출구 앞에 선 분은 또 다시 그 스님이었다. 도넛이었다. 우리는 또 그의 뒤를 따랐다. 도넛을 따랐다. 라오스 입국 심사대는 내국인용과 외국인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본래의 수행터로 돌아가는 스님은 그 갈림길에서 잠시 멈칫하셨다. 우리는 앞질러 외국인용 줄에 섰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스님이 바로 우리 뒤에 서 계셨다. 도넛도 바로 우리 뒤에 있었다. 스님은 라오스인이 아니셨던 모양이다. 도넛이 그러한 것처럼.  

   


꼭 귀국 선물이라는 법 있어? 해외 나가면서 국내 특산품 사 갈 수도 있지

꼭 스님이 샀다는 법 있어? 신자가 선물한 걸 다시 선물하는 걸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탈린에서 못 먹은 허니 비어, 한국에서 만들어 주겠다고 손가락 걸던 김원장아, 이 때 여기서 크리스피 크림 도넛 보고 내가 침 흘리니까 한국 오면 사주겠다고 또 약속한 김원장아, 읽으면서 뭐 찔리는 것 없느뇨? (이 인간이 블로그를 읽어야 말이지 털썩) 


@ 텅러 그랑데 센터 포인트 쑤쿰윗 55 호텔에서 돈무앙 국제 공항까지 : 그랩 택시 


숙소에서 그랩 택시 앱을 눌러보니까 보는 바와 같이 그랩 택시들이 호텔 주변에 바퀴벌레마냥 드글드글한데다 부킹피 포함해도 최대 263밧 예상하길래 그랩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보면 나도 은근 똥고집이야 


비록 신생 숙소였던 탓에 그랩 택시 드라이버가 우리 호텔을 잘 찾지 못해 도어맨과 통화를 해야하긴 했지만, 어쨌든 얄쌍한 청년이 모는 택시에 잘 올라탔다(참고로 그랩 택시를 불러도 일반인이 운행하는 자가용이 아닌 일반 택시가 왔다). 


참고로 현재 나와 함께 탄 동승객인 김원장은 어, 오늘은 돈무앙으로 가서 타는거야? 이러는 수준 ㅎ 그렇다. 나는 에어아시아를 질렀고 에어아시아는 이제 수안나폼 공항 말고 돈무앙 공항을 이용한다. 


드라이버 청년은 우리에게 텅러에서 돈무앙까지 최대 두 번의 익스프레스웨이를 탈 수 있는데 어찌 할까 물어온다. 톨비는 50+70 이었나 50+90 이었나 뭐 얼마라고 알려줬는데 두 번 다 지불하기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져 50짜리 싼 걸로 하나만 타자고 했다. 이 땐 몰랐다. 차가 그렇게까지 막힐 줄...


그러니까 비록 토요일이긴 했지만 진작 웹체크인도 했겠다 익스프레스웨이도 한 번 타주는데 막혀봐야 얼마나 막히겠어, 하면서 시간 칼같이 딱 맞춰 탑승한건데 시내에서 가다서다 하던 택시가 돈무앙 공항을 몇 킬로 앞에 두고는 아예 안 가는거라. 와... 간만의 뜨거운 똥줄. 다음엔 익스프레스웨이 그냥 두 번 타야지 꼭 타야지.


참고로 택시비는 

미터기 233밧 + 부킹피 25밧 + 톨비 50밧 = 총 310밧 지불. 


마음을 졸였으나 다행히 우리가 체크인 꼴찌는 아니었다 ㅎㅎㅎ



돈무앙 국제 공항에서


그걸 아는가? 현재 돈무앙 국제 공항에는 PP카드로 이용 가능한 라운지가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국내선일 때는 이용 가능한 라운지가 있다. 그런데 우리처럼 국제선을 탈 때는 없다. 태국 방콕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까지 1시간 20분 밖에 안 걸리는데! 국내선이나 다름 없는데! 쫌! 



저가항공 타는 입장에서 저가항공 무시할 이유도 없는데 여기 와서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취항지로 안 가는 데가 없네? 대단대단

본격 저가항공 시대 개막 두둥 - 여기서 두둥은 뒷북이 울리는 소리입니다  

 


  장사 잘 되던 블랙 캐년 커피


그봐 라운지에 있을 땐 라운지 좋은 줄 몰랐지?


@ 탑승 


짧은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맨 앞 좌석으로 업글해 왔다(사실 업글은 비행이 2시간 이상일 때나 고려해 보기로 해놓곤 ㅎ 셀프 원칙 파괴).

기본 1인당 2190밧 + 위탁 수하물은 하나만 추가(515밧) + 맨 앞열 1D 1E 핫시트 지정에 1인당 400밧 추가 = 5695밧

결제 통화는 밧으로 신용카드 선택했더니 수수료로 180밧 추가되어 총 5875밧 지불(196,532, 1인 약 98,266원)


여러분! 저가항공 예약은 일정이 확정되는대로 최대한 빨리 합시다. 그럼 더 아낄 수 있어요

아껴서 뭐 하겠노 도넛 사먹겠지


그래서 오늘도 승무원 언냐랑 호자호매할 수 있는 지근 거리에 탑승 완료


비행 시간이 짧다보니 이것저것 하다 문득 바깥 내다보니 그새 라오스 땅에 들어온 모양이다 ㅎ

산이라고 하기엔 그다지 높지 않지만, 고만고만한 낮은 산들이 산너머 산... 산들이 가득하다. 산악지역에 자리잡은 국가임이 틀림없다.



@ 라오스 루앙프라방 공항 도착 및 루앙프라방 공항에서 시내


루앙프라방 국제 공항은 예상대로 작았다. 맨 앞에 앉았던 덕에 일등으로 별다를 바 없는 입국 심사를 받았고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짐을 찾아 입국장으로 나왔다. 


수하물이 빙글빙글 도는 곳에는 루앙프라방 유일의 한국인 여행사 노바 투어 입간판이 있어 꽃보다 청춘인가 TV 프로그램 이후 더욱 떠오르는 라오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6박할 줄 알고 질렀던 심카드도 - 물론 잘 썼지만 - 일정이 4박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좀 아까웠고,

태국에서 일정이 2박 늘어난 김에 빨빨거리며 방콕 돌아다닐 때 쓰려고 충동적으로 질렀던 심카드도 아프고 더워서 유용하게 못 쓴 면이 있어,

라오스 루앙프라방 공항 역시 입국장 초입부터 심카드를 열심히 판매하고 있더라만, 루앙프라방에서는 실외에선 오프라인으로 그냥 지내기로 했다. 

루앙프라방 시내라봐야 그다지 크지 않고 여기서 딱히 하고자 하는 것도 없어 열심히 찾아볼 것도 없는 데다가 어차피 라오스는 아직 데이터 네트워크가 타국에 비해 처지는 수준이라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인데... 쓰고나니 핑계가 길다. 


당장 쓸 라오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환전부터 했다. 안타깝게도 며칠 전 태국 ATM이 그렇게 사악한 수수료를 요구할 줄 모르고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받아든 밧이 좀 있었다. 

어지간하면 태국 밧은 ATM 이용 말고 미리 충분히 환전해 가거나 현지 환전소에서 USD 환전하던지 해야할 듯. 각설하고.  


루앙프라방 공항 환전소 왈 현재 1밧=231.81낍(라오스는 Kip이라는 단위를 쓰는데 킵보다는 낍으로 들린다)이라고 하길래 2,000밧을 내밀었더니 463,620이라는 숫자만 달랑 찍힌 상당히 허접한 영수증과 그나마 뒷자리 620낍은 빼고 463,000낍만 주더라. 대체 아무렇지도 않게 띵까먹은 620낍이 얼마인지 몰라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산기를 막 두들겨 봤더니... 우리 돈으로 89원 찍히더라 ㅎ 띵까먹었다고 표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소액이구나. 그러니까 대략 우리돈 100원이 700낍 혹은 1000낍이 150원 정도였다

(참고로 시내에선 1밧=235낍이었다. 환전은 시내 추천)


이제 시내 숙소로 갈 차례. 다시 말해 여기는 라오스였고, 말하자면 얼마 전 포스팅한 룩셈부르크가 1인당 GDP 1위급이고 한국이 30위급이라면 스리랑카는 100위급이고 라오스는 130위급으로, 한국에 비해 수치상으로는 1/6~1/7 수준이므로

우버고 그랩이고 픽미고 아직 그런 것 없다 ㅎ 


그래서 루앙프라방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공항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알아온 바로는 대당 50,000낍이었는데 허접한 택시 부스에 숙소 이름과 인원 수를 알려주니 내어주는 티켓에는 1인당 50,000낍이라고 적혀 있었고 해당 드라이버의 손짓 안내에 따라 공항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그의 차량으로 가보니 이건 택시가 아닌 커다란 봉고였고 우리만 타는 게 아니라 우리 말고도 세 팀인가 함께 타더라. 그러니까 일견 체계랄 것이 없는, 다소 엉망인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이 땅에서는 전혀 무리 없이 굴러가고 있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둘이 합쳐 50,000낍에 비록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타긴 했지만 다행히(?) 오픈된 툭툭도 아니고 일부러 외곽 숙소를 잡았으니 우리를 제일 빨리 내려줄 확률도 높았다. 


그 둘을 처음 만난 곳은 봉고 안이었다.


우리는 봉고의 맨 뒤에, 그 둘은 우리 바로 앞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남성은 백인, 여성은 동양인이었다. 둘 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던 그들은 커플이었다. 갑자기 우리에게로 몸을 돌려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던가 중국에서 왔냐고 물었던가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얼굴을 보고 연령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던진 그대로 나 역시 영어로 코리안이라고 답하면서 동시에 이 여인이 만약 동포라면 웃기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드물지만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으니까. 다행히(?) 그녀는 일본에서 왔다고 했다. 일본 여성이라고 하기엔 내가 지금까지 여행지에서 만난 그 어떤 일본인보다도 영어를 잘 했다. 남친 덕분인가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해 해가면서. 내친 김에 어쩐지 연하인 것처럼 보이던 남성에게 되물었다. 넌 어디에서 왔니. 그랬더니 자기도 일본에서 오는 길이라며 본인 대답이 재밌지 않냐는 듯 혼자 깔깔 웃었다.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젊어서, 그 치기가 나쁘지 않았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엔 애정 반 웃음 반이었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엔 영어 반 일어 반이었다.  


그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라오스는 처음이니, 며칠이나 묵을거니, 루앙프라방에선 어디어디 갈 거니, 어디가 가장 좋을 것 같니, 거기는 또 어떨 것 같니, 루앙프라방 다음엔 어디로 갈거니, 숨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질문이란. 세상 어디서 만나도 부러움을 사는, 두툼한 일본어 가이드북을 들고 있던 그들은 그야말로 [여행다운]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 그것도 영어로 - 좀 망설였다. 라오스가 처음이지만 겨우 루앙프라방에서만 3박 하고 뜰 것이며 그저 방문국 갯수 늘리러 왔을 뿐 루앙프라방에 기대하는 바는 아무 것도 없고 심지어 아무데도 가지 않을거라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질문을 통해 루앙프라방에서의 내가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에서의] 無欲 상태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두 개째 베어 물었을 때처럼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이런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건 그에게 그녀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조차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악 불 붙은 장작불에 찬물 한 바가지 크게 떠서 쫙 끼얹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루앙프라방 일정이 길지 않고 조만간 베트남으로 갈거라 미처 준비를 해 온 게 없다고, 그래서 지금 당장으로선 아무 생각이 없다고, 이제부터 열심히 찾아볼거라고... 나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아슬아슬 더듬더듬 대답을 이어가는데, 그녀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자신 없이 오답을 내놓는 한심스런 학생을 앞에 둔 선생님 같았다. 그 때 갑자기 드라이버 아저씨가 차를 세우며 우리 숙소 이름을 크게 외쳤다. 다행히 공항에서 시내는 멀지 않았고, 예상했던 바 우리 숙소가 가장 외곽이어서 제일 먼저 내리게 된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웠어.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동안 아마 다시 만나게 될거야 의례적인 인사를 던지고 미리 예약해둔 숙소가 존재할 좁은 골목길을 향해 얼른 도망쳤다. 그들의 젊음으로부터 그들의 열정으로부터 그들의 루앙프라방으로부터. 


나는 진작부터 이 바닥 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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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을 다시 만난 곳은 다음 날 우리 숙소 앞이었다.


우리는 새벽 시장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오는 길이었고 그들은 바로 그 시장 구경을 가는 길이라 했다. 아니 근데 이 시간에 대체 어디부터 다녀오는 길이야? 물으니 본인들 숙소에서 이제서야 막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잉? 너희 숙소가 어딘데? 하니까 외졌다면 외진 우리 숙소 골목에서도 더 안쪽을 가리켰다. 이미 어제 둘러본 바 이 막다른 골목 안에는, 우리 숙소에 비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숙소가 서넛 더 있긴 했다. 잉? 어제 분명 우리 내릴 때 안 내리고 계속 봉고 타고 갔는데...???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혼자 갸우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가이드북이 갑자기 허접해 보였다. 이번 역시 또 만나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그 후 그 둘을 다시 보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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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망치면서도 부러워했던 젊음과 열정. 나로서는 돌아갈래야 돌아가기 어려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그러나 누구나 쓸모 없다 생각하는 뒷방 늙은이에게도 손자 손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인생의 가르침 한 가닥 정도는 있겠지. 그래야 안 섭하지. 물론 손자 손녀는 그 가르침을 귓등으로 듣기 마련이겠지만.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고 역사는 반복되는 법. 지금까지 엄마가 시킨 일을 다 했다면 난 천하에 둘도 없는 착하고 멋진 엄친딸이 되었을 것이고, 선인들이 남긴 교훈을 인류가 다 받아들였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또 삼천포로 빠져버렸네. 그냥 윗 단락까지만 쓰고 말 것을. 


@ 한식당 김삿갓


루앙프라방에서 한식/분식을 먹을 수 있는 한식당은 최소 4곳이다. 우리가 본 것만 김삿갓, 빅 트리 카페,  금빛 노을, K mart. 루앙프라방 규모를 생각하면 선택의 폭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여기는 관광지와는 멀지만 우리 숙소에서는 가장 가까운 김삿갓. 



김삿갓이라 갓김치도 나온다. 응?



척 봐도 규모가 있는 것이 패키지팀이 들어온다(금빛 노을도 들어오는 듯). 외국에서 만나는 전형적인 한식당으로 주인 아저씨가 소문대로 매우 친절하시다. 우리의 경우 각자 6만낍 짜리 메뉴를 주문했는데... 라오스 물가 생각하면 비싸긴 하다. 그냥 한국 물가. 하지만 여긴 직항 넘쳐나는 태국도 아니고 맛있으니까 용서한다.


참고로 가장 저렴하게 한식을 먹으려면 메뉴 선택의 폭은 좁지만 K mart 추천. 돈 생각 안 한다면 비록 메콩강가는 아니지만 김삿갓도 좋다. 


접근성 및 분위기 : 빅 트리 카페 > 금빛 노을 > 김삿갓 > K mart

찾기 쉬운가 : 빅 트리 카페 > 김삿갓 > K mart > 금빛 노을

한식 메뉴 다양성 : 김삿갓 > 금빛 노을 > 빅 트리 카페 > K mart 

(참고로 다 먹어보지 않았음. 그냥 마음대로 적어본 것임)


@ 루앙프라방 야시장 Night Market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매일 갔다. 루앙프라방에 밤이 내리면, 야시장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카 망가진 김에 앞으로는 디카 안 사고 휴대폰만 들고 다니려고 했는데... 이거야 원, 새로 사야되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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