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 들어서자 (룩셈부르크에서 막 넘어와서 그런지) 네임 밸류가 상당한 벨기에 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꽤나 칙칙하게 느껴졌다.

김원장 또한 벨기에가 원래 이런 곳이었냐고 이 동네만 이렇게 후져 보이는 거냐고 흐린 기억속의 그대 브뤼셀은 나름 멋졌는데 서로 막 그러고 있는데... 나름 국경을 넘었답시고 외교부에서 띵띵 들어오는 문자 메시지 좀 보소. 



헉. 벨기에가 [테러경보 3단계(심각)]이라고라고라... 중미에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테러경보 문자를 벨기에에서 다 받아보네.


우리야 어차피 다시 프랑스로 후다닥 넘어갈 계획이다만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리 흘러가는고 ㅜㅠ 

벨기에-프랑스간 국경을 넘어 다시 프랑스로.


이번 여행에 있어 프랑스는 처음 한국에서 모로코 갈 때 찍고, 안도라에서 넘어와 달리고, 스위스에서 넘어와 달리고, 다시 벨기에에서 들러가는, 어쩌다 한 큐에 벌써 4번째 입국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끝내 파리 에펠탑 한 번 안 보고 갈 듯 ㅋㅋㅋㅋㅋ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오늘 한 박자 쉬었다 가는 곳은 랭보의 고향으로 알려진 Charleville-Mézières 근교의 대형 쇼핑몰. 미리 다운 받아온 지역 지도를 확대하다보니 문득 쇼핑몰 한 구석에서 Etoile de Chine라는 이름의 식당 간판이 눈에 띄었다. 어라, Etoile은 뭔 뜻인지 당근 몰라도(얼마 전 아를에서 봤던 고흐 작품의 불어 제목을 기억한다면 '별'이라고 바로 떠올렸을텐데 -_-) Chine는 중국인데? 그래서 귀찮아하는 김원장을 질질 끌고 쇼핑몰 부지를 막 돌아다녀 봄. 그러다 정말이지 아래 구글 로드뷰와 비슷한 식당이 딱 걸림. 와하하

 

그리하여 오늘 점심은 전혀 예상에 없던 중식 뷔페 당첨 ^^ 분명 중식당이긴 한데 이 마을 입지가... 어지간한 관광객이라면 아무도 안 올 곳 -_-; 이기 때문이라서인지 동양인이라고는 식당 주인 가족과 오직 우리 둘뿐 ㅋㅋㅋ 젓가락조차 아예 비치가 안 되어 있으니 말 다했다. 가족임이 분명해 보이는 한 직원 언냐에게 젓가락 따로 요청해 홀 손님 전체 통틀어 가장 유려한 젓가락질 신공으로 동물원 원숭이 쇼에 십분 부응함. 쇼쇼쇼! 사실 우리는 이런걸 포크로 먹는게 더 어렵지 말입니다  




비슷비슷해 보이겠지만 계속 가져다 먹은 것임 ㅋㅋㅋ 


아무리 프랑스화된 중국 요리라고 해도(실제로는 중국이라기보담 아시안 푸드)  역시 다른 유러피안 메뉴에 비해 맛있게 많이 먹을 수 있구나 ㅎ


참고로 1인당 13유로였는데, 김원장과 이 가격대로 먹을 수 있는 메뉴 중 최고의 선택이었음에 중지를 모음. 마련해 둔 뷔페 메뉴 구성을 살펴보면 프랑스에서 절대 단돈(?) 13유로로는 먹을 수 없는 수준으로, 함께 곁들이는 음료 내지는 반주를 비싸게 받아서 식당 수지타산을 맞추는 시스템으로 보였는데... 결정적으로 비싸다는 이유로 우리가 음료를 안 시켰 ㅋㅋㅋ 계산 뒤에야 우리가 이런 뷔페 식당에서의 매너에 어긋나는 짓을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미마셍    


비록 음료 주문 안 했어도 그저 피부색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역만리에서 다른 손님들에 비해 좀 더 살뜰한 관심과 배려를 받은 식사였다.


만족스러운 식사 덕분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채로, 날이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상당히 예쁜 초여름 프랑스 시골길을 달린다. 





다시금 느끼건데 프랑스도 복받은 땅이야 에펠탑이 다가 아녔어!





Gîtes Louis de Vauclerc 


@ 홈페이지(불어) http://www.giteslouisdevauclerc.fr/

@ 예약 : 부킹닷컴 통해 조식포함 Cottage를 125유로에 예약. 1인당 도시세 1.1유로 별도. 고로 총 127.2유로(결제는 예약시 걸은 신용카드로 투숙 전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지에서 2.2유로만 현금으로 지불) 

장점 : 마지막 숙소라 평소 예산에서 벗어나 살짝 과하게 지른 감이 있으나... 지트라고 하기엔 샤또 같은 분위기의, 크고 아름다운 숙소였음에 돈 아깝다는 생각 절대 안 들음(결정적으로 이 드넓은 부지에 우리만 달랑 묵었기 때문에 만족도가 엄청 올라감) / 언어의 장벽은 있지만 상당히 친절한 숙소 스태프들  

@ 단점 : 체크인을 위한 사무실 찾기가 살짝 어려움 / 우리 방에선 인터넷 연결이 안 돼! / 자체 와이너리까지 있으면서 웰컴 드링크로 와인 한 잔 안 주나! (이 놈의 공짜 근성 ㅋㅋㅋ)   

@ 기타 

# 이 숙소를 굳이 찾아갈 분은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처음 나는 구글 지도상에 Gîtes Louis de Vauclerc라고 표기된 지점에 차를 끌고 다다르기 위해 이 코딱지만한 시골 마을 좁은 골목길에서 고민을 좀 해야 했다. 결국 초록색 별 지점에서 열려있던 문을 통해 '샤또가'를 따라 어찌어찌 거기까지 갔는데... 거기 체크인 사무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숙소로 운영되는 건물은 다시 '샤또가'를 타고 내려온 빨간 집 모양의 지점(SARL Céline Goosse)에 있었다('샤또가'는 비포장 도로였으므로 미리 알았다면 숙소 앞에 차를 세워두고 다녀왔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1. 우리가 통과했던 초록색 별 문은 투숙객용 정식 문이 아니었고 닫혀있던 빨간색 별 문이 정문이더라(문 위치를 보면 짐작하겠지만 부지가 그만큼 상당하다. 그리고보니 길 이름도 지트가 아니라 '샤또'였네...)  

2. 차 끌고 아무렇게나 막 다녔는데 사실 '샤또가'도 원웨이로 운영하고 있더라 ㅋㅋㅋ 

Please note that a EUR 700 damages deposit will be requested upon arrival라고 안내하고 있으나 체크인시 물어보니 됐다고 ㅎㅎㅎ

# 기존에 예약했던 숙소에서 김원장 기준에 보다 조용할 이 숙소로 갈아타는데 있어 가장 문제가 됐던 점은 비교적 느린 체크인 시각(오후 4시)과 비교적 이른 체크아웃 시각(오전 10시)이었다. 부킹닷컴 왈 이 숙소는 지니어스 멤버에게 체크아웃에 있어 추가 2시간을 준다고 하길래 숙소 측에 미리 이메일을 보내 이른 체크인, 늦은 체크아웃을 부탁했더니 체크인은 오후 2시부터, 체크아웃은 오후 12시까지 가능하게 해준다고 하더라(말로는 다음 투숙 예정 손님만 없으면 두어시간 더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순 없어 미안하다고) 마침 한국행 뱅기가 늦은 오후편이었던지라 이 부분 알차게 이용했음


상당히 목가적인 - 커다란 거위들 무섭 ㅋㅋ - 체크인 사무실 앞 풍경


분명 울타리가 있는데... 새끼들은 작은 틈으로 자유롭게 드나든다. 꺄아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오늘의 우리 집을 밖에서 바라본 모습. 보는 바와 같이 (3층 탑처럼 보이는) 2층짜리 건물이다



밖에선 그 존재를 몰랐던, 멋진 안 마당에서 우리 집 탑을 바라보면 아래와 같은 모습. 


뭔가 머리를 미친 년처럼 길게 풀어 내리고 왕자님을 기다려야 할 것만 분위기. 지하에는 우와 소리 나오는 신식 사우나  


겉은 중세 삘이지만 실내는 완전 모던


1층에 거실, 완전 살림 살아도 되는 부엌, 식당, 작은 화장실 & 안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커다란 냉장고를 보니 맛난거 잔뜩 사다가 지지고 볶고 오래오래 누렸음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것도 다 먹어치어워할 여행 마지막날에 든다. 


거의 3층 높이의 계단을 오르고 올라가면



2층에 침실과 (비둘기 집이 보이는) 메인 욕실



커다란 정원뷰


오른편엔 수영장 - 날이 쌀쌀해서 히터 틀고 담요 덮고 있는 가운데 괜시리 저 수영장 자동 뚜껑 신기하다고 개폐 작렬 ㅋㅋㅋ 

저 빨간 지붕 작은 건물 안에 테이블 축구대 있다. 평소 테이블 축구만 하면 김원장에게 개발리는 난데 이 날만큼은 비등비등 음하하


왼편엔 울 숙소와 마찬가지로 고풍스러운, 그러나 엄청 큰 대저택 - 몇 가족이 와서 통째로 빌려놀면 딱이겠더라




오늘은 완전 썰렁 - 당분간도 손님 받을 계획이 없어 보이던 - 덕분에 정원까지 몽땅 다 우리 둘꺼 ㅋㅋㅋ


이 집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


이상하게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어서 - 아시다시피 나는 컴맹이자 넷맹인데(그래도 김원장보다는 낫다는게 함정 ㅋㅋㅋ) - 오피스에 SOS를 치니까 어쩐지 내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려와 주셨다. 부지 어디선가 농장일이라도 하다가 내려온 듯한 복장의 아주머니는 이미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여전히 내 휴대폰과 컴퓨터는 먹통 신세를 벗어나지 못 했다. 이 와중에 아줌마의 아이폰은 참으로 연결이 잘 되어서 ㅋㅋㅋ 아줌마왈 다음에는 갤럭시 말고 아이폰 쓰라고. 나도 그러겠다고ㅋㅋㅋ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비록 김원장꺼지만 바꾼지 한 달 밖에 안 된 따끈따끈 아이폰이 옆에 있지 말입니다 으하하)

여튼 이유도 모르고 언어 장벽까지 있는 아줌마가 새로이 내놓은 해결책은, 메인 공유기가 비치된 옆 건물(바로 위 사진상의 저 커다란 저택)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었다. 이 집에서는 되는지 한 번 시도해 보라고. 그랬더니 이 집은 기계들이 알아서 바로 연결, 엄청 잘 돼. 

아줌마 잠시 고민하더니, 큰 건물 키를 건네 주면서 그럼 일단 오늘 하루 인터넷은 여기서 따로 하면 어떻겠냐고. 아줌마 말마따나 대저택은 정리가 안 되어 있어 좀 지저분하고 추워서 그렇지, 우리 집 바로 옆 집인데다 까짓거 인터넷이야 내일 떠나는 마당에 찾아볼 정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해서 좀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인터넷 문제는 일단락지어졌는데... 아줌마(와 그 밖의 직원들 모두)는 오후 6시가 되자 빠이빠이 남기고 퇴근(!)해 버렸고(뭔 숙소가 이래), 그래서 우리 둘만 이 커다란 성에 남겨지고 말았는데... 옆 집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문득, 이 대저택의 내부가 심히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겠다 사람 심리라는게 ㅎㅎㅎ 그래서 마치 도둑년처럼 살금살금 금단(?)의 구역을 요기조기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규모가 있다보니 생각보다 방들도 많고 구조가 근사했다. 그렇게 와와 감탄사를 날리며 2층 복도를 따라 보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순간 갑자기, 어마어마한 알람이 울리면서 자체 경보 체제 발동!!! 뭐야 나 금 밟은거야? 적외선 통과한거야? 빼박 도둑년 당첨인가 아쓰봉 이 놈의 시끄러운 알람은 대체 왜 이리 긴거야! 마치 영원히 안 멈출 것만 같았던 길고 긴 귀 따가운 알람은 드디어 결국 끝이 났는데... 아아 이젠 어쩐다. 두근반세근반. 기껏 룰루랄라 퇴근했던 직원들 강제 소환인가. 아님 프랑스 경찰 급 출동인가.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이 쓰나미처럼 엄청나게 밀려오누나. 대체 이 상황을 영어로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횡설수설하는걸 알아듣기는 할까. 출동비 나보고 물어내라고 하면 어쩌지. 프랑스 인건비 엄청날텐데. 어쩐지 디파짓이 700유로더라니. 내일 귀국에는 지장이 없겠지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면서 셀프 자책은 심히 깊어져만 갔는데... 


진압봉을 들고 제복을 입은 누군가 성 정문을 두드리진 않을까, 아니면 어디선가 상황을 파악하려는 전화라도 오지 않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음... 뭐지? 왜 아무 연락이 없지??? 한동안의 걱정은 끝내 기우로 판명되었다. 아 다행이네 다행이야. 오늘의 교훈. 판도라는 상자를 열지 말았어야 했다. 


불안하고 두려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옆집의 뒤안복도에서, 인제는 돌아와 우리 집에 선 

여행의 마지막 밤.     


프랑스 모로코 스페인 포르투갈 다시 스페인 안도라 다시 프랑스 이탈리아 산마리노 다시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다시 스위스 다시 프랑스룩셈부르크 벨기에 다시 프랑스... 지나온 나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 보는 나라 헤는 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긴 여행의 마지막 밤을 함께한 술과 

안주


내 비록 여행은 미약하였으나 끝 사진은 창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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