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네다 게레스 국립공원을 떠나 기마랑이스에서 밥 먹고 이런저런 구경을 할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오전 두 번의 산책, 유럽의 전형적인 이미지 중 하나를 100% 만족시켜주던 점심 식사, 나름의 관광까지... 이후  계획은 기마랑이스를 떠나 Amarante로 이동, 유명한 달달이 가게(http://confeitariadaponte.pt/wp/?page_id=3941&lang=en)에서 후식까지 챙겨 먹고 성당 하나 더 구경하고 오늘의 숙소로 가는 것이었으나, 기마랑이스 관광을 마친 김원장이 오늘 너무 무리한 것 같다며 ㅋㅋㅋ 곧장 숙소로 가자고 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그러자. 빨리 가고 싶다니 준비해 왔던 국도 말고 고속도로 타고 가면 되겠지, 뭐 - 정말로 나는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어제부터 크고 작은 수많은 로터리의 압박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기마랑이스까지 잘 오기도 했고, 미리 알아온 주차장에까지 한 번에 쏙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고속도로 진입로 쪽으로 바로 김원장을 안내했고 조~기 앞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라는 명령어도 김기사에게 무리없이 주입되는 듯 싶었는데... 바로 아래와 같은 곳에서 김원장이 하나 먼저 나와버리...니까 급 멘붕이 오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ㅋㅋㅋㅋㅋ


(어쩌면 내가 잘 못 안내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지도 ㅋㅋㅋ)


그러니까 평소 우리네 격자형 스타일이라면, 길을 잘 못 빠져나왔더라도,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 연속 3번만 하면 도로 그 자리를 만나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한국이나 미쿡이 아닌지라... 일단 지도 보고 나름의 우회전스러운 것을 3번 가량 하면서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가려고 애를 썼지만, 3D 도로 상황을 2D 지도로 100%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 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방통행의 좁디 좁은 골목길은, 그 거리가 아무리 짧아도, 김기사의 스트레스를 증폭시켰고, 유턴할 공간이 좀처럼 나오질 않는 상황에서 어쩌다 또 한 번의 좌회전 기회를 놓치고 나니, 어째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진입로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ㅠㅠ 결국 약 4Km 가량, 고속도로는 커녕 1차선 일방통행 혹은 왕복 2차로의 좁은 길을 어쩔 수 없이 달릴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짧은 시간이 정말이지 1시간처럼 느껴졌다(주행 거리만 놓고 보면 실제로는 손해를 전혀 보지 않았는데도 그러했다). 그래서 처음 목표로 삼았던 지점이 아닌, 또 다른 접근로를 통해 겨우 고속도로 위에 올라서고야 한숨 돌릴 수 있었는데, 역시나 바로 김원장이 내비 사용법을 모르는 마누라에게 투덜댔음은 물론이다.


원래 두오로 밸리 지역 숙소로 예약했던 곳은 Quinta Do Bosque였는데, 투숙 이틀 전 정중한 메일이 오기를 숙소 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지면서 투숙객을 맞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하마터면 객실에서 인터넷 사용을 못 할 뻔도 했던 힐튼 마드리드 에어포트 호텔에서, 골드 회원 혜택을 새삼 고마워하면서 급 열혈 서핑한 결과, 투숙 하루를 남겨두고 새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Quinta da Casa Grande Pinheiro


@ 홈페이지 http://www.casagrandepinheiro.com/

@ 예약 : 부킹닷컴 통해 Superior Double Room을 65유로 예약

@ 장점 : 조용하고 전망 좋다. 두오로 밸리에서 원했던 바대로 포도밭이 넘쳐나는 뷰. 디디아 아줌마 너무 좋다.  

@ 단점 : 김원장은 침대가 약간 불편한 것 같다고 했는데(더블이라 그런가 ㅋ) 나는 전혀 모르겠더라. 찾아가기가 아주 어려운 건 아니지만 큰 길에서 꽤 떨어져 있는지라 (우리 같이) 일부러 찾아가는게 아니라면 추천하기엔 좀 애매한 면이 있다.   

@ 기타 

- 대대로 물려온 가문 저택을 숙소로 개조한 곳이다. 곳곳에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넘쳐나지만 객실 내부는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하였다.

- (메인 입구에서는 1층이지만) 2층에 방이 3개, 3층에 방이 2개, 1층에는 예전에 와인을 빚던 공간과 옛 부엌, 마굿간 등이 지금은 공용 거실로 개조되어 쓰인다. 전체적으로 멋지다.      

- (가능한지 몰랐는데) 부엌 사용도 맘대로 하라고 하더라. 물도 냉장고에서 얼마든 받아 마시고. 


숙박업을 시작한 이래, 한국인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나도 내가 포르투갈의 이런 시골까지 찾아가게 될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너무나도 반갑게 (세번의 비쥬 끝에) 우리를 맞아준 주인 아줌마는 웰컴 드링크로, 그야말로 포르투갈답게, 포트와인을 내어 주셨다 ㅎㅎㅎ 아버지 대까지도 직접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빚었다는 주인 아줌마 말에 의하면 이 포트와인이 (유명 포트와인 브랜드 중 하나인) Graham's 중에서도 좋은 빈티지라고 했다(우리는 그런 거 잘 모르는 막 입인데). 달달해서 그런지 맛있었는데 내 입맛에만 그런 건 아닌지, 김원장은 대체 디디아 아줌마 설명 안 듣고 뭐하나 돌아봤더니 한 잔 더 따라 먹고 있더라. 저런 모습 처음 본 듯 ㅋㅋㅋ  




200년된 축음기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지금도 작동이 된다. 축음기 옆 태엽 같은 걸 막 감길래 뭐 하시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턴테이블 위에 핀을 올리자 영화에서나 듣던 음악 소리가 흘러 나와 완전 감탄. 



원래는 (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모두들 알다시피) 포르투갈 경기가 형편 없어지면서 직업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래서 졸업장이 있어봐야 취업이 안 되니,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아 학교가 문을 닫았다는 - 혹은 교수였는데 학생들이 수강하지 않아 폐강되었다는 걸 수도(영어 실력은 그녀나 우리나 서로 비슷한 정도) - 한국 상황이 저절로 오버랩되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하여간 그리하여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이렇게 숙박업에 뛰어 들게 된거라고 했다. 가족이 대대로 살아오던 이 저택은 원래 외할머니때부터 팔려고 했으나 매매가 영 안 되었고 결국 어머니가 물려 받게 되었으며, 4년 전엔가 어머니한테 다시 본인이 받아 리모델링을 한 후 이렇게 손님을 받고 있다고. 다행히 현재 장사(?)는 곧잘 되고 있다고 했다.    

딴 얘기지만, 나중에 이 업을 물려줄(?) 계획인지 딸래미 하나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는데, 보기 드물게 '그래, 숙박업은 이런 사람이 해야지' 싶은 디디아 아줌마와는 달리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던 그 딸은 영 시큰둥 + 뚱해 보이는게 매우 대조적이었다. 하긴 그 나이엔 이런 일이 세상 따분하고 재미없어 보이겠지만... 나중에 엄마의 깊은 뜻과 사랑에 대해 감사해 할 날이 오겠지. 

매우 기쁘게도 오늘 이 대저택에 투숙객은 우리 뿐이어서 ^^ 완전 전세내어 지냈다. 객실은 소개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이 알흠다운 공간에서 수영을 하기엔 쌀쌀한 날씨라는게 그저 아쉬울 뿐



그윽한 하룻밤을 보내고 조식을 부탁했던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가보니 우리 둘만을 위한 세팅 완료! 



디디아 아줌마가 뜨끈하니 갓 만들어준 이걸 내가 다 긁어먹었...


하룻밤 자고 휙 가버리는 투숙객이 아니라, 우리가 마치 먼 곳에서 놀러온 친척이라도 되는 양, 환대를 아끼지 않은 아줌마에게 다시금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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