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여행을 떠나기 전 아빠를 마지막으로 뵌 건 10월 13일이었다. 10월 말 여행을 떠나면서 아빠한테 전화로 "저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셔야 돼요!" 했더니 "그럼 너 갔다온 다음에는 안 건강해도 되냐?" 하셔서 웃기도 했었다. 2014년 4월 23일 뇌출혈 재발 이후, 아빠 건강이 부쩍 좋지 않으셔서 여행 중에도 카톡/보이스톡으로 자주 한국과 연락을 취했었다. 내내 별 말씀 없으시다가 한국 시각으로 11월 21일 오전, 엄마가 아빠 얼굴이 노랗다고 알려줬다(나중에야 알았는데 걱정할까봐 증상 발현 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야 말씀하신거라했다). 당장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라고 하니 어차피 24일에 내분비 내과 외래 예약이 잡혀 있다고 하시길래, 때마침 연락 시점이 토요일이기도 해서 그럼 화요일에 당뇨 관련 검사하러 갈 때 그보다도 황달 관련 검사를 하고 싶다 꼭 말씀 드리라고 당부를 했다. 


이후 벨리즈에 다녀온 뒤 진료일이자 두 분의 마흔 세번째 약혼 기념일인 11월 24일 아침 시간에 맞춰 다시 연락을 드렸다. 축하 인사, 선물과 더불어 병원에도 잘 모시고 다녀오라고,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달라고 했는데... 시차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걱정할까봐인지 밤새 엄마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아침에 다시 연락을 취해 보니 역시나 진료 받으러 간 그 자리에서 담도 폐쇄 의심 하에 급 입원 권유하여 바로 입원했고 하루 종일 이런 저런 검사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내일 듣기로 했다고. 혹시나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전해 듣자니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메리다 근교에서 막 눈 비비며 일어난 참이었고, 오늘부터 칸쿤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틀 뒤면 칸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런저런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설령 아빠께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래서 급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어차피 칸쿤으로 가는 게 최선이라 여겨졌다. 아빠가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시는 동안, 나는 예정대로 메리다와 이사말을 거쳐 치첸이사 근처의 숙소로, 보다 칸쿤쪽으로 이동했다. 아, 그런데 하필 치첸이사 근방이 워낙 정글이라 전화가 아예 안 터지는거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모르고 일부러 정글속 숙소를 잡아온 건데 숙소 부지는 어마무시 넓어 방에서 리셉션도 멀고... 그나마 객실에서조차 인터넷이 안 터진다 알고 왔는데, 다행히 인터넷은 미약하나마 되어서, 엄마가 전해주는 상황을 카톡으로 접할 수는 있었다. 흔히 그렇듯 대학병원에서의 검사는 많고 대기 시간은 길고 나 편할 때 주치의 선생님 만나기는 쉽지 않은지라... 한동안 답답한 시간이 흘렀고 나중에야 주치의 선생님께 김원장이 현직 의사라는 사실이 전해져 어찌어찌 주치의 선생님과 보이스톡으로 연결이 되었으나... 워낙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아 서로 여보세요만 몇 번씩 외치다 말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동생한테 궁금한 사항 정리하여 주치의 선생님께 이야기 듣고 전해 달라고 하니... 결국 답변이 오는데... 상황을 정리해보니 췌장암 말기시더라.


그래서...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지만... 이젠 서둘러 들어간다고 해도 의료인으로서 뭘 딱히 해드릴 게 없는 상황이었다. 절망. 

하지만 딸로서는 그렇지 않은지라... 게다가 엄마가 무서워 죽겠다는데, 최대한 빨리 두 분 곁으로 돌아가야하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아마 많이 당황했던지 좀 우왕좌왕했던 것도 같은데... 하여간 (한국에서도 그렇듯) 현재 처한 상황에서 아시아나 항공과의 전화 연결은 당연히 어려웠기에, 일단 이메일로 구구절절 사연을 남겨 최대한 빠른 귀국편으로 변경 요청을 해두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치첸이사에 들렀다 칸쿤으로 서둘러 향했다. 칸쿤 숙소는 인터넷도 빵빵할 뿐더러 당근 휴대폰도 잘 터졌다. 뿐만 아니라 침대 옆엔 국제 전화가 가능한 전화기마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시아나측 답장을 확인해 보니 구구절절하지만 역시나 현재로서는 좌석이 여의치 않으며 설령 가능하다 한들 이메일 신청으로는 변경이 불가하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한국 아시아나로 전화했지만 시차 때문에 실패했고. 그래서 이번엔 미주 통합 예약센터, 미국으로 해보았다. 한참 만에 연결된 당직? 직원 왈, 본인이 담당은 아니지만 내일자로 좌석 변경이 가능해 보이긴 한다고, 재확인해보고 알려줄 테니 두어시간 뒤에 다시 전화 달라고 했다. 


시간 맞춰 전화하니 불행히도 좌석 변경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까는 잘 못 본 거였다나 뭐라나. 안 그래도 하필이면 추수감사절 주간이라 미국 국내외를 오가는 항공편 좌석을 구하기가 어려울거라 익히 예상은 했었다. 실제 미주 통합 예약센터 역시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정식 업무는 쉬고 있는 중이었고. 이유야 뭔들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행 항공권이 내일자든 모레자든 변경이 안 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난 지금, 최대한 서둘러 새로 구입하는 수 밖에. 


이미 칸쿤은 해질녘이었던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내일자 칸쿤발 인천행 항공권을 검색했다. 터무니 없는 일정들을 하나 둘씩 제끼고 찾아낸, 그나마 한국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항공편은 내일 델타 항공을 타고 칸쿤을 떠나 디트로이트를 경유하는 항공편이었다. 바로 결제.


Outbound
Depart
13:35
Fri, 27 Nov
Cancun 
Cancun Airport (CUN) 
Terminal 3
Stop 1 
17:22
Detroit, Michigan
Detroit Wayne County Airport (DTW) 
Terminal EM
Delta AirlinesDelta Air Lines 712 Airbus A320
Economy 
1,475 mi 3hr 47min

Change planes. Time between flights: 18hr 48min

Depart
12:10
Sat, 28 Nov
Detroit, Michigan 
Detroit Wayne County Airport (DTW) 
Terminal EM
Arrive 
16:00
Seoul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CN) 
Delta AirlinesDelta Air Lines 159 Boeing 747
Economy 
6,612 mi 13hr 50min

This flight arrives two days after it departs



ebookers UK를 통해 예약했기에 2인 1,006파운드로 청구 되었고 이후 1,788,467원으로 결제 되었다. 

(덧붙여 거의 19시간에 달하는 경유 시간 동안 머물 미국 디트로이트 공항 근처 숙소도 예약했다)


여하튼 이제 내일자 한국행 항공권을 질렀으니... 남아있는 여정들을 취소할 차례.


@ 멕시코 칸쿤<->쿠바 아바나간 왕복 항공권 취소 ; http://blog.daum.net/worldtravel/13690536

설령 아빠 결과가 손톱만큼의 희망이라도 있게 나온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과 전화 사정이 극도로 나쁜 쿠바로 며칠간 들어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아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가장 먼저 취소한 것이 바로 이 왕복 항공권이었다. 이미 트립스타를 통해 아에로멕시코 항공사의 환불 불가 가격(570,879원)으로 이미 질러놓은 상태였기에 취소한다고 해도 땡전 한 푼 돌려 받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노쇼 처리 되느니 알리는게 예의란 생각이 들어서... 이미 한국과 미국에 수차례 국제전화로 상당한 돈을 쓰기도 했거니와 -_-; 마침 해당 항공편 좌석 지정을 할 때 비자 컨시어지 서비스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어 취소 또한 비자 컨시어지에 부탁했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 완료. 


@ 한국에서 가입, 영문으로 출력해 온 쿠바 입국용 여행자 보험 덩달아 무용지물 ; http://blog.daum.net/worldtravel/13690602

나 32450원, 김원장 32830원

 

@ 아바나에서 이용할 계획이었던 숙소 두 곳 4박과 2번의 픽업 차량 취소 ; http://blog.daum.net/worldtravel/13690544

앞 2박은 Mirador de Concordia 457에서 하기로 했고 공항에 데리러 나오기로 했고

뒤 2박은 Casa Maura에서 하기로 했고 체크 아웃후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안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취소하게 되어 매우 미안하거늘 

Casa Maura측에선 그래도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 반면 Mirador de Concordia 457측은 이렇게 갑자기 약속을 깬 내게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ㅜㅠ 나중에 언제고 다시 쿠바에 가게 된다면, 잊지 말고 꼭 두 곳 모두 찾아가서 인사 해야지.


@ 쿠바 여행후 칸쿤으로 돌아왔을 때 칸쿤 공항에서 리조트까지, 그리고 칸쿤 리조트에서 체류를 마친 뒤 다시 칸쿤 공항까지 이용할 계획이었던 2번의 픽업 차량 취소 ;

이미 과테말라시티에서 칸쿤에 도착했을 당시 칸쿤 공항의 정신 없는 호객 상황을 구경한 바 있어 예약을 미리 하는게 속편할 듯 싶었다. 

칸쿤 공항에서 호텔존 리조트까지는 택시/셔틀/호텔 픽업/버스 등의 수단으로 이동이 가능할텐데, 당연히 택시나 호텔 픽업 차량이 편도 40~50불/대 정도로 비싸고, 보통 편도 12~15불/인 부르는 전문 셔틀 업체가 중간가, 공항에서 버스(ADO) 타고 시내로 가서 R1 버스로 갈아타고 찾아가는 방법(http://egloos.zum.com/bywinnie/v/2549644)이 가장 저렴하다. 

Shared shuttle의 단점이라면 셔틀이 채워지기까지 다른 손님을 기다리느라 출발이 늦어진다거나, 손님들을 동선에 맞게 차례로 내려주면서 가므로 리조트 입지에 따라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는데(참고로 찾아본 업체 중 칸쿤 디스카운트의 shared shuttle이 2인 기준 왕복 44불로 가장 저렴했다) 셔틀 업체 몇 곳 검색을 하다보니, 마치 택시처럼 우리 둘만 딱 타는, 프라이빗 셔틀이라는게 있더라

당시 프라이빗 셔틀 이용시 가장 저렴한 곳(http://www.cancun-airport.net/services.php)은 왕복으로 53불을 불렀는데, 트립어드바이저상 1위부터 3위까지의 업체들은 하나 같이 55불을 부르기에, 그냥 11불 더 주고 1위 업체(Entertainment-Plus)의 프라이빗 셔틀을, 둘만 빠르고 편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인터넷 예약은 순조로웠고(요금 지불은 공항 픽업시 하는 조건) 문의시 답변도 신속 친절했으며 취소 또한 따뜻한 위로와 함께 바로 처리되었다.


@ 칸쿤 CasaMagna Marriott Cancun Resort 3박 취소 ;

LNF를 걸었으나 메리어트측에서 LNF는 무시하고 그보다 이 행사가 더 경쟁력이 있을거라며 굳이 추천해줘서 -_-; 홈페이지(https://www.marriott.com/hotels/travel/cunmx-casamagna-marriott-cancun-resort/)를 통해 "Up to 40 percent off plus more!, includes buffet breakfast for 2 guests daily, upgrade at time of booking to next room type, 50 USD resort credit per stay" 행사 기간에 잡아두었던 3박(총 496.23불)을 취소했다. 무료 취소 조건 예약이었기에 바로 취소 완료. 


@ 엘에이 Hilton Los Angeles Airport 1박 취소 ;

기존 항공편이 LA 경유편이었기에 잡아두었던 LA 공항 근처 호텔. 당시 김원장이 힐튼 골드 등급이었기 때문에 홈페이지(http://www3.hilton.com/en/hotels/california/hilton-los-angeles-airport-LAXAHHH/index.html)에서 (룸업그레이드를 노리고) 2 double bed studio suite을 160.65불에 예약해 두었더랬다(참고로 예약시 조용한 방, 공항 셔틀, 룸 업그레이드 등을 문의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공항 셔틀과 룸 업그레이드에 대한 설명만 바로 자세히 답변이 왔고 조용한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지라 -_-; 재차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을 못 받은 채로 취소. 지들 생각에도 조용하진 않은 모양이다). 무료 취소 조건 예약이었기에 바로 취소 완료. 


@ 기존의 귀국 항공편들 취소 ;

예정대로라면 약 1주일 뒤 탑승할 예정이었던 칸쿤발 LA행 유나이티드 항공편과, LA발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편 모두 일단 취소부터 했다. 귀국후 한동안 경황이 없었던지라 정식 환불 절차는 귀국하고도 한참 지나서야 처리할 수 있었고, 마일리지 항공권이었기에 그만큼의 마일리지(더불어 Tax도 해당 구간만큼 차감되어)로 되돌려 받았다.


@ 서울역발 대전행 KTX 취소 ;

원 귀국 스케줄에 맞춰 미리 예약해 두었던 KTX도 취소했다. 장당 400원씩 위약금 지불. 




한국에 도착하니 11월 29일 일요일 오후였다. 깜깜한 밤 배낭 메고 병원에 도착한 내게 아빠는 이번엔 총 몇 개국을 갔었냐고 물으셨다(내 예상으로는 '이번엔 나 때문에 어느 나라를 못 갔냐'라는 질문을 하실 줄 알았는데 ㅎ). 여행을 너무나 좋아하셨기에 사업하실땐 곧잘 다니셨지만 약국을 시작한 후로는 평생 본인 의지대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으셨던 것으로 안다. 하여 비록 사랑스러운 딸은 아니었을지언정, 김원장과 결혼한 뒤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딸을 자랑스럽게(한편으로는 대리만족으로) 여기시는 듯 했었다. 이번엔 총 8개국 다녀왔어요. 이 간단한 대화가, 이후 상황을 놓고 보자면... 그 이후 이뤄진 대화들은 상처로 남은지라, 결국 그것이 귀국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와 나눈, 기억에 남기고 싶은, 그나마 대화다운 대화였다. 


비 내리던 12월 2일은 두 분의 마흔 세번째 결혼 기념일이었다(그렇다. 두 분은 약혼식을 올리고 바로 일주일 뒤에 결혼하셨다) 입원 중이시라 커다란 꽃다발은 못 하고 두 분께 각자 장미 한 송이씩을 전해 드렸는데, 아빠가 피식 헛웃음을 지으신 것도 같다. 아빠는 대학병원, 요양병원, 호스피스를 거쳐 12월 20일 아침, 그러니까 입원하시고 한 달도 버티시지 못한 채 결국 돌아가셨다. 그토록 오고 싶어하던 집에는 돌아가신 다음에야 잠시 다녀가실 수 있었다. 발인날 새벽, 그간 한번도 타본 적이 없는 운구 차량의 맨 앞 좌석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 문득 떠올리니 바로 오늘이 엄마의 67번째 생신이더라. 


길고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끝나가고 나는 진작 마흔 넷이 되었다. 

그간의 사연을 다 쓸 수도 없고 설령 다 쓴다고 한들 감정 정리가 되리란 법 또한 없지만,

정점을 찍고 한동안 플래투를 그리던 내 삶이 이 사건을 계기로 하향선상에 접어들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언제고, 바라건데 조만간, 다시 아빠에 대해 보다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 꺼낼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여기는 여행 블로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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