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는지 낮잠에 빠져 영 못 일어나는 - 나보고 혼자 다녀오라고 ㅋ - 김원장을 질질 끌고 나이트 투어에 나섰다.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업체측 픽업 차량이 우리를 숙소로 데리러 왔고 같은 숙소에 함께 묵던 물고 빨고 좋을 때다 독일인 커플과 함께 나이트 투어에 나섰다. 도착해 보니 아침과 똑같은 상황. 이 차 저 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한데 모이니 약 스무명쯤 되는 것 같다(굳이 나누자면 우리가 나름 어린 축에 속한다 ㅋㅋㅋ)


나이트 투어는 1인당 25불. 데스크에 돈을 내자 아침과 마찬가지로 허접한 티켓 두 장을 받았다(티켓에 그려진 동물이 킹카쥬). 참고로 이 투어는 가이드가 있고 플래시(랜턴)이 지급된다.



오후 6시가 되자 척 보기에도 가이드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한 명이 갑자기 오렌지! 외치자 몇 명의 관광객들이 우르르 간다. 뭔 소리야. 블루! 하니까 또 몇 명이 우르르 그 쪽으로 간다. 아, 과일이 아니고 색깔이구나 ㅋㅋㅋ 그리고 보니 내 티켓엔 초록색 형광펜이 칠해져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린팀이겠구나. 

총 세 팀으로 나뉘어진 6시 투어 신청자들이 각 팀의 가이드를 따라 둥글게 모인다. 나눠주는 랜턴 하나씩 받아들고 인사를 나눈다. 서로 국적을 까니 미국 커플,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온 독일 커플, 그리고 우리 한국 커플, 코스타리카 싱글 남성 하나, 가이드를 제외하고 이렇게 총 7명이 한 팀이다. 우리가 낌으로서 나름 대륙적 분배가 되었다 하겠다(미쿡인은 진짜 흔한데 동양인이 없으). 

 

가이드에게 오늘 투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듣고, 주의 사항을 듣고, 어둠 속으로 향했다. 


맨 처음 우리 가이드가 한 일은 한 나무 앞에 서서 우리에게 각자의 랜턴을 가지고 이 나무에서 곤충을 찾아보라고 한 것이다. 자신은 척 봐도 두 마리 이상이 보인다면서. 7명이 코 앞에 달라붙어 열심히 들여다 봐도 그런 것 없다. 찾았냐? 못 찾았다. 가이드가 한 지점을 가리킨다. 헐. 완벽한 보호색을 가진, 아주 작은 사마귀처럼 생긴 곤충이 있다. 또 다른 지점을 가리킨다. 와 여기도 있다. 안 찍어주면 절대 안 보인다. 


투어는 내내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다. 가이드가 앞장 서면서 우리들것보다 월등한 ㅋ 성능의 랜턴으로 그 어둠 속에서 여러 생물들을 막 찾아낸다. 혹은 어딘가에 우리를 모아 놓고 자, 니들이 한 번 찾아봐라 하기도 한다(물론 우리는 그 누구도 못 찾았...) 

그런 식으로, 무식한 나에게는 그저 다른 종류구나 싶은 개미들, 타란튤라를 위시한 거미들, 사마귀 같은 애들... 이런 곤충류

이런 건 다 도마뱀이라고 하지 않나. 개구리가 모양이 달라도 다 개구리지... 그런 양서류 파충류

벌새니 박쥐니 또 알려줘도 기억 못하는 이름의 각종 새들... 조류(알아 박쥐)

킹카쥬 같은 포유류까지 발견할 때마다 모두 (심지어 특이한 식물들까지)

그들의 생태에 대해 "영어"로 "빠르게" 설명해준다(하여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ㅋㅋㅋ 한 1/3이나 알아들었을까 모르겠다).


언어 외 다른 문제(?)라면 이게 밤에 벌어지는 투어이고 (다른 팀에는 목이 끊어져라 어마어마한 렌즈 붙여 가져온 사람들이 있두만) 우리 팀원 모두는 똑딱이 디카 아니면 폰카 ㅋㅋㅋ 뿐이어서 아무리 찍어봐야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지기 어려운 거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가이드의 한줄기 랜턴 빛 아래 피사체가 너무 작거나 혹은 줌으로 당겨도 너무 멀리 있거나 하면 뭐 이건 대체 뭘 찍었던걸까... 갸우뚱.

게다가 투어를 시작한지 1시간쯤 되었을 때, 다시 말해 투어를 중단하기도 안 중단하기도 애매한 시점에 우르릉쾅쾅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일행 모두 촬영에 더욱 인색해지는 ㅋㅋㅋ 


이후 투어는 비를 맞으면서 진행되었다. 가이드는 든든해 보이는 판초 우비를 챙겨 입었고(심지어 장화까지 신고 왔..) 나머지는 비 따위 맞아도 안죽어 모드로 그냥 다녔다. 우리로 말하자면 우산을 가져왔기에 모자+우산 조합으로 가장 안 젖...     


사진이 형편없어 핑계가 길어졌다. 다음은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몇 컷.


그래. 이건 코스타리카를 대표하는 동물 중 하나인 '나무늘보'다. 

처음 투어를 시작할 때 가이드가 각자에게 물었다. 오늘 투어에서 가장 보고 싶은 생물이 뭐냐고. 

내가 애도 아니고 나한테까진 안 묻겠지 방심하고 있었는데 묻더라 젠장. 

어 내가 이 동네 동물들의 영어 이름을 잘 몰라 - 하고 이 상황을 빠져 나가려니까

발랄한 가이드가 그랬다. 괜찮아. 흉내내봐. 가르쳐 줄께 

??????????

아 쓰봉. 갑자기 뭐 흉내내지. 옛다. 나무 늘보다. 

스피드퀴즈 몸으로 말해요도 아닌데 내 몸짓을 본 미국 여자애가 얼른 대답했다. 슬럿! 

뭐래...   

(왜 김원장한텐 안 물어봐! 왜 안 물어보냐고! 인상이 드러워서일까)

나무늘보면 나무늘보답게 나무에서 늘어질 것이지. 전깃줄을 타고 있었다. 그것도 제법 빠르게. 나무빨보인데. 전기빨보인가

발톱 모양의 특성상 나무도 나무지만 저런 줄 타는 걸 좋아한다고, 마을이 개발되다 보니 전깃줄을 타다가 아주 간혹 감전 사고도 당한다고... 한다(내용이 뭐 이 따위야. 제대로 알아들은건지 모르겠.. ㅋㅋㅋ) 하여간 얘는 여기서도 귀한 동물이다. 가이드 왈 투어를 하면서 나무늘보하고 투칸(앵무새)을 보면 가장 중요한 두 동물을 본 거라고 했었다. 오렌지인가 블루팀이 먼저 나무늘보를 발견하고 무전을 쳐서 우리 팀이 바로 방향을 바꿔 나무늘보를 보러 갔는데... 그래서 두 팀의 열광 속에 나무늘보 쇼는 성황리에 끝이 났는데... 그제서야 허겁지겁 오던 나머지 한 팀은 불행히도 이미 전봇대에서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다시 둥글게 몸을 말아버린 나무늘보의 엉덩이에 만족해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


참고로 밝히자면 엉덩이만 혹은 꼬리만 아니면 배만 보이는 동물들이 흔했다. 특히 킹카쥬. 투칸은 막판에 볼 수 있었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 있어서 눈으로는 보이는데 사진으로는 도저히 불가. 그 놈 이쁘데. 


다음 사진은 초록색 독사. 처음엔 큰 놈을 보았는데 가이드왈 큰 놈은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고 해서 사진을 못 찍었고

두번째 만난 놈은 작은 편이어서 촬영 시도


가이드가 내 작품을 보더니 본인이 좀 더 가까이 가서 찍어주겠다고. 그러더니 이렇게 멋지게 한 장 건졌다


비록 비를 맞고, 가끔 미끄러지기도 하며, 게다가 너는 떠들어라 나는 떡을 썰겠.. 언어의 압박 속에서도

나이트 투어는 즐.거.웠.다. 


김원장 왈, 안 따라왔으면 후회했을 뻔 했다고... 어째 이 투어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일 것 같다고 ㅋㅋㅋ 

그 봐.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야. 


- 업체명 Monteverde Wildlife Refuge (홈페이지 안 열리는데?). 크리스티안 왈 몬테네그로에서 할 수 있는 유명 액티비티들을 내 건 업체는 종류당 많으면 13개까지 된다고 한다. 김원장과 나 사이의 대화 방식으로 말하자면, 한 마을에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등 이렇게 각종 전문 의원들이 있는데 이 중 내과가 자그마치 13개란 소리다. 그렇다 보니 배가 아플 때 어느 내과를 갈 것인가가 나름 중요할 수 밖에. 하여간 이런 소리를 하며 나이트 투어로 추천해 준 곳이었다.

- 하루에 두 번, 오후 6시, 오후 8시에 한 타임당 2시간씩 진행된다. 

- 6시 투어를 신청했더니 5시 30분이 픽업 타임이라고 했다(실제 업체 차량은 5시 40분쯤 도착했다) 

- 참고로 몬테베르데에 머무는 동안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지곤 했는데 첫 날 오후 6시 전후해서도 엄청난 비가 내렸던 터라 예약 하면서 물어 보았다. 오늘 만약 비가 오면 어떡해? 그랬더니 출발 시각에 비가 많이 오면 자동 캔슬이란다 ㅎ 그럴 경우 8시 투어에 참가하면 된다고(안 된다고! 졸렵다고!)

- 한국어가 가능한 가이드는 없으므로 영어로 진행되는 팀에 껴야할텐데... 위에서 밝혔듯 1/3이나 알아들었나 모르겠다. 하지만 가이드가 하는 말의 90%가 그 동물에 대한 전반적인 생태, 즉 특성은 뭐고 주로 뭘 먹고 짝은 어떻게 찾고...(그 와중에 해부/생리학 용어가 들려 ㅋㅋㅋ) 뭐 그런 것이기 때문에 평소 동물의 왕국 매니아라면 영어가 안 들린다고 해도 별 상관 없을 듯. 나머지 10%는 뭐냐고? 농담 따먹기  

- 비 안 오는 날 참가하기를 권하지만... 긴팔 긴바지 안 미끄러운 신발은 기본, 비에 대비를 하자.

- 나눠주는 랜턴 불빛이 생각보다 약해 숙소에 두고온 헤드랜턴이 생각났다 

- 25불의 가치가 있느냐...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아프리카에서 이런저런 사파리를 했기 때문에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는데 간만이라 그런지, 흔히 보던 애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재밌는 경험이었다.

- 수퍼줌 렌즈를 달고 나이트 투어에 참석하신 태원준님 후기 http://blog.naver.com/sneedle/220176077224

(이걸 보면 태원준님네 업체도 좋아 보이는데... 내 후기는 넘 없어보이지만 여튼 나도 이런 걸 한거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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