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발칸 반도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은 


모스타르 - 남들 다(?) 가보니까

사라예보 - 역사적 현장이라

베오그라드 - 한 권의 책 때문에

코르푸 - 이미지가 낭만적이라


이렇게 네 곳이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모스타르와 사라예보, 그 두 곳을 찍고 이제 세르비아로 넘어간다.   



[오늘의 과제]


1. 국경까지 가는 가장 좋은 길 찾기

2. 국경을 넘기 전에 남은 마르카 소진하기 - 주유가 제일 만만

3. 국경 잘 넘기

4. 숙소 잘 찾기


사라예보에서 즐라티보르를 잇는 루트는 몇 가지가 나온다. 

발칸 렌트카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야 이 곳에서는 (미국처럼) 구글맵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타라 국립공원에 메일을 보내 1차로 확인하고, 비세그라드 관광청+인터넷 후기+구글맵+비아미슐렝으로 2차 확인, 즐라티보르 숙소 주인에게 3차 확인까지 거친 후에 가장 많이 겹치는 루트를 짜집기하여 아래와 같은 동선을 선택했다.    


사라예보를 빠져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릅스카 공화국(http://ko.wikipedia.org/wiki/%EC%8A%A4%EB%A6%85%EC%8A%A4%EC%B9%B4_%EA%B3%B5%ED%99%94%EA%B5%AD) 표지판을 바로 만난다. 1992년 4월에 시작한 사라예보 포위전은 96년 2월에나 끝이 났다(http://ko.wikipedia.org/wiki/%EC%82%AC%EB%9D%BC%EC%98%88%EB%B3%B4_%ED%8F%AC%EC%9C%84%EC%A0%84). 쉽게 말해 나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기간이다. 난 그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생 최대의 뜨겁고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반면 지금 사라예보에서 만나는 30대 이상의 중장년층만 해도 그 전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 여전히 갈등의 씨앗을 품고 사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한 단면을 엿본다. 


로가티카를 지날 때는 과속 단속을 하는 경찰을 보았다. 조심해야지.

이번 여행 시작하고 우리 터널 100개 지났을까 안 지났을까?

(비세그라드의 저 다리도 유명하다)


내 계획은 남은 마르카를 가지고 비세그라드에서 간단히 쇼핑도 하고 주유를 하는 거였다. 그러나 비세그라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김원장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그냥 곧장 비세그라드를 빠져 나가자고 했다. 주유소는 국경 가는 길에, 정 없으면 국경 앞에라도 있을 거라면서. 


비세그라드에서 국경까지는 한 15킬로 남짓 되려나? 결론부터 말하면 주유소는 비세그라드가 마지막이었다(만약 거꾸로 내가 그렇게 주장했다면 김원장은 나를 타박했을 테지만, 나는 착한 마누라니까 쿨하게 용서해 준다). 기름이야 오늘의 목적지인 즐라티보르까지 가고도 남을 만큼 남아 있었지만, 문제는 마르카였다. 환전이 귀찮아서 보스니아 내에서 다 처리하고 가고 싶었는데... 

다행히 드라마틱하게도 국경 검문소를 코 앞에 남겨두고 아주 작은 동네 점방을 발견했다. 지폐는 세르비아 넘어가서 환전하더라도 동전은 여기서 털고 가자. 짤랑짤랑 동전을 세어보니 총 9.1마르카였다. 참치캔 사고 음료수 사고 사과도 몇 개 담고... 아줌마는 계산기에 9.15 마르카를 찍었다. 우리 돈 몇 십원이 모자랐다. 사과 하나를 작은 걸로 바꿀까? 하는데 아줌마가 괜찮다고 했다(말 한 마디 안 통해도 하등 불편함이 없네). 아싸, 동전은 다 털었구나. 신의 손이야.   


가게 앞에선 동네 아저씨가 낮술을 하셨던가... 뭐 그러고 계셨는데 김원장 왈, 내가 가게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나만 훑어 쳐다 봤다고 하더라. 혹 여기서는 먹히는 얼굴인건가.   


검문소는 허술해 보였다. 보스니아 입국할 때에 비해 출국은 빠르게 진행 되었다. 여느 때처럼 여권과 차량 등록증, 그린카드(김원장왈 허가증은 잘 안 보는 것 같다고 해서 시험 삼아 3가지만 내봤는데 진짜 허가증 보자는 소리는 안 하더라)만 제출하고 심사 받고 끝.


(보스니아측의 마지막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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