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매니저 왈, 우리가 묵고 있는 알라베르디 윗마을에서(그것도 숙소 바로 앞 광장에서) 예레반까지 오전 11시, 오후 2시 반이던가 하여간 하루에 두 번 마슈르카가 있다고 했다(1인당 1500드람).

두 좌석 확보를 해주겠다 약속하더니 10시 30분 이전부터 틈틈이 아랫 광장에 차가 도착했는지 끊임없이 창을 내다 보더라. 

10시 45분, 이제 함께 내려가잖다. 버스 타고 가는 것까지 보려고? 굳이 거기까진 안 그래도 되는데.


김원장과 나, 그리고 매니저는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사이좋게 마슈르카를 기다린다. 그런데... 11시가 넘어가도록 마슈르카가 나타나질 않는다. 11시 10분, 숙소 직원 하나가 뛰어 내려와 매니저에게 뭐라뭐라 말을 전하자 당황하는 매니저. 이유야 모르지만(알 필요도 없고) 11시 차량이 오늘 운행을 안 한다고 한다. 어라, 우짜쓰까(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려니 한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들이 있다). 진작 알았다면 일찌감치 아랫마을로 내려가 예레반행 마슈르카를 잡아 탔을 것이다. 그게 귀찮아서 그냥 윗마을에서 출발하는 직통을 타려고 11시까지 기다린건데... 그리고 그걸 매니저도 아는데...


그래서일까. 우리보다도 매니저가 안절부절이다. 내가 전화를 해놓을테니 지금이라도 아랫마을 내려가서 탈래 어쩔래... 김원장을 보니 다소 귀찮은 표정이다. 마침 바로 앞에 택시도 두 어대 서 있고. 매니저한테 물어본다. 예레반까지는 택시 타고 가면 얼마야? 매니저는 10000드람이라고 한다. 어제 국경에서 여기까지 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에 6000드람을 줬는데 여기서부터 예레반까지 빨라야 3시간일텐데 10000드람이라면 매우 저렴한 것 같다. 그럼 우리 택시 탈래. 


처음 매니저는 너무 비싸다며 우리를 잠깐 말리는 듯 하더니, 우리의 결심이 선 것을 보고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동네 택시들은 예레반까지 안 간다면서. 하긴, 여기서 예레반이 얼마나 먼데. 따로 나라시가 있겠지. 보아하니 아마도 아랫마을에 연락해 예레반행 택시를 수배하는 듯 한데 여기저기 전화해 보더니 혼자 막 흥분한다. 듣자하니 보통 예레반까지 잘 가면 10000드람에도 갈 수 있는데, 지금 택시들에 연락해보니 15000, 20000드람까지 부른단다. 나쁜 놈들이라고 ㅋㅋㅋ

어쨌거나 20000드람이면 좀 비싸고... 15000드람에 과연 탈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끼리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데 어디론가 계속 전화해보던 매니저, 이렇게 하잔다. 본인이 여기서부터 바나조르(근처에서 가장 큰 마을)까지 가는 택시를 5000드람에 바로 잡아 주겠다. 이 동네와 달리 바나조르에는 예레반 가는 마슈르카가 20분마다 계속 있다. 바나조르발 예레반행 마슈르카는 1인당 1200드람이니까 총 7400드람에 갈 수 있다. 어떠냐. 


15000드람에 갈까말까 하고 있던 우리로서는 반값의 솔깃한 대안이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매니저가 바로 5000드람에 바나조르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주고 아저씨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예레반행 마슈르카 타는 곳 앞에 이 늙은 양들을 내려줘라. 


11시 26분. 한국말이라고는 평양, 밖에 모르시는 아저씨의 차에 올랐다. 매니저에게 이제 진짜 안녕! 하는데 끝까지 중간에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전화해! 그런다. 착한 놈 같으니라구.

(택시는 일단 아랫마을쪽으로)

(사진은 그지 같지만 계곡 사이의 길은 아름다웠다)


12시 19분, 약 50 여분만에 바나조르에 도착했다(달린 거리와 요금을 생각하면 국경에서 알라베르디까지도 5000드람이 가능할 듯 싶다. 난 6000 줬는데 ㅎ). 아저씨는 매니저에게 부탁 받은 대로 예레반행 마슈르카 바로 앞에 차를 세우셨다. 마슈르카로 막 갈아타려는데 웬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예레반행 합승 택시에 지금 딱 두 자리가 비는데 1인당 2000드람에 모시겠단다. 마슈르카 1200, 택시 2000.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하는 법. 우리는 바로 택시를 택한다. 


12시 22분, 3분 만에 알라베르디발 바나조르행 택시에서 바나조르발 예레반행 택시로. 

(우리와 같이 탄 뒷좌석 아저씨는 우리 덩치가 작아서 꽤 편했을 듯)


러시아어는 가능들 하시지만 영어는 아무도 가능하시지 않아 껌 나눠 먹는 것 말고는 딱히 함께 할 수 있는게 없었던 합승이었지만, 나름 빠르고 편하게 예레반까지 올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좋았던 점이라면, 


1) 아라랏이 살짝이나마 얼굴을 보여줬다는 점

2) 만약 마슈르카를 탔더라면 예레반의 킬리키아 버스터미널에 하차할 가능성이 컸는데, 거기서부터 시내 숙소까지는 그냥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 그럴 경우 길을 건너가서 타느냐 그냥 타느냐에 따라 최소 600드람에서 800드람까지 택시비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타고 있던 합승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예레반 초입에 들어서자 예레반 어디서 내릴건지를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아르메니아 단어가 딱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매니저에게 배운 감사합니다, 메르시(사실 더 길고긴 인삿말이었는데 내가 영 못 따라하니까 그럼 그냥 메르시, 라고 하라더라 ㅋㅋㅋ), 그리고 또 하나가 '광장'이라는 뜻의 흐라파락, 이었다. 그래서 흐라파락, 하니까 바로 알아들으시더라. 왕신기


김원장은 흐라파락이 광장이라는 말을 내게 전해 듣고 그냥 광장이라고만 하면 어떡하냐, OO 흐라파락이라고 해야지, 했지만, 그건 김원장이 예레반 지도를 안 봐서다. 물론 김원장 말처럼 내가 가고자 하는 광장에도 당근 이름이 있긴 하다. 영어로는 리퍼블릭 스퀘어. 한국어로는 공화국 광장? 정도. 하지만 아르메니안 전체 이름은 내 뇌 용량상 기억이 매우 어렵거니와 ㅋ 예레반 어디에도 그만한 광장은 없으니까. 

그러니 흐라파락만 해도 아저씨가 찰떡같이 알아듣으신 것. 덕분에 마슈르카를 탔을 때 발생했을 택시비 600~800드람 정도가 굳었다. 아저씨가 우리를 흐라파락에 내려주신 시각은 오후 2시 30분. 예레반 시내에서 교통 정체를 좀 겪긴 했지만 약 2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고로 알라베르디에서 예레반까지 두 번의 택시를 타고 걸린 시간은 총 3시간. 비용은 2인 9000드람(첫번째는 한 대 대절, 두번째는 합승 택시). 물주인 김원장이 즐거워 했으니 나로서도 만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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