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에서 택시를 타고 알라베르디 윗마을로 올랐다. 백만송이 장미를 신나게 부르다보니 지도상 알라베르디 숙소 위치라고 추정되는 곳에 미리 찍어둔 점에 몹시 가까워졌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택시 아저씨와 빠이빠이 하고 헤어졌다. 둘러 봤지만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채소 가게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사나힌 브릿지 호텔? 저~쪽.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길은 어째 점점 마을 밖으로 이어지는 듯 하다. 이상하네. 마침 다가오는 여학생 둘에게 물어 보았다. 사나힌 브릿지 호텔?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단다. 계속 가봤다. 이상하다. 이제 번화가(?)를 완전 벗어났다. 이런 외곽에 숙소가 있단 말인가? 가다가 만난 아줌마에게 또 물어본다. 사나힌 브릿지 호텔? 이번엔 아예 따라오라는 손짓이다. 계속 같은 방항이다. 그래도 믿지 못 하겠다. 로커스 지도를 다시 켜본다. 아뿔싸. 아무래도 이들 모두 우리를 사나힌 수도원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몇 발짝 앞에서 우리를 계속 안내하고 있는 아줌마에게 다시 물어본다. 브릿지 호텔? 이번엔 아줌마가 깜짝 놀라는 얼굴이다. 호텔??? 응. 호텔. 그러니 이제서야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가리킨다. 헐. 뭐야. 


가던 길을 빠꾸하여 되돌아온다. 대체 지나온 길 어디에 호텔이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택시에서 내린 지점에 가까워져 오자 호텔, 이란 작은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 아까 내린 곳에서는 시야가 완전 가려지는 곳에 간판이 있었구나. 나는 아랫마을에서 올라왔을 때 도로변 왼편이라 철떡같이 믿고 왔는데, 알고보니 도로변 오른편이었다. 그냥 마을 센터 광장에 붙어 있는, 나름 최대의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바보가 따로 없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이 꼴.


(이 건물 안에 호텔이 있다. 그리고 보니 지금도 간판이 안 보이네)


얼른 호텔 건물로 들어가 본다. 헉. 분위기 이상하다. 1층 홀은 완전 폐허스럽다. 전쟁이라도 나서 다들 피난가고 건물은 제 기능을 상실한지 꽤나 오래된, 딱 그래 보인다. 게다가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에는 고장이라고 쓰여져 있다. 대체 호텔 리셉션은 어디 있는거야? 고장이라는 문구를 자세히 읽어보니 "손님께는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아, 그래. 이 건물 어디엔가 분명 호텔이 있긴 있었나본데... 일단 구석 계단을 올라가 본다. 2층까지 올라가 보고 확신한다. 2층 홀로 통하는 문은 사용 안 한지 아주 오래. 그래, 여기에 호텔은 없다. 있었더라도 호텔이 망했거나 이전한거다. 심정적으로는 X됐다 싶으면서도 다리는 이미 관성이 붙어 3층으로 오르고 있다. 엇, 그런데 3층에... 그럴싸한 문이 있다? 문이 열린다? 또 문이 하나 더 있고, 그 문 뒤로 리셉션이 보.인.다. 오마이갓, 여기가 호텔이구나!!! 두번째 문도 열고 들어간다. 건물의 외관과는 완전 딴 세상인 공간이 펼쳐진다. 뭐 이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숙소가 다 있나.  




방은 심플하고 널찍했다. 발코니 또한 그러했다. 인터넷 속도는 투숙객이 우리 밖에 없어서도 그랬겠지만 산동네 입지를 고려할 때 그럭저럭 괜찮았다. 욕실엔 순간 온수기가 달려 있었는데 작동시킬 때마다 실내 등이 깜빡거렸다. 나름 새 호텔인건 분명한데 매트리스는 썩 좋지 않았다. 직접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마치 에어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는 느낌? 그래도 난 까딸스러운 여행자가 아니므로 잠은 그럭저럭 잘 잤다 ㅎ

안전 금고니 그런 건 당근 없었다. 

(방 사진을 미리 안 찍으면 이런 사단이 난다. 불량 블로거)

김원장이 처음 이 동네 도착했을 때, 이 숙소에다가는 조용한 방 달라는 이야기 굳이 할 필요 없겠다, 했다(분명 자기가 먼저 그랬다). 그런데 우리 방 앞 길이 포장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오르막 길이다보니 가끔씩 차가 올라갈 때마다 소음이 발생, 김원장이 투덜거렸다(내려오는 차들은 소음이 덜했다). 사실 이 길 위로 대체 몇 가구나 살까 싶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우리가 잘 때쯤 마을도 대부분 잠들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 방 뷰)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매니저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 호텔과 식당 등에서 일하다가 대도시가 싫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매니저는 그간만나본 숙소 주인 중 거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수퍼가 어디야? 하면 나와 함께 수퍼에 가준다 ㅋ 내가 은행이 어디야? 하면 나와 같이 은행에 가고.  내일 예레반에 가고 싶어, 하니까 11시에 출발하는 마슈르카를 타면 된다며 두 좌석 예약도 해주겠단다. 퇴근하면서 굳이 얼굴 보고 인사까지 하고 간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 하라면서. 


매니저의 친절과는 별개로 작은 문제가 발생하긴 했다. 나는 미리 윗마을 지도를 살펴 보고 이 마을에 은행이 있으니 당근 ATM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숙박비도 내야하고 내일 예레반까지 버스도 타야 하는데 내 수중엔 아직 충분한 아르메니아 돈이 없었으므로 ATM이 필요했다. 그래서 매니저와 함께 은행에 갔는데 ATM은 망가져 있었다. 혹 그렇다면 여기 환전소는 있니? 매니저는 ATM과 더불어 환전소 또한 아랫 마을에 있다고 했다. 뭐든 아랫 마을에는 다 있다 이거지? 기왕 가야 된다면 그들이 문 닫기 전에 가야 했다. 아랫 마을은 어떻게 가? 하니까 숙소 앞 마을 광장에서 3번 버스를 태워 준다. 2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요금은 편도 1인당100드람이야, 올라올 때도 이거 타고 와, 물가에 내놓은 애 마냥 챙겨주면서. 


(우리 어릴 적 타던 전륜 버스를 닮았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알라베르디 아랫 마을로 내려갔다. 알라베르디, 하면 흔히 이 곳을 일컫는 아랫 마을답게 매니저 말처럼 ATM, 환전소, 수퍼, 과일 가게, 자판기까지 다 여기 있었다. 

(ATM에서 돈을 뽑아 수퍼에서 장도 보고 체리도 반 킬로 사고 자판기에서 커피도 뽑아 먹었다)


퇴근 시간인가 상행 3번 버스는 완전 풀이었다. 외국인 여성인 내게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아저씨가 계셨지만 괜찮다고 했다(이쁜 건 알아가지고). 다시 꼬불꼬불 윗 마을로 올라오니 숙소 앞 광장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다. 


전에 아제르바이잔 쉐키에서 그랬듯 알라베르디 윗마을도 오늘 뭔 날인가보다 싶었다. 모여든 군중을 뒤로 하고 우리는 사나힌 수도원으로 갔다. 우리 원래 따로 놀아요. 



(이런 복구 작업 다 끝나면 그 때는 입장료를 받으려나)



수도원은 고즈넉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관광객이 없는 앙코르왓 어느 한 구석을 거닐던 때가 저절로 떠올랐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마을길을 가로 지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수도원보다 좋았다. 

(돼지, 소, 김원장)


돌아오니 잔치가 절정이었다. 아이들은 나눠주는 과자를 받느라 정신 없었고 몇 명은 손을 잡고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었다. 빈약하지만 폭죽도 막 터졌다. 때마침 나와있던 매니저에게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야? 아르메니아 어린이날. 



다음날 조식. 전날 약속한 시간에 맞춰 따끈해야 되는 아이들은 따끈하게 준비해 주었다. 괜시리 막 정이 가는 식단이었다. 

직접 담근 무화과 조림이라며 권했다. 달았다. 



이 동네 이만한 숙소가 없는 것은 맞다. 사나힌 수도원에 매일 같이 패키지팀 버스가 드나드는 것도 맞다. 하지만 우리처럼 이 마을에서 하룻밤 이상 머물 계획을 세울 자유 여행자들은 과연 얼마나 많을까... 객관적으로 장점도 단점도 골고루 있는 호텔이다. 하지만 매니저만큼은 최고다. 그가 대박 났으면 좋겠다. 

'2015(코발발·중미) > 코카서스 3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레반 Yerevan  (0) 2015.06.07
알라베르디-예레반  (0) 2015.06.06
조지아 트빌리시-사다클로 국경-아르메니아 알라베르디  (0) 2015.06.04
Tbilisi Marriott  (0) 2015.06.03
트빌리시  (0) 2015.06.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