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원래 계획했던 앵커리지에서가 아닌,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거우드에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그만큼 더, 총 5시간 운전을 해야 한다. 아침에 거우드에서 트레일 하나를 더 하고 출발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혹 5시간 운전에 트레일까지 했다가 나가 떨어지는 일이라도 발생할까봐 모닝 수영만 한 판 때리고 출발.  





약 한 시간만에 앵커리지에 도착했다. 대략 일주일만에 다시 보는 앵커리지가 첫인상과는 달리 이젠 거대한 대도시처럼 여겨진다. 참고로 여기 앵커리지에선 가끔 노숙자도 볼 수 있다(안타깝게도 그들 대부분 우리와 닮은 원주민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 노숙도 누울 자리 봐가며 해야지. 좋은 생각이야. 

뉴중앙식품에 다시 가서 그간 다 먹어치운 배추 김치를 이번엔 열무 김치로 한 통 더 사고, 오늘 간식용으로 김밥과 떡볶이도 구입했다(나 알래스카에서 떡볶이도 사먹는 녀자야). 미국 여행은 이렇게 쉽게 한국 음식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더 받는 면이 분명 있다. 도시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주유비가 올라가므로 주유소에 들러 만땅으로 기름을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주유를 하는 동안 김원장은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화장실 입구에서 만난 여인이 자신에게 건넨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며 운전을 하면서도 골똘 모드이다. 설마 그런 장소에서 작업을 걸어왔을리는 없잖아? 부디 쾌변! 이런 말 아니었을까?


우리 먹거리와 차량 먹거리까지 모두 채웠으니 다시 출발이다. 


뷰 포인트를 만나면 사진도 찍고




스트레칭도 해줘감시롱


그림같은 풍경 속을 열심히 달린다. 어째 남쪽 케나이 반도보다 이 쪽이 더 멋지네.






오늘 달릴 거리의 대략 중간쯤에 마타누스카(Matanuska) 빙하가 있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빙하 중 하나로 일명 세계 최대의 육지 빙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기도 하다. 추가치 산맥에서부터 27마일에 달하는 얼음 강이 거대하게 흘러나오는 형국인데 우리가 달리고 있는 글렌 하이웨이에서 몇 마일에 걸쳐 계속 보일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패키지로 이 곳을 방문하면 차를 몰고 빙하 가까이로 다가가 직접 빙하를 발로 밟아보는 체험을 한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접근 도로부터는 사유 재산, 즉 유료 프로그램인지라 우리는 그냥 패스 ㅋㅋ 대신 마타누스카 빙하 주립 레크리에이션 사이트에서 증명사진이나 찍고 가기로 했다(참고로 저 체험에는 2-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사이좋게 김원장 한장


나 한장. 어쩐지 건방샷. 


그리고 재출발.


뒷 배경마저 합성 예술




그리고 숙소에 이르기 전 마지막 사람 사는 마을다운 글렌알렌의 수퍼마켓에서 주전부리를 구입하고는 오늘의 대장정을 마감할 숙소를 찾아갔다. 다행히 별탈 없이 잘 왔네.


Sawing Logzz B&B


홈페이지 : http://www.sawinglogzz.com/

예약 : 홈페이지에서 알려주는 대로 예약걸고 이메일로 접선, 150불 페이팔로 송금. 혹 탈세인건가 ㅋ

투숙일 : 5월 9일 금요일 1박

룸 타입 : 2.5층 통나무집의 반지하층 한켠의 독채 유니트


사실 우리는 B&B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예전에, 그러니까 2002년도 두번째 유럽 여행을 할 때, 그 때는 돈 아끼려고 몇 번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실생활을 가까이에서 엿보고 같은 경험을 나누는 것까지는 참 좋았지만 첫번째로 우리가 그 나라 언어를 못 하고, 두번째로 보통 주인집 방 한 칸을 내어주니까 집/관광지 들락날락할 때마다 혹은 화장실도 주인집과 같이 쓰다보니 이래저래 불편한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2008년 세번째 유럽 여행을 할 때는 B&B에서 묵어야할 상황이 생기면 주인집 방 중 하나 쓰는 스타일 말고, 되도록 현지인의 빈집을 통째로 혹은 별채를 따로 빌려쓰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어 묵었더랬다. 


하루만에 달려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 기준으로 앵커리지에서 발데즈까지는 먼 길이었고 그래서 중간 적당한 장소에서 하루 끊어갔으면 좋겠는데, 가장 적절한 위치로 보이던 글렌알렌의 일반 숙소들은 (몇 개 되지도 않지만) 하나같이 도로변에 있어 분명 김원장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니 남은건 우리가 부담스러워하는 B&B 뿐인데...(그것도 하필 여기는 미국, 그들은 영어 네이티브라고! ㅠㅠ) 이건 뭐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말많은 발랄한 주인을 만날 경우를 대비해 최대한 독채 스타일 B&B로 찾다보니까 이 집이 딱 걸렸다. 무슨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지는 운명에 맡기는 수 밖에.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 말이 절로 나오는 입지였지만, 하여간 비포장 진입로를 거쳐 홈페이지 사진에서 보던 통나무집 앞에 차를 세우니 가까운 반지하층 현관문에 "B&B 손님 방은 안으로 들어 오셔서 왼쪽 문을 여세요" 뭐 그런 문장이 적혀 있는게 보였다. 그대로 했더니 아래와 같은, 침실, 욕실, 간이 주방, 거실이 다 갖춰진, 마치 처음부터 B&B를 염두에 두고 지은 듯한, 큰 집 속의 작은 집이 등장했다. 우와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운데 ㅎ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포의 하이톤 영어가 밖에서 들려왔다. 올 것이 왔... 우리 차소리를 듣고 주인 아주머니 루안이 윗층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녀가 반갑게 우리를 맞으며 자신 소개와 길고 긴 환영 인사를 건넨 뒤 우리에게 방 설명을 해주겠다고 했다. 약 10분 정도 TV 사용법에서부터 커피 메이커와 와플 메이커 사용 방법까지 다양한 장르의 듣기 평가 시간을 가졌는데... 트립어드바이저 후기대로 다른 B&B와는 달리 조식 거리를 미리 우리 유니트 냉장고에 풍성하게 쟁여 두었다는 점이 특이하더라. 심지어 우유를 미처 준비 못했다며 차를 몰고 글렌알렌까지 가서 이따만한 우유를 사다가 안겨줬다는...(우유 하나 사겠다고 왕복 20마일 먼 길을...) 그 덕에 우리는 끊임없이 베이글을 구워 크림치즈와 알래스칸 블랙베리잼을 듬뿍 발라 게걸스럽게 먹고 커다란 병에 가득 든 오렌지 쥬스를 다 마셔 버리고 커피에 코코아에 시리얼에 요거트에... '베드 앤 브랙퍼스트'가 아니라 '런치 앤 디너 앤 베드 앤 브랙퍼스트'로 이용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뿐이랴. 이 집 떠날 때 오렌지도 두 개 싸가지고 나왔다)  





웃는 얼굴의 가족들은 모두 발랄했다(그래서 최대한 안 만나려고 애썼다 ㅋㅋㅋ). 내가 한 마디만 하면 열 마디 백 마디라도 신나게 답해줄 것 같은 분위기. 십수년째 여행 나올 때마다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영어 공부 좀 해야지 결심하는 짓을 반복하다보니 이젠 털난 양심이래도 거짓 다짐 못 하겠네(하여간 아줌마의 말은 매우 빨랐다. 나 좀 배려해 달라고!!! 난 그저 알아듣는 척 연기중일 뿐이라고!!!). 비록 통나무집의 아래층을 사용하다보니 윗층 주인집의 소음이 다소 전해진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B&B라는게 워낙 서로 배려하는 시스템이니까 그 정도야 뭐... 입지가 워낙 외딴 덕에 차 소리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김원장 덕에 내 미국 알래스카 한 구석에서 현지인 집에 다 묵어보고... 호강한다 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보너스샷


마침 우리가 올해의 첫 투숙객이라서 루안 아줌마가 준비해준 것들 중 상당수는 우리가 다 첫 빠따로 개봉했다 ㅋㅋㅋ 아침엔 와플을 만들어 보겠다고 와플 반죽 가루 새거를 파박 뜯어서, 겉봉에 쓰여진대로 가루, 올리브유(이것도 뿌직 돌려 열어버리고), 이 집 닭의 신선한 계란(따닥 깨고) 등을 계량, 투척한 뒤 쉐킷쉐킷. 

자, (한국에서도 별로 안하던 짓) 오늘의 요리를 만들어 보겠어요~(이순간 너무나 러브체인님 발꼬락만큼이라도 잘 만들고 잘 사진찍고 하고잡다)



와플 메이커 기계의 전원을 켜고 달궈지기를 잠시 기다린다. 적정 온도에 이르면 알아서 삐삐! 

그럼 메이커 양면에 태어나 처음보는 오일 스프레이(?)를 칙칙 뿌려주고(미쿡 부엌에는 쓰잘데기 없는 신기한 물건이 참 많습니다. 우리 어머님께선 숟가락과 칼 하나로 능히 다 해내실 수 있으실텐데... ) 루안 아줌마가 알려준 양만큼 반죽을 부은 뒤 뚜껑을 닫고 뒤집뒤집. 그리고 다시 삐삐 울면 오픈! 짜잔. 와~ 우리가 와플을 직접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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