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차를 빌려 여행해 본 나라는 많지 않지만, 

이 세상에 미국만큼 자동차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 싶다. 

아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야말로 미국은 차없이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는 곳이더라(물론 뉴욕 맨해튼 같은 곳을 여행한다면 상황이 달라질테니 절대 명제는 아니다만). 고로 이런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 역시 자동차가 없으면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불편하다 하겠다. 국가 브랜드 세계 1위치곤 대중교통시스템이랄게 너무 후졌으니까(뭐 인구 밀도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으리라 인정은 한다만).  


다른 나라와는 달리 특히 미국에 있어서의 자동차 여행의 장점에 대해 말하자면,

일단 우리나라와 운전 방향이 같고, 렌터카 비용과 주유 비용이 저렴하며(미국살이 10년차인 감자 말에 의하면 그 사이 기름값이 3배나 뛰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 비하자면 반 값 정도로 저렴하다), 도로의 폭과 주차 공간이 아~주 넓다. 고속도로도 대부분 무료이고 시외로 나서면 길도 몇 개 없어서 길 찾기도 쉽고, 대체적으로 승용차 운전자들은 매너에 있어 여유로운 편이고. 

그래서인지, 상기 첨부한 이번 우리 여행 루트에 있어서는 큰 도시들이 포진해 있는 해안가와 라스베가스 시내를 제외하곤, 차량 소통량마저 매우 적어서 김기사 말로는 한국에서의 운전보다 몇 배는 편하고 몇 배는 덜 피곤하다고 했다.  

출발 직전 감자한테 미국에서 운전할 때 주의점을 읊어보거라 했더니, 딱 두 개, STOP 싸인에서의 스탑/진행하는 방법, 그리고 주차할 때 스트리트에선 도로 안내판 잘 보고 턱에 그어진 빨간선/파란선 말고 흰선이 그어진 곳에 세울 것만 달랑 알려줬는데, 음... 비보호 좌회전 정도 말고는 더 이상 장애물이 없었으니 정말 그 정도 정보로도 충분했던 듯 하다(딱히 김원장이 과속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자동차 여행의 단점이라면, 예전에도 느낀 바와 같이, 타인과 섞일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과 자가 운전에서 오는 사고의 위험이랄까. 더불어 차량 썬팅(틴팅이라고 해야하나)이 안 되어 있어 운전하는 동안 햇볕과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점(틴팅이 불법이라 이렇게들 잘 지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햇볕을 너무 사랑해서인지 하여간). 11월인데도 햇볕은 장난이 아니더라. 껍질은 안 벗겨졌지만 얼굴 꽤나 홀라당 탔을 듯. 나는 무지 게으른 스타일이라 평소 세수로 땡인데 그렇다보니 자외선 차단제 따위 모르는 몸인지라 이번에도 얼굴 기미는 엄청 세력을 떨친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는 선글래스를 업뎃해 가고 미국 도착하는대로 적당한 크기의 Sunshade부터 구입해야 할 것 같다. 


자동차가 개개인의 생필품인 곳이다보니 주유소도 적지 않았는데, 주유소 브랜드마다 입지마다 가격은 조금씩 다 달랐다. 누군가는 특정 브랜드만 고집하고 누군가는 무조건 저렴한 가격의 주유소만 찾아다닌다던데 내 경우 처음에는 그래도 이름을 들어본 거대 브랜드의 주유소를 이용할까 했지만, 주유소가 거의 없는 국립공원 지역을 여행하다보니 저절로 선택의 여지가 팍팍 줄어들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김원장이 넣고 싶을 때 눈에 띄는 아무데서나 넣었다. 우리가 겪은 주유소는 100% 셀프였는데, 처음에는 만땅이 얼마나 될 지도 모르고 영어로 말 섞기도 부담스러워서 ㅋㅋ 신용카드 주유를 선호했다. 하지만 방문한 주유소의 1/3~1/4 정도는 한국 신용카드 인식을 하지 못했고 여행 일자가 늘어나면서 저절로 아무렇게나 현금 주유를 하고 돈이 남으면 거스름돈을 돌려받는 것까지 하나도 안 어렵다는 걸 알게 되어서 ㅋㅋ 나중에는 신용카드가 안 되면 옆 다른 주유소를 찾을 필요 없이 그냥 현금 박치기를 했다. 김원장의 경우에는 그러면서 주유소 편의점(?)내 화장실도 종종 이용해줬고. 하여간 이번 여행 덕인지 엊그제 한국에서도 주유소 직원들 얼굴이 안 보이길래 그냥 바로 셀프 주유 ㅎㅎㅎ 


렌터카는 가장 아랫등급인 "이코노미" 다음인 "컴팩트"를 신청해서 현대 액센트를 받았는데, 김원장 말로는 다음에도 이 등급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고. 내가 왜? 다음에는 사륜구동 SUV라도 빌려서 저 수많은 오프로드들 신나게 달려보지! 하니까 늙어서 그런가, 이젠 그런 것도 안 땡긴다고 하고... 그렇다면... 그 다음 등급을 같은 값에 준다고 하면 받을거지? 하고 슬쩍 떠보니, 김원장 왈, 그럼 현대 소타나가 나올 것 같은데? 하는 바람에 물어본 나마저 김이 좀 새버렸다 ㅋㅋㅋ 기왕이면 한국차 아닌 걸로 타보고 싶은데... 하여간 처음 액센트를 몰아본 김원장은 생각보다 액센트가 너무 잘 나간다며 여정 내내 최근 한국 차의 완성도에 대해 감탄을 했더랬다. 그래서 한 번은 내가 그렇게 괜찮으면 다음엔 한국차로 구입하라고까지 했는데, 귀국해서 다시 원래 차 몰아보더니... ㅎㅎㅎ


캘리포니아 내에서는 픽업과 반납 장소가 달라도 무료라길래 픽업은 감자네 집 근처 산호세 공항에서, 반납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하기로 했다. 픽업시 원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갔는데(물론 미리 전화해서 문제 없다는 말 듣고 갔다) 막상 현장에서 차량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는 바람에(직접 통화를 한 감자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인도계 데스크 직원에게 약간 화를 낼 뻔) 산호세 공항에서 좀 기다리는 일이 있었으나... 뭐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소문대로 추가 보험 가입을 은근 강권하는 분위기였으나 나도 들은대로 끝까지 웃으며 다 거절했다 ㅎㅎ 연료만 full to full로 지정했는데 보증금은 155불인가만 잡더라. 이용했던 렌터카 회사 '달러'사가 메이저급은 아니었던지라 반납 절차가 좀 까다롭지 않을까 했는데, 반납은 뭐 정말 순식간에 끝났다. 반납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직원이 다가와 차량 전면 유리에 붙어있는 작은 바코드를 스캔하고 마일리지와 연료 풀로 채웠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바로 영수증 출력해주곤 끝이란다. 좋아좋아.     

    

여정 앞 이틀은 감자 차 신세를 졌고, 나머지 23박 24일 동안 96만원에 빌려 총 3451 마일을 몰았으니 하루 평균 230 Km 정도 운전한 셈이다. 참,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전혀 와닿지 않는 mile은 무시하고 당연히 모두 Km로 환산해서 계산했는데 미국에서의 운전 시작 하루 이틀만에 바로 마일에 적응해 버렸다. 미국의 속도 개념과 거리 개념에 바로 익숙해지다보니 마일과 킬로미터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느껴지더라. 남아프리카 자동차 여행에 비하면 껌 정도로 운전을 적게 했고, 운전 자체 역시 남아프리카에 비하면 편하고 쉬웠다고 하지만, 그래도 운전은 적게 하면 적게 할수록 좋다는게 우리 사이의 진리. 그래도 동기간/동루트를 뛰는 남들에 비해 최대한 적게 운전하는 방향으로 잡았지만 어쨌거나 미국은 너무 크고 아름다광활한 땅덩어리였다.  


네비게이션(이 동네에선 GPS라고 부르더만)은 따로 빌리지 않았다. 지도도 구입하지 않았고. 이번 여행 전에 LOCUS FREE 앱을 깔고 해당 지역 맵을 미리 준비해갔는데(비록 그 과정은 버벅의 연속이었지만), 운전 맨 첫날 감자네 집에서 요세미티가는 길, 산호세를 막 벗어나던 시기를 제외하곤 그 앱으로만도 충분했다(아무래도 첫 날인지라 감자가 요즘 자기 안 쓴다고 빌려준 네비를 유용하게 썼다). 물론 국립공원들 막 돌아다니다 간만의 대도시였던 샌디에고로 들어오던 날에도 네비를 켜서 도움을 받았지만, 다음에 간다면 대도시는 최대한 지양할테니 그 때도 네비 없이 로커스 앱과 구글맵의 조합으로만 돌아다닐 듯 하다. 하여간 인터넷 접속이 필요한 구글맵에 비해 로커스 앱은 추천. 유럽은 아무래도 사정이 다를 듯 하지만, 이번 미국에서는 로커스 앱만으로도 숙소들을 너무 쉽게 잘 찾을 수 있었다. 25박 26일중 길을 잘 못 들어간 적이라면, 초반 딱 한 번? (그것도 지도 확인 안 하고 신난다 노래 부르다가 ㅋㅋ)


이번 여정에 있어 가장 큰 차량 관련 사고(?)라면, 아마 릿지크레스트에서가 아니었을까.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묵는 고급(나름 메리어트 계열 ㅋㅋ) 숙소에 도착, 다소 들뜬 마음으로 체크인부터 마치고 배정된 방으로 올라가기 전 필요한 짐들을 트렁크에서 꺼내던 중, 김원장이 그만 트렁크 바닥에 키를 얌전히 내려놓은 채 트렁크 문을 쾅 닫아버린 것이다 ㅎㅎㅎ 차량 키로 두 개를 받긴 했지만 열쇠고리 분리가 어려워 그냥 붙어있는 채로 들고 다녔는데, 순간 밀려오는 그 황망함이라니 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하여간 일단 빼놓은 짐들부터 방으로 옮긴 뒤 요일부터 헤아려보니 하필 토요일 오후인지라... 게다가 달려오면서 봤지만 릿지크레스트가 그다지 큰 마을도 아니고 해서 좀 난감했더랬다. 

사고는 김기사가 쳐도 처리는 사모님이 해야하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_-; 잠시 잔머리를 굴리다가 5불을 손에 쥐고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갔다. 앞선 숙소들에서 우리를 맞았던 아주머니/할머니와는 다른, 아까 체크인을 해줬던 사뭇 젊은 처자에게 괴로운 표정을 시전하며 사연을 꺼냈다. 내 차 키를 트렁크에 넣은 채 실수로 닫아버렸다고, 렌터카라 일단 렌터카 회사에 알리기부터 해야할 것 같다고, 그런데 나는 영어 전화 통화가 어렵다고, 그러니 네가 좀 해 달라고. 그랬더니 그 처자가 방긋 웃으며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 상심 말라면서 렌터카 회사 24시간 상담 전화, 렌터카 회사의 릿지크레스트 지점에 차례로 전화를 해보더니 결국 운전자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니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_-; 쓰잘데기없는 최종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동시에 처자가 본인이 이 지역 토잉 컴패니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더라. 그럼 일단 그 업체에 문 따주는 비용부터 알아봐다오 하면서 가격 네고까지 부탁하니까(지금 생각해도 기특한 내 잔머리) 착한 처자 시킨대로 전화해서 가격 네고를 치니 영수증을 발행하면 75불이요,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하면 60불에 해주겠단다. 현금 콜!!! 그리고 처자여, 이 팁을 받으라(내가 직접 여기저기 전화하고 안 되는 영어로 가격 네고까지 칠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아흑 끔찍 몸서리가 절로 ㅋㅋ).  

토요일 오후였지만 여기는 유럽이 아니라 그런지 ^^; 약속대로 정말 10분 만에 호텔 주차장으로 커다란 견인차량이 나타났다. 예상치도 못했던 수퍼사이즈 견인차량이 나타나는 바람에 순간, 뭐야, 이거 이대로 우리 차를 끌고/싣고 정비소까지 가겠다는건가 했는데... 긴 백발을 아가씨마냥 휘날리던 건달 분위기의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꺼낸 것은 풍선 같은 기구. 납짝한 그 아이를 운전석 앞 문 틈으로 밀어넣고 펌프로 풍선을 부풀리자 문에 약간의 틈이 생겼고 고 사이로 길다란 철사 같은 것을 넣더니 문 고리를 당겨 찰칵하고 바로 앞 문을 열었다. 헉, 뭐야. 이런 아저씨가 맘먹고 차량 털자하면 대당 1분이면 뚝딱이겠구나(나는 입 꾹 다문 트렁크는 우찌 열라나 ㅋㅋㅋ 하고 있었...) 아저씨가 앞 문을 열자마자 김원장이 바로 트렁크 오픈 버튼을 당겼고 트렁크가 열리자 거기 차 키가 똭 ㅋㅋㅋ 이 사건 이후로 트렁크 닫을 때마다 서로 키부터 확인하고 찾는 버릇이 ㅎㅎㅎ 아 진짜, 한국에서도 짜증날 상황을 미국에서 겪을 줄이야. 사고친 김원장이 미안했는지 본인 같았으면 원어민한테 일 부탁할 생각은 꿈에도 못 했을 거라면서 순식간에 일처리를 해낸 나의 잔머리를 꽤 칭찬해줬다는 미담이 이후 전설처럼 내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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