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을 마친 후 포카라에서 총 6일을 하릴없이+할일없이 머물렀다.

다음은 그 밍숭맹숭했던 6일에 대한 지극히 간략한 기록들임을 먼저 밝혀둔다(어쩐지 면피성 발언 삘이 짙게...) 

 

산에서 내려온 뒤 좋~다고 포카라 짱에서 빤스만 입고 잤더니 새벽녘에 역시나 좀 추웠다. 너무 오버했나.

어제 저녁 소비따네의 감동을 못 잊어 일어나자마자 다시 소비따네부터 찾았다. 씻지도 않고 길을 나섰음은 김원장의 부시시한 머리가 증명한다(덩달아 전기가 들어오는 도시 문명의 혜택을 간만에 누리고 있다).

아침 식사로 메뉴판에 써있던 Simple breakfast와 (아침부터. 허허) 김치볶음밥을 하나씩 시켰다. 주문을 받은 직원이 부엌으로 안 들어가고 밖으로 쪼르르 나가길래 쟤는 밥 안 해주고 어딜 가나, 했는데 좀 있다가 한 손에 작은 감자 두 세 개를 사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여기도 주문과 동시에 요리를 시작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구나.

은근 양이 많아서 열심히 먹었다는 후문.

 

이 날 한 일은 엄청난 양의 밀린 세탁물 처리와(450루피) 

PC방에 들러 나 없는 한국을 독수리 오형제가 잘 지키고 있는지 체크하고(45분에 60루피),

양가 부모님께 전화로 무사 귀환을 알린 것(분당 30루피)과,

 

 

시내를 싸돌아 다니며 그간 그리워했던 포카라를 아무 생각없이 누벼보기(그러다 아래처럼 노림직한 식당이 나타나면 얼른 찍어두기),

<짜"짱"면. 저 집 자장면 맛이 정말 짱인가봐>

 

다음 트레킹지 물색하기(오잉?)

참고로 현재 김원장이 꺼내드는 지도는 라운드 다울라기리(네 이 놈! 나를 죽이고 가라)

그리고 증거 사진은 없지만 연이어 집어든 지도는 무스탕. 허허허(이러다 본의 아니게 해탈의 경지에 이를듯).

 

참고로 라운드 다울라기리는 대략 아래와 같은 루트(출처 http://www.explorealpine.com/dhaulagiri_round_trek.php

 

그리고 내 차례, 신나는 쇼핑

반가운 푸 라면이 넘치게 많았지만 여기는 포카라, 굳이 이거 안 먹어도 되는 곳이라네(대신 달달이 과자는 양껏 구입).

물론 저 나무젓가락은 앞으로 인도 같은데 가면 구하기 쉽지 않은 물건일거라는 생각에 얼른 득템.

 

그리고

여전한

포카라

만나기

포카라 레이크사이드를 오르내리다 보니 다시 배가 꼬르르. 또 소비따네를 방문했다. 벌써 연달아 세 끼째. 

점심 메뉴로는 돈까스(130루피)와 돼지김치찌개(150루피). 일명 돼지고기 파뤼.

돼지김치찌개도 나쁘진 않았지만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역시 꽁치쪽이 낫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풀만을 다시 만났다. 어제 풀만이 이야기했던, 고향을 떠나 포카라에 머물면서 포터 일감이 들어올 날을 기다리며 자취(?) 생활을 하는 숙소가 포카라 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길래 풀만의 자취집부터 먼저 구경 가 보기로 했다. 포카라 짱 북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골목에 위치한 일반 주택이었는데 풀만은 또 다른 포터 친구와 한 방을 사용한다고 했다. 방은 그다지 크지 않아 풀만 또래 청년 둘이 함께 지내기엔 좀 좁을 것 같았는데 룸메이트는 현재 포터 일이 있는 건지 풀만 혼자 지내고 있었다. 보통 일이 없을 땐 이 곳에서 먹고 자며 여행사로부터 연락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 놀라운 사실은 이 방의 한 달 월세가 900루피에 불과하다는 것(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5000원 미만). 물론 방의 수준이 일반 여행자가 지내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저렴할 줄이야.

 

우리 풀만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맥주, 라고 답했다. 엥? 기껏 맥주? 히히, 그 나이대 청년답구나.

풀만과 함께 맥주를 마실만한 장소로 어디가 좋을까, 김원장과 잠시 고민하다가, 아, 홍금보 아저씨네 가봐야겠다! 에 생각이 미쳤다.

(참고 : 옛날옛적 홍금보 아저씨네 관련 포스팅 http://blog.daum.net/worldtravel/410973)

 

홍금보 아저씨네는 여전했다. 아저씨도 아줌마도 식당도 분위기도. 우선 풀만이 원하는 맥주부터 두 병 주문하고(주문할 때 보니 맥주가 한 병에 180루피였다. 우리가 포카라에서 "Korean Food"으로 맛나게 먹는 꽁치김치찌개가 150루피임을 떠올리자니, 풀만이 맥주를 마시고 싶어했던 것은 단순히 젊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주거리로 모모(만두)와 김치전도 시켰다.

 

사실 우리는 이미 점심을 거하게 한 터라 배가 제법 부른 상태였다. 김원장은 본인 잔의 맥주조차 다 못 마시겠다고 했을 정도니까(그래서 나랑 풀만이 다 해치웠다). 하지만 다른 데도 아니고 홍금보 아저씨네 왔는데, 이 집 바나나 라시를 빼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굳이 바나나 라시를 두 잔 더 시켜 한 잔은 풀만 앞에 놓아주었다. 이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바나나 라시야, 먹어봐.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내가 풀만에게 기대했던 반응은 대충 이런 것이었으리라.

- 우와, 정말 이 집 라시 맛있네요! 

- 그렇지? 역시 이 집이 최고라니까.

 

그런데 풀만은 나로부터 바나나 라시를 받아들고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 이게 뭐라고요?

- 바나나 라시

- 그게 뭔데요?

- ???

-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 먹어봐요.

 

정말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오고 김원장을 만나 세상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콕 집어 네팔 포카라 레이크사이드의 한 작은 가게, 일명 홍금보 아저씨네의 바나나 라시가 인도나 네팔의 여러 다른 식당들이 만들어 내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네팔 시골 마을에서 1남 4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21살 나이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포카라라는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몸뚱아리을 밑천 삼아 포터로 일하는 풀만에게

자신있게 이야기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언젠가 트레킹을 하다가 풀만이 김원장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 지금까지 몇 나라나 가봤어요?

- sixty

- six?

- no, sixty

- sixteen? one six?

- no, no. sixty. six zero.

 

그 때 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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