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맑음

@ 이동구간 : 칼라파니(2,530m) - 레테(2,480m) - 갸사(2,010m) - 룩세 차하라(1,630m) - 다나(1,440m) / 오늘 하루 자그마치 1,090m 하강

@ 총 소요시간 : 5시간(순수 걸은 시간 4시간 40분) 

 

 

 <(좌) 치즈 브레드를 시켰더니 칼조네 비슷한 것이 나왔다 / (우) 2인 1박 3식 총 계산서 2275루피=약 36,000원 가량>

 

- 트레킹 루트 전역에 이렇게 근사한 숙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 글쎄, 그게 과연 좋기만한 일일까?

 

오늘도 나에게 화두를 던져주는 김원장. 그래, (우유)차나 한 잔 들게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 새나라의 늙은이들, 오전 7시 5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칼라파니 숙소를 나선다. 지난 이틀간은 하루에 겨우 130~140m 밖에 고도를 낮추지 못 했지만, 오늘의 목표는 타토파니(Tatopani). 계획대로라면 자그마치 1,340m나 내려가야 한다. 해발 2천 미터 대에서 드디어 천 미터 대로 진입!

 

어제 엄홍길 대장님의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로 Thulobugin Pass(4,310m)를 넘어 North Annapurna Base Camp(4,190m)에 이르는 여정에 꽂혔던 김원장은 옆에서 계속 그 루트에 대해 재잘거리다가 내가 전혀 호응을 안 해주자 작전을 바꿔 이제는 오늘 타토파니에 도착해서 하루 쉬고 고도 적응되어 있는 김에 푼힐 쪽으로 다시 올라가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와 (남쪽)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찍고 포카라로 가자고 꼬시고 있다(아, 숨차다). 물론 나의 대답은 더 듣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당연히 No! (그런데 계속 듣고 있다보니까 김원장 본인이 크게 양보라도 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의 화술 때문인지 아니면 일종의 세뇌 현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다. 안 돼! 절대 약해지면 안 돼! 넘어가면 안 돼!) 

 

<아쉬움에 뒤 한 번 돌아보고 출발> 

 

<여명의 칼라파니>

 

<아직 햇살은 안나푸르나를 넘지 못하는데 비행기는 잘도 넘어 오더라. 응?> 

 

 

김원장의 지론 대로 오늘도 (남들보다) 일찍부터 서두른 탓인지 칼라파니의 체크 포스트를 김원장과 내가 오늘의 1등, 2등으로 나란히 통과했다. 김원장이 유난스럽다고 몰래 생각하기도 했지만 우리 둘만 조용히 걸으니까 좋긴 좋구나. 점점 김원장스러워져 가는 나.

 

 

 

<기분이 좋아보인다>

 

<저 경치를 뒤로 하고 떠나는 데서 오는 아쉬운 감정은 나나 김원장이나 비슷한 듯>

 

<칼라파니에서 레테Lete까지는 완만하게 길이 이어지다가 레테를 벗어나면서부터 급격한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내가 싫어하는 재질(?)의 내리막길. 이럴 때는 항상 김원장을 몇 발짝 앞세운다. 혹 내가 미끄러졌을 때 김원장을 깔고 뭉개려고. 으히히>

 

앞서가는 백 명이 아무런 문제 없이 잘 걸어도 나만은 꿋꿋하게 혼자서도 아무런 이유 없이 잘 미끄러지는 타입인지라 오늘처럼 평소보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은 좀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꼬불꼬불 산길의 특성상 곳곳에 현지인들이 잘 다니는 작은 지름길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김원장은 꼭 그 길로 가고 싶어해서 그 또한 갈등을 일으켰다. 그래, 그들은 쪼리만 신고도, 거기에 수 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짐을 지고도 이런 길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른데, 나는 그들처럼 안 되는데, 왜 나를 바보마냥 쳐다 보는거야. 투덜투덜.  

   

<차도 다닐 수 있는 큰 길에 비해 몇 백 미터는 족히 단축시켜주는 숏컷 다리.

물론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 나는 몇 번의 엄마야 비명이 절로 나오는 내리막길부터 지나야 했다>

 

 <이젠 이렇게 잘 닦인 길로 지프도 지나가고 트랙터도 지나간다. 이 정도만 되도 산길이 아니라 마치 찻길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내려온 지그재그 지름길이 보인다> 

 

 

 <아쉬움에 자꾸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되는데>

 

 <저 멀리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짚어보이는 김원장. 어느새 골이 부쩍 넓어지고 깊어졌다>

 

 

칼라파니를 뒤로 한지 1시간 40 여분, 갸사(Ghasa)에 도착했다. 단정하게 깔아놓은 돌길에서 느껴지는 첫 인상이 그야말로 정감 가는, 이 산중에 너무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서 뜻밖의 보부상 아저씨들을 만났는데,

 

 

어휴, 저렇게 큰 짐을 지고 대체 어디까지 가시는거야? 아니, 그에 앞서 대체 어디서부터 저렇게 하고 오신거야? 바라보는 내가 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멀리서 처음 보았을 땐 산중 작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소소한 물건들을 팔러 다니는 보부상일거라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아하니 차가 못 들어가는 마을의 가게 따위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종의 포터인 듯 싶다. 그래, 그들이 짐을 나르는 일을 업으로 삼은 포터라 치자. 아무리 그래도 저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아, 심란하다, 심란해. 수 십억에 달하는 많은 사람이 수 백개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세상을 일개 개인의 잣대로 평가내리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스스로가 감당이 안 될 만큼 무너져 내리곤 한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리 욕심이 많은 건지. 뭘 더 바래고 어디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건지.     

 

 

<갸사의 한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밀크티로 몸과 맘을 달래고(두 잔에 60루피)>

 

불행인지 다행인지 계속 걸음을 옮기면서 다소 심란했던 마음은 잦아들었다. 이렇게 이 곳을 떠나 여기서 멀리도 아닌, 포카라에만 도착해도, 난 이 곳을 쉽게 잊어버릴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곳에서 느꼈던 붉고 푸르른 마음도 다시 어둡고 희미한 일상에 묻히고 말겠지. 그리고 난, 어릴 적 나중에 커서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인간상을 하곤 또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을 살아가고 있겠지(이 글을 쓰는 현재, 정말 그렇다는게 또한 한심스럽다 -_-).    

 

<한동안 보기 어렵던 당나귀들이 다시 등장. 얘네도 운행(?) 가능한 고도가 따로 있나보다>

 

갸사를 벗어나 얼마나 걸었을까, 문제가 생겼다. 묵티나스부터 지프가 다니는 것을 봤으니 이 길 위에서 차가 다니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최근(?) 갸사에서 다음 큰(?) 마을인 룩세 차하라(Rukse Chhahara) 사이에 난 도로에 산사태가 발생되어 일정 구간이 소실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길 위에 차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용했던, (아마도) 옛길로 추정되는 강 건너편 산길을 타야 한다는 것이다. 포터나 가이드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은 앞서가던 트레커들은 대부분 군말없이 현수교를 건너 반대편 옛길을 택했지만, 짐을 가득 이고 진 현지인들 몇은 여전히 우리가 걸어오던, 잘 닦인 도로를 택해 직진하는 바람에 나를 헛갈리게 했다. 내 맘 같아선, 현지인들이, 그것도 짐을 저렇게 많이 지니고 있는데도 직진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을 따라가도 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사실 넓고 평탄한 길을 눈 앞에 두고 다시 좁고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기가 싫어서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저들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항상 그렇듯 이미 김원장은 용감하고 씩씩하게(마누라는 따라오거나 말거나) 현수교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에잉, 우리는 이래서 안 맞어, 투덜거리며 얼른 뒤를 따랐는데, 길고 긴 현수교를 건너온 후 뒤를 돌아보니 당나귀들이 줄을 지어 따라 건너오고 있었다. 어라, 당나귀들도 이 길로 오네? 산사태가 일어났다는 구간이 사람은 지나가도 당나귀는 못 지나갈 정도란 소린가?

 

 

간만에 만나는 오르막길. 며칠째 평탄한 내리막길만 걸었던지라 이런 험한 오르막길을 언제 걸었던 적이 있었냐는 듯 심장부터 발바닥까지 요동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바닥이 잘 닦여있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었던음을 알 수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헉헉대다 보니 시선은 저절로 두고 온 건너편의 평평 대로에 꽂힐 수 밖에. 

 

그런데,

 

어라, 

 

제법 올라서 시야가 트일 무렵, 건너편의 도로 소실 구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문제의 구간 양측에서는 각기 도로를 보수하기 위해 나름의 공사 준비들이 한창이었고 간혹 용감한 자는 스파이더맨처럼 돌벽에 매달려 아슬아슬 게걸음으로 구간을 넘기도 했다. 그래, 분명 저렇게 누군가(콕 집어 현지인)는 무사히 건너 제 갈 길을 계속 갈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 아무리 봐도 내 입장에선 등골만 오싹할 뿐,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못 지나갈 길이 틀림없었다. 에고, 이 옛길이 비록 힘들긴 하지만 결국 잘 따라온 거구나.

 

좁은 산길에 양편으로 오가는 트레커들과 현지인들이 몰리면서 한 줄로 서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제 페이스를 놓치는 바람에 헐떡대는 일이 잦아졌다.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숲길을 지나면서 풍경마저 우리나라의 그것과 흡사한지라 마치 휴일, 여느 한국의 산을 등산하는 느낌이었는데(다른 사람 엉덩이를 눈 앞에 보며 줄서서 올라가는 것까지) 날은 또 왜 이리 더워진건지. 아침엔 장갑까지 무장하고 출발한 우리였는데 어느새 하나 둘씩 벗으면서 걷고 있다. 이런 식으로 벗다간 빤스 차림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기세.        

 

<지나가는 객으로서 구경은 즐거웠지만 하여간 주인 말 진짜 안 듣던 염소 새끼(욕이 절로)>

 

 

현수교를 또 하나 건너는 것으로 옛 산길을 겨우 벗어나자 그간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다리가 다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다리를 건너오니 길은 확연히 평탄해지고 긴장(과 두 다리 역시 -_-)이 풀리면서 갑자기 여기저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Water! 누렇게 말라붙은 콧물 자국이 선연한 아이들은 낡은 물통을 메고 돌아다니고 우리는 신발이 젖을까봐 돌과 돌 사이를 징검다리 삼아 뛰어 넘는 일이 생겨났다. 그렇게 룩세 차하르에 도착하고 보니 더 이상 산쪽으로 진행이 불가능해진 버스 한 대와 트럭 두 대가 이 마을이 종점인 것 마냥 대기 중이었다. 다리는 아픈데 승객을 기다리며 서 있는 버스를 보니 갑자기 확 타고 싶어졌다. 그럼 오늘 저녁엔 포카라의 근사한 숙소에서 편안히 두 다리를 뻗을 수 있을텐데... 삼겹살도 김치도 먹을 수 있는데... 버스를 타려면 풀만한테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아니 근데 풀만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야? 풀만을 남겨두고 우리 둘만 달랑 포카라로 갈 순 없는 노릇인데. 혼자 괜히 죄없는 풀만에게 투덜투덜 투사를 하고 있는데 눈치를 챈 김원장이 내게 알려준다. 저 버스, 출발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다고. 어쩌면 오늘, 출발이라는 것을 아예 안 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또 걸었다>

 

<갑자기 넘쳐나는 수량. 이 얼마만에 보는 시원한 폭포란 말이냐>

 

<물이 많아지자 급 유원지 분위기. 손님들로 시끄럽지만 않다면 저런 곳에 묵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헉, 근데 버스가 지나갔다!!! (내가 또 속았다. 엉엉엉)>

 

갸사를 떠난 뒤 약 3시간 만에 터덜터덜+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다나(Dana)에 도착했다. 원래 오늘의 목적지는 여기서 한 시간 남짓 더 가야하는 타토파니였지만, 어제와 거의 비슷한 시간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구간의 특성상 오늘이 훨씬 더 힘들었기에 일단 멈춰섰다. 척, 보기에 다나는 좀 휑~해보여서 그다지 정감가는 마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롯지가 있으면 이 곳에서 하루 묵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포카라에 빨리 간다고 해서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니잖아? (처음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카트만두 짱에 포터 비용으로 보름치만 선불하고 온 터라 내일부터는 매일 10불씩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긴 했는데 솔직히 그 부분이 은근 신경이 쓰이긴 했다)

 

<다나에서는 안나푸르나 남봉으로 추정되는 멋진 봉우리가 아주 잘 보인다>

 

 

처음 들어가 본 숙소는 버스 정류장(?) 근처, 마당 넓은 집이었는데 2층으로 안내해 준 방이, 분명 손님이 아무도 없는 이 집에선 가장 좋은 방임이 확실한데도 너무 낡아버린 터라, 볕이 잘 드는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귀곡산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들이 들어찬 마당은 다소 어수선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편이었는데... 여하튼 일단 이 집은 제껴두고 김원장이 저~어기 보인다는, 아마도 저 쯤이라면 조용하고 뷰가 좋을 것 같다는, 마을 위쪽 파란 건물의 롯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지름길이라 생각되어 남의 밭으로 들어섰다가 길을 못 찾아 빙빙 돌고, 결국 이런 우리를 보다 못한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현지인들만 아는 지름길(남의 집 돌로 만든 울타리벽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로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벽 위를 따라 걷다가 무서워서 혼났네 -_-).

 

그렇게 찾아간 파란 건물 롯지. 김원장이 귀신이라도 씌웠는지 진짜 롯지 이름이 수퍼 뷰 게스트 하우스다. 허허허.

 

 

명칭 : Super View Guest House 

트윈룸 숙박비 : 300루피(화장실 딸린 방). 워낙 다나가 트레커들이 많이 묵는 동네가 아니다보니 이 집도 텅~ 비어 있었다. 이 집의 가장 좋은 방이라 할 만한, 3층의 가장 끝, 안나푸르나가 제일 잘 보이는 방을 골랐다.

특이사항 : 샤워는 2층 샤워실에서 가스 온수기를 이용해 할 수 있으며, 식사는 1층 식당에서도 할 수 있지만 당연히 4층 옥상이 선호된다. 

 

식사 주문후 막간을 이용하여 샤워부터 하기로 했는데, 김원장이 먼저 뽀송하게 끝내고 온지라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룰루랄라 샤워실로 내려왔다. 김원장왈 그냥 세팅된 채로 틀기만 하면 온수가 나온다길래 옷을 벗고 물을 틀었는데, 어랏, 몸 위로 쏟아지는 물이 무지 차다. 발가벗은 채로 덜덜 떨면서 윗층에 있을 김원장을 목이 터져라 SOS 불러보지만 김원장은 대답이 없고.

짜증 만땅 상태로 결국 옷을 다시 주워입고 방으로 올라가 김원장에게 물어보니 그럼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 한다. 다시 샤워실로 내려와 그의 말대로 해보지만 여전히 찬물만. 역시 답은 주인에게 있겠지. 주섬주섬 1층에 내려가보니 주인은 안 보이고 건물 밖에서 주인집 식구들을 찾고 주인댁 식구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그가 어떤 여성을 불러오고 다시 그 여인이 온수가 나오도록 세팅해 주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 참아야 하느니라.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샤워를 마친 뒤 즐거운, 설령 고 전에 안 즐거웠더라도 먹다보면 즐거워지는 식사시간이 돌아왔는데,

메뉴는 프렌치 프라이, 토스트, 스파게티, 샐러드, 콜라(and 물).

어제 칼라파니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에 오늘도 잔뜩 주문을 했는데, 

 

그럭저럭 무난했던 감자 튀김을 시작으로 

이 동네 볶음 국수 위에 덜 녹은 치즈가 엄청난 토마토 케찹을 뒤집어 쓴, 일명 스파게티가 등장해 깜놀을 선사해 주더니 

파리가 좀처럼 안 떨어지려는 토스트와

마늘과 고추가 참신했던 샐러드로 마무리(아니, 진정한 마무리는 녹맛이 나는 콜라로).

 

아, 인프라가 고도를 낮춘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였구나.

그래도 시장을 반찬삼아 배터지게 먹고(안 먹은 것도 아니면서 하여간 잔소리는) 다큐멘터리 한 편 감상. 제목은,

아시아 테마기행 <하늘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네팔 포카라>

흐흐, 나 낼모레면 하늘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포카라에 도착한다오.

 

트레킹을 떠나기 전, 짱 사장님께서 일정이 변경될 경우 연락을 달라고 하셨기에, 아무래도 처음 계약했던 보름보다는 이틀 정도 더 풀만과 지내게 될 것 같아 미리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숙소 근처 구멍가게에서 전화가 가능했던지라 카트만두에 계신 사장님께 전화(40루피)를 드리면서 사정 설명을 하니, 초과된 일정에 대한 계산은 포카라 짱의 "밥 구룽"씨에게 지불하라고 하신다. 사장님! 저희가 출발 전에 카트만두 짱에 맡겨놓은 짐을 포카라 짱으로 미리 배송 해주시는 것 잊지 마셔야 해요! 재차 확인 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자, 이렇게 하산이 슬슬 마무리지어져 가는구나.

 

하릴없이 다나 마을 산책을 하다보니 트레커들이 다니는 길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안쪽으로 은근 규모가 있은 마을임을 알 수 있었다. 놓아 기르는 닭들이 부산히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아이들은 여전히 똘망거리는 눈을 가지고 있는.

그나저나 아까 처음에 구경했던 게스트하우스 마당이나 골목길 구석 구석에서 봤던 귤 나무도 그렇고, 숙소에서 주문했던 샐러드에서 봤던 것도 그렇고, 급 귤이 땡겨서 귤을 사러 여기저기 돌아 다녀 보는데, 오히려 집집마다 흔해서 그런가, 가게에서 상품 취급은 안 하는 모양이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오니 그새 우리 옆 방에 백인 커플이 들었다. 우리만의 조용한 밤에선 살짝 멀어질 수 있어도 주인을 생각하면 잘 된 일이다.     

 

<우리 방에서 대략 이런 뷰가 잡힌다. 다시 한 번 밝히건대 숙소 이름은 수퍼 뷰 게스트하우스> 

 

오늘 저녁 식사는 7시에 준비해 주세요, 미리 부탁해 놓았는데 오후 6시가 넘어서기 무섭게 가져다 주시기 시작한다. 그래서 군말없이 그냥 먹어 주기로 한다. 점심에 먹다지쳐 남긴 토스트를 다시 꺼내놓고, 따끈한 달걀 프라이를 김원장과 나 사이 가운데 자리에 고이 세팅해 두고 맨밥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깻잎과 장조림캔을 두 개 모두 과감히 파박 뜯어준다. 어차피 곧 하산할 몸, 더 이상 한식을 아껴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짓이다. 디저트는 간만에 제대로 된 레몬환타다. my favorite. 

 

저무는 해에 물드는 안나푸르나는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도무지 질리지를 않는다. 진짜 근사하다. 셔터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김원장이 한 마디 한다.

- 어차피 다 흔들릴 똑같은 사진, 뭣하러 계속 찍냐?

(김원장 말이 맞았다. 올릴만한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T_T)

 

차가운 밤바람에 쫓기어 방으로 숨어들었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방엔 비치된 양초도, 흘러내린 양초 자국도 전혀 없다는 것을. 그 동안 안나푸르나의 밤들을 내내 함께 나눴던 캔들이여 안녕. 다나엔 밤새 안정적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전기라... 그래, 다큐멘터리나 한 편 더 보자. 골라낸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심야스페셜 <네팔의 일하는 어린이, 발스럼(노동자)>

제목에서 유추하듯 내용은 심히 우울했다. 김원장은 카트만두로 돌아가게 되면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단체를 찾아 200불 정도 기증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래, 그러자. 꼭 그러자(역시나 끝내 그렇게 하지 못 했다).

이제 우리의 입에서 안나푸르나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포카라 이야기와 카트만두 이야기가 오간다. 명백한 하산길이다. 안나푸르나의 저 밤풍경과도 이제 곧 이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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