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맑음

@ 이동구간 : 마르파(2,670m) - 툭체(2,590m) - 라르중(2,550m) - 칼라파니(2,530m) / 어제처럼 겨우 140m 하강

@ 총 소요시간 : 5시간 5분(순수 걸은 시간 4시간 25분) 

<(좌)아침 메뉴였던 애플 팬케이크. 역시나 예상을 뒤엎는 참신한 외관/(우)방 창문 밖으로 나무에 달린 사과들이 보인다>

 

어제 평소보다 좀 늦게 잠이 들긴 했지만, 어제 마르파에 도착하기 직전 겪었던 바람을 오늘만큼은 완벽히 피해가고 싶어서 어제 저녁 미리, 카그베니에서와 마찬가지로 숙소에 다음 날의 이른 아침 식사 주문을 해 두었더랬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지나온 다른 롯지들과는 달리 이 집에서는 내일 오전 6시 30분에 식사를 하자마자 일찍 출발하고 싶으니 혹 미리 계산이 가능하겠냐고 묻자 얼른 계산기를 가지고 와서 쫘~악 계산을 해 우리에게 총 얼마가 나올 것인지 뚝딱 알려주고 우리가 그 금액을 지불하자 영수증을 척 내주더라는 사실(1박 2일간 총 1930루피). 요약하자면 이 동네에선 좀 보기드문, 나름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숙소였다는 야그다. 여하튼 오늘 우리의 아침 식단은 밀크티 small pot, 사과 팬케이크, 오믈렛으로 간단히.

 

그리고 14일차, 오전 7시 10분. 또 한 번의 아침을 히말라야에서 맞이했다.  

 

 

<사과 크럼블이 유명한 마르파의 한 가게.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여러 나라 언어가 다시금 여기가 어딘가 생각하게끔 만든다>

 

 

마르파에서 다음 마을인 툭체까지 가는 길.

먼지를 일으키며 지프가 석 대 지나갔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트랙터가 사이사이 또 석 대 지나갔지만

그 동안 비행기가 오가는 건 자그마치 열 번도 더 봤다.  

(결론은 히말라야에선 비행기가 제일 흔한 물건이여... 응?)

 

 

 

 

<11월 14일 현재 주렁주렁 달려있는 사과들. 만일 네가 봤다면 뒷북이라 했겠지~♬>

 

 

<그러고보니 얘네들도 참 많이 지나갔는데... 어느새 너희들에게 익숙해졌구나>

 

<통사과를 가로로 얇게 썰어 저렇게 꼬치마냥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마르파 특산품 리스트>

 

 

<마르파를 벗어나면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

 

 

 

마르파에서 툭체까지는 안내판이 예고했던 것처럼 약 1시간 30분쯤 걸렸는데 

매우 평탄한 길이어서 들고 나온 스틱이 오히려 걸리적거리기만 했다(그간 스틱한테 신세를 얼마나 졌는지 고새 까먹고)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어서 그런지 이미 해는 떴는데도 정작 햇살 구경은 쉽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저 앞에서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 반짝거리고 있는 산군을 발견했다. 오라, 저 아랫녘에 살면 남들보다 좀 따뜻하겠는데? 

 

 

흠... 틀어앉은 모양새가 아직도 다울라기리 산군? 아님 말고 ㅎ (아, 이 말투는 밀러 선생님께 옮은 듯)

 

 

초대형 마니석을 세워둔 것으로 보아 이 동네도 티벳 불교권역인 듯 했다. 

한발짝 한발짝 햇살이 비쳐드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다울라기리 산군인가 아닌가 의심했던 부드러운 산세가 점차 본색을 드러낸다. 

 

어이쿠, 뾰족이가 숨어 있었구나!

 

 

 

해가 일찌감치 들어 다른 곳보다 따뜻하지 않을까 싶었던 바로 고 자리. 알고보니 툭체가 엉덩이 들이대고 떡하니 자리잡고 있더라.

해가 안 들 때는 서늘한 기운이 썰렁해 빨리 해가 좀 들었음 싶다가도

눈부시게 해가 내리쬐는 그 순간, 얼른 모자부터 찾아 꺼내쓰는 김원장, 툭체 입성.

 

 

꼴난 며칠 히말라야 트레킹 했다고 전봇대가 반갑지만은 않은.  

 

 

 

 

툭체는 미련없이 쏴샤삭 가로 질러 가뿐히 통과.

 

 

다음 마을은 툭체로부터 약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라르중. 

어라? 우리가 가진 지도에 따르면 마르파에서 라르중까지 총 4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만약 이 안내판이 사실이라면 마르파에서 라르중까지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듯 싶다. 직접 걸어보면 알게 되겠지.    

 

 

툭체를 벗어난 뒤 길은 양 갈래로 갈라져 왼편으로 뻗은 길이 강바닥쪽을 향한다. 이 경우 누가 뭐래도 차들이 먼지 일으키며 달리는 오른쪽 언덕 길보다야 아랫쪽이 훨씬 낫지. 또 알아? 이 길이 지름길일지. 

 

<인상적이었던 나무 전봇대>

 

그러나 아아, 지름길은 커녕 길을 잘 못 들었다. 어느 정도 걸을 때까지는 차가 다니는 언덕길보다 평평한 강바닥을 가로 질러가는 것이 보다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는데, 마치 끝까지 길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 강바닥에 생각보다 깊고 유속이 빠른 너른 물줄기가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혹 어딘가 뛰어 넘을만한 곳이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강줄기 위아래로 왔다갔다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이미 걸어온 길을 상당 부분 빙~ 되돌아, 거기에 더해 발이 젖어가며 강을 건너고 이어 절벽(?)을 네 발로 기다시피해 언덕 위 일반 도로에 겨우 이르를 수 있었다. 앞선 우리가 행여 숏컷을 아는 줄 알고 졸레졸레 뒤를 따라왔던 사람들에게는 베리 쏘리.  

 

겨우 도로에 올라선 뒤 지나온 강바닥을 한 컷. 

 

 

강바닥에서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 마르파를 떠난 뒤 총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라르중에 도착했다. 지도만으로 예측했을 때보다 1시간 이상 트레킹이 단축된 셈이다. 어차피 부담스러울 것도 없는 내리막길, 일부러라도 천천히 즐기며 가자면서 보속을 더욱 줄였다. 올라갈 때는 고산병에 걸릴까봐 일부러 천천히 걸었는데, 이제는 경치 좀 즐기자고 천천히 걷는 경지에 이르렀구나.

 

 

 

툭체 피크(6,920m)로 의심(?)되는 멋진 봉우리 아래 자리 잡은 사과 나무 가득한 작은 마을들을 지나다가 

 

 

<이 동네엔 아직 11월이 안 왔나 보다>

 

 

<라르중에 이르자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풍겨대는 따스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괜시리 풀만을 기다렸다 함께 가겠다는 핑계로 근처 한 롯지 식당에 들어섰다. 히말라얀 롯지였던가, 이 동네에 있을 법한 뭐 그런 평범한 이름이었는데 후줄근한 외관과는 달리 주문한 참치 샌드위치의 겉빵으로 말그대로 식빵! 이 나왔다. 하얗고 식감이 포근하니 부드러운 그 식빵 말이다. 한 입 물어보니 빵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기까지 하다. 놀라워라. 나 벌써 이만큼이나 내려온 거야? 이렇게 한 발짝씩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는거야? 

 

<참치 샌드위치 + 밀크티 작은 주전자 = 220루피>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던 라르중의 한 식당에서 문득 지.금. 여.기. 참 평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불행의 상대 급부라면,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행복이 아니라 평온일지도).

 

풀만은 그로부터 40 여 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중간에 아는 포터라도 만난 듯.

 

 

날이 더워지면서 김원장은 내복을 벗어 풀만에게 넘기고 다시 출발. 오전 10시 40분. 일찍 시작한 만큼 하루가 길어지는구나.

 

<쟤네들이 닐기리 삼형제였지, 아마?>

 

 

 

이 구간 풍경이 너무 멋져서 김원장을 자꾸 불러 세웠다. 잠깐 거기 좀 서 봐. 사진 한 방 찍게! 

김원장 무지 귀찮아 했다는.  

 

 

<당시 김원장이 귀찮아했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뿌듯하다는 ㅋ>

 

 

 

나는 그저 평온만 하려고 했는데,

 

 확,

 

행복해져 버리고 말았다.

 

 

라르중을 벗어난 뒤 가슴이 얼얼해지는 구간을 지나 Kokhethanti 로 가려면 아래와 같은 현수교를 이용해 칼리 간다키 강을 건너야 하는데 

 

 

지도를 보아하니 현수교를 건너 보이는 저 코너를 돌면 이제 닐기리 삼형제가 이렇게 제대로 안 보일 것만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김원장까지 세트로 담아 닐기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도하. 

 

 

현수교와 코케탄티 사이의 길지 않은 구간, 제법 많은 수의 트레커들을 만났다. 

그들이 오늘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마르파 쪽으로 올라가는 트레커들은 요 구간에서 다 만나는 듯. 

 

 

 

 

고도를 낮추면 낮출수록 눈에 띄게 나무들이 울창해지고 바닥엔 이름모를 풀들이. 풀아, 너까지 반갑구나.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칼라파니까지 이제 1시간 남았다.  

 

 

아침에 바람 불 땐 춥더니 계곡 안으로 폭 들어와서 그런가, 바람이 사라지고 나니 덥다. 나도 아까 김원장 벗을 때 벗을 것을... 땀이 난다.

 

<거기 산이 있거나 말거나 나는 관심 없다>

 

<헉, 닐기리와 안나푸르나가 한 컷에 담겨?>

 

칼라파니가 가까워지면서 길은 더더욱 좋아진다. 역시나 간사하게도 아쉬운 마음이 먼저.

하지만 곧 이성을 찾고(?) 반가운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간다.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인프라가 훌륭하겠구나. 

삼겹살이 기다리는 포카라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오후 12시 15분, 칼라파니(칼로파니) 도착.

 

 

마을에 들어서자 앞선 광고판을 통해 눈에 확 들어오는 숙소가 있어 그 곳부터 방문해 보았다.

 

  

명칭 : Kalopani Guest House (안나푸르나 커피숍과 안나푸르나 베이커리도 겸업) 

트윈룸 숙박비 : 700루피. 처음 이 가격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카트만두를 떠나온 이후로 이렇게 고가의 숙박비를 지불해 본 기억이 없어서 ^^; 때문에 잠시 갈등했지만 이미 이 집의, 아니 아마도 칼라파니에서 가장 좋을 방 구경을 하고나니 이후 다른 방들이 맘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 결국 지르기로 했다. 이 정도 시설이면 사실 카트만두의 그것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오히려 저렴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어쩌면 무의식 중 발현한 자기합리화였을런지도). 사실 트레킹 중 앞서 묵은 숙소들의 숙박비가 그 업소에서 식사를 한다는 조건 아래 비정상적으로 저렴한 것이었기도 했고. 

여하튼 그럼 이 숙소가 얼마나 좋았느냐. 화장실 변기에 비데가 다 있더라. 감격의 눈물 흑. (물론 변기에 장착된 최신식의 그것은 아니고 우리가 흔히 동남아에서 보는 변기 측면 별도의 매뉴얼 분사식 비데). 게스트 하우스는 여러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우리가 묵는 숙박동은 새로 올린 것으로 보이는 건물 2층으로 방도 화장실도 널찍널찍하고 온수 샤워기와 세면대 모두 반짝반짝하고 침구는 깨끗하고 전망은 끝내주고... 뭐 시설만 놓고 보면 정말이지 트레킹 최고의 숙소였다.    

 

<우리는 사진상 2층 맨 오른쪽 방에 묵었다>

 

<방으로 가다 보면 대략 이런 뷰>

 

 

<방에서 내다보는 안마당 뷰>

 

<옥상에 올라간 김원장>

 

<아흑, 이것이 바로 안나푸르나>

 

문제라면, 이 방을 택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깊은 고민을 끝내고 지르기로 결정을 내린 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직까지 우리의 짐을 가지고 있는 풀만이 나타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분명 라르중에서 1차 도킹에 성공한 바 있고 이후 우리 뒤를 곧 따라오겠다고 했는데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샤워기를 눈 앞에 두고 갈아입을 옷과 세면 도구가 없어 샤워를 못 하는 이 답답한 심정.

 

게다가 우리가 오늘 칼라파니 마을에서 묵을지, 아니면 더 걸을 지를 풀만과 아직까지 확실하게 결정내린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 풀만이 우리가 여기 묵기로 한 사실을 모른 채 지나쳐 버리면 그야말로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 몸은 샤워와 휴식을 절절히 갈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풀만이 이제 오려나 저제 오려나 목 빼고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엔 마을 구경 합네, 하면서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풀만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아예 마중에 나서 -_-; 왔던 길 다시 즈려 밟기.

 

 

 

<칼라파니를 지나가는 지프. 지금이라도 저 차를 잡아탄다면 트레킹은 그 즉시 쫑나겠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풀만에게 화가 막 날 즈음, 이거 혹시 우리가 못 본 사이 벌써 확 더 내려가 버린 건 아닐까 막 불안해질 즈음,

저~어기 멀리서 풀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려서 그런가, 무지 시간이 오래 지난 줄 알았는데 시계를 보니 우리가 칼라파니에 도착한지 약 1시간 가량 지난 시점. 하지만 평소 풀만의 속도를 고려해 본다면 오히려 우리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하는게 정상이지,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다. 알고 보니 다른 포터들과 어울려 내려오다 한 잔(?) 걸치기라도 했는지, 불콰하니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그 앞에서 투덜거리기도 그렇고. 일단 배낭부터 받아들고 샤워실로 후다닥 튀었다.

 

쏴아아아...

 

그래, 바로 이거야!

 

하루 종일 쌓였던 땀과 먼지와 함께 풀만에 대한 짜증도 씻겨 나가고.

 

자, 이제 본격적으로 배를 채워보자! 

 

 

어두컴컴한 실내보다는 안나푸르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안 마당에 마련된 테이블이 당연 훨씬 마음에 들어서 자리를 잡고

양고기 스테이크, 토마토 치즈 스파게티, 그리고 이 곳을 떠나면 분명 아쉬워질 사과쥬스와 스프라이트를 주문했다.

 

숙소에서 키우는 염소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바람에 깔깔대다 문득,

 

야, 여기는 꽃이 미친 듯이 피었다.

 

꽃이 피니 벌과 나비가 날고

또 그 놈들을 노린 도마뱀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분위기도 비주얼도 그리고 맛도 꽤 훌륭하구나.

 

 

하지만 진짜 맛있었던 건 후식용 초코케이크 한 조각. 이제 이런 것도 먹을 수 있는 칼라파니.  

 

 

 김원장은 밥 다 먹고도 이 자리가 좋은가봐.

 

 

아마도 이 분 때문에?

 

 

등 따스하고 배가 부르니 세상 부러울 게 없어졌다.

 

마음껏 광합성 하다가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자빠져서 다운 받아 온 일요다큐  시리즈 중 3편을 감상했다. 

  • 히말라야의 품, 안나푸르나(한왕용)
  • 영혼의 안식처, 안나푸르나(엄홍길)
  • 황혼빛 동행, 안나푸르나 푼힐 

안나푸르나 발 아래서 안나푸르나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는 재미. 들어나 봤나.  

 

그렇다고 흥미진진 몰입과 서스펜스 플러스 재미와 감동의 물결만 있었느냐.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엄홍길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김원장이 갑자기 방송에 나오는 뭔 패스를 넘어 안나푸르나 북쪽 베이스 캠프를 가보고 싶다고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헉.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막 계획 세우고, 이 무슨 테러란 말이냐. 이 쯤 되면 난 들어도 듣지 못 한 척으로 응수. 나는 소다. 내 귀에 대고 백날 얘기해 봐라, 내 절대 따라가나. 

 

다큐멘터리 3편에 어느새 안나푸르나에도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찍어도 찍어도 질리지 않았다>

 

저녁을 먹기 전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작은 전문 학교/직업 훈련소 같은 것을 발견했다. Dhawalagiri Technical School 이 그것으로 몇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략 아래 사진처럼 수의학을 비롯 롯지/호텔 매니지먼트, 요리, 관리법 등을 이수자들에게 가르쳐 주는 내용이었다.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동네 주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런 교육은 일견 바람직해 보였다.    

 

 

가벼운 마을 산책으로 달밤에 체조를 마친 뒤 식당에 들어서니 갑자기 어디서들 나타난 건지 한낮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트레커들이 드글드글하다. 보아하니 우리처럼 내려가는 사람들보다는 올라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부어라 마셔라 만들어내는 소란스러움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던 김원장, 다시 몇 마디 속삭여 온다.

 

<김원장표 히말라야 트레킹 팁>

 

1. 일찍 일어난다. 오전 6시 경이 좋다.

2. 아침은 간단히 먹고 남들보다 일찍 출발한다.

3. 목적지는 대략 12시에서 1시 사이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한다.

4. 12시쯤 도착하면 그 숙소에서 제일 좋은 방을 골라 묵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

5. 방 잡았으면 이제 맛있는 점심을 느긋하게 먹는다.

6. 오후 내내 편히 쉬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다음 날을 준비한다.  

 

기존에 이미 언급한 팁으로는 다음의 두 개가 있다.

 

1. 식당에선 음식을 짜지 않게 요리해 달라고 하자

2.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분의 담요부터 챙기자 

 

듣다보니 결국 남들하고 섞이지 않음시롱 본인은 챙길 것 다 챙겨가면서 조용하고 한가로운 트레킹을 하겠다는 속셈이다. 내 모를 줄 알고?

 

여하튼 아무리 눈 앞에 안나푸르나 뺨치는(응? 진짜 안나푸르난데?) 천하절경이 떡 버티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 식당 요리사의 실력이 미슐랭 저리가라 남다르게 빼어나다 할지라도, 적어도 하루 한 끼는 익숙한 한식을 먹어야 힘이 나는 나이. -_-; (비록 지금은 이렇지만 나에게도 삼시세끼 빵으로 한 달은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아, 옛날이여) 달걀 후라이, 맨밥에 뜨거운 물 주문해서 즉석 미역국 만들어 말아 먹고 삼양 사발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그래, 이 맛이야.  

 

안나푸르나의 서늘한 기운에 눌리기라도 했나. 일찍 잠을 청해 보았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영화 한 편을 더 봤다(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영화 내용이 기억 안 나더라. 검색해보니 한석규랑 차승원이랑 나오는 영화다. 포스터 보면서 한석규가 백발인걸 보니 악역이었나봐? 확신하고 클릭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래서 급우울해지려고 한다. 아, 물론 백발마녀전도 내용이 기억 안난다). 이제 예정대로라면 2~3일 내로 트레킹이 끝나고 포카라에 이르게 된다. 앞으로 남아 있는 그 며칠도 부디 오늘처럼만 행복했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늘만 같았으면 정말 좋겠다. 

 

응???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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