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맑음

@ 이동구간 : 토룽 페디(4,450m)-하이캠프(4,925m)-토룽 라(5,416m)-묵티나스(3,760m) / 966m 상승했다가 1,656m 하강

@ 총 소요시간 : 10시간(토룽 페디에서 토룽 라까지 올라가는데 순수 걸은 시간 4시간 15분, 토룽 라에서 묵티나스까지 내려가는데 순수 걸은 시간 4시간 5분)

 

(나로서는 당연히)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아예 깨어 있다시피 했다. 새벽 4시에 출발한다고 했으니 제발 잠 좀 자두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내 몸에 명령을 내리며 울타리를 뛰어넘는 양을 세어봤지만 그런들 도무지 잠이 와야 말이지. 이후 까무룩 선잠이 든 것도 같지만 결국 내 침대 오른편 창밖으로 불이 번쩍거리더니 풀만이 우리를 깨우러 오는 게 보인다. 얼른 일어나 방 안의 전등을 켜보니 약하게나마 불이 들어온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3시 30분. 일찍도 깨우러 왔군. 어, 우리 일어났어. 준비 마치는대로 나갈께. 가지고 온 옷이란 옷은 다 꺼내 잔뜩 껴입은 풀만이 알았다며 다시 식당 쪽으로 사라진다. 화장실에서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체내 수분 공급을 위해 김원장 몫의 한 잔을 제외하곤 밤새 식어버린 물을 마저 다 마신 뒤 침낭 속 김원장을 깨운다. 오빠, 시간 됐다. 김원장도 벌떡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간 밤에 잠을 푹 잔 것 같진 않은 얼굴이다. 우리도 풀만처럼 출발에 앞서 있는대로 옷을 다 껴입고 레이어드룩 차림으로 완전 무장을 하는데 미리 준비해 놓았던 내복을 입던 김원장이 하의는 걸을 때 걸리적거릴 것 같다며 일단 하의는 벗고 출발하겠다고 한다. 나머지 짐들은 이미 완전히 꾸려놓은 터라 풀만에게 넘길 배낭 어느 구석에 내복을 대충 쑤셔넣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다.

 

자, 출발하자.

 

문 밖을 나서니 칠흑같은 어둠과 살을 에일듯한 바람이 노출된 살을 찾아 쏙쏙 헤집고 들어온다. 손목 시계 버튼을 눌러 현재 기온을 측정해 본다. 영하 7.8도. 흠... 장난이 아니군. 오늘 하루,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나름 비.장.한. 각오가 선다. 그런데 이 어수선한 분위기는 뭔가? 새벽 4시가 가까워져오는 이 시각, 아래 내려다 보이는 롯지에서도, 우리 롯지에서도 토룽 라를 오르려는 트레커들로 인해 매우 부산스럽다. 모두들 머리에 하나씩 헤드 랜턴을 두르고 있어 번쩍번쩍 토룽 페디에 움직이는 별들이 한가득이다. 우리 옆 방 트레커도 벌써 모든 준비를 마쳤는지 먼저 출발길에 선다. 아마 어제 이 시각에도 이런 장관이 펼쳐졌을텐데 이런 소란을 전혀 못 느끼고 아침을 맞은 걸 보면, 잠이 오네 안 오네 하면서도 어젯밤엔 코마였나 보다. -_-; 

 

다른 포터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풀만에게 배낭을 맡기고 우리 먼저 숙소 정문을 나선다. 벌써 하이 캠프로 향하는 트레커들의 헤드 랜턴에서 만들어 진 빛이 마치 한겨울 야간 스키장의 그것처럼 지그재그 모양으로 길게 길 모양을 내고 있다. 움직이는 인간 가로등들이다. 일견 장관이다. 그런데 아래 롯지를 내려다보니 새벽 4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떠날 사람들은 대부분 다 떠난 모양인지 준비 중인 트레커가 몇 없는 모양새다. 우리 롯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뭐야, 우리가 꼴찌야? 새벽 4시도 늦은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잠 안 올 때 그냥 일찍 출발할 것을 그랬나봐...

 

거의 꼴찌로 우리도 오르막길 대열에 합류한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풀만 말로는 하이 캠프까지만 이런 급경사고 이후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진다고 했다. 걱정이 태산같은 나를 위해 김원장이 물이 담긴 배낭을 본인이 메는 것과 더불어 헤드 랜턴도 양보하겠다고 한다. 내가 헤드 랜턴을 머리에 두르고도 오르막을 오르다가 미끄러질 것에 대비, 김원장에 앞서 걷기로 한다. 하지만 몇 발짝 걷다보니 내 머리에서 전면을 향해 내뿜는 헤드 랜턴 빛이 뒤따라오는 김원장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더러 결정적으로 주변이 너무 어두워 내 미약한 불빛으로는 도무지 어디가 길인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나마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포터들이 나를 척척 앞서 나갈 때마다 옳다쿠나, 저기가 길인가 보다, 그들 뒤를 서둘러 따라가려 노력해 보지만 짐을 진 그들의 보속은 맨 몸의 내가 따라가기엔 너무 빠르다. 호흡이 절로 가빠진다. 안 되겠다. 결국 김원장에게 헤드 랜턴을 넘기고 우리가 밟아야 할 길을 김원장이 뒤에서 안내하기로 한다. 하지만 내가 앞서 걷고 있는 한, 안내자 역할을 맡은 김원장의 시야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어쩔 수 없이 김원장이 헤드 랜턴을 두르고 앞서가면서 길을 안내하되 최대한 내가 그 뒤로 붙어서서 김원장 뒤를 따르기로 한다. 역시 김원장이 길 안내를 시작하자 길을 잘 못 드는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 하지만 보폭이 나보다 큰 김원장을 딱 붙어 따라가기는 역시나 쉽지 않다. 어느새 헉헉대고 있는 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 잠시 쉬었다가 가자. 우리가 숨을 고르는 동안 우리를 지나친 모든 불빛이 저 앞선 어딘가로 사라지고 만다. 깜깜. 우리 아래로는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롯지의 불빛뿐, 움직이는 트레커들의 빛은 사라졌다. 이젠 정말 완벽한 꼴찌다. 헤드 랜턴을 하나만 가져온 것이 이렇게 후회될 줄은 정말 몰랐다. 헤드 랜턴을 각자 하나씩 두르고만 있었어도 본인의 페이스를 좀 더 잘 지키며 오를 수 있었을텐데... 

 

후회 막심 모드에 젖어있다가 깜짝 놀랐다. 그나마 번쩍거리던 인공의 모든 빛이 사라진 뒤 바라본 눈 높이의 하늘엔,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우와, 이렇게나 수많은 별들이라니. 이렇게나 쏟아질 듯 별을 많이 본 적은... 가장 최근이 아마 파키스탄 낭가파르밧에서 야영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손에 잡힐 듯 별똥별들이 마구 떨어지고 소원 비는 것을 놓쳤다고 아쉬워하며 잠시 그 아름다움에 젖긴 했지만 차가운 바람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렇게 꼴찌로 올라가다가는 토룽 라에서 산사태를 만난다구. 게다가 김원장은 출발 당시 내복을 벗어두고 온 것에 대해 벌써부터 무지 후회를 하고 있다. 에공, 그러길래 왜 내 말 안 듣고...

 

차라리 안 보여서 그만큼 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던 급경사 오르막길이었다. 아마 밝을 때 걸었다면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후들거리며 올랐을 성 싶다.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물이 생각났다. 결국 세상만사 일체유심조란 말인가? 때아닌 원효대사를 생각하며 얼마나 더 올랐을까. 어느덧 경사가 완만해지는 듯 싶더니 갑자기 넓게 펼쳐진 분지같은 지역이 나타나고 저 앞에 아득히 반짝거리는 하이 캠프가 보였다. 고새 추위에 많이 떤 김원장은 하이 캠프에서 풀만을 만나 다시 내복을 입어야겠다는 생각 뿐이더라(아닌게 아니라 나 역시 엄지발가락과 스틱을 잡은 양 손가락들 모두에서 얼얼한 느낌이 올라오고 있었다.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도) 올라오는 길에 풀만이 우리 지나갔어? 안 지나갔어? 워낙 어두운 길이었고 포터들은 그 미끄러지는 급경사를 없는 길 만들어가며 척척 올라가는 모습을 봐왔던 터라 둘 중 누구도 확실하게 답하기 어려웠다. 이제 길도 완만해졌겠다, 하이 캠프가 만들어 내는 불빛에 바닥도 보이겠다, 바들바들 떠는 김원장부터 제 페이스대로 가 먼저 풀만을 만나게 냅두고 나는 내 속도로 보다 늦게 하이 캠프에 이르렀다. 오전 5시 15분 하이 캠프 도착. 높은 곳에 위치할수록 롯지가 열악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크고 좋은 곳이었고 이제 이렇게 심한 경사의 오르막 구간이 더 이상 없을거라는 생각에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기분이 한결 나아졌던 것 같다.  

 

 

먼저 도착한 김원장 말로는 풀만이 여기 없단다. 하이 캠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런 중요 경유지에서는 항상 기다려줬던 풀만인데... 그렇담 아직 풀만이 안 올라온 걸지도 몰라. 우리는 풀만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바깥보다는 분명 따뜻했지만 걸음을 멈춰서 그런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식당 안도 어느새 춥게 느껴졌다. 밀크티를 한 잔씩 시켜놓고도 손발을 부들부들 떠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한 테이블에 모여있던 포터들이 우리를 불렀다. 그들 자리로 가보니 흐흐,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아래로 작은 난로가 있더라. 그들이 히히덕거리며 나누는 이야기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배려 덕분에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얼어붙은 손발 맛사지 좀 해 두자구.

 

풀만은 우리가 차를 다 마시고도 제법 시간이 흐른, 우리가 하이 캠프에 도착하고도 약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나타났다. 아무래도 우리가 못 본 새 우리를 지나쳐갔다는 쪽으로 심증이 거의 굳을 무렵이었다. 아마 다른 포터들과 어울려 있다가 토룽 페디에서 늦게 풀발을 한 모양이었다. 하이 캠프 식당에는 아직 몇 트레커들이 남아 있었지만 출발부터 늦은데다가 풀만을 기다리느라 다시금 많이 뒤쳐진 우리로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김원장이 내복 하의를 꺼내 입자마자 토룽 라를 향해 다시 오른다. 오전 5시 45분. 이제야 주변 윤곽이 눈에 조금씩 들어온다.  

 

 

하이 캠프를 뒤로 하고 태양과 함께 히말라야에 오른다. 하이 캠프에 하루 묵으면서 누군가는 일출의 장관을 보기 위해 근처 산으로 올라간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오늘 여정의 목적이 일출 구경이 아니더라도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온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주변이 빠르게 밝아져 오는 듯 싶더니 어느새 환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길은 어느새 눈으로 군데군데 덮여있다>

 

<포터들 너머로 가야할 길이 보인다>

 

 

하이 캠프를 떠난 뒤 30분 정도 걸었을 때 반갑게도 김원장이 궁금해하던 우크라이나팀이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동안 가까워질듯 말듯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그들이 결국 우리에게 따라잡혀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데 성공한다. 어제 숙소에서 기다릴 땐 안 보였는데... 아마 어디선가 만남이 어긋난 모양인데 결국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덩치가 작은 아저씨는 쌩쌩해 보이는데 반해 덩치가 큰 아저씨는 좀 힘들어 보인다. 그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트레일을 진행하다 결국 작은 찻집에서 함께 쉬는 시간을 갖는다. 신기하게도 이런 곳에 찻집이 다 있네! (하이 캠프를 떠난 뒤 1시간 지점) 간판에 게스트 하우스라고 쓰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여차의 경우에는 하룻밤 신세를 질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문득 덩치 큰 아저씨가 김원장 걱정을 한다.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배낭속에 안 입는 옷이 있는데 김원장에게 입혀야겠다며 꺼내든다. 나나 김원장이나 비슷하게 껴입었는데 나는 그럭저럭 참을만 한데다가 앞으로 고도가 올라가면서 더 추워질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정작 아저씨 본인이 필요로 할지도 모르는 옷을 무턱대고 받아입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김원장은 여전히 추웠나 보네. 고맙다며 받아 입는다 ^^; 내가 다시금 아저씨에게 걱정의 뜻을 피력해 보지만 아저씨는 이미 옷을 충분히 입고 있고 남은 옷은 절대 입을 일이 없다며 기꺼이 김원장에게 양보하겠단다. 오히려 나보고도 또 다른 옷을 더 입고 가라며 꺼내줄 기색이다. 이거 참. 고맙고도 미안한 노릇일세. 너무 고마워서 그들이 마시는 차값까지 우리가 지불하기로 한다(고도에 따라 비례하는 밀크티값. 여기선 잔당 100루피를 받는다). 덩치가 워낙 큰 아저씨의 옷이라 얻어입은 티가 팍팍 나지만 그래도 김원장은 충분히 기뻐한다. 역시 우크라이나팀이라나. 그동안 몇 번이고 우크라이나팀 소식을 궁금해하더니 오늘 이런 인연을 맺으려고 그랬나보다.     

 

<우크라이나 아저씨의 파란 점퍼 하나를 얻어입고>

 

찻집에서 약 15분간 쉬다가 오전 7시, 다시 길을 떠난다. 우크라이나팀은 좀 더 쉬다 오겠다고 한다. 오케이, 토룽 라에서 다시 만나자구. 풀만 말대로 하이 캠프를 떠나온 뒤로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사가 완만한 덕에 오르기가 한결 쉬워졌다. 물론 주변도 훤~하고 ^^

 

 

 

 

  <간혹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흐미~ 멋진 풍경이 우리를 맞는다>

 

 

<김원장과 써티의 그림자 인증샷. 토룽 라 오르는 중>

 

 

 <다시 뒤를 돌아다 본다>

 

 

 

 

 

 

<또 뒤를 돌아보고>

 

 

 <눈 덮인 측면도 바라봐주고>

 

  <김원장 눈에 나 담기 설정샷까지. 흠... 아무래도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기운이 넘쳐났던 듯 ^^;> 

 

<언제부턴가 뒤따라오던 우크라이나팀이 아예 안 보인다>

 

 

 

다시 걷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저~ 앞에서 풀만이 우리에게 거의 뛰어오다시피 내려오고 있다. 어, 맨몸이네? 말로만 듣던 포터의 막판 서비스인가 보다. 트레커보다 토룽 라에 먼저 이른 포터들이 짐을 토룽 라에 내려놓고 트레커들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내려온다고 하더니. 풀만 역시 김원장이 지고 있던 작은 배낭마저 빼앗아 들고 성큼성큼 앞서 걸어간다. 풀만이 되돌아 온 것을 보니 이젠 정말이지 토룽 라가 멀지 않다는 얘기렸다! ㅎㅎㅎ 엇, 그러고보니 그 가방 안에 우리의 모든 중요 물품이 다 들어있는데? 여권이며 비행기표며 환전해 둔 돈이며 남은 모든 여행 경비와 신용카드까지 전부 들어있는 복대도 풀러서 배낭에 넣어두었던 기억이 이제야 난다. 풀만~ 풀만~ 얼른 풀만을 불러 세워서 풀만 몰래 복대만 쓰윽 꺼내 내 상의 앞 주머니에 캥거루마냥 쑤셔 넣는다. 김원장은 해발 5,000m가 넘는 여기서 포터가 가방 들고 날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나를 구박하는데, 나 역시 일을 저질러 놓고도 이런 행동을 한 내 자신이 정말 부끄럽다. 좀 전까지 세상의 모든 걱정을 짊어지고 있던 나는 어디가고 좀 살 만하니까 금방 돈 때문에 이리 쩔쩔매나 싶어서. 이런 쇼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거나 풀만은 다시 산길을 훨훨 날아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드디어,

저 앞에,

룽다가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 참고로 룽다란 5가지 색의 천에 불경을 적어 넣은 티벳식 깃발을 말한다.

티벳을 여행하다보면 바람 잘 부는 고갯마루마다 룽다가 펄럭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처음에는 휘날리는 룽다를 보고도 저 곳이 토룽 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온 고개들처럼 또 하나의 큰 고개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간 때문이었다. 아직 오전 9시가 채 안 된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롯지에서 거의 꼴찌로 출발하다시피 한 우리로서는, 비록 하이 캠프에서 출발한 이후 몇 팀을 따라잡긴 했어도 거의 후진 그룹에 속해 있었으므로 이렇게 이른 시각에 토룽 라에 도착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하지만 풀만도 벌써 토룽 라에 배낭을 부려놓고 우리에게 다시 다녀간 참인데다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룽다들의 규모가 여느 때와는 다르게 화려함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저 곳이 바로 오늘의, 아니 지난 11일을 통틀어 최고점인, 전세계에서 사람이 걸어서 넘나드는 고개 중 가장 높다는, 토룽 라임을 절로 깨닫게 되었다.

 

 

<야, 토룽 라다, 토룽 라야!>

 

 

<2009년 11월 11일 오전 9시, 토룽 페디에서 별 보고 길을 나선지 5시간 만에 드디어 해발 5,416m 토룽 라에 이르다>

 

우선 즐거운 기념 촬영이 이어지고, 

 

 <절대 합성 아님 -_->

<풀만, 고마워~> 

 

내려갈 걱정은 잠시 잊은 채 드디어 토룽 라에 무사히 오른 사실에 대해 감격에 겨워 흥분 모드로 마구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의 그 귀중한 미니 배낭은 흙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더라 ㅋㅋ

 

 <이 역사적인 순간, 토룽 라 고갯마루의 찻집에서 한 잔 안 할 수 없지>

 

 

<찻집 내부에도 선명한 5,416m. ㅎㅎ 이 기특한 것(셀프 칭찬중 ^^;)>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토룽 라에서는 밀크티 한 잔에 120루피. 역시 사상 최고가. 카트만두에선 7루피에 마셨던 터다>

 

고도 측정이 가능한 손목 시계를 들여다 보니 역시나 기록이 깨졌다. 가장 최근의 최고 높이는 예전에 티벳 카일라스를 여행할 때 넘었던 5,050m. 6년 전 당시에는 차량을 이용했었고 이번엔 걸어서라는 게 가장 큰 차이점 되겠다(반대로 여행 중 가장 낮은 지점은 몰디브에서였다. 아예 해저로 찍힘 -_-;). 아, 정말 뿌듯하다, 뿌듯해.  

 

<찻집 정면에 위치한 봉우리. 풀만 찬조 출연>

 

약 20분간 토롱 라에서 뿌듯한 시간을 보낸 뒤 이제 그만 내려가기로 한다. 지난 11일간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온 일을 생각하면 토룽 라에서 하룻밤 퍼질러 자도 부족하겠지만, 사실 이 고도에서 오래토록 머무는 일이 우리 몸에 좋을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묵티나스까지 앞으로 내려갈 일도 까마득하지 않은가(참고로 토룽 라를 넘는 것으로 마낭권역을 벗어나 묵티나스권역으로 행정 구역도 바뀐다). 결정적으로 어제 점심 이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 한 우리, 어쩌면 어떤 트레커들처럼 늦은 밤까지 주린 배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걷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쉽지만, 이만 안녕해야지. 이제 그만 하산할 시간. 풀만, 우리 먼저 내려갈께. 이따 다시 만나~

 

토룽 라, 안녕~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는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가장 극적이라 여기는 구간이 바로 토룽 라를 넘어 묵티나스에 이르는 구간이라고 한다. 토룽 라를 경계로 묵티나스권역으로 넘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광경이 이전까지의 풍경과 확연히 달라지면서 너무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라는데, 그런 연유로 우리 역시 토룽 라를 넘어서는 순간 자못 기대를 해왔더랬다. 과연 어떤 깜놀 풍경이 펼쳐져서 우리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라나...

 

 흠...그런데 이게 뭐야. 이 풍경은...

 

좀 티벳스럽잖아!

 

그랬다. 물론 티벳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소문대로 지나온 네팔 히말라야의 풍경과는 확실히 다른, 그리고도 눈부실만큼 멋진 풍경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티벳삘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지리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을런지도...) 뭐 이 풍경은 앞으로도 계속 사진 배경으로 등장할테니까 차차 확인해 보는 것으로 하고(사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내리막길 걱정에 다시 빠져들기 시작했으므로 더 이상 왈가왈부할 여유가 없었다나 뭐라나). 

 

<얼마간 내려오다 뒤돌아 보니 어느새 토룽 라가 코딱지만하게 저 멀리 물러섰다>

 

<길이 잘 안 보이는 곳에선 막대를 찾아야 한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토룽 라를 넘어 묵티나스를 향하는 길 초반은 순조로운, 즉 절대 험하지 않은 내리막길이었다(내가 내리막길이 미끄러울까봐 잔뜩 겁을 먹으니 김원장이 선글래스도 안 흘러내리는 것으로 다시 바꿔줬는데 그 배려가 무색하게 말이지). 일단 전 구간에 있어 가장 높은 지점을 지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담은 한결 덜었고, 이제 고도를 낮추는 일만 남았으니 앞으로 고산병에 대한 걱정도 접어둘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정면에 펼쳐지는 장관속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도 좋았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오늘의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나를 기쁘게 했다. 그야말로 혈중 엔돌핀 농도가 팍팍 상승 중이었다고 할까. 

 

그러다 놀랍게도 소문으로만 듣던,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라운딩을 하고 있는 트레커들을 만났다. 처음 만난 나홀로 트레커는 일본 남성으로 보였는데, 안 그래도 몇 년전엔가, 일본인들 둘이 토룽 라를 반대 방향(즉 묵티나스에서 토룽 페디 방면)으로 넘다가 고산병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잠시 내 처지도 잊고 남 걱정을 하게 되더라(묵티나스에서 토룽 라를 오를 경우 우리와는 반대로 하루에 고도를 1,700m 가량 높여야 하므로 그만큼 고산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를 보낸 뒤 얼마 안 있어 유러피안으로 보이는 혼성 트레커를 또 만났는데, 아마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새벽별 보며 묵티나스를 출발해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겠지만, 이미 시각은 오전 10시를 넘어선 터라 토룽 라에 무사히 도착한다고 해도 또 걱정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 만난 그 수많은 트레커들 중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던 트레커는 딱 이들 셋 뿐이었는데... 모두 무사히 넘어갔기를 바래본다.       

 

 

 

얼마간 신나게 내려오고 있는데 갑자기 김원장이 두통을 호소한다. 엥? 우린 지금 내려가고 있는데? 본인 말로는 토룽 라에서 차를 마실 때부터 전조증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왜 이 시점에서 두통을 앓는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혹시 이것도 고산 증세의 일종일라나? 

 

 

서로 망 봐주며 한 번씩 노상방뇨를 하고 -_-; 한동안 끝없는 내리막길을 밟아 내려오던 중 오늘 길 떠난 이후 내내 추위와 싸우며 괴로워했던 김원장이 이제는 덥다며 우크라이나 아저씨가 빌려준 겉옷을 벗어 든다. 둘둘 말아 배낭에 끼워 고정하고 다시 출발. 아까까지는 긴장해서 그런지 잘 몰랐는데 슬슬 배가 고파오는구나. 이제 둘 다 살만하다 이거지?

 

 

 

 

<크게 커브를 돌고난 뒤 다시 뒤를 돌아보니 내려온 길도 까마득>

 

 

시간이 흐를수록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아무리 멋진 경치라도 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못 하는구나,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야, 아쉬워하고 있는데 헉, 이런 나의 배부른(?) 투정을 단칼에 내동댕이치는, 꽤나 오랜 동안 이어지던 완만한 내리막 구간에 방심하고 있던 내 뒤통수를 갑자기 크게 후려치는 급경사 내리막길 등장.  

 

- 뭐해? 괜찮아, 괜찮아.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두고 그냥 턱턱 걸어 내려가봐. 절대 안 미끄러져!

 

김원장의 응원(?)이 "미끄러져도 안 죽어!"로 들리는 환청. 김원장이 어떻게 꼬셔대도 절대 김원장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1인 여기 있소! 그러나 김원장은 김원장대로 점점 심해지는 두통 탓에 내 징징거림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아휴, 큰일났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안 내려갈 것도 아니잖아(토룽 라로 돌아갈래? -_-;).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결심을 굳힌다.

 

- 잠깐, 여기 사진 한 장만 찍고 출발할께. 오빠가 앞서 가되 내가 미끄러질 때를 대비해서 절대 나보다 너무 빨리 가면 안 돼!

 

 

 

사진기, 앞 주머니에 잘 담아두고 열 개의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양 손아귀 힘 꽉, 스틱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는 양팔을 엉거주춤 벌린 뒤 거의 미끄러지듯 내려가기. 우려했던 대로 길은 무지 미끄러웠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내 보기에 여기서는 혹 넘어지거나 굴러도 뼈가 부러질 만한 구간이 아니었기에 까짓것 찰과상은 아무리 심해도 개길 만하다 끝없이 세뇌하며 발을 디뎠다. 엄마야, 비명 몇 번과 함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 구간이 끝나 있었고. 발발 떨던 나와는 달리 여유있게 내려가던 김원장이 오히려 한 번 크게 넘어질 뻔 했던 것을 제외하면, 우리 둘 모두 무사히 해당 구간 돌파. 어찌나 긴장을 하고 내려왔는지 다리가 후덜덜.

 

 <돌파뒤 한 컷 더. 사진상으로는 그다지 심해보이는 경사가 아니지만 실제로는 열라 무서웠다는 -_-;

우리는 정면에 보이는 언덕과 좌측에 보이는 봉 사잇길로 내려왔다>

 

한 번 심한 경사의 내리막을 돌파한 뒤에는 다시 진정된 코스. 그러나 급격히 고도를 낮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원장의 두통은 심해져만 간다. 안 되겠다, 괜찮은 장소가 나오면 좀 쉬었다 가자.   

 

<드디어 풀들이 자라는 곳까지 내려왔나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방목 중인 현지인들이 나타났다.

흑, 반가움의 눈물. 이제 사람 사는 곳이 멀지 않았구나

(이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아직도 한참 내려가야 되더라 -_-)>

 

<심한 두통으로 인해 거의 맛이 간 김원장, 타이레놀 복용>

 

어느새 풀만이 우리를 따라잡아 우크라이나 아저씨의 점퍼도 풀만에게 들어달라 부탁한다. 10여 분 가량 휴식을 취해도 김원장의 두통은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하니 이거 큰일이네. 나는 좀 전의 급격한 내리막길을 내려온 이후로 다리가 풀리는 등 -_-; 현저히 떨어진 체력 때문에 좀 더 쉬었다 갔으면 좋겠는데, 김원장은 최대한 빨리 내려가서 좀 누워야 두통이 가라앉을 것 같다고 한다. 에고, 절대 안 떨어지려고 하는 엉덩이를 겨우 들어 다시 고고씽. 다리가 풀린 탓에 별 경사 아닌 곳에서도 몇 번이고 미끄러져 넘어질 뻔 하면서 내려간다.  

     

 

 

비틀거리는 와중에 또 한 번 룽다가 휘날리는 지점이 등장해 다시금 인간의 흔적을 만나 기뻐하고 있는데(물론 이번에도 낚였다. 사람 사는 묵티나스는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 전망 좋은 지점에서 홀로 가부좌를 틀고 계신 한국팀의 리더 아저씨를 뵐 수 있었다. 어, 그 분이다! 오늘 하루 다른 한국분들은 보지 못했으므로 아마도 다른 팀원들은 이미 하산하시고 리더분만 남아 풍경을 즐기시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드릴까, 하다가 옆에 가보니 눈을 감고 계신터라 아마도 명상을 하시는 것도 같아 살짝 자리를 피해 드렸다. 역시 3번째 오신다더니 이런 뷰 포인트도 꿰고 계시는군. 게다가 명상까지. 후들거리는 우리랑 비교하니 역시 급이 다르시다. 뭐 지금 이렇게 헤어져도 다시 묵티나스에서 뵙게 되겠지. 그 분을 남겨놓은 채 우리는 계속 갈 길을 간다.  

 

<누가 뭐래도 탁월한 풍경이긴 하다. 세상 어디서 이런 광경을 또 볼 수 있을까> 

 

 

<토룽 라를 떠난지 거의 3시간. 드디어 "건물"을 발견하다!!!>

 

<12시 10분. 해발 4,200m에 위치한 롯지 두 개를 만났다. 근 3시간 동안 1,200m 정도 내려온 셈>

 

다리도 너무 아프고 배도 무척 고팠지만 정작 준비 되는 음식은 몇 개 안 된다고 하더라. 주문하기도 전에 김원장은 딱딱한 긴 의자 위에 누워 뻗어버리고 나는 가능하다는 메뉴에서 최대한 그럴 듯한 것을 조합해 초코 팬케이크, 오믈렛, 환타를 부탁했다. 갈증이 심할 때마다 나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환타 오렌지. 가족끼리 운영하는 듯 보이는 식당에서 딸(?)이 달걀 몇 개를 어디선가 얻어오더니(?) 달걀 들고 왔다갔다 하길래 화장실도 물어볼 겸 그녀를 따라 부엌에 들어갔다가 깜놀.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다면 먹기 어려울 수준의 위생을 자랑하는 -_-; 그 집 부엌. 

 

참고로 화장실을 물어보니 당연히(?) 없다더라. 저 아래(?)로 내려가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듯한 몸짓에 뻗어있는 김원장을 억지로 일으켜 보초를 세워야 했다는. 이럴 땐 정말이지 남자가 부러워. 앞으로는 화장실 문제 해결되는 데스티네이션만 골라 여행을 하던지 해야지, 어쩜 나는 가는 나라들마다 화장실이 이 모양이냐.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하려는데 아까 명상 중이시던 그 한국팀 리더분이 내려오시더라. 반갑게 인사로 맞는데 어쩐지 좀 이상해 보이신다. 아닌게 아니라 당신 본인이 오늘 고산병에 걸리셨다네. 때문에 다른 팀원들에 비해 속도가 너무 쳐질 수 밖에 없었는데(여성 두 분은 아예 말을 타고 넘으셨으니까) 본인 하나 탓에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서 모두들 먼저 내려 가시라고 하고 본인은 포터 한 명과 함께 힘들게 내려오고 계셨단다. 알고보니 아까 그 곳에서도 명상 중이 아니셨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비몽사몽이었다고. -_-; 뭐야, 그러셨던 거였어? 안색이 너무 안 좋아보여서 좀 더 쉬었다 가시라고 권했더니 이제 많이 내려왔으니 괜찮을 것 같다며 가던 길을 계속 가시겠다고 한다. 조심하세요~ 보내드리고 우리는 허무히 웃는다. 차라리 자랑이나 말으실 것이지.     

 

배는 많이 고팠지만 음식 수준이 너무 poor했고, 지도를 보니 이 롯지가 위치한 Champarbuk은 아무리 지도가 정확하지 않다고 해도 잘 봐줘야 겨우 하산길 중 반 정도 밖에 내려오지 못 한 지점이더라. 너무 많이 먹고 움직이면 더 힘들 것 같아 일단 간에 기별만 가는 수준에서 섭식을 멈추고 어두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내려가기로 했다(나중에야 알았다. 지도가 틀렸다는걸 -_-;)

현재 시각은 12시 45분, 끙, 하고 힘겹게 일어나 다시 발길을 옮기려는데 우리가 먹었던 식당 바로 아래 식당 야외석에서 아예 병든 닭 버전으로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그 리더분을 다시 목격한다. 그렇게 괜찮다며 먼저 가시겠다더니 몇 m 앞에서 다시 뻗으셨네. 고산병, 절대 사람 봐가며 오지 않는, 참 무서운 놈이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      

 

<길은 다시 이어지고> 

 

 

<드디어 묵티나스 방향을 알리는 갈림판 표지판 등장! 우리는 묵티나스쪽으로 얄라!> 

 

<어느새 인공물이 더 반가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묵티나스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가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

 

 <간만에 만나는 노새들의 행렬도 반갑다. 근데 쟤네들은 어딜 올라 가는거지?>

  

<웰컴 투 묵티나스. 감격+감동> 

 

<묵티나스로 진입하는 김원장> 

 

 

 

오후 2시, 지도상에서나 존재하던 묵티나스에 실제로 내 두 발을 디뎠다. 해발 5,416m의 토룽 라를 넘어. 그것도 한번도 안 넘어지고. (다시금) 이 기특한 것 같으니라고. ㅎㅎ

 

묵티나스는, 지금까지의 상상과 그 발음에서 막연히 풍겨나는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번화(?)한 모습이라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집들이 흩어져 있어서 그런가, 마낭보다 커 보인다), 지나온 마을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탈 것이 있다는 것. 그렇다. 묵티나스에는 오토바이와 4륜구동 지프가 있었다. 그것들이 헬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와 묵티나스 상공에서 뚝 떨어졌을리는 만무하니 그 이야기는 바로 차가 지나올만한 도로가 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담 이 도로는 어디로 이어지겠는가? 그렇다. 이제 토룽 라 아랫마을 묵티나스에서는, 당신이 원한다면, 포카라까지, 아니 카트만두까지도 차를 타고 오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맙소사. 이제부턴 탄탄대로(?)가 펼쳐지겠구나! (반대편에서도, 즉 방금 넘어온 토룽 라 너머 우리가 며칠 전 지나온 마낭까지도 차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몇 년 뒤 안나푸르나 라운딩에 도보로만 디딜 수 있는 구간은 극히 일부로 줄어들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나푸르나 라운딩의 시작점은 해발 760m의 '베시 사하르'라고 했지만 올해 네팔에 도착해보니 이미 1,100m의 샹게까지 도로가 건설되어 - 비록 현재 산사태로 인해 보수 중이지만 - 산길이 그만큼 사라졌는데 3,540m의 마낭까지 차가 다닌다면 그 때는... 에효!). 두번째로 놀라운 점은 전봇대. 하긴 도로가 나 있는데 그깟 전봇대가 대수랴마는. 여하튼 이제 전봇대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차가 다닐만한 도로와 마찬가지로 이 전봇대 역시 이후 남아있는 일정 끝까지, 내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절대 반가운 동행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내 평생 전봇대 곁에 안 두고 살아온 날보다 이렇게 전봇대 옆에서 끼고지고 지내온 날들이 수천 수만배 많을텐데. 새삼 지나온 며칠, 전봇대가 없었던 그 며칠이 더욱 귀한 경험처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세번째 특이점은, 호객하는 상인들의 존재. 묵티나스는 우리 같은 다국적 트레커들에게 유명하기에 앞서 이 동네 불교도와 힌두교도들에게 이름난 성지로, 매년 상당수의 순례자들이 (일부 구간을) 걸어서 (혹은 말이나 차를 타고) 찾아오는 곳이다. 당연히 이런저런 노점/상점이 발달(?)했고 상인들도 (간만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 이 점은 숙소도 예외가 아니어서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 묵티나스로 입성하던 우리 역시 이런 호객꾼에 이끌려 숙소를 잡게 되었다.  

 

 

명칭 : Hotel Bob Marley (뭐지? 히말라야 한복판 호텔의 이름이라하기엔 좀 뜬금없는) 뿐인가? 라스타 레스토랑과 레게 바까지. 

트윈룸 숙박비 : 350루피 (화장실 딸린 방) 화장실이 넓긴 하지만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찬물 공급도 원활치 않아 변기 말고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찬물이 잘 나오는 공용 화장실이 코 앞에 위치해 있긴 하다). 묵티나스 계곡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창이 두 면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마음에 든다.

샤워실 : 층마다 순간 온수기가 달린 공용 샤워실이 있다. 온수기는 가스(?)로 작동하는데 창문을 열어놓지 않고 샤워하다가는 중독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할 것. 

특이사항 : 겉보기보다 안쪽으로 규모가 있는 숙소로 2층 식당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다. 트랜스젠더스러운 호객꾼을 따라 처음 이 숙소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이 트랜스젠더로 보이는 직원도 특이했다. 태국에선 이런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네팔에선 처음이라서) 남아있다며 보여주는 방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처음 방은 너무 좁은데다 화장실도 없고 두번째 방은 넓고 화장실이 있는 대신 레게 바가 있는 홀과 가까워 시끄럽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는 높고 높은 토룽 라를 넘어온 뒤라 넘치는 호강을 누릴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두 방 모두 거절하고 나와 묵티나스의 다른 숙소 사냥에 나섰다. 다리도 아프고 몸도 많이 피곤했지만 무엇보다 김원장의 마음에 쏙 드는, 거사를 치룬 우리의 모든 노곤함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멋진 방을 찾는 일이 더욱 중요했기에.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분명 우리가 토룽 라에서 내려올 때 우리 뒤로도 꽤나 많은 트레커들이 남아있는 것을 목격했는데, 묵티나스의 숙소 대부분에 빈 방이 없었다. 모두 Full! (나중에야 알았는데 내려올 트레커들이 미리 예약을 해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보다 반대 방향에서 묵티나스 자체를 최종 목적지로 삼아 오는 성지순례팀+트레커들이 꽤나 많았던 탓이었다) 이러다간 오늘 아예 방을 못 잡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아서 쪽팔리지만 얼른 Hotel Bob Marley로 돌아와 그냥 큰 방으로 예약했다.      

 

 

(마음엔 썩 들지 않아도) 이제 두 발 뻗고 누울 방을 잡았으니 맘 편히 배도 채울 차례. 식당에서 토마토+양파+치즈 샌드위치와 뜨거운 물을 주문하여 김치 사발면 특식까지 나름 완벽한 식탁을 차렸으나 김원장은 라면 몇 젓가락 뜨더니 도저히 못 먹겠다며 뻗어 버린다. 아직도 두통이 가라앉질 않는다며 괴로워만 하네. 혼자 배터지게 먹은 뒤 ^^; (샌드위치와 딸려나온 감자튀김 모두 훌륭했다) 김원장보고는 좀 쉬고있으라 하고 나는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샤워에 도전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룰루랄라. 이 숙소는 24 Hours Real Hot Shower라 선전하는 곳~ 그러나 두 개의 샤워실은 먼저 온 트레커들 차지였고 이럴 때면 또 줄을 잘 못 서서 나중에 온 애가 먼저 들어가고 결국 복도에서 제법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되었지만 들어가 옷 다 벗고 물 틀어보니 뜨거운 물이 찔끔 나오다 말아버리네. 젖은 몸은 덜덜 떨려오는데 더 이상 소식은 없고 결국 다시 축축한 몸으로 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가 트랜스젠더에게 호소하고 트랜스젠더가 보내준다는 수리 담당 직원은 오지를 않고 다시 한 번 트랜스젠더에게 찾아가 짜증내고 뒤늦게 나타난 직원은 가스 온수기 고친답시고 시간을 질질 끌더니 결국 당분간 이 샤워실은 못 쓸 것 같다며 다른 층 샤워실을 쓰라고 하네. 그새 그 샤워실 대기하는 애들은 늘었는데. 몸이라도 쌩쌩했음 덜 화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이래저래 짜증이 이빠이 날 수 밖에. 결국 기다리고 기다려서 샤워실에 들어갔을 때는 안팎으로 매우 지친 상태. 그 바람에 샤워실 환기를 잊어 발가벗은 채 가스 중독으로 바닥에 쓰러질 뻔 하기 까지. 

 

그래도 머리 감고 샤워하니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날아갈 듯한 기분. ^^; 아아, 나는야 깨끗해졌다네~♬ 그러나 방으로 돌아오니 화를 풀 대상, 즉 나 없이 혼자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김원장, 숙소가 시끄러운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추운 것도 짜증나고 머리가 아픈 것도 싫고 아까 몇 젓가락 뜬 라면이 소화가 안 되서 거북하고(결국 소화제 찾아 먹이고) 해가며 주변의 모든 대상에 본인이 아는 온갖 욕을 퍼붓고 있다. -_-; 보다 못한 내가 씻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테니 샤워를 하고 와라 권했는데 나갔다 오더니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나, 아직 고장이 해결 안 됐다나 하면서 더 투덜거리면서 재등장. 아아... 다시 고산병에 걸린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결국 숙소 안에 있는게 마음에 안 드니 산책을 나가자고 해서 끽 소리 못 하고 아픈 다리를 끌고 다시 묵티나스를 좀 돌아다녔는데 그러던 중 작은 로컬 가게에서 사과(개당 2루피. 완전 착한 가격)랑 물(1리터가 80루피)을 사고 돈을 지불하니까 할줌마가(아줌마와 할머니 중간쯤 되신 분) 투제체~ 답하시더라. 헉, 티벳말 아냐? (=thank you) 역시 묵티나스는 티벳권. 그리고 나는 티벳말도 히어링이 되는 멋진 여인 ㅋㅋ  밖으로 나선 김에 숙제도 해치워야지, 했는데 여기서 숙제란 바로 우크라이나 아저씨께 점퍼 돌려드리기. 토룽 라를 넘기 전 찻집에서 옷을 빌린 이후로 묵티나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먼저 내려온 건 100% 확실한데, 문제는 묵티나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큰지라 길에서 못 만난다면 과연 그 분들의 숙소를 찾아낼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 저~어기 토룽 라 방향을 바라보니 벌써 슬슬 해가 기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체 왜들 안 내려오는거야? 이러다 오늘 못 만나면 어떡하냐?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 그 사람들 출발하기 전에 묵티나스 모든 숙소를 다 뒤지고 다녀야 하는 거 아냐? 불안불안.

얼마간 기다리다 길 위에서 기다리는 것은 포기하고 풀만을 찾아 우리가 내일 출발하기 전 우크라이나팀을 꼭 만나야 한다고 손짓발짓으로 의사를 전달해놓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풀만이 그들을 찾았다네. 얼른 옷 챙겨들고 뛰어 나가보니 어랍쇼, 아까 우리에게 제일 처음 보여줬던 방, 그러니까 우리 숙소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바로 그 방에 그들이 들어왔다(우리에게도 작은 방이었는데 덩치 큰 그들이 들어가 있으니 더욱 작아보이던). 알고 보니 김원장에게 옷을 빌려준 아저씨가 심하게 고산병이 와서 -_-; 이후 매우 힘들게 내려온 모양. 오늘 새벽 출발은 우리보다 앞선 것 같은데 내려오기는 우리보다 3시간도 더 지나 늦게 내려왔으니 그간의 고생은 안 봐도 비디오일 듯. 며칠 전 틸리초(해발 4,920m)까지 다녀왔다 한지라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을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고도는 무리였던가. 여하튼 너무 반갑게 해후를 마치고 점퍼도 무사 전달. 그 옷을 입고도 김원장은 고산병에 시달렸는데 그 옷이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꼬... 하는 생각에 넘치는 감사의 뜻에서 조촐한 접대라도 하고팠는데 당장은 김원장이나 그 아저씨나 정상 컨디션이 아니니 일단 은혜를 갚을 기회는 뒤로 미루기로.

 

오후 6시 30분, 잠시 눈을 붙인다는게 눈을 떠보니 깜깜 9시다. 먼저 깬 김원장 말로는 내가 코를 골면서 잤다고 -_-;

늦은 시각이라서 그런지, 텅 비어있는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타난 김원장이 밝게 웃는 걸 보니 이제야 기분이 좀 풀렸나보다. 남아공 드라켄스버그 트레킹했을 때처럼 1. 내려와 2. 약 먹고 3. 좀 자고 일어나니 고산병 증세가 좀 나아진 모양.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토룽 라 넘기, 오늘 하루, 개인적으로는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토룽 라를 넘어 엔돌핀이 넘쳤지만 오히려 예측하지 못했던 김원장의 고산병 탓에 후반부는 좀 괴로웠달까. 하지만 결국은 이렇게 해피 엔딩. ^^ 우리는 토룽 라를 넘었다네. 행복한 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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