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맑음

@ 이동구간 : 없음(고도 적응일)

 

<익숙한 의학용어 탓에 읽히는대로 와닿는 상황이 어쩐지 더 불안해지는 -_-; 고산병에 대한 안내문>

 

지난 밤 몸 상태는 로우 피상에서 겪었던 것처럼 심하지 않았는데도 멘탈은 완전 꿈인지 생시인지 오락가락하는 밤을 보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침이 오니 몸은 한결 가벼워져서 그만큼 마음의 부담도 덜 수 있었다. 비록 (어제 입술이 갈라진 것을 시작으로) 오늘은 코를 풀 때마다 피까지 묻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코피를 닦아내다 문득 내 손을 들여다보니 손톱 밑엔 때가 새까맣게 끼어있다. 어제 홀라당 타버린 김원장 얼굴처럼. 참, 김원장도 어제보다는 나아졌다고 한다. 어제는 나 따로 김원장 따로 식사를 했지만 오늘 아침은 오믈렛, 팬케이크, 밀크티, 레몬티로 함께 한다.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어쩐지 얼굴은 영~ Hotel New Phedi 라운지에서>

 

오늘 하루 토룽 페디에 머물면서 고도 적응을 하고, 평소 매일 500m 가량 고도를 올려왔던 것과는 달리 내일은 약 1,000m 가량, 한꺼번에 고도를 확 높여 토룽 라(=pass)에 이른 뒤 연이어 자그마치 1,700m를 내려갈 계획이다. 과연 제대로 넘을 수나 있을지, 제대로 넘는다해도 몇 시간이나 걸리려는지... 개인적으로는 내일 일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칠 듯한 지경이지만 -_-; 어쨌든 이제 정말이지 오늘과 내일 이틀만 지나면, 그 중에서도 특히 내일 하루만 어떻게든 무사히 지나가면 그럼 모든 고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게 믿고 싶다. 

 

오늘 하루 대략 해발 4,500m대인 이 곳에서 고도 적응 잘 해서 어제의 고산병 증세를 완벽히 없애고,

내일 새벽 이 곳을 출발, 고산 증세를 없이 고도를 1,000m 가량 높여 해발 5,416m의 토룽 라에 이른 뒤,

내일 오후에는 절대 미끄러지지 않고 그 엄청나다는 내리막길을 밟아 다시 1,700m 가량 고도를 쫙 낮춰 묵티나스(Muktinath 3,760m)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단지 고것만 해내면. -_-;   

 

어제 보니 우리 포터 풀만도 내일을 위해 미리 고도 적응 한답시고 이 곳에서 약 500m 가량 높은 곳에 위치한 High camp(해발 4,925m)에 다녀오던데, 포터도 필요한 고도 적응을 일반 트레커 주제인 우리는 제껴버려도 되는걸까? (실제로 우리처럼 이 곳에서 하루 머물며 고도 적응을 하는 트레커 중 몇은 내일을 대비해 하이캠프에 살짝 다녀오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상태(=4,500m에도 채 적응이 안 되있는 상태)로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는 저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을 따라 하이캠프에 다녀오는 짓은 완전 무리라 할 수 있다. 올라갈 땐 욕하면서 어찌어찌 올라가더라도 내려오면서는 고소에 비틀거리다 덱데구르 굴러버릴지도 모른다. 

 

<숙소에서 올려다 본, 내일 가야할 장도 첫 구간의, 나의 기를 완전 죽이는 장대한 모습.

길은 길대로 안 보이고 대체 저기 어디쯤 하이캠프가 숨어있는 것일까> 

 

<내일 구간에 대한 특별 주의사항. Pole을 따라가야 되는 일이 뉴질랜드에서는 재미있었는데 여기서는 욕부터 나온다>

 

고도 적응을 핑계로 아무 것도 안 하며 하루를 쉰다고는 하지만, 내일의 장도를 떠올려보자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막막해질 따름이다. 방법이 있나, 딴 생각 하면서 최대한 잊고 지내는 수 밖에. 오늘은 그저 해바라기 노릇이나 하면서 광합성을 즐기자. 해가 안 드는 방보다 바람은 좀 불어도 오히려 바깥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 시선 아래를 멋지게 날고 있는 독수리들은 땅 위의, 쥐같이 생긴 토끼류(마못 비슷한)를 목하 노리고 있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공용 화장실이 보이는 끝에서 두번째>

 

<완전 너저분한 우리 방(잘 안 보여서 다행)>

 

 

<숙소에서 나와 어제 지나온 길을 바라보면> 

 

<이런 길이 보인다. 저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 그 너덜지대가 나오겠지.

오른편 하단에 살짝 등장하는 오르막길이 바로 내일의 스타트 지점>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정식 입구(하지만 대부분 바로 아래 위치한 숙소와 연결된 내부 통로를 이용한다)>

 

<길에 살짝 내려선 김원장. 눈이 많이 부신 듯>

 

<해바라기하기는 포터들도 마찬가지. 등돌리고 앉은 풀만이 보인다>

 

아래 롯지보다 규모도 작고 그만큼 묵는 트레커도 적은 롯지라 그런가,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자 직원들과 포터들이 모두 모여 낡아빠진 라디오 한 대를 고친답시고 부산하다. 저렇게 많이 모여 고칠 일도 아니고 저렇게 많이 모였다고 고쳐지지도 않는 라디오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딱히 할 일들이 없어서 그런지 지지직 거리는 소리 한 번씩 날 때마다 깔깔대며 소리높여 웃곤 한다. 미얀마에서 알까기를 하며 대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사공 아저씨들과 비슷해 보인다고나 할까. 뭐 하긴 "왜 고산지대에서는 방귀를 자주 뀔까?" 따위 화두를 가지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내가 째려볼 때마다 매번 "고산이라 그래" 대꾸하던 김원장은 정작 이 질문엔 모르는 척 회피한다). 마침 이렇게들 다 나와서 쉬고 있는 틈을 타 나는 공유를 닮은 젊은 주방장에게 미인계를 써서 부엌에서 카메라의 꽉 찬 메모리를 노트북에 모두 다운로드하는데 성공한다. 이제 다시 텅빈 메모리. 내일 부디 몸이 따라줘서 사진을 많이 찍어 생생한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할텐데.  

 

 

<우리 숙소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이렇게 보이는 Thorong Basecamp Lodge>

 

 

<그럴싸해 보이는 Thorong Basecamp Restaurant 구경가기. 역시 이 집 분위기가 더 좋단 말이지>

 

<정식으로 밥을 사먹자니 우리 숙소에 좀 미안해서 간식삼아 그냥 빵 하나만 먹기로>

 

<해발 4,500m에서 먹는 빵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럴싸한 시나몬롤

(다만 가격은 고도를 철저히 반영한 개당 130루피=약 2,000원. 하루 방값이 250루피인데 ㅎㅎ)

안타까운 점은 우리 몸 상태가 둘 다 삐리리라 별 맛을 못 느꼈다는 것> 

 

<식당 벽에 붙어있던 올해 달력의 이 동네 버전. 오늘이 어디 붙었는지 찾는데 한참 걸렸다는>

 

빵을 먹고 나오니 어느새 점심때가 가까와 온다. 이제 슬슬 오늘 아침에 야크 카르카 등지에서 떠난 트레커들이 토룽 페디에 삼삼오오 도착할 시간이겠구나. 아래 롯지 마당에 볕 잘 드는 벤치 하나 골라 편히 자리잡고 "사람 구경"에 나선다. 저 정문을 통해 들어설 트레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과연 어떨지를 기대하며(우리의 어제 이 맘 때 얼굴은 어땠더라?).  

 

 

아니나 다를까. 트레커들이 하나 둘씩 차례차례 문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지내오면서 몇 번이고 마주친 탓에 익숙한 얼굴들도 있고 처음보는 얼굴도 많다. 대부분 많이 지친 얼굴들이지만 간혹 오늘의 목적지에 무사 도착했다는 기쁨을 숨기지 않은, 만족감으로 가득찬 행복한 얼굴들도 보인다. 김원장은 혹시 야크 카르카에서 만났던 우크라이나 팀들이 올라오지나 않을까 기다리는 눈치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보이질 않는다. 분명 돌아 내려가진 않았을텐데... 술을 그리 찾더니 술병이 났나?  

 

 

그러다 갑자기 라운딩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세 번을 스쳤던 한국인 팀을 다시 만나게 된다. 마낭에서 본 게 마지막이니까 벌써 네번째 만남인 셈이다. 반가운 마음에 가장 먼저 숙소로 들어오시는 팀의 리더같은 분께 인사를 드린다. 그 쪽에서도 무척 반가워 하신다(한국인들이 제법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라운딩 동안 동양인 트레커는 드문 편이었다).

 

- 언제 올라왔어요?

- 저희는 어제 올라와서 오늘 하루 쉬는 중이어요. 저희보다 하루 늦으셨네요.

- 아, 저희는 오늘 여기서 안 자고 High Camp까지 올라갈 겁니다. 그러니 내일, 같은 날, 토룽 라를 넘겠네요.

 

그동안 몰랐는데 오늘에서야 자세히 보니 뒤따라오는 일행 중 여성 두 분은 모두 스님이시다. 그리고 그 두 분 모두 말을 타고 계시고. 어제서부턴가 많이 힘들어 하셔서 두 분은 그냥 말을 타고 토룽 라를 넘기로 했단다(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마음이 훌렁~ 흔들렸다). 말을 타고 계신데도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모습들이시다 -_-; 스님 두 분을 태운 말 두 마리는 토룽 페디에 오래 서 있지도 않고 마부에 이끌려 곧장 High Camp를 향해 올라간다. 저래서는 스님 두 분 모두 오늘밤 끔찍한 일을 겪지 않으실라나. 아무래도 불안하여 아는 척 - 꼭 이럴 때 직업 의식이 발동한다 - 고산병 운운해가며 이 곳에서 혹은 High Camp에서라도 하루 쉬었다 가시는게 어떻겠느냐 말을 꺼내본다. 그런데 그 리더분의 받아치는 말씀.

 

- 아, 내가 이번이 안나푸르나 라운딩 3번째여요. 걱정 말아요. 여긴 내가 잘 아니까. 

 

깨갱.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라운딩이시라는데 우리가 뭐 더 드릴 말씀이 있으랴. 우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리더분은 곧 다른 남성 두 분을 이끌고 마저 High Camp를 향해 기운차게 오르신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구나.  

 

<김원장 꼴이 말이 아니다. 벗겨지는 얼굴, 부르튼 입가, 수염은 또 저게 뭔가>

 

지난 10일 내내 우리가 그 분들보다 앞서 왔는데 내일 새벽 High Camp에서 그 분들이 먼저 출발하실 확률이 높으니 우리가 여기서 역전(?) 당하는 셈이다. 나이로 따지자면 우리가 훨씬 젊을텐데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나도 여기까지는 왔는걸. 김원장도 내게 여기까지 잘 따라와 대단하다며 새삼 격려해 준다. 내일 결전의 날에 앞서 미리 약발을 세워두는 것일까? 어쩜 내가 어제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을 보고 은근 걱정되어 저러는 지도 모른다. 어제 오후 다시 고산 증세가 밀려와 침대에 누워있을 때 내가 심심풀이로 작성한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실제 그대로의 버전이라 존댓말 반말이 마구 섞여 쓰여 있다). 참고로 내가 아래와 같이 유언장을 작성한 후 김원장에게 전문을 읽어주자 김원장의 첫 마디는 "네가 고소가 와서 미쳤구나"였다. -_-; 좀 황당했나?

 

2008년 11월 9일 토룽 페디에서의 나의 유언

 

1. 오빠는 너무 슬퍼하지 말고 입 속의 혀 같은 여인과 짠짠 새장가를 얼렁 든다.

2. 아빠 엄마 빚을 갚아주세요.

3. 나의 시신은 화장한 뒤 양양군 서면 보건지소가 잘 보이는 곳에 뿌려주세요(혹은 아빠 엄마가 원하는 장소가 있으면 그 곳에). 수목장도 오케이.

4. 딱히 여한없는 삶을 살게 해줘서 고마워요. 나 없어도 화 많이 내지말고 인상 쓰지 말고 행복해! 많이 웃고 남들에게 사랑 많이 받고 살아요~ 그리고 천천히 와 ^^  

 

고소가 와서 유언 작성함(이 부분에서 장난의 실체가 드러나지만). 그래도 효력 있음(이 뒷 문장으로 급수습).

 

# 참고로 그 때는 아빠한테 얼마나 빚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2009년 중반이 되어서야 대략 알게 되었다. 그래서 2번은 오빠 능력으로는 무리임을 알게 되어 이후 수정, 재 쇼부를 봤음을 밝혀둔다 -_-; 

 

일단(一團)의 트레커들이 토룽 페디에 속속들이 도착한 이후 우리도 방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으로 계란 후라이를 반찬 삼아 미역국에 밥 말아 먹었다. 식사후 나는 <죽어도 해피엔딩>이라는 영화를 잠시 봤는데 나름 재밌게 보고 있던 중 작은 화면에 집중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것 같아 급히 접어야 했다. 그리고는 다운 받아온 흘러간 7080 가요들을 틀어 놓고 신나게 따라 부르기를 했다(어느 순간 그 짓도 숨이 차와 그만 둬야했다. -_-;)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져야 할 김원장의 몸 역시 오후들어 오히려 다시 안 좋아지는 것 같다며 나로 하여금 걱정하게 만든다. 쩝.

 

내일은 새벽 4시에 출발이다(이미 밝힌대로 오전 10시를 전후하여 토룽 라에 큰 바람이 불어 산사태의 우려가 있으므로 오전 10시 이전에 토룽 라를 넘으려면 새벽 4시에는 출발해야 한단다. 그러니까 1,000m 가량 올라가는데만 6시간 정도 소요되나 보다). 풀만에게도 그 시간에 출발하기로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 시간에 출발하면서 아침 식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대신 저녁이라도 든든히 먹고 자기로 한다(설령 그 시간에 식당이 정상 운영을 한다해도 차라리 빈 속에 올라가지, 이 고도에서 뭔가를 먹고 1,000m를 올라가는 일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일런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맨밥과 후라이를 주문하면서 내일의 긴 일정을 위해 1리터 들이 물도 미리 한 통 사두고(200루피) 모자란 두루말이 휴지도 보충해 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내일 신새벽에 롯지 주인을 깨워 돈을 지불하느라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준비 되는대로 곧장 출발할 수 있도록 오늘 방값까지 모두 합친 3,310루피를 미리 계산, 모두 지불해 둔다(즉 토룽페디에서 이틀간 머무르면서 사용한 총 비용이 우리 돈 대략 53,000원 정도). 

 

그러고보니 처음 트레킹을 떠날 때 카트만두 짱 사장님 말씀이 트레킹을 하면서 하루 50불 정도 비용이 들거라고 하셨지만, 한 그릇만 시켜도 밥을 그득히 담아주시는데다가 고도가 높을수록 식욕은 떨어지고 게다가 워낙 싸온 한식도 있어서 예상했던 경비보다 한참 남겨갈 것 같다. 어제 김원장이 약속한 대로 포카라에만 도착해 봐라, 내 펑펑 써주마! 

  

껌껌한 한밤중에 별 보며 산을 오르게 될테니 빛 있을 때 짐을 미리 꾸려둔다. 내일 배고플까봐 오늘 미리 먹어둔다는게 좀 웃긴 일이기도 하지만, 긴장이 되서 그런가, 먹어두어야 한다는 이성(?)에 앞서 불안한 본능, 즉 입맛이 완전 바닥이라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갈 뜨고 만다. 올라갈 일도 걱정이 태산이지만 그보다 토룽 라에서부터 내려갈 일이 더욱 끔찍스럽다. 너덜지대의 연속이라면...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어쩌랴. 어쩌면 좋으랴. 김원장은 이런 내 마음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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