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맑음

@ 이동구간 : 마낭(3,540m)-군상(3,900m)-야크 카르카(4,018m) / 478m 상승

@ 총 소요시간 : 4시간 55분(순수 걸은 시간 4시간 40분)

 

꿩대신 닭도 아니고, 닭대신 소가 울어제끼는 마낭의 아침. 김원장은 이 숙소의 이름이 Yeti Hotel이라는데서 영감을 받았는지, 밖에서 울어대는 저 짐승이 소가 아니라 예티일지도 모른다는 가설로 댓바람부터 나를 키득거리게 한다 -> 아침부터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컨디션은 더욱 나아진 듯한데 아래 사진은 왜 저렇게 맛이 간 듯 나왔을까. ㅋ  

 

<숙소 꼭대기층 식당의 아침 풍경. 아침 메뉴는 어느새 단골로 자리잡은 밀크티와 오믈렛>

 

어째 점점 고도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로우피상에서보다는 브라가에서, 그리고 브라가보다는 다시 마낭에서 더욱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는데, 우리는 이게 각 숙소 자체가 지닌 차이점 때문이라는데 중지를 모았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쭈욱~ 벽체가 두껍고, 볕이 잘 드는 방에서 머무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이러려면 우리의 평소 트레킹 속도를 고려해 볼 때 지금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도 안 먹고 출발해야 할 텐데, 정말이지 김원장은 다시 트레킹을 하게 된다면 아주 일찍 일어나 아침은 먹거나 말거나 무조건 하루의 일정을 시작할거라고 한다. 그럼 도시락이라도 싸야해?)

 

마낭에서 하루 쉬면서 따뜻한 하룻밤까지 잘 보내긴 했지만 내 상태를 밝혀보자면 머리는 약간 띵~한 데다가 공기는 건조해서 콧속이 매우 따가우며 일상 생활에 있어서도 조금 힘 좀 쓴다 싶으면 숨이 차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래서야 과연 목표했던 야크 카르카(Yak Kharka)까지 잘 갈 수 있으려나, 살살 걱정이 될 지경. 어제 미리 잠깐 보았던, 마낭을 벗어나자마자 시작될, 다음 마을인 군상(Gunsang)까지의 팍팍한 오르막길도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차마 이런 말 한 마디 김원장에게 꺼내지 못 한 채, 오늘도 말없이 김원장 뒤를 따라 출발, 현재 시각 오전 7시 50분.     

 

 

강가푸르나 호수도 안녕~ 올라가다 무슨 일 생김 다시 만나게 되긴 하겠지만. -_-;

 

 

어제 구경나왔던 바 있는 마낭 마을의 경계선 즈음에 다시 이르다.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면서 잠깐 내리막을 걷긴 하지만 이후 쭈~욱 오르막길이 보이는 바로 그 지점. 평소보다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는게 느껴지니 아무래도 오늘은 나 역시 더욱 천천히 걸어야 할 것 같다.  

  

 

김원장 컨디션도 아주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듯. 평소엔 스틱을 사용해가며 걸었지만, 오늘 같은 날, 스틱을 사용하면 본인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질 것 같다며 스틱 없이 걸어보겠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풀만에게 스틱까지 넘기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마낭.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마낭은 어제 내가 묵었던 그 마을이 아닌 것만 같다. 지금은 마치 환상 속의 마을마냥 너무 찬란하잖아.

 

 

숨도 고를겸 몇 분 간격으로 계속 뒤돌아 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 그래서 앞만 보고 살아가면 안 되는거얌. 가끔씩 뒤도 좀 돌아보고 살라고!

  

 

 

 

 

알고보니 내가 군상이라 생각했던, 마낭에서 육안으로 보이던 그 오르막 끝지점의 마을은 군상이 아니었다. -_-; 그래도 그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다행히도 눈에 띄게 길이 평탄해지는지라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는 다른 트레커들의 거친 숨소리도 확연히 줄어들게 된다.

  

 

 

 

 

그야말로 서로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고 순간 순간 한 발자국씩 충실히 나아가기만. 내가 내 호흡을 이렇게까지 관찰한 적도 없지 않나. 이 무슨 때 아닌 위빠사나 수련인 듯도 싶고. 

 

<이제야 진짜 군상이 보이기 시작(사진상으로는 식별이 쉽진 않지만)>

 

이 곳에서의 멍 때리며 걷기는 다행히 오래가지 않는다. 둔한 나의 뇌를 자꾸 찔러대는 저 날카로운 연봉들.

 

- 저~기 멋진 봉우리 두 개가 보이는데 그럼 여기서 토룽 라(Thorung La)도 보여?

- 아니, 아직 안 보여~

 

지나가는 다른 팀 가이드와 말을 섞다 얼른 궁금한 점을 물어보지만 답은 No, 라네. 그럼 저 멀리 보이는 저 산마저 지나쳐야 토룽 라가 나오는거야? 아직도 갈 길이 무지 멀었네? -_-;

  

<뒷 배경에 무심해 보이는 김원장 찍기 놀이> 

 

<고개 들어 날 봐요~ 그게 싫음 뒤라도 ㅋ>

 

 

 

 

마낭을 떠난지 2시간 10분. 칼 오전 10시에 군상에 도착했다. 지도에 표기된 마을이라 하기엔 터무니없이 작은 규모. 트레커들을 위한 롯지만 두 어개 있는 정도랄까. 전망은 진행 방향에서 오른편에 있는 롯지가 더 나아보였지만, 그만큼 계단을 가파르게 올라가야하기 때문에 길가에서 그대로 진입이 용이한 왼편의 롯지에서 차 한 잔 하며 쉬었다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대부분의 트레커들 역시 저 집 계단을 올라가긴 싫었는지 이 집에만 손님이 드글드글.  

 

 

 

<군상의 한 롯지에서 본 독특한 태양열 렌지. 이런 곳에선 따뜻한 물 한 잔도 호사구나>

 

이 집은 정원 뿐만 아니라 옥상도 야외 식당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태양을 사랑하는 얼굴 하얀 애들 대부분은 옥상으로 기어 올라가 전경을 찍네, 단체 사진을 찍네 하며 한참 호들갑이었다. 얼굴 노란 우리는 워낙의 취향대로 그늘진 마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는데, 위 애들이 하도 호들갑이어서 나도 구경삼아 그들이 환호하는 전경을 보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 김원장, 같이 옥상에 올라가서 구경해 보지 않을래?

- 아니, 안 올라갈래. 힘들어. 너만 보구 와   

 

 

천천히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몇 개를 오르고 나니... 흠... 이 동네에서 저 정도면 보통 수준 아닌가? 하여간 쟤네들은 오버가 좀 심해 ㅋ

  

<선호하는 자리가 극과 극> 

 

밀크티와 레몬티를 한 잔씩 마신 뒤 몸 상태 되돌아보기. 흠, 오히려 출발시보다 좀 나아진 것도 같은데? 그래, 이 정도라면 오늘 밤, 여기 군상에서 머물지 않아도 되겠군(이에 반해 우리 풀만은 그 배낭을 메고 여기까지 올라오고도 기운이 넘치는 듯 간만에 다른 포터들과 어울려 떠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조금 더 쉬었다 가고 잡거늘, 김원장은 위 옥상에서 떠들어대는 프랑스팀원들이 시끄럽다며 저들과 이 참에 얼른 거리를 벌여두자고 한다. 그렇담 당장 야크 카르카를 향해 또 떠나야지. 15분 간의 달콤한 휴식 뒤 재출발!  

 

<마낭에서 구입한, 알이 커다란 선글래스를 본인 안경 위에 덮어쓴 김원장.

(당연히) 자꾸 흘러내리는 바람에 신경 쓰이는 눈치다>

 

 

군상을 떠난지 얼마나 되었을까? 엇! 헬기가 나타났다!

 

야크 카르카 방면을 향해 허벌나게 날아가는 헬기 한 대. 저 위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봐! 저거 한 번 뜨면 우리 돈 500만원이라며? 우리나라 여행자 보험은 커버 안 해주는 비용이라던데... 반면 유럽애들이 들고 오는 보험은 저런 구조용 헬기 비용도 대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좀(?) 안 좋다 싶으면 가비얍게 헬기를 불러댄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소문이 이 동네 파다한데... 뭐 이 동네서 들려주는 관련 소문에는 이런 것도 있다. 헬기가 뜨긴 했는데 현지에서 비용 협의가 안 되어서 시간을 끌다 결국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마는,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정말이지 가슴 아픈 얘기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 그건 그렇고 김원장, 나 아프면 김원장도 저 헬기 불러줄거야?

- 음...(말 없음표 여러개)... 정 그러면 불러줘야지.

 

그런 답은 한참 생각하지 말고 제까닥 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트레킹을 하다보면 이렇게 아주 가끔, 주로 포터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찻집이 나타난다>

 

 

아마도 그 사이 환자를 태웠는지, 헬기는 다시 저 아래를 향해 되돌아 날아간다. 조용한 걷기 속에서 머리 위를 왔다갔다 하는 헬기는 제법 훌륭한 대화 소재가 된다. 게다가 내가 그 대상이 아님에서 오는 그 기쁨이야 말해 무엇하랴! (구조용 헬기를 보자 우리의 걸음걸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더욱 늘어진다. 조심 또 조심) 

 

헬기 타도 기내식 나오나? -_-;

뭐든 먹다 쏠리지나 않음 다행일 듯

   

 

 

 

<지도상 군상을 지나 야크 카르카까지 딱히 쉴 만한 공간이 없어 보였는데 중간 Ghyanchang 천(川)을 가로지르는 현수교를 건너기 직전과 직후 아주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이 즈음을 걷다가 문득 느껴지는 허기. 아직 갈 길이 꽤 남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높은 산길을 오르며 그간 소화도 잘 안 되고 딱히 입맛도 돌지 않았는데, 지금 김원장이나 나나 출출함을 느끼고 있다. 메고 있던 배낭에서 비상용 초컬릿을 꺼내 한 조각씩 물어가며 일단 급한 허기를 달래본다. 평소라면 꼬르륵거리는 배를 생각해서 걷는 속도를 좀 높히겠지만(평소 동네 산을 오를 때면 꼭 중간쯤 내려오면서부터 배가 고파져서 그 다음부턴 서로 먹는 얘기만 하며 허겁지겁 산을 내려오곤 했던지라) 여기는 어느덧 해발 4,000m대, 우선 순위를 잘 정해야 몸이 덜 고생하는 법이다.      

 

<여기서도 정신없는 -_-; 트레커들을 위해 조랑말 운반(?)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젠 어디를 둘러봐도 발 딛고 선 지점이 4,000m에 달하는 곳에서 선사해주는 멋진 풍경들. 선글래스를 껴도 눈과 맘이 시리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야크 카르카가 저 아래 보이기 시작한다. 야크 카르카가 이름 그대로 야크들의 방목지에 불과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군상보다 겨우 약간 큰 정도에 불과한, 내 보기엔 너무도 작은 마을이다. 기껏 저기까지 갔는데 방이 없음 어떡하나부터 걱정이 될 정도로.

 

사진상 야크 카르카 왼편으로 흐르는 천의 이름은 토룽 천(Thorung Khola)으로, 언제서부터인가 더 이상 마르샹디 강이라 불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만큼 상류로 올라와 있다는 소린데... 토룽천이라... 내가 진정 토룽 페디(Thorung Phedi)에, 그리고 토룽 라에 이제 정말 어지간히 가까이 와 있는게 틀림없구나.

 

 

야크 카르카에 이르기 위해서는 막판에 얼마간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는데 어쩐지 그 발걸음 발걸음마다 아깝게만 느껴지더라.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고도를 높였는데...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아마도 그만큼 심적으로 부담스러웠던 하루였던 모양이다. 앞으로 토룽 라를 넘을 때까지 더하면 더했지, 덜할 일은 없을텐데.

 

 

야크 카르카에 이르기 직전, 다시 우리를 따라잡은 프랑스팀. 저렇게 많은 수가 함께 다니면 본인만의 페이스를 지키기 어려울 듯. 게다가 저렇게 쉬지않고 떠들어대서야, 원. 다들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오늘 스틱도 넘기고 배가 고파도 천천히 걷는 속도를 유지해 왔던 우리, 저들이 뒤따라 오는 양을 보고서는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저 팀보다 먼저 가야 그나마 좋은 방을 구할 확률이 높아져! (나중에 보니 저처럼 팀원이 많을 경우에는 대부분 포터들이 먼저 가서 방을 미리 예약해 두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둘러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던 셈 -_-;) 

 

 

윗 사진은 야크 카르카 입구. 멀리서 볼 때에는 왼편이 그럴싸해 보였는데 정작 가까이 가서 보니 오른편 숙소가 훨씬 나아보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미 오른편 숙소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왼편 숙소는 텅텅 비다시피 했더라. 오른편 숙소에서 방 구경도 하고 식당 구경도 하며 이 집으로 정할까 하던 중, 그 프랑스팀이 와르르 이 집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고 180도 마음을 돌려 왼편의 숙소에 묵기로 했다(야크 카르카 도착 시각은 오후 12시 45분).

 

 

명칭 : Hotel Thorung Peak(그래, 나 정말 토룽 피크 근처까지 왔다)  

트윈룸 숙박비 : 200루피 (화장실 공용) 바글바글한 맞은 편과는 사정이 크게 다르게도 이 숙소에서 우리는 오늘의 두 번째 손님에 불과했다. 그래서 처음 골라잡은 2층 방은 (내가 원한대로) 화장실이 딸린 300루피 짜리 방이었는데, 김원장 왈 자꾸 방에서 화장실 냄새가 난다는 -_-; 것이다. 30분 가량 뒹굴어보다가 결국 우리는 화장실도 없고 공용 화장실과도 제일 멀리 떨어진 방으로 다시 옮겼다(이 방은 볕이 귀한 대신 냄새도 안 나고 방 크기도 좀 더 넓어보인다).

샤워실 : 마당에 달랑 수도 하나 있는 이 집의 수준을 고려해 볼 때 나는 당연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김원장은 저 서양 여인이 수건을 들고 들어가는, 마당 한 구석의 공간이 샤워실일거라 주장했다. 결국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려 확인 사살차 다녀온 김원장 왈, (역시나 내 예상대로) 창고였다고. ㅋㅋ 그녀는 아마도 뜨거운 물을 얼마간 구해 그 곳에서 샤워 비스끄리무리 한 것을 한 모양인지라 우리도 직원에게 뜨거운 물을 요구했다. 처음 그는 잠시 기다리면 뜨거운 물 준비가 된다고 했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에게 다시 안 된다고 말을 바꾸는 바람에 김원장의 큰 오해를 사고 말았는데(인종차별이라나, 뭐라나)... 결론은 여기 사정이 그렇듯, 오후 시간이 되어 태양이 사라지자 더 이상 태양열로 물을 데울 수 없었던 것으로 났다 -_-; 그럼 그렇지.

잡설이 길었는데 여하튼 이 집에서 씻을 수 있는 공간은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수도와 그 물을 받아둔 와방 큰 다라이 -_-; 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뭔가가 둥둥 떠 다니는 그 물은 매우 차다(넘 시려워서 입을 헹구기조차 어렵다). 혹시 그녀처럼 일찍 도착한다면 군상 롯지에서 보았던 커다란 위성 TV 접시같은 도구를 이용해 태양열로 데운 따뜻한 물을 약간이나마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어제 머리를 감아두었다는 사실이 마치 저축이라도 해 둔 것 마냥 그리 뿌듯해질 줄이야).

특이사항 : 식당은 길 건너 맞은 편에 별채로 있다. 처음엔 주인 아저씨가 식당에 신경 쓰느라 숙소에 별로 신경을 안 쓰시는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식당에 들러보니 식당에도 별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다 ^^; 뭐, 우리 식사 취향(어차피 밥 정도만 주문해 먹는)엔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어쩐지 음식이 맛있을 것만 같은 옆집 식당을 보자면 조금 속이 쓰리~

  

 

진작부터 배가 고팠던 우리, 방을 정하자마자 식당으로 찾아가 주문부터 했다. 맨밥 한 그릇에 깻잎, 북어국, 거기에 라면 한 그릇 더. ㅎㅎ 배가 고프긴 고팠다니까. 사진은 밥에 비며먹기 위해 깻잎 국물을 조심스레 따르고 있는 김원장. 지금보니 참으로 진중한 모습이구나.  

 

 

그리고도 모자라 마낭에서부터 쟁여온 빵까지 디저트로.

 

저리 먹을 때까지는 좋았다. 나중에 김원장이 소화 안 된다고 저녁을 못 먹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ㅋㅋ 

 

여하튼 별 문제 없이 4,000m가 넘는 야크 카르카에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우리 둘 모두 물을 열심히 마시고 있고, 그만큼 쉬도 잘 하고 있고 -_-; 머리 상태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내일은 토룽 페디에, 그리고 그 다음 날은 토룽 페디에서 하루 쉬고 그 다음 날 새벽, 대망의 토룽 라를 넘는 일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러고 싶다. 물론 그 전에 혹 모르니 유언장을 미리 써두어야 할 것 같긴 한데...   

 

 

방에서 자빠져있다가 문득 바깥이 소란해지는 듯 싶어 내다보니 우리 숙소 북쪽 편, 그야말로 야크 방목지스러운 초지에 캠핑을 하면서 트레킹을 하는 팀이 도착했다. 우와,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이 등장했군. 하나 둘 셋... 김원장과 함께 세어보니 팀원은 모두 7명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이들 7명을 위해서 대체 몇 명의 포터와 가이드, 쿡이 따라 붙은건지, 보이는 전체 인원은 모두 18명에 달한다. 7명의 손님을 위해 누군가는 숙박용 텐트를 세우고 누군가는 부엌 텐트 속에서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화장실용 임시 가리개를 세우느라 분주하다. 그들의 움직이는 양을 구경하다보니 처음의 부러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런 곳에서 굳이 저렇게까지 껄적지근하게 해야하나 -_- 하는 쪽으로 어느새 생각의 전환이... (게다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 저런 텐트에서 자고 야외에서 먹고 씻고 싸고 하는 것도 내내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김원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번엔 또 다른 종류의 소음이...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하하하, 그들이 자리 잡은 초지로 대규모의 야크떼가 통과하고 있었다. 포터들이 세워준 텐트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그들이 갑자기 몰려든 야크떼에 혼비백산. 모두들 놀라 텐트에서 뛰어나왔다. 문득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에 텐트 쳐놓고 하룻밤 잤을 때 생각이 났다. 그 당시 작성했던 여행 일기 한 토막.  

 

텐트 밖에 방목 중이던 커다란 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이 놈이 가끔 콧김을 내뿜으며 텐트 가까이에서 씩씩거리곤 해서 처음엔 좀 무서웠다(자는 동안 텐트를 들이 받을까봐 -_-;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에서 자던 두 명의 한국인, 방목 중인 소에 깔려 치명상을 입다!).

 

벽체는 매우 두꺼웠으나 볕이 잘 들지 않았던 우리 방은 어제와 달리 몹시 썰렁했기에 우리는 여기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식당으로 내려가 레몬티를 마시면서 몸을 덥혔다. 식당에 우리 말고는 아까 김원장을 헛갈리게 만들었던 서양 여인네의 가이드와 아마도 이 식당 직원, 그리고 옆 집에 묵고 있는 팀들의 포터 몇이 전부였는데 우리가 식당을 안 떠나고 계속 개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주인 아저씨는 반갑게도 식당에 난로를 피워 주셨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네팔어를 구사하는 가운데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가, 어느덧 출출함이 느껴져 김원장에게 넌즈시 의견을 물으니 속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더 먹으면 다시 탈이 날지도 모른다며 거절하더라. 하지만 나의 소화 능력은 여느 때처럼 왕성했기에 나만 애플 팬케이크 하나와 우리 식당 수준으로 볼 때는 좀 실험적이다 싶었던 초코 푸딩도 함께 주문했다(다행히도 밥풀이 씹히는 초코 푸딩 맛은 나름 그럴싸했다).

 

어느새 본격적인 저녁 식사 시간. 옆집의 식당에서는 마치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벌어진 듯 그럴싸한 조명에 득시글거리는 트레커들이 보였지만, 우리 식당에는 우리 부부말고 그 서양 여인 하나만이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롯지의 손님이라곤 그녀와 우리 밖에 없는 모양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는 호주에서 온, 솔로 트레커였는데 가이드만 고용하고 포터는 없이 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몰아쉬는 숨과 창백한 안색으로 미루어보아 현 컨디션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는데도(게다가 아까 대충 씻은 이후 지금껏 방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고 한다) 그녀의 가이드는 -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껄떡거리는 것으로 보이던 - 내일 오전 토룽 페디까지 가서 토룽 페디에서 점심 먹고 오후에 고도 적응을 위해 그보다 또 500m 가량 높이 위치한 High Camp에 다녀오자고 하더라. 그리고 그녀는 그런 그의 제안을 신중히 받아들이는 표정이었고. 남의 일에 간섭할 바는 아니지만 - 게다가 가이드가 나름 전문직임을 감안한다면 - 그녀는 우리와 달리 무거운 배낭을 본인이 직접 메고 트레킹을 하는 중이므로 가이드로서 그녀의 몸 상태를 좀 더 면밀히 봐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했다(가이드가 좀 다른 의미에서 -_-; 그녀의 몸 상태를 관찰하고 싶어하는 듯 보이긴 했지만). 여하튼 식당에 있던 여러 명의 포터들을 제외하고 가이드라고는 그 하나였기 때문에 나도 그 틈을 타 살짝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 있잖아. 토룽 페디 하이 캠프(4,925m)에서 안 자고 토룽 페디(4,450m)에서 자면, 토룽 라(5,416m)에 올라갈 때 몇 시쯤 출발하는게 좋아?

- 새벽 4시

- 새벽 4시? 그렇게나 일찍? 해 뜨고 출발하면 안 돼?

- 오전 10시를 전후해서부터 토룽 라에는 큰 바람이 불기 시작해. 그럼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지. 그러니까 오전 10시 이전에 토룽 라를 넘는 게 좋아. 그러려면 새벽 4시에는 출발해야 하고.

 

내가 그를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서인지, 아니면 김원장에게 딸린 유부녀여서 그랬는지 시선의 반은 여전히 호주 아가씨에게 고정한 채 건성으로 대답해 주던 그였지만, 여하튼 고맙다 인사하고 다시 혼자 걱정 모드에 돌입한다. 

 

새벽 4시라면 깜깜할텐데... 헤드랜턴은 하나 뿐인데... 혹시나 대부분 트레커들은 그 구간을 6시간 만에 모두 주파하는데 나만 (그 구간에서 매우 고생했다던 사람들에 속해) 6시간을 훌쩍 넘기게 된다면, 그래서 산사태라도 만나게 된다면... 불행한 상상은 끝날 줄을 모르고 혼자 한참 멀리도 날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우리 식당으로 체격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엄청 건장한 백인 아저씨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들어오는지도 몰랐던 그의 일행으로, 보다 늙고 보다 왜소한 아저씨가 하나 더.

 

러시아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저 언어를 마구 구사하는 저들은 어디 사람들인가... 했더니, 놀랍게도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라니! 불과 몇 개월전, 루마니아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던 중, 우리가 탄 버스가 우크라이나행 버스를 타야하는 정거장에 안 세워주겠다고 해서 얼결에 다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갔고, 부다페스트에서 또 며칠을 뒹굴다가, 결국 에라, 동남아로 가자, 해서 태국을 거쳐 도로 한국으로 왔던 우리에게(아니, 어쩜 나에게만) 우크라이나는 정말 아쉽고도 정말 반가운 나라였다(그 때 우크라이나를 갔었다면 더욱 반가왔겠지만). 이들은 어제 마낭을 출발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4,920m)에 있다는 호수 틸리초(Tilicho)에 이른 뒤 그 곳에서 하룻밤 숙박하고 오늘 다른 하산 루트를 통해 여기 야크 카르카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그 곳을 오가는 길이 험했는지, 아니면 이미 어두워진 길을 지나와서 그런지, 가이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다가 길도 한 두번 잃은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면 힘들어 뻗을 것 같은데, 오히려 덩치 좋은 아저씨는 아주 기분이 좋아보였다. 틸리초 사진을 가득 담은 디카를 식당에 앉아있던 우리들에게 돌려 보여주기도 했고, 마시던 술이 떨어지자 자신이 우리들에게 쏘겠다며 식당에 있던 보드카를 주문해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조용했던 식당의 분위기는 옆집 안 부럽게 급 활달해졌는데, 물론 우리는 공짜임에도 불구하고 고산병의 우려 때문에 술을 거절하는 바람에 아저씨가 매우 서운해 하셨지만, 여하튼 영어 실력이 많이 딸리심에도 불구하고 호주 여인네에게 끊임없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틸리초 자랑을 열심히 해대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에서 네팔까지 와서 히말라야 산줄기를 타고, 그리고 거의 확신하건데 여기서도 매일 밤 보드카를 끼고 살았을 그가, 어쩐지 그네 나라에서는 무지 알아주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여하튼 저런 사람들만 있다면 우크라이나는 생각보다 더 근사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물론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내가 들어가려고 마음먹었던 몇 달 전만 해도 스킨헤드족 문제 때문에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풀만과도 가장 긴 대화를 나눈 날인데, 손짓발짓 동원해가며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시골 출신 풀만은 1남 4녀의 장남으로 1년에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주로 시즌때) 3~4회 정도 한다고 한다. 부모님은 여전히 다란(말 나온 김에 지금 찾아보니 당시 풀만은 네팔의 서쪽이라고 했는데 동쪽이다. 아마도 동서남북 영어가 헛갈린 모양.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신나게 그럼 너희 고향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루트가 어떠냐 묻고 그랬는데)이라는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고 동생들은 학교에 다닌다고. 놀랍게도, 아니 한편으로는 익히 예상한 바지만, 그의 나이는 불과 21살이었고, 김원장의 나이가 풀만 아버지 나이와 거의 맞먹는다는 것을 안 풀만은 오히려 그런 사실을 더욱 놀라워했다. -_-;

 

여하튼 더 놀다가라는 우크라이나 아저씨의 고마운 제안을 뿌리친 채(저렇게 마시다 고산병이 오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이미 4,920m의 틸리초에서 내려오는 길인데다가 무엇보다 예전부터 매일 같이 마셔왔던 분일거라는 데 생각에 미치자 그런 맘이 쏙 들어갔다), 일찍 잠을 청하기 위해(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밤에는 뭘하고 놀아야 할까) 투숙객 중 1등으로(그래봐야 우리팀, 호주 아가씨, 우크라이나팀 해서 세 팀 뿐이지만) 식당을 나서 어두운 야크 카르카로 발을 디뎠는데,

 

아, 저 여전한 별들,

그리고 밝은 달빛에 환히 반사되는 설산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이거야 말로 딱, 깊고 푸른 밤이지 않은가!

 

그러나

꾸질꾸질하지만 두꺼운 담요를 얻었어도,

조금이라도 열 좀 내라고 양초를 얻어와 불을 붙여봐도,

온기 없는 방은 너무나 썰렁하구나. 

난로 땐 식당에서 자고잡다.

 

그래도 저 앞 마당, 텐트 속에서 자는 이들은 더 춥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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