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맑음, 그러나 오후 들어 미친듯한 강풍

@ 이동구간 : 카그베니(2,800m) - 에클레 바티(2,740m ) - 좀솜(2,720m) - 마르파(2,670m) / (겨우) 130m 하강

@ 총 소요시간 : 4시간 35분(순수 걸은 시간 4시간 15분)

 

새벽녘 추워서 잠깐 깬 것 말고는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느새인지 김원장이 내게 본인의 침낭을 양보해 덮어 주었더라. 해발 3,000m 아래로 내려왔다고 방심했더니만 우리가 가져온 춘추용 침낭은 여전히 부실하다. 어제의

 

1. 식당에선 음식을 짜지 않게 요리해 달라고 하자

 

는 Tip에 이어, 가져온 침낭이 춘추/하계용이라면

 

2.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분의 담요부터 챙기자

 

는 Tip을 살짝 추가해 본다. 

 

<숙소에서 보이는 7,061m 닐기리(Nilgiri)봉의 해맞이>

 

오늘의 코스는 칼리 간다키 강을 따라 이 동네 짱 좀솜(Jomsom)을 거쳐 산늪님께서 추천해주신 마르파(Marpha)까지 가는 길. 칼리 간다키 계곡길은 오후가 되면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한 곳이라 되도록 일찍 출발, 해당 구간을 통과하라는 것이 왕야마(족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전 7시 30분 출발을 목표로 어제 저녁, 주인 아주머니께 내일 아침 7시에 식사를 할 터이니 꼭 그 시간에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 신신당부를 해두고(메뉴가 화려한만큼 이 숙소는 다른 숙소들에 비해 요리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었거든) 잠이 든 터였다.

 

그러나 제 시간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식사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아주머니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일정이 늦어질 경우 우리가 맞서야 할 바람의 강도가 무척 걱정이 되었던 만큼(다른 분들 후기를 읽다보면 정말이지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바람이었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질 수 밖에. 결국 기다리다 맘이 급해 주방으로 내려가보니 잠깐만 더 기다려달라고 한다. 어제 그렇게 7시를 강조했는데... 혹 요리에 시간이 걸릴까봐 주문한 메뉴도 나름 조리가 간단할거라 여겼던 클럽 샌드위치 달랑 하나인데...

 

<김원장은 짜증을 다스리는 중 ㅋㅋ>

 

밀크티가 먼저 올라오고, 그 뒤를 이어 클럽 샌드위치가 등장한 것은 7시 20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화가 난 김원장 눈치를 살살 보며 한 입 먼저 물었는데 흠, 맛있다. 이게 얼마만에 먹는 제대로 된 샌드위치인지. 그러나 김원장의 마음은 이미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은하철도 999를 타고 떠났나보다. 샌드위치 속이 너무 차가운데다 마요네즈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서 느끼하다나 뭐라나. 한 두입 물어보더니 더 이상 먹지를 않네(그래봐야 자기 손해지 ㅋㅋ 이 냉랭한 경쟁의 세렝게티). 결국 남은 샌드위치는 내가 다 먹어치운다. 김원장이 하도 발을 동동 굴러서 혼자 허겁지겁 먹어 치우느라 막판에는 나까지 좀 짜증이 났다. 이도 못 닦고 마요네즈 잔뜩 묻은 손만 대충 휴지로 닦아낸 후 출발. 시계를 보니 7시 35분. 그봐. 결국 원했던 시각에서 겨우 5분 차이 밖에 안 나잖아. 그럴 거였으면 좀 여유있게 식사도 하고 제대로 뒷정리도 하고 출발했음 좋았잖아(김원장에게 그렇게 투덜거렸더니 본인은 7시에 나오는 식사를 먹는대로 곧장 출발할 생각이었단다. 그래도 어쨌든 그게 그거지!).

<1박 2일(2인의 하룻밤 숙박+3끼 식사)의 계산서>

 

이번 라운딩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의견을 버리자, 욕심 없이 기대 없이 걷자고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했거늘, 결국 우리는 구제불능이련가.

 

<문제의 클럽 샌드위치. 내 입엔 (당연) 맛났다>

 

<어지간한 물건은 다 구할 수 있는 카그베니>

 

<짝퉁 세븐일레븐에 이어... 엇, 저것이 맥도널드일리가>

 

<맥도널드가 아니고 약(yac/yak)도널드. 재치만점>

 

<약도널드에서는 유기농 음식을 제공합니다.

가끔 이렇게 오지(?)에서 본의 아니게(농약이나 화학비료를 구하지 못해) 유기농 음식을 제공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

 

 

카그베니를 떠나 좀솜까지는 드넓은 폭의 칼리 간다키 강가&바닥을 걷게 되는데 그 길에선 이렇게 왼편에 닐기리(상기 사진), 오른편엔 툭체 피크를 비롯, 다울라기리 산군을 거느릴 수 있는지라 좌청룡 우백호가 안 부럽다는. 말로만 듣던 봉우리들이 내 눈 앞에 저렇게 떡, 하니 서 있는데서 오는 기쁨은, 정말이지 안 해 본 사람은 말을 하지 말어~ ㅎㅎ

 

 <카그베니를 벗어나 좀솜 방향으로 향하는 인도(?). 

사람이 다니는 길 위편으로, 저렇게 비포장 차도를 따로 만들어 놓아 가끔 지프나 오토바이가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의 물이 말라버린 칼리 간다키 강바닥>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카그베니가 코딱지만하게 물러섰다.

흠, 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스탕이란 말이지, 하는 생각이 좀처럼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가끔씩 나름 평탄했던 도로가 소실된 구간이 나타나곤 해서 때마다 강바닥을 오르내리며 걸아야 했다> 

 

<닐기리 형제들과 김원장>

 

<자갈이 그득한 강바닥. 풍경은 계속 이런 분위기로 간다>

 

 

카그베니를 떠난지 40여 분 정도 지나 에클레 바티(Ekle Bhatti)에 도착했다. 만약 어제 묵티나스에서 카그베니를 들르지 않고 곧장 좀솜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택했다면 카그베니 대신 만나게 되는 첫 마을이 바로 이 곳, 에클레 바티였을 것이다. 지도상으로는 롯지도 있다고 표시가 되어 있어서 제법 큰 마을인줄 알았더니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무지 작은, 그리고도 썰렁해 보이는 마을이었다(사실 에클레바티/에클로바티의 뜻이 '단 한 채의 찻집'이라나 뭐라나). 그래도 해가 들면 분위기가 좀 나겠지?

 

우리가 카그베니를 떠날 때 그때서야 풀만의 식사가 준비된지라 풀만에게 천천히 먹고 따라오라고, 우리 먼저 가겠다고 하고 길을 나섰는데, 어느새 풀만이 바로 우리 뒤에 따라와 있다. 틈틈히 뒤돌아 봤을 때는 분명 안 보였는데... 축지법이라도 쓰나?   

 

<좀솜에서 묵티나스 방향으로 오를 경우 만나게 되는 에클레 바티 갈림길 안내판>

 

아침을 안 먹다시피한 김원장이 출출하다고 하면 롯지가 나온 김에 차라도 한 잔 하고 갈까 했는데, 여전히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구나. 그래, 그럼 계속 가자.  

 

<앞서가는 한 무리의 트레커들이 저~기 보인다>

 

<한 때는 바다였다던 이 곳. 여기서 종종 발견되는 암모나이트 화석이 그 증거란다. 여기가 바다 밑이었다니 믿어지질 않네>

 

 

<몇 시나 되었을까. 이제야 강바닥에 해가 들기 시작한다.

해들기 전에는 썰렁하더니 해들기가 무섭게 햇살이 따가워 걷다말고 썬블록을 꺼내 들고 대충 찍어 바른다> 

 

<나라면 진작 성질 버렸을 것 같은 염소떼 다루기. 주인 말 진짜 안 듣는다>

 

<풀만 찬조 출연>

 

 

<다울라기리에서 눈 보라가 일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 

 

<드디어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좀솜> 

 

길을 나선지 2시간 남짓 지나자 저 멀리 좀솜이 눈에 들어왔다. 좀솜에 공항이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이 길 위에서마저 일본 패키지팀을 만날 줄이야! 하여간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산뜻하게 잘 차려입은 일본인들이 깃발 들고/혹은 리본 달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적응이 잘 안 된다. 오늘의 경우에는 5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까지 멤버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는데 모두들 단촐하게 꾸린 매무새로 보아(아무리 가벼운 나들이 복장이라도 스틱은 대부분 챙겨들고) 오늘 아침 좀솜을 출발, 가까운 근처 어디까지만 살짝 구경을 다녀오려는 듯 보였다. 고산병의 우려 때문인지 잔뜩 긴장들을 한 표정 속에서도 360도로 자신을 둘러싼 풍경에 스고이, 를 연발하고 있던 그들을 보면서 우리네 부모님들이 생각나 잠시 부럽더랬다.  

 

 

방금 트레커들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도착이라도 한 건지, 아니면 원래 이 맘때쯤 좀솜에서 묵었던 트레커들이 출발을 하는건지 갑자기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그러니까 묵티나스를 향해 오르는 사람들의 수가 확 늘어났다. 어쩐지 무스탕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던 서양인 트레커들+당나귀팀도 꽤나 큰 규모로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지라 잠시 동경의 눈빛을 던져야 했다는(역시 아무나 못 들어간다니까 뭔가 있어 보이는 -_- 아아, 이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여).  

 

<짜잔, 좀솜 도착> 

 

<헉, 이렇게 많은 차량은 트레킹 시작 후 처음인 듯. 이제 내놓고 달려주겠다, 이거지?> 

 

<좀솜에서 만난 맥주 먹는 송아지 ㅋㅋ>

 

 

 

<아마도 네팔 공산당 좀솜 지부? 네팔 공산당의 이념은 막시즘과 레니니즘의 적당한 짬뽕인가 보다>

 

좀솜은 소문처럼 이 동네서 보기드문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좀솜에 입성하는 것으로도 갑자기 트레킹이 확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 규모에 걸맞은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기도 하다. 공항까지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좀솜 마을을 통과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체크포인트>

 

 

체크포인트 앞에는 묵티나스 성지순례객들로 보이는 인디안들이 무척 많았다. 예전에 티벳 카일라스를 여행할 때나 티벳에서 네팔로 나오는 국경에서 만났던 인도인 순례객들이 다시금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들 역시 나름 잔뜩 추위에 대한 대비를 하고 온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신고 있는 신발의 대세는 슬리퍼여서 좀 걱정되었다는. 우리 앞줄에 서 있던 몇 인디안들과는 전혀 관련 없다는 듯 삼삼오오 어울려 노닥거리고 있던 이들이 계속 우리 앞으로 끼어들기/새치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다시 한 번 김원장의 화가 폭발 -_-; 하고야 마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김원장이 순례하러 온 길에서마저 질서를 안 지켜서야 되겠냐며 씩씩거리는 가운데 나는 그런 그를 혼자 세워놓고 급한 볼일부터 해결하기 위해 체크포인트 옆 가게(및 식당)를 찾아갔다.   

 

 

나름 없는 게 없는 가게를 지나(흠, 저 빵빵한 과자 봉지를 보니 좀솜도 비행기 타고 갑자기 올라온다면 부담가는 고도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어두컴컴한 식당 홀을 통과하여 뒷편의 화장실로 갔다.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았던 화장실 사용료로 10루피를 지불. 다시 밖으로 나와보니 그래도 그새 줄이 조금은 줄어들어 김원장이 체크 포인트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다. 따라 들어가보니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벽보가

 

 

지금으로부터 딱 4개월 전 여기 좀솜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실종된 프랑스 여행자를 찾는 안내문.

오호... 정녕 아직까지 못 찾았단 말인가. 부디 별일없이 나타나야 할 터인데.

이 동네가 납치니 유괴니 뭐 그런 흉악한 범죄가 일어날 만한 곳이 아니다보니 어디 길 아닌 길에서 실족했을까봐 걱정이다.   

 

 

더불어 환경 보호 측면에서 이 동네에서 직접 정수해 판매하는 물 가격표와

 

 

근처 호텔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응? 근데 외국인한테는 왜 현지인 가격의 몇 배를 받는건데?)

 

신고를 마치고 나오는 그 순간까지도 투덜거리고 있는 김원장과 다시 걷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여기서 20여 분 정도를 지체한 것 같다. 만약 체크포인트에 안 들르고 몰래 샤삭, 지나가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라나? 아직 전산화는 멀어보이고 모든 일이 손필기로 이루어지는 곳이다보니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버렸어도 별 일 안 일어났을 성 싶다. 물론 내게 뭔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철저히 이 기록에 의존해야겠지만.

 

곧 이어 나타난 좀솜 공항. 앗, 뱅기다!  

 

 

좀솜을 오가는 비행기 역시 그 놈의 바람 때문에 오전에만 운행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공항 규모도 매우 작지만 비행기가 저 정도 크기라면 이 깊은 계곡에 불어대는 바람에 휘청댈만 하겠구나. 

 

 

좀솜을 벗어나자 언제 좀솜 같은 마을이 있었냐는 듯 또 다른 풍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차 바퀴가 만들어낸 흔적이 뚜렷한 도로의 폭이 확연히 넓어져버려 좀솜 이전의 그것과는 느낌이 다소 다르다. 지나온 나의 성향으로 볼 때 차가 다닐 정도이니 그만큼 길이 완만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먼저 들어야 어울리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런 도로를 직접 맞이하게 된 지금, 그보다는 서운함이 앞선다. 벌써(?) 나의 트레킹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 곁을 날아오르는 비행기>

 

좀솜에서 마르파까지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렸는데 좀솜과 마르파의 고도차가 워낙 얼마 안 되다보니 대부분 평탄한 길에 가까웠다. 그 길에서 트레커들은 가끔씩 먼지 바람을 일으키는 차량들을 피해 닐기리봉들과 다울라기리 산군이 굽어보는 칼리 간다키 강바닥으로 내려서 걷곤 했다. 언제고 나중에 묵티나스처럼 마낭까지도 차가 다니게 된다면, 그래서 토룽페디 바로 눈 아래로 차들이 치고 올라오게 된다면, 흠냐, 그 땐 이 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오늘의 목적지인 마르파를 30여 분 앞에 남겨두고, 말로만 듣던, 글로만 읽던 그 '바람'을 만났다. 실로 오래간만에 겪는, 아니 대체 이런 바람을 과연 내가 언제고 겪었던 적이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강한 흙먼지 바람이었다. 제 아무리 모자를 눌러 쓰고 안경을 썼어도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여서 옷깃을 꽉 여미고 저 멀리로 날아가려는 모자를 손으로 눌러 부여잡은 채, 때로는 아예 바람을 등지고 돌아서 뒤로 걸어야 했다. 풀만이 곧 마르파가 나올거라고 해서 막판 피치를 올렸지만 만약 마르파를 한참 남겨둔 상태에서 이런 바람을 만났다면 좀 난처했을 듯.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고 있는 김원장은 지금쯤 카그베니에서 아침 식사가 늦게 나온 것과 좀솜 체크 포인트에서 새치기 당한 것을 곱씹으며 다시금 투덜거리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ㅎㅎ      

 

 

<네팔의 딜라이트풀 애플 캐피탈 ^^ 마르파. 비록 뿌연 먼지바람 속이지만 반갑구나야~>  

 

 

마르파를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치고도 생각보다 제법 걸어야 본격적인 마을이 등장했다(표지판을 초입부터 일찌감치 설치해두기도 했거니와 아마도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욱 멀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곳을 지나는 차량들은 마을 외곽으로 난 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마르파 메인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행자 중심이라는 것 또한 나름 귀여운 안내 표지판과 더불어 마음에 들었다. 

 

    

 

마르파 도착. 현재 시각 오후 12시 10분. 우선 그럴싸한 광고 문구(24시간 핫샤워!)를 내건 방부터 대충 골라 잡고,

 

 

명칭 : Hotel Sunrise (and roof top restaurant) (응? 근데 이 집 루프탑에도 레스토랑이 있었나? -_-;) 

트윈룸 숙박비 : 250루피 (화장실 딸린 방). 건물의 입구는 제법 커다란 식당이고 식당을 관통해서 숙소 건물로 요리조리(?) 내려 들어가게끔 만들어진 구조다. 그러니까 도로에 면한 쪽에서 보면 식당이 1층이지만, 숙소 안쪽에서 보면 식당이 윗층에 위치하는 격이다. 숙소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방들이 있는데 우리는 화장실이 딸리고 작으나마 공동 정원이 있어 나름 채광이 좋아보이는 안쪽 숙소 건물의 한 트윈룸을 잡았다. 방안에 딸린 화장실에서 양은 좀 부족할지언정 전기 온수기로 뜨거운 물 샤워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격스럽다는(솔직히 방안에 전기가 들어오고 세면대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ㅋ).

특이사항 : 외관이 그럴싸해서 구경이나 한 번 해볼까 들어갔다가 생각보다 괜찮아보여서 다른 숙소 안 가보고 그냥 묵기로 한 곳. 처음 봤을 때는 방안으로도 볕이 잘 들 것 같았는데 예상보다 썰렁했고 식당은 기대보다 훌륭했다.   

 

<숙소 식당벽에 붙어있던 반가운 한국 이름들>

 

금강산도 식후경. 아마도 김원장 배가 많이 고플 것이다. 일단 점심 식사부터 하기로.

 

"여기 스파게티랑 닭고기 스테이크랑 마르파에서 유명하다는 사과 주스도 주세요!" 

 

<파키스탄 훈자에 살구 주스가 있다면 네팔 마르파에는 사과 주스(60루피/잔)가 있다>

 

 

헉, 이렇게 비주얼이 훌륭한 스테이크(400루피)와 스파게티(250루피)라니.

(그렇다. 다시금 말하건데 오늘 방값과 스파게티 한 접시 값이 같다 ㅎㅎ)

 

 

어제 카그베니에서 짠 맛에 데인터라 살짝 우려를 했는데 스파게티도 안 짜고 괜찮고 스테이크 양도 상당하고 감자 튀김 좋아하는 김원장 역시 사이드로 나온 감자 튀김에 만족스러워한다. 삘 받은 김에 후식으로 애플 파이까지 한 조각 주문(누가 마르파 식당 아니랄까봐 사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메뉴판에 총망라 되어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볕 좋을 때 앞 마당에 등산화를 말리고(앗, 꽃이다!)

 

 

번갈아 샤워를 마치고(방에서 안 나가고 샤워하니 아웅, 좋아라),

 

 

전기가 들어오는 방에 있으니 침대에 우아하게 누워서 지난 사진도 신나게 돌려봤는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슬그머니 김원장의 기분이 다시 좋아진 모양이다. 역시 배불리 먹이고 깨끗하게 씻기고 한 게 효과를 보는구나. ㅋㅋ 근데 김원장은 기분이 좋으면 꼭 산책을 나가자고 한단 말이지. 쩝. 그래서 룰루랄라 마르파 마을 구경에 나섰다. 마르파 골목길은 복층 집들이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어 바람 맞을 일이 없다.     

 

 

 

 

<사과철에 왔음 더욱 보기 좋았을텐데>

 

 

 

 

<엇, 산 중턱에 저것도 혹 곰파? 좀솜에서 올 때는 가려져서 안 보였는데 반대방향에서 돌아보니 보인다>

 

 

 

 

 

마르파는 매력이 분명한 마을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마을의 독특한 골목 분위기도 그렇고 마을 외곽으로는 사과 나무 과수원이 넘쳐나고 침이 저절로 꼴깍 넘어가는 사과로 만든 음식/술도 여기저기서 팔고 좀솜에 비해 핸들링하기 좋은 규모도 그렇고... 여행자들이 좋아라~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모두 갖춘 셈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행기가 다니는 좀솜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두시간이면 충분하고 굳이 비행기가 아니어도 아랫쪽 다른 마을들로 차량이 오가며 골목의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에선 아주머니들이 호객을 열심히 해대시는 이 곳이 과연 히말라야 오지 마을인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같은 외국인들이 너무 많다. 트레킹 성수기라 그런가. 이 정도면 마을 주민의 수에 비해 외국인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은 파란 눈의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온 가족도 있다).

 

<한 바퀴 마을을 돌고나니 김원장이 또 먹겠다더라>

 

밀크티와 함께 간식까지 먹고 난 뒤에는 어제 보다 만 <마파도 2>를 마저 보았다. 김수미가 캐스팅이 안 된 줄 알았더니 막판에 잠깐 나오긴 하는구나(지금 찾아보니 다른 영화와의 중복 촬영 문제 때문에 카메오로 출연할 수 밖에 없었다네). 연이어 다큐멘터리 한 편 감상.

 

제목은 [아시아음식 :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맛 - 네팔]. 내내 특별할게 없다가 우리가 와 있는 마르파의 사과 브랜디 이야기가 등장하는 바람에 잠시 몰입. 

 

 

<마르파에서 사과를 안 먹어볼 수 있나. 개당 5루피에 4개 구입. 푸석거릴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아삭하니 맛나다>

 

저녁은 맨밥에 달걀 후라이, 뜨거운 물 시켜서 육개장 블럭 풀어 먹었는데, 간만에 먹으니 진짜 얼큰하니 속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시원허~다! 는 말이 절로. 고도를 높일 때에는 느끼할 것 같아 선뜻 손이 안 가던 메뉴였는데... 고도와 반비례해서 넘쳐나는 식욕 -_-; 에 후식으로 애플 크럼블 추가. 안나푸르나 산 중에서 별 걸 다 먹네. 혹 산을 오르며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빠졌었다 하더라도 이런 속도라면 내려가기 전에 회복 수준을 넘어 오히려 더 찔 듯. T_T 

 

 

저녁까지 거나하게 먹고 방으로 돌아온 김원장은 완전 제 컨디션을 되찾은 모양이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열심히 지도를 들여다보며 다음(???)에는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네, ABC 트레킹을 이번에 연이어 하네 마네 헛소리를 -_-; 해대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아까 마을 구경하다 보니 여기 마르파에서 다울라기리쪽으로 넘어가는 후덜덜 루트가 있더라).

 

이후 전기 사용이 가능한 방맞이를 기념, 준비해 온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더 감상한다.

 

[로드다큐 2006.10.14 히말라야 - 네팔 트레킹의 즐거움]

[로드다큐 2006.10.23 히말라야 - 중국과 인도의 국경에 서다]바로 그것.

 

트레킹을 하는 중이어서 그런지 열라 감정이입 잘 된다. ㅎㅎ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데 둘만 흥분해서 서로 아는 척 모르는 척 다 하다보니 어느새 깜깜한 밤 10시. 트레킹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늦게 취침에 드는 날이다. 김원장 침대에서 구겨져서 같이 봤더니 김원장 침대는 우리의 체온으로 어느 정도 덥혀진 상태인데 아늑한 그 자리를 두고 썰렁한 내 침대 속으로 들어가려니 다소 괴롭다. 내복 바람의 김원장이 숙소에서 제공하는 이불만으로도 본인은 오늘밤 충분할 거라며 본인 침낭을 다시금 내게 더해준다. 둘이 함께 하는 길, 이래서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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