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흐리다 맑음

@ 이동구간 : 다나(1,440m)-타토파니(1190m)-마하비르-티플랑(1040m)-라쿠-베니(830m)-포카라

@ 총 소요시간 : 12시간 40분(순수 걸은 시간 4시간 20분+1차 버스 55분+2차 버스 5시간 30분) 

 

오믈렛, 콘브래드, 밀크티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7시 5분, 다나를 출발한다(2인 1박 3식 총 계산서 1125루피=18,000원. 계산기를 두드려보며 다시금 네팔의 저렴한 물가에 감탄을 한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갈레스와르(Galeshwar). 포카라행 버스를 탈 수 있는 베니(Beni)의 바로 전 마을로, 막상 트레킹이 끝난다 생각하니 어쩐지 밀려드는 아쉬운 마음에 일부러 안나푸르나의 품 속 갈레스와르에서 하루 더 자고 내일 베니까지 가볍게 살짝 걸어준 뒤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가기로 잠정 계획을 세웠다.  

다나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다시 차가 다니는 큰 길과 합류를 하게 된다. 이제 내일이면 포카라에 도착할 수 있다는 물리적 거리가 알게 모르게 정서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하다. 지난 15일간 겪었던 여러 경험과 기억들이 마치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물론 어떤 기억은 절로 재차 몸서리를 치게끔 만들기도 한다. 시원섭섭, 이 단어야말로 현재 내 감정과 가장 근접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굳이 그 비중을 논하자면 시원>섭섭일듯(물론 김원장은 시원<섭섭일테지만).    

고도를 낮출수록 꽃이 피고

 

물동량도 눈에 띄게 많아지고 

(다만 시즌이 점점 끝나가서 그런지, 묵티나스를 향해 올라가는 트레커의 수는 어제보다도 훨씬 적었다)

 

수량도 단연 풍부해졌다(덕분에 내가 내딛는 같은 길 위로 버스 두 대와 지프 세 대가 요란하게 지나갔는데, 땅이 질어서 먼지가 덜 날린다는 점이 약간의 위안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솔직히 전보다 밋밋하게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들어와 버린지라 그만큼 걷는 재미가 반감됨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그간 하이 리스크로 굳게 자리매김했던 저 놈의 설산쪽으로 시선이 자꾸 뒤돌아가는 것은 왜일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

 

 

 

수량이 풍부해지니 그만큼 집들이 들어섰고(앗, 저것은 그 사연많은 물레방아간)

 

저절로 트레킹 첫날, 나디 바자르에 이르던 그 구간이 떠올랐다. 고도대에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약간씩은 비슷한 듯. 

 

 

 

 

차가 지나갈 때 잠시 동시에 짜증을 내는 것 말고는 한동안 말 없이 김원장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채 걷고 또 걸었다(나는 어느 순간 설산이 그냥 사라져 버릴까봐 뒤돌아 사진 찍어대느라 나름 정신이 없었는데 그동안 김원장은 무슨 잡생각을 하면서 걸었나 몰라). 그렇게 다나를 떠난지 1시간 15분이 지나서야(오전 8시 20분) 타토파니(Tatopani) 마을 권역으로 들어섰다. 오늘 이렇게 직접 걸어보니 어제 타토파니까지 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리였을 성 싶더라.

 

  

 

약 10분 뒤에는 타토파니의 체크포스트를 지났고 

드디어 온천욕을 할 수 있다는 타토파니 입성(타토 파니 = 뜨거운 물 = 온천).

타토파니는 우리가 트레킹을 끝낼 최종 목적지인 베니 방향 외에도 다시 푼힐(Poon Hill) 방향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 갈림길에 놓인 마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내가 좋아하는 온천 뿐만 아니라(사실 온천을 아무리 좋아해도 이 곳 노천탕에 몸을 담그기는 약간 부담스러웠을 것 같지만) 그야말로 없는게 없는 마을이었다(심지어 아래 사진처럼 나이트 클럽부터 에이즈 경고판까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제 이 마을까지 하산하는 것은 무리였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갖춰진 타토파니의 여러 샵들을 보니 이번엔 어제 다나에서 점심만 먹고 좀 쉬다가 오후에 여기까지 내려왔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만약 어제 여기 타토파니에서 잤었더라면 화려하고 환락적인 밤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이런 팔랑귀 같으니)

그러다 문득 여우와 신포도 모드가 재발동하여, 아니야, 어제 여기까지 왔으면 안나푸르나와 함께 한 그 고요한 밤은 나이트클럽 소음에 묻혀버렸을거야, 하는 쪽으로 마음이 다시 바뀌었다. 실상 타토파니에선 다나의 뷰와 분위기를 누리기 어려워 보인다. 

다나든 타토파니든 분명 숙박지로서 일장일단이 있을테고, 만약 (며칠 전부터 김원장이 원하는 대로) 타토파니에서 다시 푼힐을 향해 고도를 높일 계획이 있다면 당연히 타토파니에서 하루 쉬고 올라가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이 날 오후에야 깨닫게 되지만서도) 굳이 비교하자면 다나에서의 밤이 트레킹의 마지막 날로 보다 어울린다는데 한 표 던진다.

 

그러나 언제고(?) 다시(?) 오게 된다면 트레킹 중간에 긴장을 풀고 편안히 쉬기 좋은 타토파니를 그냥 지나치진 말아야지.

지금은 아침 먹은지 얼마 안 되고 점심 먹기엔 넘 이른 시간이라 아쉽게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타토파니를 벗어나자 곧 고레파니(Ghorepani)/푼힐로 향하는 오르막 갈림길을 만난다.   

다리 건너편으로 뻗은 그 오르막을 가늠해보는 김원장. 내가 뭐라할까봐 더 이상 말은 안 꺼내지만 분명 아쉬울게야. ㅋㅋ 아마 예전에 푼힐 트레킹 했을 때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이번에 나와 함께 다시 올라간다면 그 때 당시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말이 사뭇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질질 끌려 베니행 다리로. ㅎㅎ

 

- 솔직히 말해 봐. 푼힐로 다시 올라가고 싶은데 정말 나 때문에 양보하는 거야? 

- 아니, 괜찮아. 나도 그냥 내려가고 싶어

서로 격식 차리기. 

다리를 건너오자 마치 버스 종점처럼 보이는 널찍한 공간에 (바라건대) 베니행으로 보이는 버스가 서 있었다. 순간 또 어제처럼 마구 흔들리는 마음. 저걸 잡아 타 말아. 버스 안에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이 얼마간 차 있거나 긴 트레킹 이후 다리가 무거웠으면 마구니의 유혹을 떨치치 못했을텐데,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텅 빈 버스에 아직 이른 아침인지라 일말의 가책이 발동하여 못 본 척 지나치기로 한다. 그런데 왜 이리 발길이 안 떨어져? ㅎㅎ 김원장은 벌써 저 멀리 앞서 걷고 있거늘.

 

 완연한 가을이다. 어쩌면 올해가 네팔의 "가을"로는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 것으로 길은 더욱 차도화 되었고 심심치 않게 차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흥이 더욱 떨어진다.

역시 사람이 걷는 길은 차가 다니지 않아야 제 맛이다.

 

 나는 여전히 나한테 언질도 안 주고 설산이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바라보는 일이 잦다. 

뒤돌아 보았을때 선연히 보이는 설산은 마치 학교 가는 나를 문 밖까지 나와 배웅해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옆으로 시원한 물이 흘러 예전 호도협 트레킹때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이럴 때면 정말 나는 곱씹을 추억이 많아 행복한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인공의 힘을 오랜 시간 가해 쳐내어 만든 것이 분명한 길, 그러면서 생겨난 많은 사연을 안고 있을 차도를 계속 걷는다. 이젠 차가 한 대 지나갈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먼지가 날아드는 반대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야 하는 일이 보다 빈번해지고 길어진다. 동시에 트레커는 고사하고 이 길을 걷는 현지인들조차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든다. 그들도 이젠 버스를 이용하니까. 이렇게 그들의 삶이 변하고 있으니까.

오전 9시 45분. 다나를 떠난지 2시간 40분, 마하비르(Mahabhir 혹은 모하비르 Mohavir)라는 작은 마을의 한 숙소겸 식당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었다 가기로 한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목적지인 갈레스와르까지 대략 반 정도 온 것 같다. 고도를 낮추면 낮출수록 인프라가 훌륭해질거라 여겼지만, 그래서 타토파니를 지나면 줄줄이 큰 마을들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무래도 베니에 이르기까지 타토파니를 능가하는 마을은 찾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따끈한 레몬차를 마시며(잔당 12루피) 맞은 편으로 시선을 옮기니 아직 선명한 공산당 마크가 보인다.

듣자하니 이 동네에 마오이스트들이 활달하게 활동할 당시에는 이 길을 지나는 트레커들에게 삥도 뜯었다지.   

20 여 분 쉬다가 다시 출발한다. 현재 시각 10시 5분.

 

오늘 아침에 길을 나선 이래로 그간은 골이 깊어 그런지 여태껏 햇살이 직접 피부 위로 닿지 않았는데, 조~ 앞부터는 이제 해가 들 모양이다. 

 흐흐, 정신없고 귀여운 것들을 떼로 만났다.

2008년 11월 16일 오전 11시.

저 산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돌아봤던 설산이다. 

...

안녕...

안녕...

마하비르 이후 이렇다할 특징없는 작은 마을들을 몇 지났다. 길은 오르락내리락을 지리하게 반복했고 열정은 급격히 식어갔다. 차가 지나쳐 갈 때마다 다음 차를 잡아타야 하나... 하는 갈등 역시 계속 되고 있었다. 한 대가 지나가고 두 대가 지나가고... 그런던 중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서자 앞서 걷던 김원장이 저 아래 힘 없이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무슨 문제 있어? 다리가 제법 아파온다고 한다. 이제 걷는 일이 더 이상 쾌적하지 않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11시 45분. 예측이 맞는다면 앞으로 최소 1시간은 더 걸어야 갈레스와르가 나타날 것이다. 지도를 다시 펼쳐놓고 지나온 마을들을 떠올리며 현재 우리 위치를 가늠해 보니 지금 서 있는 곳은 라쿠(Rakhu) 근방 어드메인 듯 싶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고 있던 풀만도 불러 세웠다. 그래, 지금은 분명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원장과 따로이 의견을 교환해 보지 않아도 분명하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이 곳을 떠났다.  

 

세 사람의 엉덩이를 겨우 걸칠 만한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차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나타났다. 손을 마구 흔들어 일단 버스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어라, 그런데 이미 이 버스엔 승객이 꽉 차다 못 해 넘쳐나고 있었다. 운전사가 차를 세운 이유는 하나다. 바로 지붕 위에 타라는 것. 지붕? 저 위에 올라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인도나 네팔에서는 지붕 위에 올라탄 승객을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아직껏 나는 시도해 본 적이 없다(김원장은 예전에 네팔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지만). 하지만 우간다에선 딱딱한 바나나가 똥꼬를 마구 찔러대는 트럭도 탄 적이 있는 걸 뭐. 나는 가볍게 생각한다. 심지어 재미있을 것도 같다. 당연 타기로 한다.   

 

풀만을 사이에 두고 요금 흥정을 시도해 보지만 쉽지 않다. 무엇보다 차를 세운 우리 셋 때문에 차 안에 넘치도록 타고 있는 승객 모두가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든다. 설령 이 나라 승차 문화가 이런 식으로 잠시 지체되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그저 내 방식대로 내 살아온대로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금방 운전사 아저씨가 부르는 대로 베니까지 1인당 100루피, 총 300루피를 지불하기로 한다(이럴 경우 당연히 포터 몫까지 우리가 지불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런 비정규 차편의 경우, 외국인인 우리는 현지인의 몇 배에 달하는 요금을 감수한다 하여도 포터인 풀만은 로칼이니까 사실 좀 깎아줬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여하튼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선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법이고 아쉬운 쪽이 지게 되어 있는게 세상살이다. 

 

몸이 몸이니만큼 -_-; 지붕 위에 힘겹게 올라갔다. 버스는 우리가 채 자리를 제대로 잡기도 전에 출발했다. 예상보다 재미있구나, 라고 생각한 것은 정말 잠시였다. 아무리 비포장 도로 위였지만 보기보다 무척 흔들려서 중심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와중에 간간히 상공을 가로지르는 전깃줄과 나뭇가지 따위를 림보마냥 피해야 하는 미션도 있었다. 클라이막스는 맞은 편에서 트랙터가 나타났을 때였다. 하필 노면이 젖어 홈이 깊은 구간이었다.   

서로 후진을 하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잠시 멈추어 간을 보던 버스와 트랙터는 결국 아슬아슬, 코딱지만큼씩 진행해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지붕에서 보기에는 혹여라도 자칫 바퀴가 길에서 이탈하는 날에는 그대로 강물에 처박힐 것처럼 보였다.  

굳이 이 구간이 아니었어도 참으로 속도가 나지 않던 버스가 우리가 워낙의 목적지로 삼았던 갈레스와르에 이르러 한동안 멈추어 섰다. 상당수의 승객이 갈레스와르에 하차했고 덕분에 우리는 그 틈을 타 얼른 지붕 위에서 차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미 엉덩이도 팔도 상당히 얼얼해진 뒤였다. 

갈레스와르는 생각보다 분위기도 괜찮고 규모도 제법 되는지라 계획대로 오늘 하루 여기에서 묵는다하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우리의 마음이 포카라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대로 베니까지, 그리고 그 곳에서 오늘 어떻게든 포카라로 가는거야! 

 심히 덜커덩거리는 버스를 타고 베니에 도착한 것은 오후 12시 40분.

베니의 첫인상으로 말하자면, 야, 이제야 사람 사는 마을(?)에 도착했구나! 였다 ㅎㅎㅎ

터미널에 늘어선 (지프가 아닌) 일반 승용차들을 보니 약간 감개무량하기까지 했다는. 난 문명의 세계로 돌아온거야!

서둘러 포카라행 버스부터 수소문해 보았다. 어설픈 매표소 부스를 찾아가보니 2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혹 버스표가 없다거나 시간이 너무 벌어지면 택시를 이용할 마음도 있었는데 베니에서 포카라까지의 택시비는 2500~3000루피에 달한다는 말이 있었고 그 정도 되는 금액을 마음에 들게 흥정하기도 지치는 일이고 해서 그냥 버스를 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210루피X3인=630루피 지불). 베니에서 포카라까지 대략 4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그 정도야 너끈히 잘 탈 수 있겠지. 그럼 기다리는 동안 밥이나 먹을까?

터미널 바로 앞 식당 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으로 볶음밥, 감자튀김, 샐러드를 스프라이트와 함께 주문했는데 볶음밥의 비주얼이 나름 귀여웠다. 하지만 맛을 논하자면, 엄마가 옛부터 터미널 음식은 들고 나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에 대부분 별로라고 가르친 기억이 나는데, 뭐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신기하게도 터미널 특유의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맛이었다(물까지 토탈 360루피).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뒤 볼일을 보고 버스에서 먹을 주전부리들을 사는 것(간만에 보는 '맛살라' 단어에 열광하면서)으로 포카라행 버스의 탑승 준비를 마쳤다(과자 3개 60루피, 어제부터 먹고팠던 귤 4개에 10루피).  

 

포카라행 버스는 예정된 시각보다 조금 늦은 2시 15분에 출발했다.  

 그리고는 거의 내내 이게 달리는 것인지 멈춰선 것인지 모를 정도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베니를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버스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승객들과 그들의 짐으로 빽빽하게 들어찼고

 결국 그들 중 상당수는 다시금 지붕 신세를 져야했다.

베니를 떠나 바글룽(Baglung)까지는 마치 커다란 거인이 버스를 집어들어 마구 흔들어 대는 것처럼 몸이 위 아래로 정신없이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더니(그래도 이 구간은 차가 달리는 방향의 오른편 저 멀리 안 쪽으로 사람이 걸을만한 길들이 평안한 풍경 속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있어 원한다면 트레커로서의 정체성을 며칠 더 연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글룽부터는 반대로 몸이 양 옆으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구절양장 고갯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버스 여행이 익숙치 않은 현지인들이 하나 둘씩 멀미 증세를 보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김원장 역시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혹시나 해서 풀만을 돌아보니 풀만은 이미 맛이 가 있었다. -_-; 사방팔방에서 그 모양으로 나를 공격해오니 어느 순간부터는 결국 나마저 느글거려 오는데, 버스가 쉬지 않고 내뿜는 연기에 두통까지 더해져 참으로 불편한 시간이 이어졌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나야풀(Nayapul) 부근 간이 휴게소(?)에서 잠시 멈춰섰는데, 공교롭게도 버스 창 밖을 통해 이 곳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려는 젊은 한국인 학생들을 몇 구경할 수 있었다. 여기서 트레킹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보아 푼힐 혹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그 목적지일텐데 가벼운 행색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푼힐쪽이 유력해 보였다. 이미 보름 남짓의 나름 긴 트레킹을 마친 뒤인데다가 오늘의 터프한 일정으로 거의 죽어가다시피하는 남편을 곁에 둔 늙은 마누라의 입장에선, 성별이 적당히 섞인 미혼의 젊은이들이 빚어내는 톤 높은 "하하호호"에서 여러 감정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젊음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과,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아아 안타까운 사랑의 작대기), 그에 따르는 가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은이의 눈에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솔직한 표정.    

 

옆에서 괴로움에 반 미쳐가던 김원장이 아까 베니에서 그냥 택시를 탔어야 했다고 후회 막심의 톤으로 신세 한탄을 하다가 이 놈의 버스는 왜 빨리 달릴 생각을 안 하냐며 화를 낼 때까지 나의 시선은 그들에게서 벗어날 줄 몰랐다. 걔네들은 몰랐겠지. 웬 아줌마가 그들과 좀 떨어진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버스는 베니를 떠난지 5시간 30분 만에 포카라에 도착했다. 7시 45분. 대체 누가 4시간 걸린다고 한거야? 멀미와 두통에 지친 김원장은 더 이상 투덜거릴 기운도 없어 보였다. 이미 포카라엔 어둠이 짙게 내린 터, 나름 포카라 지리가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여기가 어디쯤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김원장 상태를 보아하니 이대로 숙소(포카라 짱) 찾아 삼만리 버전으로 포카라를 헤매고 다니기엔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과감히 택시를 잡았다. 이 상황에서 가격 흥정을 하다간 김원장에게 욕 먹을 것 같아서 터미널에서 포카라 짱까지 150루피에 아저씨가 부르는대로 가기로 했는데 역시나 허탈하게도 얼마 안 가더라. ㅎㅎ (그래도 생애 최악의 버스 여행이었다던 김원장은 택시 타길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포카라 짱엔 남아있는 방이 별로 없었다. 포카라에 숙소가 무척이나 많을텐데 방이 없다니. 산에선 그다지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요즘 포카라엔 한국인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내어주는 방을 그냥 택했다(화장실 딸린 트윈룸 400루피). 체크인하면서 물어보니 카트만두 짱에서 보냈다는 배낭이 아직 안 도착한 모양이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알아보자. 일단 처음 계약했던 날짜보다 하루를 더 산에서 보냈으니 카트만두 짱 사장님 말씀대로 이 곳에 그만큼의 추가 비용을 지불한다(10USD). 그리고나니 이제 우리 풀만과도 헤어질 시간이다. 포카라 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본인이 머무는 숙소가 있다니 오늘이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간 쌓아온 정이 있는데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일단 포터비와 팁부터 정산하고, 우리가 사용했던 스틱도 모두 풀만에게 선물로 안겨주고 내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에야 겨우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 이게 얼마만의 도시냐. 화장실 변기 시스템이 좀 오묘하기는 하다만, 온수 걱정 없이 샤워하고 전기 걱정 없이 충전한다(뭐 여기가 네팔인 이상 100% 걱정을 안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산 중에 비교할쏘냐). 게다가 밖엔 한식이 널렸(?)다. 여기는 포카라. 세계에서 가장 은둔하기 좋다는 곳 중 하나. 우리에게도 이미 잡다한 추억이 많은 곳.

 

멀미로 인해 썩 입맛이 없다는 김원장을 달래어 포카라 짱 근처에 있다는, 요즘 한국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포카라 최고의 식당이라 소문나있는 <소비따네>를 찾아가 본다. 사실 찾을 필요도 없었다. 포카라 짱에서 넘 가까워서.  

  

<별로 생각이 없다더니 메뉴판 앞에 두고 심사숙고 중인 김원장>

 

사실 메뉴 선정에 따로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왜냐. 소비따네의 가장 유명한 메뉴가 꽁치김치찌개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왔으므로.  

사실 바다라곤 면하지 않은 이 나라에서 꽁치김치찌개라니 뭔가 부적절해도 한참 부적절한 느낌이 들었지만, 뭐 세상엔 통조림이란게 있으니까.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한 입 후르릅+쩝쩝. 와, 과연 유명세를 탈 만한 곳이로구나. 대체 어떤 사연이 있어 나보다도 (한참) 월등하게 한국 음식을 조리할 줄 아시게 된 건지 그 사연이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소비따네에서 뜻밖의 맛난 식사로 인해 트레킹 후 (셀프로라도)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사실 더욱 놀라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비따네의 주력 메뉴가 한식이기 때문에 당연 테이블마다 한국인 일색이었는데,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우리 바로 옆 테이블의,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저절로 듣게 되었다(목소리의 톤과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두 분 중 한 분이 제법 취기가 오른 듯 했다). 처음에는 찌개에 열광하느라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두 분 중 주로 말씀을 하시는 분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와 꽂히면서 나도 모르게 눈코입은 밥에 고정되어 있어도 귀는 그 쪽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라???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어디선가 접한 듯한, 그러다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미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연...

속으로 어, 어, 어, 하다가, 아니 그렇다면 지금 말씀 중인 이 분은 바로,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 테이블을 바라보니,

그 분은 정말 예상대로 김홍성님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결국 반가운 마음을 참지 못 하고, 식당을 떠나기 전에 두 분의 대화 중 잠시 양해를 구하고 김홍성님께 인사를 드렸다. 6년 전 네팔 여행 당시 겪었던 카트만두 한국 음식점 '소풍'에서의 기억과 수자타님 이야기, 그리고 이번 트레킹을 하기 전 재차 읽었던 김홍성님의 저서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지껄여댔는데, 다행히 김홍성님 역시 반갑게 맞아주시며 이렇게 독자가 직접 당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눈 적이 처음이라고 하신다. 게다가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네팔(이미 김홍성님은 네팔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생활하고 계시기에), 그것도 김홍성님께서 예전에 운영하셨던 카트만두 소풍도 아니고 포카라의 작은 식당에서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될 확률이라니. 그러면서 한 말씀, 내 책 다 읽었으면 지난 달에 나온 '우리들의 소풍'도 읽어봤어요? 확인해 보시네. 헤헤. 어이쿠, 새 책이 나왔는지는 몰랐네요.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사 볼께요 ^^ 인사 드리고 먼저 식당을 나섰다(다행히도 이 약속은 지켰다).

 

워낙의 예상으로는 트레킹을 모두 마치면 둘이 마주보고 앉아 진중히 지난 트레킹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게 되리라 여겼지만,

실제로는 몸은 무지 피곤하지, 정신은 우연히 만난 김홍성님의 지나온 사연에서 벗어나질 못 하고 있지, 뭘 되짚고 반추하고 도무지 그럴 여유가 안 생기더라. 결국 이 날의 마무리는 헛헛하게도, 빤스만 입고 자도 안 춥다니 이게 몇 년만에 누리는 호사냐, 각자 침대에 누워서 히히덕거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심연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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