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흑, 삘 받았을때 여행기 진도 좀 쫙 빼나, 싶었는데 결국 주말 한 번 보내고 나니 도루묵일세. 여하튼 다시 달려보자!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알라는 위대하시다, 기도하러 오너라(올 상반기 중동을 몇 개월 돌았다고 뇌속에서 절로 통역되어 한국어로 들리는 경지)가 울려대는 것을 보니 근처 어디 무슬림 사원이 있나 보다. 게다가 지나온 럭나우에 비하면 자이푸르는 확실히 건조한 편인지라 이래저래 지난 여행 중 만났던 중동 국가들이(그리고 그 곳의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르는구나.

 

인도 들어온 뒤로 내내 날씨가 참 쨍하다가 오늘은 간만에 흐린 날씨를 보이고 있다. 안 그래도 일교차가 많이 벌어지는 요즘인지라 점퍼 챙겨 입고 일찍부터 우리 둘만의 핑크 시티, 자이푸르 투어에 나섰다. 론리플래닛에서 소개하는 Jaipur Walking Tour 루트를 발판으로 과감히 가감첨삭, 우리 취향에 맞는 부분으로만 사뿐히 즈려밟아 보는 것이 오늘의 목표 되시겠다.

 

혹시나 모를 다음 일정에 대비하여 터미널에 들러 대략 정보부터 취한 뒤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Chandpol Gate. 

지금 제게 인사를 하시는 건가요?

 

사진 왼편의 길다란 기둥이 마음에 안 들어 다시 한 컷, 

그러나 이번엔 바나나 아저씨가 메인 모델 -_-;

 

에라, 언제서부터 사진 챙겼다고... 사진 따위 포기하고 Chandpol Gate를 통과한다. 바로 펼쳐지는 Chandpol Bazaar 

시장에 낙타까지 다니니까 진짜 라자스탄에 온 것 같다.

 

점포 문 여시느라 바쁜 주인장.

 

계속 직진하여 Choti Chaupar를 지나니 곧 왼편으로 공사로 인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Iswari Minar Swarga Sal이 등장한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Iswari Minar Swarga Sal은 Heaven Piercing Minaret을 뜻한다고 한다. 오, 이름은 멋진데?   

 

이후로는 착실하게 Tripolia gate를 지나 City Palace까지 나아갔는데

너무 이른 시각이라서인지 Palace가 아직 문을 안 여는 바람에 매표소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그냥 통과,

맞은 편의 천문대라는 Jantar Mantar는 진작 별 관심 없었으니 제끼고 

빨빨거리고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결국 자이푸르에서 가장 유명한 <바람의 궁전, 하와 마할 Hawa Mahal> 앞에 서다. 

오래 살다보니(?) 내가 진짜 이 앞에 서는 날이 오긴 하는구나! 감개무량.

건물 앞에서는 아무리 고개를 젖혀도 역부족.

어쩔 수 없이 도로 맞은 편으로 건너가서(역시 다들 여기서 찍더라) 나도 남들처럼 정면 인증 샷 한 방.

 

각도 잡아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보려는 와중에 하와 마할 맞은편의 상점 주인들이 모두 총출동해서 본인들 가게 옥상으로 올라가서 찍으면 사진이 정말 잘 나온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거기까지 올라가는건 무료라고, 친구라서 그냥 들여보내주는거라고 뻔한 레퍼토리를 늘어놓길래 들은 척도 안 함.  

그래서 또 한 번 대충 -_-; 찍고 도망치다시피 하와 마할로 건너왔다. 입장은 건물 뒤쪽에서 이뤄지는 터라 입구를 찾느라 조금 헤맸다.

 

외국인 입장 요금은 1인당 50루피(당시 환율 기준 약 1250원).  

 

밖에선 몰랐는데 안쪽은 목하 공사중. 그래도 관람은 가능하다.  

그리고 드디어,

하와 마할에 오르다.  

 

혹시 저것이 Nahargarh일까? 

 

 

좀 전에 우리를 호객했던 상점들과 그 옥상이 보인다.  

흠, 이 쪽도 그다지 분홍색은 아닌데? 어딜 봐야 핑크 시티가 나온단 말이냐. 

 

돈 내고 들어왔으니 본전을 뽑아야 해!

하와 마할을 오르락 내리락, 나 있는 창 구멍이란 창 구멍 앞엔 다 서서 밖을 내다보는, 

그 외엔 그다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근처 사거리에서 무수히 많은 인파를 발견했다.

방금 전까지 선거 관련 연설(로 추정되는 썸씽)이 행해지고 난 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는데 나에겐 그 모습이 오히려 장관이었다(참으로 알 수 없는 개인의 취향). 넋 놓고 사람 구경에 정신이 팔린 나에게 오히려 김원장은 저 인파들이 또 모여들기 전에 얼른 성내를 벗어나야 한다더라(참으로 현실적인). 

 

그리하여 하와 마할을 마지막으로 관광을 대충 마치고 큰 길로 나서니, 정말 몇 시간 전과는 다르게 교통량이 확연히 늘어난터라 이젠 도로변을 걷는 일이 결코 쾌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에 (어제의 기억이 좋았던) 사이클 릭샤를 이용해 점심 식사 장소로 삼은 맥도날드까지 가기로 하고 나름 선량해 보이는 청년의 사이클 릭샤를 잡아 탔다. 하와 마할에서 라지 만디르(자이푸르의 유명 극장 Raj Mandir/자이푸르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맥도날드며 라시 가게까지 다 지척이다)까지 20루피에 흥정. 

  

방금 전 끝난 연설 때문인지 주변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여기저기 종이 꽃가루가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이클 릭샤의 속도감만큼은 여전히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는데, 어라, 이 청년, 한가로이 동영상을 찍고 있던 결국 나를 급 흥분 시키기에 이르렀다. 대략 목적지까지의 거리에 반 정도에 불과한 Sanganeri Gate 앞에 이르러 여기가 네가 말했던 목적지 맞지? 식으로 나왔던 것.   

 

증거(?) 영상

 

그에게 여기가 아니고 라지 만디르 극장을 말했던 것이다, 너도 그 곳을 안다고 했고 거기까지 20루피에 동의한 것이 아니냐? 따지니까 거기까지는 20루피를 더 내야 한다고 우겼다. 끝까지 자신 본인은 이 곳까지를 말한 것이였다면서. 

 

며칠 전 인도에 도착한 이래로 이번 인도 여행만큼은 너무 짠돌이+짠순이 버전으로 지내지 말자는데 서로 동의하고 이에 따라 무리하게 가격을 깎는다거나 어지간하면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나름 신경 쓰며 보내왔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화를 안 낼래야 안 낼 수가 없다. 물론 실제 통상 그 정도의 가격이 적정한 수준이고 외국어 사용으로 인해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내게 확신을 주지 말았어야지. 분명 라지 만디르를 안다고 어서 타라고 할 때는 언제고 말이야(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인도에선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라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벌컥, 하고 말았네 -_-). 

 

이번엔 김원장이 나를 달랬다. 됐다고, 그냥 원하는 만큼 돈 더 주고 계속 타고 가자고. 하지만 나는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다른 릭샤 왈라에게 그 기회(?)를 주리라 맘 먹고 일단 하차한 뒤, 옆에서 이미 우리 사이에 일어난 일을 재빨리 파악하고 여기(Sanganeri Gate)에서 라지 만디르까지 20루피를 부르는, 또 다른 사이클 릭샤에 흥정도 없이 그냥 올라타곤 그를 뒤에 남겨둔 채 그 자리를 휙~ 떠났다. 이렇게 두 번째 사이클 릭샤를 타고 라지 만디르 옆 맥도날드까지 가면서 든 생각.

 

'아... 정녕 500원(20루피)에 목숨거는 인간이 되어야만 쓰겄냐...'

 

맥도날드에서 이른 점심 냠냠 먹고 어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 라시를 다시금 마시러 갔다.    

여기도 서로 원조라고 강조하는 분위기 ㅎ 

하여간 진짜 원조 가게로 가장 유력하게 여겨지는, 어제 실패했던 바로 그 가게에 재도전.

 

원조라서 그런지(?) 이 집은 2루피를 더 받더라(잔당 12루피).

다 마시고 나서 저 컵을 던져 깨뜨리는 행위는 확실히 파괴 본능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듯 하다.

역시나 한 잔으로 모자랐는데 어쩐지 어제 먹었던 옆 집이 더 맛있었던 것 같아 이번엔 옆 집으로 자리를 옮겨 또 한 잔씩. 부어라 마셔라.

자이푸르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은 핑크 시티는 개뿔 결국 이 라시일 거라는 확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후기의 제목을 '핑크 시티'로 삼은 이 얄팍함) 

 

사이클 릭샤를 잡아 타고(라시 가게 to 숙소/40루피)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아직 12시가 채 안 되었더라. 자이푸르에서 보고 싶은 건 대충 다 봤는데 어떡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급히 가방을 꾸려 체크 아웃 했다. 목적지는 기대 만빵 푸쉬카르(Pushkar). 본 계획대로라면 자이푸르 다음은 우다이푸르였지만(계획했던 라자스탄의 방문 순서는 자이푸르-우다이푸르-조드푸르-자이살메르-다시 조드푸르-푸쉬카르-다시 자이푸르-델리순), 김원장이 이런 큰 도시 말고 작은 규모의 마을로 먼저 가서 며칠 푹 쉬자고 해서 루트를 반대로 뒤집어 푸쉬카르부터 가기로 했다. 어차피 어떤 방향으로 돌던 간에 자이푸르는 다시금 들르게 될 테니 나중에라도 혹여 아쉬워진다면 그 때 찬찬히 다시 보면 되잖아.   

 

자이푸르에서 푸쉬카르까지는 일단 아지메르(Ajmer)까지 간 뒤(버스/기차 모두 가능) 그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약 11 Km 가량 떨어져 있는 푸쉬카르로 가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다고 하는데 아침에 자이푸르 버스 터미널에 들러 알아보니 마침 아지메르까지는 운행하는 버스편이 매우 많았기에 이번엔 기차 대신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던 터라 숙소 앞에서 터미널까지 당연히 릭샤를 타야겠다 생각했는데, 숙소 근처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사이클 릭샤 아저씨가 여기서 터미널은 멀다며 가격을 터무니 없이 높게 부른다. 무슨 소리야, 바로 요 앞이구만. 알고 보니 아저씨는 우리가 터미널 위치를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뭔가를 탈 때마다 매번 하는 이 짓이 좀 피곤하다. 아저씨의 잔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차라리 돈 더 주더라도 오토 릭샤를 잡자,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결국 허겁지겁 뒤따라온 그 아저씨와 20루피에 다시 합의를 보고 터미널에 이르렀다. 정신없이 달려드는 버스표 영업 관련 호객꾼들을 모두 뿌리치고 매표소에서 아지메르행 일반 버스표 직접 구입(2인 170루피).     

간만의 버스 여행은 예전 기억보다 훨씬 괜찮았다. 인도에서의 장거리 여행은 무조건 기차가 장땡인 줄 알았는데 오늘처럼 단거리(?)라면 버스도 예매 편의성+좌석 확보 가능성+정시 출발(?) 등 여러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 12시 20분 자이푸르 출발, 중간에 휴게소 같지 않은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우리도 다른 승객들처럼 짜이 한 잔씩 마셔주고) 중간 경유지 아지메르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20분 경(즉 3시간 소요). 아지메르에 도착하자 몸 여기저기가 쑤셔오는 듯 했지만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푸쉬카르를 외쳐대며 막 떠나려는 버스가 있어 일단 얼른 올라타고 본다(10루피/인). 나름 아늑한 성소로 가는 듯한,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푸쉬카르 도착(약 30분 소요). 오후 4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떼의 호객 어린이 -_- 들이 와르르 몰려든다. 정신 산만하게 달라 붙어서 서로 좋은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고 나서는데 모두 거절하고 염두에 두었던 숙소 Hotel Paramount Palace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애들이 이번엔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며 무조건 그 방향이 아니라고 한 목소리로 외친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그 방향이 아니라니, 풋, 귀여운 것들, 무시하고 계속 걸었는데 어라, 제법 걸었는데도 나와야 할 것이 안 나와준다. 알고 보니 푸쉬카르에는 버스 터미널(터미널이라고 하기엔 좀. 큰 정류장이라고 해야 하나)이 두 곳인데 나는 우리가 내린 곳이 마을 동쪽에 위치한 터미널인줄 알고 동서남북 방향을 잡았거늘, 실상 우리가 내린 곳은 마을 북쪽에 위치한 터미널이었던 게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알려준 그 방향이 바로 푸쉬카르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이었던 것.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애들이 나 꼬시려고 그런 줄로만 알고 T_T

 

여하튼 뒤늦게 잘못을 깨우치고 다시 제대로 방향을 잡고 푸쉬카르 중심부로 향했다. 론리플래닛 평이 좋았던 Hotel Paramount Palace는 안 그래도 꼬불거리는 푸쉬카르 골목에서 은근 멀게만 느껴졌는데(아마 처음 만나는 동네라 지리가 익지 않아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름 높은 지대에 있는지라 막판에는 배낭 메고 오르기가 조금 벅찼다. 론리에 소개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은 별로 안 오는 곳인줄 알았더니(푸쉬카르에서 한국 배낭 여행자들의 아지트라면 아무래도 VK나 Amar가 아닐까) 우리를 보자마자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오는 청년이 있어 처음부터 조금 김이 샜다. 그럼 그렇지, 인도에서 한국인 여행자가 지나치지 않은 곳 찾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 그렇게 인도의 인기에 새삼 감탄하고 있는데 주인급으로 느껴지는 그 청년 말로는 심지어 이 숙소에 서태지(?)가 머물렀다나 뭐라나 한다. 정말?

 

어쨌든 오늘 남아있는 방은 딱 하나 뿐이었는데(700루피), 독특한 양식의 건물 내부를 통해 방까지 이르는 길이나 전망은 꽤나 매력적이었지만 방 자체는 어두운 편이었고 결정적으로 꽉 찬 투숙객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김원장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결국 포기해야했다(그 청년이 너무 친절하게 구는 바람에 더욱 미안했다. 게다가 우리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는 눈치니까 알아서 500루피까지 깎아주던데). 다음 후보로 Lake View라는 곳을 찾아갔는데 유명한 푸쉬카르의 호수를 바라보는 뷰는 정말이지 매우 훌륭했으나, 방 자체는 완전 감옥이 따로 없더라. 노홍철을 데려다 놓는다해도 절로 우울해 할 분위기랄까.   

 

 

몸은 지쳐오는데 어디를 가야하나... 딱히 이젠 더 이상 눈에 들어오는 숙소도 없는 가운데(결국 VK나 Amar를 찾아가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번잡한(=그래서 김원장이 원하는 사양의 숙소를 찾기 어려워 보이는) 푸쉬카르의 골목을 배낭을 진 채 쭈욱~ 걷다가 문득 조용할 것처럼 보이는 부지에 위치한 Krishna를 발견. 오늘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곳에 머물자, 하고 숙소 2층 방 한 칸(트윈룸/400루피/화장실/온수 사용 가능/지극히 심플한 방이지만 나름 넓은 편)에 짐을 풀었다. 

 

가진 짐을 몽땅 풀어놓으니 난민이 따로 없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설쳐대서 그런가... 김원장은 슬슬 몸살 기운마저 올라온다고 하네. 그래, 푸쉬카르,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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