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러니까 애써 -_-; 강조하자면, 입국 횟수(?)로 따지면 나는 인도가 세번째란 말이다(김원장은 그보다 한 두 번 더 많고). 그런데 우리 둘 모두 아직도 타지마할을 안 봤단 말이다. 워낙 이런 류의 관광지를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랬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나도 타지마할 앞에서 사진 한 장 꼭 박으리라, 생각하고 일부러 찾아왔는데 하필 오늘이 금요일이라 문을 닫는다니! (단, 무슬림에게는 개방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이번 기회에 알라의 품에 안겨야 하나) 

 

날이 밝자 숙소 발코니로 나가본다. 우리 숙소가 타지마할 남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어제는 깜깜한 밤에 도착해서 전혀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오호, 내가 정녕 타지마할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잤구나, 싶다.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길게 빼봐도 원하던 그림은 안 나온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너무 정면인데다 너무 가깝고 거기다 너무 낮은게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여기가 타지마할 아니래도 그러려니 하겠다>

 

여하튼 타지마할도 식후경임은 분명하다. 눈꼽 떼고 아그라의 한인 여행자들을 휘어잡고 있다던 근처 식당 Joney's Place부터 찾아갔다. 

 

한글을 쓴 게 아니고 그렸더라(그래도 마냥 반갑고 눈에 쏙쏙 들어온다). 

 

인상깊은 한글 메뉴에 이어 알알이 눈에 들어와 박히는 "김치는 공짜래요!!" "맛 없으면 공짜예요!!"

 

역시 아그라는 엄청난 관광지야, 낄낄 수다를 떨며 들어선 가게. 유명세(?)에 비해 식당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앞서간 어느 여인네가 만들어 줬을만한 메뉴판(이 또한 인도에서는 익숙한 상황)을 들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오무라이스, 계란말이, 내 사랑 바나나 라시 주문.  

바나나 라시. 나이스!

 이것이 계란말이? 이번 트라이로 충분.

 연이어 등장한 (총각) 김치. 비주얼은 깜놀 수준으로 훌륭. 맛은 덜 익어서 좀 아쉽. 말은 이래도 한 접시 더 시켜 먹었다.

그럭저럭 괜찮았던 오무라이스(참고로 우리는 직접 한식을 해먹고 다녔기 때문에 덜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숙소 프론트데스크의 TV에 이어 이 식당의 TV 역시 모두 테러 관련 뉴스로 도배되고 있는데 보아하니 헬기 뜨고 총 쏘고 난리도 아니다. 어라, 거의 전쟁 수준인데? -_-; 이게 과연 어떻게 되가는건지 궁금하여 식사후 잠시 PC방에(30분에 20루피) 들렀다. 역시나 울 엄마가 내 싸이 방명록에 인도에 테러가 났다는데 무사하냐며 큰 걱정을 담아 글을 올리셨더라(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아그라 오기 전에 엄마한테 "우리 타지마할 보러 간다~" 자랑한 적이 있는데 인도 지리를 알리가 없는 엄마가 뭄바이 타지호텔 테러 소식을 듣고 같은(=타지 -_-;) 곳인줄 알고 무지 걱정하셨다고 한다. 에공, 미안해, 엄마. 내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매번 걱정이 많지?). TV를 통해 접하는 뭄바이 분위기가 매우 심란한 것은 분명 사실이었지만 정작 여기 아그라에선 피부로 와닿는 문제가 전혀 없었기에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일단 답글을 남기고 나왔다.    

이곳이야 말로 backpacker-friendly! (럭나우와 비할쏘냐)  

길가다 만난 또 다른 식당.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국인들은 공짜에 목 맨 줄로 착각할 듯 -_-

 

타지마할은 문 닫았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수 있나. 대신 아그라 포트(Agra Fort) 구경에 나섰다. 때는 바야흐로 인도의 겨울철, 이 정도면 별로 안 더운 날이고(김원장 왈, 더 더워지기 전, 즉 오전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나 뭐라나) 김원장 기준으로는 걸어서 다녀와도 널럴할 거리라길래 질질 끌려 아그라 포트행 길 위에 섰다. 가끔씩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며 열심히 호객하던 노점상들을 제외하고는 뜻밖에도 차가 거의 안 다니는 숲(공원) 옆길을 통해 초반부는 나름 괜찮은 산책을 할 수 있었다(야무나 강변에 형성된 Yamuna Kinara rd). 이 동네에 원래 있었는지 아님 이번 테러로 보강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총을 든 군경도 제법 보인다.   

 

하지만 아그라 포트의 벽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차량 통행량이 급격히 많아지는데다 그늘마저 사라지기 때문에 불쾌함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다지 오래 걷지 않아 아그라 포트 도착. 

 외국인 관광객들보다도 현지인 관광객이 월등히 많았다. 테러 일어난 것 맞아?

어차피 타지마할 입장료가 굳었으니 아그라 포트는 그 돈으로 봐주자, 결심하고 갔으나 매표소 앞에서 현지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외국인 입장료에 움찔, 일단 뒤로 물러섰다(이외 카메라 요금도 따로 있었던가 어쨌던가). 아, 진짜 얘네가 돈 때문에 나를 치졸하게 만드네.   

입장을 하느냐 마느냐 고민이 길어지면서 괜시리 아그라 포트 앞에 늘어선 온갖 종류의 호객꾼들에게 휘둘림을 당하다 안 되겠다, 일단 올드 타운으로 후퇴한 뒤 천천히 생각해 보자, 마음 먹고 근처 Kinari Bazaar(Old Town Area)로 향했다. 별 계획 없이 발을 들이게 된 곳이었지만 키나리 바자르, 여기가 오히려 대박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간만에 시장다운 시장에서 사람 구경. 

 

시장을 얼마나 돌았는지, 나중엔 길을 잃어버릴(그래서 여기가 아닌가벼~ 나폴레옹이 될) 정도였다. ^^; 그래, 우리 취향엔 역시 이런 곳이 낫지. 가보지도 않은 아그라 포트지만 키나리 바자르가 더 나을거라는데 우리끼리 두 표를 던졌다. 예상치 않은 긴 행보로 인해 두 다리에서 급격한 피로를 호소해 올 무렵, 다시 숙소쪽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다 다시 만난 아그라 포트. 이제 입장에 대한 미련은 사라졌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티베탄 마켓이니(이름만 그렇지, 볼거리는 전혀 없었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코끼리(어떤 용도로 이 길가에 나타났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등을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온 타지 간지. 론리 플래닛 왈, 옥상에서 타지마할을 가깝게 볼 수 있어 이른 아침에 사진 찍기 좋다는 카말 호텔(Hotel Kamal)의 옥상 카페부터 다시 들렀다(오전 일찍 갔다가 아직 안 열었다기에 그냥 돌아온 바 있다).  

 

아, 드디어 만났다. 타지마할!

 

비록 약간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포스, 어디 안 간다.

우리도 저들처럼 바나나 라시(자리값인지 잔당 40루피) 시켜놓고 타지마할을 감상했다.

 옆 건물도 비슷한 루프뷰 카페. 오래 앉아있다보니 우리 카페는 그늘막이 없어서 저 집이 마냥 부러웠다는.

 

정수리가 달궈져 두통이 올 때까지 타지마할을 눈에 담다가 다시 Joney's Place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토스트 샌드위치와 감자 고로케. 내 입맛엔 추천 메뉴인 고로케보다 오히려 토스트 승!

 

 

아그라에 왔지만 끝내 타지마할엔 들어가지 못했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의 여우처럼 나는 오늘도 타지마할을 신포도일거라 여겨본다. 오늘은 이렇게 가지만, 연이 닿으면 언젠가 타지마할에 다시 올 수 있겠지. 설령 다시 이 곳에 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늘 이렇게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 그냥 만족하자, 이렇게...

 

안녕, 타지마할~

 

 @ 오늘의 영화 : 무방비도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김해숙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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