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설쳤다. 불을 끄니 다행히 벌레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체유심조(-_-)라고 그래도 괜시리 온 몸이 근질거렸다. 무엇보다 바깥이 내내 너무나 시끄러웠다. 이런 날에 대비해 한국에서 싸들고 온 모기장을 꺼내 치고 김원장은 귀마개까지 하고 들어가 누웠지만 여전히 소음에 시달렸고 나는 잠결에 모기장에 손이 잠깐 닿았던 모양인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손이 물렸더라. 징한 것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좀 이른 시각이긴 했지만 차라리 이 방보다는 역이 낫겠다 싶어 짐을 꾸렸다. 다행히도 고락푸르에서 출발하는 열차였기에 기차는 제 시간 이전부터 이미 플랫폼에 서 있었고 우리는 예전처럼 기차 외벽에 붙어있는 승객 명단에서 우리 이름을 찾아 재확인한 뒤 기차에 올라탔다.

조금 일찍 나선 터라 시간이 남아서 이럴 때면 빠질 수 없는 짜이를 사다 날랐다. 잠을 설쳐서 얼굴에 졸음이 가득한 김원장. 

놀랍게도 정시 출발. 오늘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일출을 맞는다. 오늘도 안개가 짙게 낀 탓인가, 떠오르는 해의 모습이 더욱 환상적이다.

 

우리야 출발역에서부터 좌석 확보해서 오늘의 목적지인 럭나우(Lucknow)까지 그다지 낑기지 않고 도착했지만, 보아하니 중간 역에서 탔으면 아무리 좌석 구매를 했어도 자리 잡느라 고생 좀 했을 것 같다. 중간 중간 기차가 교차 문제로 대기하면서 30분도 넘게 서길래 오늘도 제 시간에 도착하긴 글렀나 보다 했는데 막판 달리기가 좋았는지 예정된 시각보다 겨우 10분 늦게, 즉 오전 11시 5분, 럭나우에 도착했다.  

럭나우 기차역

 

생각보다 무지 크고 - 아니, 사실 엊그제만 해도 여기에 떨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아무 정보도 없었다 - 깨끗했던 럭나우. 내가 이 곳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아래와 같은 우리나라의 대 인도 여행 경보 때문이었다(럭나우와 칸푸르는 지척이다).

 

<우타 프라데쉬주 칸푸르 지역>

이름 모를 전염병이 발생하여 160여명이 사망하고 수천명 이상이 감염되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말라리아로 의심되지만, 정부당국에서는 아직 정확한 병명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타 프라데쉬 칸푸르 인근지역으로 여행은 금물이며, 이 지역을 통과하는 교통편도 절대로 이용하지 맙시다!

 

하지만 어쩔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나는 그 지역을 통과해 인근 지역 럭나우에 여행하러 왔는데...  

 

역을 나서자 먹이를 발견한 오토릭샤 아저씨들이 떼로 달려들어 우리를 모셔가기 위해 안달이었다. 찍어놓은 숙소를 가리키며 여기까지 얼마냐? 를 물으니 대략 300루피(약 7,800원)가 대세다. 오호, 역에서 대략 2Km 정도 떨어진 것 같은데 300루피라고라고라. 

 

그들을 피해 아예 길을 건너 버린다. 어차피 역전에선 타면 유턴을 해야할 처지이기도 했다. 건너오니 역시 이 곳은 릭샤들이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달려 지나가는 오토 릭샤를 잡아야 한다. 현지인들과 섞여 오토 릭샤를 겨우 한 대 잡았다. 드라이버를 보아하니 터번을 두른 아저씨. 오라, 인도에서 그나마 마음을 놓을만한 시크교도로 보인다. 아저씨, Capoor's 호텔로 가주세요. 거기까지 얼마죠? 아저씨, 커다란 눈망울을 때록때록 굴리더니 50루피를 부른다. 오케이. 

 

처음엔 드라이버를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 아저씨는 요금도 많이 안 불렀고 호텔까지 가는 동안 주변 명소들에 대해 묻지도 않은 설명을 막 해주고 지나치는 공원의 뭔 탑 같은 조형물에 대해서도 열변이다. 길이 막히고 설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뭔가 우리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듯 싶더니 결국 우리가 찜했던 숙소 앞에 우리를 내려주면서 자기는 여기서 기다리겠단다. 아니다, 우리는 여기가 목적지라 다 온거다. 여기 50루피 있으니 잘 가거라, 해도 절레절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눈치 깠다. 이 아저씨도 결국 우리를 봉으로 보는구나. 안 가겠다는 아저씨를 무시하고 호텔로 들어선다. 가이드북 왈 중급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으리으리한 호텔풍 로비다. 살짝 기가 죽어 이 정도면 가격도 상당하겠구나 짐작해 본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방이 없단다. 우리의 추레한 행색을 무시하는 듯한 데스크 직원이 맘에 안 들어 그럼 내일도 방 없어? 괜히 물어보기도 한다(근데 내일도 없단다). 

 

이미 이 호텔에 방이 없음을 눈치채고 우리가 되돌아 나오기만을 밖에서 목하 기다리고 있을 오토 릭샤 아저씨도 존재하고, 배낭을 메고 다른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부담스럽고 해서 그럼 잠시 배낭만이라도 맡아주면 안 되겠니? 물었다. 역시 싸늘하게 안 된단다. 욕 나온다. 

 

호텔을 나서니 우리를 기다리던 오토 릭샤 아저씨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 다음 스텝은 안 봐도 삼천리다. 내가 아는 좋은 숙소가 있는데 데려다 줄께. 이런 비슷한 문장으로 우리를 꼬신 뒤 일단 우리를 태우고 어디 이상한 구석탱이 숙소로 데리고 가선 비싼 차비와 비싼 숙박비를 받아 챙긴다.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련가. 그래서 우리는 아저씨를 무시하고 다음 후보 숙소까지 걷기로 했다. 역시나 아저씨는 우리 걸음걸이 속도에 맞춰 그대로 옆에서 운전해 따라오며 계속 우리를 불러댄다. 헬로우, 마담, 써, 마이 프렌드... 우리가 들은 척도 안하자 이번엔 자신이 아까 너무 차비를 싸게 받았으니 돈을 더 달라고도 외친다. 횡단보도 건너는 것으로 겨우 떨군다. 

 

아저씨를 떨구긴 했지만 배낭을 메고 다음 숙소 Tekarees Inn까지 찾아가는 길은 멀기도 멀었다. 아마도 가이드북의 지도 축척이 좀 잘 못 된 듯 싶다. 오토릭샤를 타고도 싶었지만 또 그런 아저씨들을 만날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이상하다, 지금쯤 나와야 하는데...를 몇 번이고 되뇌인 뒤에야 겨우 숙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번듯한 외관에 생각보다 좁아보이는 부지, 그러나 나름 알차게 꾸며놓은 내부 구조. 방은 깔끔하니 기대 이상 괜찮았다.  

 

 

가격은 가이드북에 소개된 그것보다는 훨씬 올라 있었지만(올 4월 인상되었다나 뭐라나), 고락푸르에서의 지난 밤에 대한 고통을 보상해 줄, 그리하여 럭나우에서의 이틀은 가이드북에서 소개하는 Midrange급에서 잘 결심이었기 때문에(게다가 이미 좀 지쳐있기도 해서) 그냥 이 숙소에서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대로에 면하고 있는 이 집의 입지가 김원장의 민감한 귀를 가만히 냅두지 않았고, 무엇보다 김원장이 오늘만큼은 조용한 숙소에서 보내고 싶어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다시 가이드북을 들여다보자니 이 곳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로 Hotel Gomti라는 곳이 눈에 띄였다. 급은 Midrange보다 아래인 Budget으로 소개되어 있었지만 입지는 보다 조용할 듯 싶어 이번엔 그리로 향했다. 그 곳마저 시끄러우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다행히 주정부에선가 운영한다던 Hotel Gomti의 메인 건물은 도로에서 좀 들어와 있었고 내 기준으로는 Budget보다는 Midrange에 가까운, 제법 큰 규모의 호텔이었다. 벨보이가 배낭까지 방으로 날라다주는거며 계산은 체크아웃때 하라는 점만 봐도 그랬다. 가격도 이에 상응해서 에어컨이 달린 가장 저렴한 더블룸의 경우 1100루피였는데(거기다 5% 택스 별도) 그나마 에어컨 방에는 아침 식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한편으로 위안이 되었다(혹시나 하고 체크인하면서 디스카운트는 안 되겠니? 했는데 짤없이 안 된다더라). 사실 따지고보면 택스까지 포함해도 우리 돈 3만원인데, 한국에서라면 모를까, 인도에 있다보면 3만원이 무지 큰 돈처럼 느껴진다. 하물며 어젯밤 200루피 짜리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생각해 보라(게다가 그 전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는 숙박이 무료였다).  

 

호텔 곰티의 가격표. 이 호텔에서 에어컨 없는(쿨러만 있는 & 아침 식사 안 주는) 더블룸은 650루피다.  

방은 어제에 비해 약 6배의 가격 이상 좋았다. 낡기는 했지만 나름 정결했고 화장실도 무지 넓었다. 당근 수건도 제공했다.  

 

방에서 잠시 피곤을 달랜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어느새 슬며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산책 나가야지~ 하고 숙소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보기 드물게 커다란 쇼핑몰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그 건물 안으로 자가용을 끌고 온 현지인들이 막 사라지고 있었다. 어라, KFC도 있네. 델리도 뭄바이도 아닌데 KFC라니 놀라웠다(우리가 럭나우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방금 전까지 전혀 닭고기를 뜯을 생각이 없었지만 전세계 어디서나 익숙한 KFC 간판을 보자마자 닭에 꽂히고 말았다. 닭 먹으러 가자~ 그런데 건물 입구에서 총 든 애들이 검문이다. 물론 우리는 (짐도 없는) 외국인이라 대충 통과시켰지만 아무나 오가는 곳이 아닌가 보다. 건물 안을 둘러보니 모두 부티가 철철나는 현지인들 뿐이구나.

역시 KFC, 자본의 힘은 놀랍다(돈이 좋구나). 일회용 케찹에 닭은 통통하다. 어제 고락푸르에서 먹었던 삐쩍 마른 닭이 다시금 떠올랐다. 

 드넓은 매장에 비하면 손님은 없는 편.

 

쇼핑몰답게 건물 안에는 진짜 수퍼마켓(상호 Big Bazaar)이 있었다. 그동안 인도에서 이렇게 큰 수퍼마켓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판매를 기다리고 있는 제품들 면면도 훌륭(?)했다. 그래봐야 우리는 과자 부스러기(사실은 잔뜩 ㅋㅋ)랑 사과 몇 개 샀을 뿐이지만. 아마도 럭나우 부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에 우리가 얼결에 들어오게 된 듯 하다. 우리가 우타 프라데쉬 주도를 너무 만만하게 본 걸까. 

 

주전부리를 사들고 숙소쪽으로 돌아오는 길,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 TV에서만 봤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 듯 싶다. 인도의 결혼식.

 

  

 

 

최근 인도의 중산층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소비 문화가 발달하고 부의 과시 열기로 인해 결혼식에 있어서도 예전과 같은 종교색은 많이 퇴색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덕(?)에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볼거리로서는 확실히 점수를 많이 받을만한 광경이었다.   

 

놓고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목이 말라와서, 기왕 이리 된 것, 럭셔리하게 하루를 마감하자는 생각에 아까 낮에 배낭 메고 숙소 찾아 삼만리할 때 봐두었던 커피숍 Lavazza를 찾아갔다. 럭나우엔 없는 게 없어~ 감탄하면서(럭나우의 바리스타 라바짜는 이탈리아 라바짜의 자회사라고 한다).  

으리으리한 실내 인테리어. 

아침에 고락푸르 기차역에서 사 먹은 짜이는 한 잔에 3루피였는데, 럭나우의 바리스타 라바짜에서 먹은 헤이즐넛 프라페는 자그마치 한 잔에 94루피였다. 즉, 짜이를 31잔 마시고도 1루피가 남는다는 소리. 하지만 라바짜의 테이블마다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들이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며 각자 앞에 커피를 한 잔씩 놓고 마시는 광경은 이래저래 참으로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그렇다. 우리는 가격의 압박으로 인해 한 잔만 시켜 나눠 마셨다 -_-). 내 기억 속의 인도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 아까 본 커다란 쇼핑몰도 그렇지만, 이런 화려한 커피 체인점도 그렇고, 차를 즐긴다고 생각했던 인도인들이 커피를 즐겨 마시는 모습도 그렇고, 이렇게 비싼 커피가 팔린다는 것도 그렇고, 분명 아직 결혼 전인, 연애 중으로 보이는 커플들이 저렇게 남들 앞에서 찐~하게 구는 모습도 그렇고...   

 

인도도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가. 인도마저.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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