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방 문틈 아래로 신문이 들어와 있더라. 이게 웬 영화에서나 보던 서비스?

 

어젯밤에는 간만에 밥을 지어(안나푸르나 트레킹 때는 어디서나 맨밥은 구할 수 있으니 즉석 한식 반찬을 곁들이는 것으로 충분했고, 포카라에 도착해서는 넘쳐나는 한식당 덕에 만들어 먹을 필요가 없었고, 이후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도 한식 스타일로 매끼 공양을 해주시니 또한 해먹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고락푸르에서는 도무지 그 방 안에서 뭔가 먹는다는 행위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졌고) 맨밥에 김이랑 고추장으로만 달랑 반찬 삼아 먹었는데도 무지 맛있더라. 한동안 이 동네 풀풀 날아다니는 쌀밥을 먹어서 그런지 우리네 통통한 쌀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끝내줬다. 반찬 하나 없이 밥 자체로만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어제 그렇게 새삼 쌀의 힘에 감탄하며 밥을 먹긴 했지만, 오늘은 조식이 무료로 제공된다는데 내 또 밥을 지어 먹을쏘냐. 나는야 무료 조식에 무지 약한 아줌마라네.  

 

조식은 뭐,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부페 형식이라더니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그냥 빵 두 조각에 달걀 요리(?)를 추가로 주문해서 먹는 스타일로 진행됐다(부페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여기가 인도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태국의 그것을 상상했다가 여지없이 박살났다). 식당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우울한 분위기였고 어쩐지 우리를 무시하는 듯 느껴지던 웨이터가 우리의 음료 주문을 잊어버리고 제 때 가져다 주지 못 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결정적으로 김원장의 오믈렛에 코리앤더가 들어 있는 바람에 우리는 슬퍼졌다. 내일은 꼭 코리앤더를 빼달라고 하자! 다짐한 채 간단히 식사를 끝냈다.  

 

이 호텔은 (어제 숙소를 찾느라 들렀던 두 호텔에 비해) 확실히 위치적으로 조용한 입지에서 오는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의 결혼식 하객들이 단체로 이 곳에 묵기라도 하는지 새벽 5시 30분부터 같은 복도를 쓰는 주변 방들에서 서로를 불러대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너무 시끄러워서 직접 옆 방으로 가 조용히 좀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달랑 고 때 뿐이다. 아침 식사 이후 프론트 데스크에다 하소연을 하며 보다 조용한 방으로 옮겨달라고 하니 현재로서는 같은 사양의 방이 풀북이라 곤란하단다. 이 말을 들은 김원장, 그렇담 숙소를 아예 옮겨야겠다며 체크 아웃 시각이 되기 전에 얼른 다른 숙소를 보고 오자고 한다. 그리하여 아침 댓바람부터 또 다시 숙소 헌팅에 나선 우리, 목표는 (가이드북 지도상으로 볼 때) 가장 조용할 것으로 사료되는 Carlton Hotel. 선선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찾아갔는데 공사중이더라. ㅎ    

 

마음을 비우고 하루 더 곰티에서 묵기로 잠정 결정을 내린 뒤, 이번엔 환전을 하러 시내 방향으로 나섰다. 당장 숙박비를 지불하기에도 인디안 루피가 달랑달랑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럭나우에 머물면서 내린 결론은 적어도 우리의 지난 경험으로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외국인 보기가 힘든 인도의 도시를 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대도시라서인지 다른 곳에서처럼 우리를 뚫어져라 오래토록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외국인이 없다보니 그에 관련된 인프라, 예를 들어 오늘처럼 환전이라도 할라치면 다른 관광지들에 비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소개하는 은행이나 ATM이 모두 문을 닫았거나 환전이 안 되거나 작동이 안 되거나 하는 식이어서 물어물어 한 여행사를 찾아갔는데 어쩐지 사무실이 너무 음침하고 환율(1달러=47.75루피)도 그다지 좋지 않은데다가 수수료는 높게도 부르길래 결국 돌아 나왔다. 이후 겨우 환전이 가능한, 삐까뻔쩍한 은행 하나를 발견해서(icici bank) 환전을 했는데 우리 같은 외국인 여행자가 환전을 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드문 일인지 담당 직원 외 근처 모든 사람들이 신기해 했다. 나는 지성미가 흐르는 아름다운 "여성" 직원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게 괜시리 반가웠고. 복잡한(?) 서류가 오가고 500불 환전에 성공(1달러=48.3루피. 수수료로 25루피 지불).

    

환전 뒤 근처 시장을 룰루랄라 찾아갔으나 재래 시장이 아니고 우리네 평화 상가 스타일이라 재미가 없었다. 그래, 이런 도시에서 우리 취향의 무언가를 찾기가 쉽지 않을거야. 그리하여 이 동네에서 우리 취향에 가장 가까운 스팟이 과연 어딜까 가이드북을 뒤져보니, 오, 근처에 동물원이 있었다. 그래, 여기 가자!  

 호기롭게 동물원을 향해 출발했으나,

결국 엄청난 소음과 매연으로 인해 동물원을 조~기 앞에 두고 김원장, 과감히 후퇴 선언 ㅎㅎ 더 이상 이런 길은 못 걸어 다니겠단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나로서는 좀 아쉽지만) 뒤로 돌아! 외치고 돌아오는 길에 길 건너편(사진상 오른쪽 귀탱이)에서 어제의 라바짜와 더불어 인도 최대의 커피 체인점으로 쌍벽을 이루는 카페 COFFEE DAY를 발견, 대신 그리로 골인. 

 여기 들어오니 또 다른 세상이구나.

 

어제 라바짜보다는 훨씬 환하게 오픈된 분위기인 탓에 뜨거운 젊은 피의 커플들은 없었지만 대신 여기저기서 소개팅을 시켜주고 있었다. 

대학생스러운 인도의 풋풋한 젊은이들이 소개팅을 주고 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어색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중년의 한국인 부부.  

프라페랑 딸기 쉐이크만 주문할 생각이었는데 주문대 앞에 서는 순간 진열장 속에서 나를 강렬하게 유혹하던 초코 도넛에 넘어갔다.

그래, 너까지 추가 주문 해주마.

유후~ 셋다 오지게 달더라(이렇게 먹고 135루피. 여기가 내 기억 속의 인도인가 싶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어제 마음에 두고 처음 방문했던 숙소가 풀북이었기에(게다가 오늘 우리 숙소도 풀북이었다) 며칠 후 방문할 자이푸르의 숙소는 아예 미리 예약을 해두고 가기로 했다. 인도에 도착한 뒤부터 소음으로 인해 부쩍 괴로워하는 김원장을 위해 우리가 숙소를 선정하는데 최우선으로 보는 점은 조용함이었는데,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자이푸르의 숙소들 중 quiet location이라 언급된 곳이 마침 Book Ahead! 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산책하는 길에 PC방을 찾아 인터넷으로 예약을 시도한 바 있는데 진행이 어떻게 되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다시 PC방에 들렀다(1시간까지 20루피). 그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태국 소식. 방콕 공항이 점거 되었다나? 공항에 발이 묶인 승객들이 장난 아니더라. 어라, 우리도 인도 일정 마치고 나면 방콕에 가야 되는데? 이렇게 승객들이 줄줄이 밀리면 우리 스케줄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 아냐? 방콕 소식이 궁금한 나머지 열악한 인터넷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클릭질을 해보았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접하기 어렵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갈 때까지는 잘 해결 되겠지, 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김원장이 어제 먹었던 KFC에서의 닭이 또 먹고 싶다고 해서 3일 연속 닭고기에 도전했다. 어제와 똑같은 3조각 세트 메뉴를 시켜 먹고, 쇼핑몰 안의 수퍼마켓도 다시 들러 내일 럭나우발 아그라행 열차를 탈 때 비상식으로 먹을 빵과 과자 따위를 더 사고, 몰 안의 핫도그 스톨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어 핫도그도 하나 먹어 치운다(이제와 쓰다보니 하루 종일 먹은 이야기 밖에 없구나. 옆에서 김원장은 1년 반 전 여행기를 이제야 쓰냐며 이게 말이 되는 짓이냐고 하지만 ㅋㅋ). 

 

곰티 호텔에 도착하니 다행히 결혼식 하객의 상당수가 퇴실해서 보다 조용하게 묵을 수 있을 것이란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오늘은 정말 푹 잘 수 있겠구나. 내일은 또 다시 기차 여행이다. 드디어 타지마할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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