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100만년이 지나도 지난 인도 여행 관련 포스팅을 못 할 것 같아 간단하게라도 기록을 남겨둔다. 이번 인도는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마친 뒤 포카라에서 며칠을 뒹굴다가 룸비니로 넘어가 또 뒹굴다가 넘어갔는데, 때는 2008년 11월 24일 월요일이었다.

 

나중에 네팔편에서 자세히 밝힐지도 모르겠지만 - 아무래도 그럴 확률은 미미하니 -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 여행자분들과 일행을 만들어 지프를 한 대 대절하여 네팔/인도 국경(소나울리 Sonauli / Sunauli)까지 나왔다(약 50분 소요).

대성석가사에서 국경까지의 지프 한 대 가격은 800루피. 처음엔 5명이 예약했는데 막판에 8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구겨져서 나오긴 했지만 1인당 비용은 절감할 수 있었다(이 중 한 분의 지갑 사정이 좀 곤란했지만 한국인들간의 뜨거운 애정이 넘쳐 1인당 120루피씩 지불). 안개가 무지 짙은 아침이었고 창문이 없는 차 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이 무척 차가웠던 기억이 난다. 하여간 당시 대성석가사에 만난, 여행 중인 한국인들, 참 많았다.

 

재밌는 것은 8명의 승객 중 젊은이가 넷, 우리를 포함한 늙은이가 넷이었는데 젊은이들은 모두 바라나시로, 늙은이들은 모두 델리 방향으로 간다는 사실이었다. 아아, 아직도 영(young)하고 핫(hot)한 바라나시여! 

 

지프에서 내린 뒤 인사를 나누고 정해놓은 행선지를 향해 각자 갈라서는데, 우리는 일행중 68세의 젊은 오빠 한 분과 함께 하기로 했다. 출입국 수속 함께 밟고 걸어서 국경 통과(인도측 입국 사무소는 잘 안 보이니 무심코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도야, 내가 돌아왔다!

소나울리에서 우리처럼 기차를 타고 델리 방향으로(혹은 바라나시로도) 갈 사람들은 보통 고락푸르(Gorakhpur)로 먼저 간다. 소나울리에서 고락푸르로 일반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과감히(?) 지프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우리가 그리 한다니 젊은 오빠분도 함께 하시겠다고 해서 열심히 호객해대는 어린 차장을 따라 고락푸르행 지프에 올랐다. 1인당 100루피(이제부턴 인도 루피).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싶었는데, 역시 나의 오산이었다. 인도를 고새 까먹었단 말이냐. 차장이 승객들을 묘기부리는 것 마냥 구겨 태운다 싶더니 나중에 운전사는 거의 몸의 반을 차 밖에 내놓은 채 운전하더라. 열라 웃겼다. 역시 인도야, 너 참 반갑구나, 싶더라.  

고락푸르까지는 약 2시간 15분이 걸렸는데 막판에 고락푸르로 진입하면서는 차가 막히는 바람에 몸 여기저기가 쑤셔와서 무지 괴로웠다(그래도 버스보다는 훨씬 빨리 도착했고 버스를 탄다고 해서 몸이 편한 건 아니니 내 나이엔 백번 잘한 짓이라 생각한다). 차는 중간에 잠시 휴게소 같은 곳에 들렀는데, 가지고 있던 인디안 루피 지폐 단위가 커서 남아있던 네팔리 루피도 받냐니까 물론 받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인디안 루피로도 5루피를 부르던 짜이를 네팔리 루피로 10루피 내고 한 잔 마셨다(실제로는 8루피 받아야 환율이 맞겠지만 인도에 왔는데 짜이 한 잔 안 할 수 있나).

 

고락푸르 도착. 이 동네 관광 안내판.

 

젊은 오빠는 이미 오늘 저녁에 출발하는 고락푸르->델리행 기차표를 가지고 계셨지만, 우리는 사실 오늘 아침까지도 어디로 가야하나 정확히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기차표부터 구입해야 했다. 기차역으로 가서 인도에서 기차를 탈 때 필요한 Trains at a Glance(타임테이블 책자)부터 한 부 구입한 뒤(35루피) 얼른 줄 끝에 섰다. 우리의 다음 목표 방문지는 아그라(Agra)였는데(워낙엔 네팔-바라나시-카주라호-아그라순이었으나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국 바라나시를 제끼기로 하면서 카주라호는 자동 탈락됐다) 아시다시피 급할 것도 없는 처지이고 이젠 이동 시간이 길어지면 몸도 힘들고 해서 양 손에 지도와 기차 타임테이블 들고 번갈아 살펴본 결과 고락푸르와 아그라 사이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한 듣보잡 럭나우라는 곳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참으로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결정이지만 여하튼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일단 여기서부터 럭나우까지의 기차표를 예매해 보기로 했다.

 

표를 구입하는 데에는 장장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작은 역이라 그런지 외국인 전용 라인 따위는 없었고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어쨌든 씨름 끝에 받아든(뭐 그래도 룸비니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덕에 티켓을 사고 나오니 정오가 막 넘은 시각이었다) 럭나우행 티켓은 내일 오전 6시 5분 고락푸르 출발, 10시 55분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워낙은 당장에 출발하는 놈이 있으면 타고 싶었는데 역.시.나. 그 편은 구할 수 없었고, 대안으로 적당한 시각에 출도착하는 편을 고르다보니 결국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이 기차편이 제일 적당해 보였다.

여하튼 둘이 188루피 지불(저 때만해도 나는 36살이었구나 ㅎ). 

 

일이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결국 오늘 밤은 고락푸르에서 보내야한다는 결론이더라. 론리플래닛은 고락푸르 역전 숙소는 noisy하고 grubby하다고 소개하면서 역에서 약간 떨어진 멋지구리한 리조트형 숙소 하나를 추천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타줘야하는 기차 출발 시각이 오전 6시 5분임을 고려해 볼 때 그 새벽에 그 숙소에서 택시(?)를 불러 뭣같은 요금 흥정을 해 타고 나올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와서 그냥 역 앞에 늘어선 숙소 중 한 곳에서 자기로 했다(이후 두고두고 후회할 줄은 모르고). 개중에 가장 깔끔(?)해 보이는 숙소를 하나 골라 방을 얻었는데(200루피) 이 때만 해도 환한 낮 시간이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방도 몇 없다고 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서둘러 결정한 바가 없지 않다. 괜찮아, 하룻밤 눈만 잠깐 붙이는건데 뭐... 당시엔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방에 대한 첫 인상은 우리 것만은 아니었는지 여하거나 바닥에 등붙일 장소를 구했으니 우리의 젊은 오빠께 우리 방에서 당신 기차가 출발할 시각까지 편히 쉬시다 가시라고 권했는데, 거절하시더라. 괜찮으시다고, 그냥 역에서 견디...시겠다고. 그래서 배낭만 부려놓고 출출한 배를 달래러 역전 맞은편으로 늘어선 야외 식당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장소는 우리 숙소 데스크맨의 추천을 받은 Vardan Restaurant.  

우리 숙소로부터 추천 받아 찾아온 식당의 분위기. 네팔과는 또 다른 인도의 포스

(김원장 왈, "이 이상 더럽기도 어려울 것 같애". "어쩜 우리 숙소랑 이 식당이랑 주인이 친척지간 아냐?" 나의 음모론). 

받아드는 순간엔 오오,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던 엄청난 길이의 (꼬질꼬질한) 메뉴였지만 자세히 보니 결국 내가 먹을만한 건 몇 없더라. 

고민끝에 결국 만만한 달걀 볶음밥+토스트+짜이로 인도에서의 첫 식사(64루피).   

오만(Oman)에서도 본 적 있는 인도식 후식.  

 

식사를 마친 뒤 젊은 오빠와도 헤어졌다. 좀 쉬어볼까, 하고 방으로 들어섰다가 아무래도 이 방에 오래 머무르다간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아 차라리 고락푸르 시내 구경에 나섰다.   

고락푸르 기차역(& 김원장) 

당시엔 수퍼마켓처럼 느껴지던 점방. 지금 이순간 이 사진을 다시 보면서는 이런 것들 말고 뭐 좀 먹을만한 건 안 팔았던가?

 

고락푸르 시내는 걷기에 다방면으로 전혀 쾌적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간만에 인도에 다시 발을 딛은 첫.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흥이 안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숙소에 다시 입실하기 전에 에프킬라를 꼭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한 바퀴 꿋꿋하게 돌면서 결국 살충제 하나를 성공리에 구입하고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숙소는 대략 이런 감방 분위기였는데, 침구가 너무 더러워서 어지간하면 잘 자는 나도 우리 침낭을 덧깔며 이러다 오히려 우리 침낭이 contamination되면 어쩌지? 우려할 정도였다. 심지어 일회용 우비를 꺼내 바닥 비닐 대용으로 쓸까(혹은 입고 잘까 T_T) 생각까지 했지만 실패하고 침낭이 더러워지는 것보다는 벼룩이나 빈대에 대한 걱정이 더 컸기 때문에 그냥 깔아버렸다.

 

하지만 더러움이나 벼룩/빈대가 주적은 아니었다. 내가 이 숙소에서 가장 괴로웠던 점이 화장실(그 자체의 수준은 논외로 하고)의 플라잉 빅 바퀴벌레였다면, 김원장에게는 아마도 창문 하나 변변한 것이 없으면서 온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네버앤딩 모기떼였을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비명과 함께 김원장을 불러대며 무지 괴로워해야했고, 안티 말라리아 협회 회장이라고 해도 될 만한 김원장은 모기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래저래 우리가 방금 구입해 온 에프킬라는 곧 훨씬 가벼워진 몸무게로 보답했고 평소 모기라면 아무리 박수쳐대도 잡지 못하던 나 역시 이 날은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열 마리 이상 손으로 잡아내는 신공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에프킬라의 향기에 질식할 정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방에서 탈출했다. 그리고는 남는 시간 동안 기차표나 더 사두기로 했다. 차라리 이게 남는 장사야. 오전의 경험으로 고락푸르 기차역에서도 이제는 컴퓨터 시스템이 도입(오오, 이 장족의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렇담 나도 인터넷으로 구매를 해보는거야! 이런 건방진 생각으로 숙소 근처 PC방에 들렀다(1시간 20루피). 일단 프린트 서비스를 하는지부터 먼저 확인한 뒤에 자리를 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목표는 럭나우발 아그라행 열차표 인터넷 구매. 어렵사리 인도 철도청 사이트에 들어가 회원 가입을 하고 스케줄 확인한 뒤 무지 뿌듯해하면서 내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려니까 엇, 여기서 더 이상 진행이 안 된다. 아무리 용을 써봐도 결제는 불가능하다. 아마도 인도 은행에서 발급한 신용카드(혹은 씨티뱅크 신용카드나 아멕스 따위도?)만 결제가 가능한 모양이다. 괜히 시간+공만 들였네.

 

PC방을 나와 이번엔 맞은 편 여행사로 가 본다. 이 곳에서 럭나우발 아그라행 기차표를 예매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내가 보기엔 전혀 움직이지 않는 컴퓨터를 막 두들기는 척 하더니 1인당 350루피를 내면 (아마도 컴력이 아닌 인력으로) 구해주겠다고 한다. 뭔 소리야? 방금 PC방에서 가격을 확인해 보니 둘이 합쳐도 350루피가 안 되던데. 역시 인도야, 우리끼리 한국말로 한 마디 한다. 이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오전과 같은 기다림은 최대한 피해보고 싶었지만 결국 그냥 우리 스타일대로, 직접 기차역에 가서 표를 구입하는 수 밖에. 어차피 방에도 못 들어가는 몸 아니더냐.

 

그래서 나름의 짱돌을 굴려 예매해 버린 이후 두 구간의 기차표. 워낙은 이후 한 구간만 더 구입하러 기차역에 갔다가 매번 이렇게 줄을 서야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서 내 차례가 왔을 때 아예 그 다음 구간까지 확 예매해 버렸다. Open된 일정을 선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일정에 몸을 묶는 대신 표 구입에 따른 편의성과 맞바꾼 셈이다. 그래도 이번엔 1시간 밖에(!) 안 기다렸고 그 전과로 오전에 구입한 고락푸르->럭나우 구간에 더해 럭나우->아그라 칸트, 아그라 포트->자이푸르(그렇다. 여정과 이동 시간를 원하는 시간대에 각기 배정하다보니 아그라에서는 각기 다른 역 두 개를 이용하게 되었다)구간까지 모두 구입하게 되면서 동시에 앞으로 며칠간의 일정이 쫘~악 정해졌다. 

 

줄 서서 기차표 두 번 사니까 하루가 홀라당 가버렸다. 오, 시간 잘 가는데? 이러고 있노라니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기차표 예매하고 sms 티켓 따위로 발권 받아서 휴대폰만 달랑 들고 표 검사도 안 받고 훌쩍 기차에 타던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물론 한국에서도 그렇게 기차를 탈 때마다 "우와, 세상 참 좋아졌네" 말하곤 했지만 여기와서 다시 그 과정을 떠올리니 한국의 시스템이 새삼 정말 정말 훌륭하게 느껴졌다).

 

기차표 몇 장 예매에 잔뜩 뿌듯해진 마음으로 저녁 식사길에 나섰다.  

  

알고 보니 우리가 낮에 이용했던 식당과 PC방 모두 같은 이름을 쓰고 심지어 숙소까지 운영하고 있더라. 이 동네서 나름 큰 업체인듯.

참, 아까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고락푸르는 무지 시끄럽다. 우리가 먹고 잔 곳이 역 앞이라 더 그럴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지만 저 위의 방 사진 속 김원장은 귀마개를 하고도 귀를 막고 있다(김원장은 고락푸르에서부터 이후 내내 거의 귀마개를 하고 다닌 것 같다). 그간 인도에 차들이 훌쩍 많아져서 그런가, 아니면 그간 우리가 한국에서(그리고 최근 룸비니에서) 너무 조용하게 지내와서 그런가(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무척이나 조용한 곳이다), 안 그래도 김원장은 소음에 무지 민감한 사람인데 이 날 고락푸르에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귀마개를 하고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김원장의 모습에 그 날의 기억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는구나.  

먹다말고 찍은게 아니다. 닭 튀김이 나오자마자 찍었다. 닭을 잡기 전에 좀 더 먹였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싶을만큼 가녀린 닭이었다.

저녁 식사 영수증

우리가 고락푸르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Hotel AmbarRaj. 그래도 이 라인에 늘어선 다른 경쟁업체에 비하면 가장 깨끗한 외관을 하고 있다. 그나마 그렇다는 소리다. 예상하다시피 이 날 밤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일기장을 보면 나름 멋지게 이렇게 한 줄 적혀있다.

 

산에서 삶으로!

 

인도에 돌아왔다.

또 왔다. 

결국 오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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