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오한과 발열, 두통(에 설사 -_-)까지... 셀프 진단으로 현 본인의 증세가 말라리아와 유사하다는 판단을 내린 김원장(비록 인도에 들어온지는 일주일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김원장 스스로 전염 시기를 수 개월 전 아프리카 여행 때로 의심, 그간 잠복해 있다가 현재 발현하는 것으로 완벽한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치밀성을 ㅎㅎ), 아무래도 한국으로 최대한 서둘러 돌아가야겠다는 충격적인 명을 내리고 말았다.

 

한국이라... 우리가 이번 네팔+인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구입한 항공권은 인천발 방콕 경유 카트만두행 왕복이었기 때문에 반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일단 네팔로 다시, 그리고도 태국을 거치는 수순을 밟아야만 한다. 아, 이거 갈 길이 만만치 않다. 여기는 푸쉬카르, 일단 첫번째 목적지인 네팔로 가장 빨리 돌아가는 방법은 델리로 가서 비행기를 타는 것. 그러려면 여기 푸쉬카르에서 델리까지는... 결국 기차를 타야하지.

 

워낙 푸쉬카르에 한동안 머무를 계획이 있었던 데다가 이후 목적지는 당연히 조드푸르로 델리와는 완전 반대 방향. 덧붙여 조드푸르 방문 후에 연이어 가려고 마음 먹었던 우다이푸르+자이살메르 따위는 다 어떡하라고... 이번에도 라자스탄은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걸까. 정녕!

 

 

아침으로 김치국 끓여 먹고 본격적인 귀국 수순에 오르기 전 분위기 파악을 해보고자 PC방에 들렀다.

오호라, 얼마 전 뭄바이 테러를 일으킨 용의자가 도망갔다는 -_-;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델리일지도 모른다는 찝찝한 소식과

엥? 점거되었다던 태국 공항에 이번엔 폭탄까지 터져 공항이 아예 잠정 폐쇄되었다는 황망한 소식.

당시 관련 뉴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09263 

 어라, 나 델리랑 태국 공항이랑 다 거쳐 가야 하는데???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 어찌된게 가는 데마다 총격+폭탄질이냐.

 

상황이 이 정도로 안 좋으니 김원장이 예정대로 여정을 다시 서쪽으로 쫙쫙 진행시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줬음 하는 바램이 있지만

이건 양처(?)로서 말라리아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남편을 놓고 감히 떠올리면 안 되는 생각이겠지. 

아닌게 아니라 김원장은 태국 공항이 언제 다시 정상 재개될지도 모른다는(설령 열린다고 해도 그간 밀린 승객들은 언제 다 처리한단 말이냐)

그런 비보를 접하고도 별 반응 없이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다(대체 어떻게?). 많이 아프긴 아픈 모양이야.   

 

 

푸쉬카르는 기차역과 직접 연결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예매를 하려면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아지메르까지 가야한다. 아프다는 김원장을 끌고 함께 가기에도, 그렇다고 아지메르역에서 기차표를 끊기 위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 혼자 다녀오기에도 좀 찝찝해서 결국 푸쉬카르 현지 여행사에 구매 대행을 맡기기로 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아지메르->델리까지 기차표 가격이 인당 200루피, 거기에 장 당 수수료로 인당 100루피씩을 더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이미 적당한 시간대 출도착하는 것으로 골라 찜해온 상기 기차편 좌석 상황을 알아보니 오늘이고 내일이고 3A 좌석이 모조리 없어 어쩔 수 없이 모레 아침에 푸쉬카르를 떠나는 것으로 결정, 상기 편명과 우리가 원하는 좌석 위치를 몇 번이고 숙지시킨 후 과감히 600루피를 지불했다. 이미 돈을 지불했다는 영수증을 챙겨 받으며 언제쯤 티켓을 받을 수 있겠느냐 물어보니(내가 기차표 의뢰를 했던 시각이 대략 12시쯤) 이따 3시쯤 오면 구해놓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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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침대에 뻗어있는 김원장을 홀로 남겨두고 졸레졸레 약속했던 3시에 찾아가니 아직 안 되었다며 6시에 다시 오라고.

그리고 시간 맞춰 6시에 다시 또 졸레졸레 찾아가니 이번엔 내일 아침 9시에 오라고(너희 론리가 추천한 것 맞니?).

 

THIS IS INDIA.

 

재밌는건 나도 더 이상 화 안 나. 니들이 나보고 아직 안 되었으니 자꾸 다시 오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ㅋㅋ

 

 


 

 

다음 날, 아예 오전 10시 가까이, 느지막히 여행사를 찾아가 보니 다행히 준비가 되었다더라. 그렇게 삼고초려 끝에 아지메르발 델리행 티켓을 무사히 받아들었다. 그런데 막상 티켓을 받아들고 보니 우리가 원했던 창가쪽 위/아래 좌석이 아닌 듯 싶다. 내가 안 되는 영어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분명 그 좌석으로 구해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었는데? 그 부분을 지적하니 여행사 직원 왈, 내가 알고 있는 좌석의 번호 매김 순서가 틀렸단다. 그러면서 다시 그림을 그려가며 좌석 번호를 매기는데, 그의 설명대로라면 그가 맞다. 하지만 여기가 아무리 별일이 다 벌어지는 인도땅이라도 설명해 주는 번호 매김 방식 자체가 아무래도 비합리적으로 이상(이 쯤에서 예측하셨겠지만 역시나 직접 탑승후 좌석을 확인해 보니 우리가 맞았다. 우리 둘은 요상하게 떨어진 좌석을 배정 받았다. 아무리 다시 푸쉬카르까지 되돌아와 따질 인간이 거의 없다고 해도 하여간 참으로 뻔뻔하기도 하셔)한데?

 

<문제의 e 티켓>  

 

하여간 수요일 오후부터는 다행히 김원장 몸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게다가 내일 오전이면 푸쉬카르를 떠나야 하니 오늘이 마지막)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브라흐마 사원은 잠시라도 구경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마음에 함께 길을 나섰다. 오늘은 또 새로운 길을 뚫어볼까.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한글은 알아볼 수 있어요. 내용은 신빙성이 안 가지만 말이죠 ㅋ>

   <헉, 원빈 나오면 나 저기 갈래>

  

 

 

 

 

 

 정작 사원은 무슨 행사라도 있었는지 너무도 많은 참배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어 입구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 나왔다(우리가 이렇다).

 

 원숭이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매우 화가 나 이리저리 날뛰며 싸우는 광경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다가

 

 화려한 골목을 돌고 돌아 또 하나의 푸쉬카르 맛집이라는 드림랜드 레스토랑으로.  

 

 아직도 좀 퀭한 구석이 남아있는 김원장

메뉴판을 여니 한 구석에 KORIAN FOOD 섹션이 있었다. 저 철자는 김치임이 분명한데 김치 바쿰밥이라니, 김치 후라이드 라이스와 김치 바쿰밥의 차이점은 무엇이며(분명 가격은 5루피 차이가 나는데) 김치 라마나는 또 뭐란 말이냐. 이거 알고보니 한식이 아닌거 아냐? ㅋ 그러고 보니 KOREAN 역시 KORIAN이다. 혹 코리앤더(coriander)가 잔뜩 들어갔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하는 실없는 말장난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ㅎ 하여간 이미 전날, 김치국을 내내 먹어온 터라 김치 볶음밥이나 김치 라면은 제껴두고 김치 모모(만두)를 주문해 보기로 했다.  

 함께 주문한 커피(15루피)와 바나나 라시(25루피)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주문한 모모였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뜻밖에 맛이 좋았다. 고추를 많이 넣었는지 꽤나 매웠는데 그 또한 한국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김원장은 아침에 내가 숙소에서 토스트에 버터 난까지 이것 저것 주문해 먹을 때도 입맛이 없는지 잘 못 먹었고 그래서 점심에 무를 사다가 무국을 끓여 한 술 떠 먹었을 뿐인데 저녁때도 본인은 굶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내 몫의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김원장은 그냥 커피나 한 잔 할 겸 따라 들어온 식당이었는데 내가 워낙 맛나게 모모를 먹으니 결국 김원장도 집어 먹더라는. 또 다시 장에 문제가 생기면 내일의 긴 여정에 지장이 생길텐데(김원장이 내꺼 빼앗아 먹는게 아까워서 이런 소리 하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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