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김원장의 상태로 과연 오늘의 긴 이동이 가능할까 걱정되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김원장부터 살폈는데 본인 말로는 견딜만하다고 한다

(하긴 달리 방법도 없다. 현재로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빨리 무조건 델리로, 병원을 가더라도 여기 푸쉬카르나 아지메르보다는 결국 델리가 최선이지 싶으니까).

그래, 그럼 떠나자. 풀어 헤쳐 놓았던 모든 짐을 꾸려 지난 4일간 머물렀던 푸쉬카르의 Krishna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나(1박당 400루피, 체크아웃시 1600루피 지불) 델리행 기차를 타기 위해 아지메르로 향했다.

 

푸쉬카르 마을 외곽 버스 스탠드에서 승객이 차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지메르행 버스에 올라타는데 차장 아저씨가 영수증을 안 주는 대신 두 명에 15루피만 받겠다고 한다(공식 가격은 인당 10루피).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잠깐 갈등하다 그래, 콜, 5루피에 굴복. -_-; 

 

버스는 다시 꼬불꼬불 작은 산을 넘어 아지메르로 향했다. 김원장이 아프다는 핑계까지 더해져 푸쉬카르는 더욱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듯 하여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어쩌면 라자스탄을 두고 떠남에 대한 미련이 기저에 있었을런지도). 아지메르 터미널과 기차역 사이의 거리는 약 1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이 정도 거리라면 평소에는 배낭을 메고 열심히 걸었겠지만 김원장 상태가 정상이 아닌 만큼 오토 릭샤를 타자고 했다. 역시나 50루피 부르는 것을 30루피로 깎아 탑승.  

 

 

그렇게 아지메르역에 도착했지만 황당하게도 10시 45분발 예정이던 우리 열차는 12시 20분으로 출발 시각이 지연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 싫어서 아지메르 경유편이 아닌, 아예 아지메르를 출발지로 삼는 열차를 골라 끊어온 것인데! 그래서 다소 일찍 도착해도, 어수선하기가 이를 데 없는 역사 안이 아닌 객차안 우리 지정석에서 편히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늦어도 10시 45분에는 출발해야 델리에 오후 8시에 도착해 아주 늦기 전에 숙소를 잡을 수 있는데! 이거야 원, 잔머리를 굴려 마련해 온 모든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이 나라는 예측 불가능하단 말이지(하지만 또한 그것이 인도의 매력ㅋ).

 

졸지에 2시간 이상 대기 시간이 생긴 우리. 뭐 어쩌랴. 다행히 역내 가방 보관소가 있어서 배낭을 맡기고(개당 10루피) 가벼운 몸으로 아지메르 역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보기로 했다.  

 

 

역 맞은 편 시장을 샅샅이 둘러보고 짜이(잔당 3루피)를 마시고 바나나를 구입하고(Kg에 30루피) 별 의미 없이 론리에 나온 근처 스팟들을 하나씩 확인사살해가며 찻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해도 시간이 잘 안 가더라.

 

아지메르발 델리행 열차는 지연된 출발 예정 시각에서도 5분이 지나, 출발 직전 갑자기 플랫폼이 바뀌는 바람에 모든 대기 승객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기염을 토하면서 덜커덩, 드디어 출발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발 그 자체야 반가운 일이었지만, 막상 탑승하고 보니 내가 그렇게도 부탁했던 우리 둘의 좌석 배치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참으로 웃기게 틀어져 있었고, 한동안 그로 인한 불만과 짜증, 울화 섞인 성토가 겨우 한 풀 꺾일 때쯤에는, 델리에 너무 늦은 시각 도착하는 바람에 생길지도 모르는 사건에 대한 불안함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김원장과 떨어진 좌석 때문에 델리까지 다소 불편하게 달리면서,

틈틈이 짜이를 마시고

(역시 열차 안에서 파는 따뜻한 짜이보다는 열차가 잠시 정차했을 때 창살 사이로 받아 먹는 뜨거운 짜이가 더 맛난 것 같다) 

틈틈이 적선을 했다.

뜻은 모르지만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에게

그리고 팔 하나가 없던 아이에게

 참, 그 중 어떤 아이는 이미 돈을 받아들고도 내 몸을 흔들어가며 더 내놓으라고 달라고 했었지.

 

기차가 델리역에 도착한 정확한 시각이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략 오후 10시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하여간 몹시 깜깜한 밤이었고 우리 머릿속엔 최대한 빨리 역을 벗어나 파하르간지로 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차한 역이 뉴델리역이였다면 맞은 편 파하르간지까지 걸어가도 그만이었겠지만 우리가 탄 열차는 (올드)델리역을 지나가는 열차였고, 델리역에서 파하르간지까지는 약 2~3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그 시각에도 역사 앞에 프리페이드(Prepaid) 택시/오토릭샤 부스가 열려 있었기에 52루피를 지불하고 우리가 가려는 파하르간지 숙소 밀집 지역을 잘 안다는 오토릭샤에 몸을 실었다.

릭샤 안에서 지도를 펴들었지만 가로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골목 사이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릭샤 안에서 동서남북을 분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간 달리니까 지난 6년 전 기억이 되살아나며 어느 정도 익숙한 골목들이 하나 둘씩 보이길 시작했다. 벌써 다 왔나보다!

한결 마음이 놓인 우리가 숙소 방향을 가늠해가며 하차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작 우리 오토릭샤 아저씨는 헤매기 시작한다. 우리 생각으로는 저쪽 방향인데 이쪽으로 가야한다는 둥, 자기가 잘 아는 숙소가 있는데 그리로 안내하겠다는 둥(다행히 우리 숙소에 불은 안 났나봐), 뭐 짐 들고 파하르간지행 릭샤타면 흔히 겪는 여러 레퍼토리가 줄줄이 나오고 결국 피곤한 우리가 그냥 여기 당장 세워달라고 하고, 잠시 실랑이 끝에 아저씨는 마침내 릭샤를 세우고, 그리고 돈 더 달라고 하고...

 

일련의 코스가 모두 지나간 후(배낭부터 무사히 챙겨서 내린 뒤 당근 돈 더 안 줬다 ^^;) 우리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그 옛날 숙소(http://blog.daum.net/worldtravel/416785)를 찾아 어두워진 파하르간지를 걸었다. 한 번에 잘 찾을 수 있으리라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씩씩하게 걷다보니 어라, 저 앞에 뉴델리역이 나와 버리더라. -_-; 이럼 우리가 숙소가 있는 골목길 입구를 못 찾고 지나쳐 버렸다는 소린데? 즉시 유턴. 그리고 온 길을 천천히 되짚어 걸으면서야 결국 그 골목길을 발견, 그리고 우리가 6년 전에 묵었던 바로 그 숙소, Hotel the Spot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6년 전엔 250루피이던 방이, 이제는 방 수준에 따라 3~400루피로 올라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오른 듯 하여 내가 전에 여기서 한참 묵은 적이 있다고 하며 단골 모드로 -_-; 가격 네고에 들어가니, 깎아주진 않고 "그래, 나 네 얼굴 생각난다"라고 응수하더라. 그럴리가 ㅋㅋㅋ

우리는 400루피 짜리 크고 좋은(?) 방을 골랐는데, 6년 전에는 이 동네에서 나름 신축 게스트하우스라 깨끗하고 좋았던 숙소였는데 이번엔 바퀴벌레들이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것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뭐든지 다 그렇지. 예전만 못 한게 어디 그 뿐이랴.

 

"젊은 날의 추억"이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여(그러고 보니 6년 전에도 썩 젊지는 않았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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