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저녁 델리를 떠나는 기차표를 구했으니 이제 인도, 델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만 이틀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그러나 이런 나와는 달리 김원장은 그저 내일 기차를 타는 그 순간까지, 그 시간을 델리에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남은 시간 동안 관광(?)을 하겠다는 의지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사실 이 부분은 델리에서라면 나도 마찬가지)

이 날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딱히 하는 일 없이 둘이 그저 하루 종일 먹고 뒹굴거리기만 했던 듯 -_-;

 

아침(룸서비스) : 버터토스트+짜이+커피

간식(파하르간지 빵집과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 시나몬롤+감자칩(은 두 개나 ^^;)

그리고 PC방에서 노닥거리다가

 

# PC방에서 생긴 일

묵고 있는 숙소가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추천업소로 알려져 있는지는 몰라도, 숙소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혹은 복도를 지날 때 은근 한국인 여행자들을 제법 만날 수 있다. 숙소 1층 PC방에서도 내 옆 자리에 젊은 한국인 커플이 앉았는데, 자리가 자리인만큼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일부 엿듣게 되었다. 그들은 옛날의 나처럼, 옛날의 우리처럼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이었고, 현재 계좌의 잔액은 약 200만원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었지만, 아직은 여행에 대한 갈증을 다 해소하지 못 한지라 본래 계획보다 여정을 더욱 늘리고 싶어했다(게다가 우리가 얼마 전 다녀온 중동쪽으로). 그들에게 돈이 나올 데라고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 뿐이었고, 그 돈을 뜯어내기 얻어내기 위해 부모님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들이 생각한 핑계는 이제 여행은 끝내고 어학연수를 할 계획이라는 것. 영어 공부를 할 테니 돈 좀 보내달라는 것(돈 받으면 여정을 늘릴 뿐만 아니라 현 랩탑을 업데이트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모두 비밀ㅎㅎ). 그런 와중에도 열심히 본인의 블로그에 여행기를 업데이트 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나의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아득해져왔다. 2002년 세계일주 당시 삼보컴퓨터로부터 랩탑 한 대를 지원받아 그 댓가로 삼보컴퓨터 사이트에 실시간 여행기를 연재하기 위해, 우리도 참으로 많은 PC방을 들락날락했었지. 그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 사정이 좋을 때가 아니어서 사진 한 장 보내기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참을 인자 3개로도 부족한 그 속도하며. 플로피 디스켓을 들고 다니면서 각국의 PC방 주인들에게 지금 우리가 네 비싼 컴퓨터에 절대 이상한 짓을 하려는게 아님을 설명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웠던지... 우리가 무언가 알 수 없는 짓을 했다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던 그들을 설득하기는 또 얼마나 쉽지 않던지. 그.러.나.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젊은 그들의 생생하고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고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흥분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반대로 기쁘기도 하고 감동하고 갈구하고 누리고 즐기는...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내 몫이 아니라는게. 이제 내게 있어 그들이 가진 그런 일련의 감정들은 모두 마모되고 무뎌지고 깎여나가고 두리뭉실 무뚝뚝하고 무감동하고 무감각한 현실로 변해 남아있을 뿐이라는게.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그래, 그렇구나. 이제 이렇게 바톤을 넘길 세대가 된거구나, 묘하게 슬픈 자각이 있었던 시간.      

 

이번엔 사이클릭샤를 타고 코넛 플레이스로 진출(편도 20루피).

 

 <사이클릭샤를 탈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힘들 것 같다>

 

<코넛 플레이스에는 KFC 말고도 맥도널드니 피자헛 등이 모두 있다. 그러고보니 6년 전 저 피자헛에 갔었던 기억이 나네>

 

맛있는 빵으로 유명하다는 Wenger's를 찾아 가서 빵 사다 먹기

(유명세를 짐작하게끔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인파를 뚫고 계산하기도 어려웠다는).

 

<여기가 인도임을 감안할 때 빵 맛은 훌륭하지만 가격 또한 그만큼 상당하다. 개당 33루피 꼴이니>

 

그리고 KFC 또 가기(오늘은 1인분 나눠먹기 -_-).

 

# KFC에서 생긴 일

이미 밝혔듯 KFC는 인도에선 아직 고급 식당에 속한다(예전에는 매장 입구에서 총 들고 지키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KFC에서 만나는 인도인들은 척 보기에도 부티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바로 앞 테이블에 돈이 넘쳐 보이던 시크교도 가족이 우리도 1인분 시켜서 나눠먹는 닭 튀김을 ^^; 가족 수대로 잔뜩 시켜놓고 맛나게 먹고 있었더랬다. 거기까지는 익숙한 풍경이라 할 수 있었는데, 특이하다 할 점은, 아직은 이 땅이 아이를 많이 낳는 곳인지라 이 집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제일 어린 아이 둘을 돌보는 보모가 함께 따라왔다는 점이었다. 말이 보모지, 잘 봐줘야 15살도 안 되었을 것 같은, 아직 앳된 소녀였다(어쩌면 보모가 아니라 그야말로 메이드였을지도 모르겠다). 소녀는 주인댁과는 확연히 다른, 어두운 피부색과 비쩍 마르고 왜소한 몰골, 그리고 낡은 옷차림을 하고는 그 테이블 끝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신나게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녀는 애써 테이블을 쳐다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이 꼴깍, 몇 번이고 목으로 넘어가는 게 보였지만, 그 소녀는 끝까지 단 한 조각도 얻어 먹지 못했다. 보다 못한 김원장이 그녀를 위해 따로 1인분 주문해다 줄까, 할 정도였다(물론 그렇게 맘 먹은대로 행동하진 못했다 T_T). 우리네 정서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하여간 그 가족 모두에게 그 소녀는 마치 유령처럼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아... 정말이지, 잊혀지지 않는 그 아이의 뒷모습.  

 

 

그렇게 코넛플레이스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다 돌아올 땐 마찬가지로 시장에 들러 사과랑 귤 사기.

(저녁은 어제 사다놓은 야채 넣어 짜장밥 만들어 먹기)

 

 

이게 이 날 한 일 다다. ㅋ

 

아, 보너스,

밝혀진 김원장의 속마음 !

저 첨부된 동영상에서 엿들을 수 있다.

 

...더 이상 여행에 대해서는, 이제, 당분간... 끝난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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