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드디어 인도를 떠나는 날,

원래의 계획보다 2주 정도 빨리 떠나게 된 지금,

인도라는 거대한 적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는 군인의 심정이랄까 ㅎ

 

 

떠나기 직전까지 코넛 플레이스 KFC에 방문, 3일 연속 출근 도장을 찍었고

(핑곗거리는 "네팔 가면 당분간 이런 닭 먹기 힘들어")

오늘 밤 기차 안에서 먹을 빵(어제 구입했던 Wenger's의 품질이 마음에 들어 재방문)도 미리 사서 쟁여두고

어쩌다 보니 숙소 앞 단골 점방에 (아저씨가 거슬러 줄 잔돈이 없다하여 본의 아니게) 빚졌던 돈도 갚고(여기도 신용사회로 진입?) 

오늘은 레이트 체크아웃으로 쇼부 봐서 토탈 3.5박으로 계산, 숙소비도 모두 지불하고

기나긴 인도 여정을 대비해 잔뜩 환전해 놓았으나 이제는 필요 없게 된 인디안 루피를 다시 미국 달러로 재환전(당시 1:50)하고 나니

바야흐로 모든 것이 끝, 인도를 떠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당장 가는 것도 아닌) 집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이제 작은 소형차에 덩치 좋은 시크교도들이 터번까지 둘러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7~8명씩 꾸역꾸역 타는 모습도

 

 

거친 숨소리로 힘겹게 페달을 밟는 사이클 릭샤 아저씨도

(김원장 왈, 그래도 타는게 도와주는 거라는데)

 

 

정신없이 시끄럽고 복잡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 정이 가는 마음을 감출 길 없는 파하르간지도 모두 안녕.

 

 

이렇게 짧고도 굵지 않았던 -_-; 인도 여행을 요 모드로 차분히 끝내나 했는데,

 

 

아아, 여기는 (그 이름도 유명한) 인도 뉴델리 레일웨이 스테이숑! (변사의 톤으로 읽어주기 바람 ㅎ)

 

 

그래, 아수라장,

이것이 인도다.

 

 

역시 인도에선 누가 뭐래도 기차 여행을 해야...

 

 

 

 

그래도 나름 기차 좀 타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쿨럭. 

우리 이거... 어떻게 타지?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이 것이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이 참으로 난감할 따름. 이들의 이토록 팍팍한 삶이라니.

정신없이 돌아가는 판을 잠시 바라보던 김원장, 마치 피난길에라도 오른 것처럼 긴장 실린 목소리로

"내 옆에 딱 붙어, 절대 떨어지면 안 돼!"

 

 

 

탑승 성공!

 

인파를 뚫고 나아가기가 좀 어려웠지, 일단 해당 객차에 올라타자마자 그 다음부터는 2A 클래스의 위엄이 ㅎㅎㅎ

절로 간드러진 목소리로 "아유~ 돈이 좋긴 좋아"를 몇 번이나 외쳤던 것 같다(나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좋아요~).  

 

 

 

2A 클래스는 이름 그대로 한 칸에 단 4명이 타는 (2층 침대) 구조로, 보통 이렇게 밤 기차 침대칸을 이용할 때는 우리는 동일한 측의 위, 아래를 선호하는데, 이 구간은 좌석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예약 데스크의 직원 아저씨가 표를 내어주는 대로, 둘이 마주보는 2층으로 배정받았다. 때문에 오르락내리락하기가 좀 불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2A가 정말 좋긴 좋구나. 우리 아래 층을 차지한 아저씨들 역시 첫 눈에도 부티가 줄줄 흐르는 비지니스맨들(당신들의 유창한 영어로 우리에게 말을 많이 시키진 마세요. 흑).   

 

<2A답게 에어컨 빵빵, 침대는 깨끗, 베개와 모포/시트 제공>

 

처음엔 정말 좋았다. 원래 지갑에서 돈 나오기까지가 어렵지, 막상 지르고 나면 그 다음엔 돈 생각 싹 잊는 평소의 습관처럼,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힘이 참으로 막강하구나 운운해가며 2A의 장점을 한동안 만끽했었더랬다. 심지어 김원장은 조만간 방콕에 가게 되면, 기차 타고(물론 오늘처럼 상위 클래스 좌석으로) 말레이반도를 종단해 싱가포르까지 한 번 가봐야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응? 집에 안 가고?).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니, 오래 갈래야 갈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함께 탑승한 승객들의 엄청나게 심한 코골이 때문이었다. 우리는 인도의 돈 있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2A에 탑승했고, 인도의 돈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뚱뚱한 경우가 많았으며, 뚱뚱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코를 골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당연히 예상/수반되는 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자체가 만들어내는 소음(도 만만치 않거늘)을 우습게 깔아 뭉갤 정도의 엄청난 코골이가, 내 바로 아래(그래서 오히려 대각선 상에 위치한 김원장에게 더욱 잘 전달되는) 아저씨와 우리 바로 옆 칸의, 최소 둘 이상의 엄청난 거구(로 짐작)로부터 끊임없이 생성되었던 것이다. 물론 밤새 내내. 흑.

 

때문에 방글방글 만족한 얼굴로 절로 쏟아져 나왔던 돈이 좋네, 싱가포르까지 기차로 종단하네 따위의 말들은 순식간에,

욕이 바로 목까지 치고 올라온 얼굴로 집 떠나면 고생이네, 내 평생 다시는 2A 클래스 안 타네, 역시 sleeper 클래스의 마른 사람들이 밤 기차엔 최고였네, 인도에선 최악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네(곧 더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니까) 등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 진짜, 김원장과 함께 하는 인도 여행 막판까지 쉽지 않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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