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은 오전 9시 30분에 pick-up와서 빠이행 10시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어제 예약을 부탁했던 Sixty house(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전화가 따르릉 와서는 10시행 버스 좌석이 full이라며 12시에서 12시 30분 사이에 픽업을 올 거라고 한다. 이게 뭐야~

 

사실을 밝히자면, 빠이의 그럴싸한 숙소를 골라 미리 예약해 둔 터라 체크인 시간에 맞춰 빠이에 도착해서 좋은 숙소를 느긋하게 즐기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어제 치앙마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빠이행 미니버스를 운행하는 아야 서비스(www.ayaservice.com)의 대행 업체가 보일 때마다 오전 10시 버스를 원한다고 했었더랬다. 앞서 들렀던 몇 대행사는 모두 10시 차는 이미 full이라고 했고 Sixty house만이 그 차편 수배가 가능하다고 해서 - 이 곳만 가능하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 여튼 된다고 해서 그 곳을 통해 예약한건데 이렇게 배신을 하다니, 쩝.

 

본의 아니게 생겨난 막간을 이용해 한식이나 한 번 더 먹기로 하고 ^^; 어제 갔던 코리아 하우스에서 식사를 한 뒤(정식 60+라면 반 60+물값 10) 숙소로 돌아와 12시에 시간 맞춰 체크아웃을 하고 픽업을 기다리는데 어허라, 약속한 12시 30분이 넘도록 픽업은 소식이 없다. 결국 안 되는 영어로 다시 Sixty house에 전화를 해서 픽업 차량에 대해 물으니 곧 갈거라고 하네. 12시 40분, 그렇게 겨우 픽업 차량에 올라타고 치앙마이 역 맞은 편의 아야 서비스 사무실로 이동한다. 아무래도 우리에겐 1시 차량이 배정된 모양인가보다.

 

사무실 앞에서 다시 빠이행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했는데, 짜증을 안 내려고 했지만 오전 10시 출발을 기대했다가 몇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1시에나 출발할 수 있다니 마음이 좀 상한 건 사실. 게다가 미니버스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나가보니 이미 다른 여행객들이 끼리끼리 자리를 잡아놓은 터라 우리와 같은 픽업 차량을 타고 온 여행객들 모두는 뿔뿔이 흩어져 타야 한단다. 그리하여 김원장은 맨 앞 좌석에 나홀로였던 동양남성과 함께, 나는 맨 뒷 좌석에 서양애들 몇과 함께 앉아가기로. 

 

미니버스는 1시 넘어 출발했고 치앙마이 외곽을 빠져나간 뒤부터는 꼬불꼬불 - 대부분 여행객들이 그 뷰를 칭찬하는, 그리고 혹자는 심한 멀미를 일으키는 - 산길을 달린다. 1시간 넘게 달리던 버스가 잠시 휴게소에서 정차하여 간만에 김원장과 도킹을 할 수 있었는데, 김원장은 나와 떨어져 앉은데다가 본인 옆에 앉아있는 남성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앉아 불편하며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뒷좌석에서 빚어내는 시끄러운 수다 소음탓에 화가 더 나있더라(바로 옆에서 그 큰 수다를 온 몸으로 듣고 있는 나는 어쩌라고). 뭐 별 수 있나, 빠이에 도착할 때까지 좀 더 참아야지~ 우리끼리 간만에 부부다운 위안을 나누고 있는데 어라, 김원장 옆의 동승객이 다가와 유창한 한국말로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한다. 엥? 알고보니 우리가 현지인 혹은 중국인(?)으로 생각했던 그는 한국인으로 현재 빠이에 장기체류 중이라고 한다. 치앙마이에 (태국인) 여친이 있어 잠시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우리가 그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듯이 그 역시 옆자리에 앉은 김원장을 외국인이라 생각하고 서로 말 한 마디 안 나누고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_-; (차라리 서양인이었다면 안녕, 이라도 했을텐데... 역시 동양의 문화는 서양의 그것과 다르다). 그렇게 말문이 트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이 왈, 빠이에서 뭔 벌레에 다리를 물렸는데 그 자리가 덧나 다리를 움직이기가 불편해서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앞 자리를 미리 차지한 것이고, 다리를 구부리기 어려운 형편인지라 옆자리의 김원장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며 우리 부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못 해 미안하다고 한다(아닌게 아니라 다리의 상처가 벌레에 물린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덧났다. 대체 뭔 괴물 같은 벌레란 말이냐). 역시 한국말이, 아니 동포가 좋긴 좋구나. 참, 그러면 아까 치앙마이에서 출발할 때 내가 자신을 가리키며 양보 좀 해 주지, 투덜거리는 한국말은 혹 못 들으셨을라나.

 

이 휴게소에서 아야 서비스가 협찬(?)한 빠이 관련 지도를 무료로 구할 수 있으니 잊지말고 챙겨두자. 빠이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는 지도다.   

 

여하튼 이 일을 계기로 휴게소 이후 김원장과 그는 신나게 ^^ 대화를 나누면서 빠이까지 이를 수 있었다. 빠이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4시쯤. 치앙마이에서 여기까지 3시간 정도 걸렸구나.  

 

그는 우리가 미리 예약해 온 숙소가 빠이에서는 매우 비싼 축이라며, 그런 데서 묵을 거면 굳이 왜 빠이까지 왔느냐고 하더라. -_-; 우리에게 본인이 묵고 있는 숙소를 알려주며 나중에 꼭 구경 오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그와 빠이의 아야 서비스 사무실 앞에서 빠이빠이~를 한 뒤 사무실 직원에게 부탁해서 우리가 예약한 반 크라팅 빠이 리조트(Baan Krating Pai Resort)에 "우리 방금 빠이 아야 서비스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데리러 나와달라" 픽업 요청 전화를 넣었더니 약 5분 만에 반 크라팅 픽업 차량(무료 제공 서비스)이 우리 앞에 재깍 나타났다. ㅎㅎ 좋구나, 좋아. 이제야 슬슬 기분이 풀어지네.

 

 

소형 트럭을 개조한 리조트 전용 차량에 올라타고 한 눈에 보기에도 규모가 매우 작은 빠이 시내를 다시 내달려 농촌 분위기 만연한 빠이의 시골길로 들어선다. 어라, 제법 들어가네? 덜커덩거리는 트럭을 5분 넘게 타고 달려와 도착한 반 크라팅 빠이 리조트.

 

 

반 크라팅 빠이 리조트

홈페이지 http://amari.com/baankrating/pai/

간판에서 보듯 반 크라팅이라는 이름을 가진 리조트가 카오락과 푸켓에도 존재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뜻밖에도 아마리(Amari Hotels) 계열인 듯

2009년 8월 현재 홈페이지를 통한 행사 가격이 딜럭스룸 1200밧(2인 조식 포함)이며

우리는 당시 아시아룸스(http://www.asiarooms.com/) 통해 동일 조건으로 35불을 지불했다

 

반 크라팅은 딱 우리 취향으로, 다시 말해 드넓은 부지에 띄엄띄엄 조성된 독채식 빌라, 그리고 리조트 분위기 물씬 풍기는 초록색 가득한 조경에,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스태프들까지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정말 잘 골라냈어!

 

 

프론트에서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빌라까지 안내해 주는 스태프를 따라 리조트를 쭉 가로질렀는데 정말이지 첫 느낌처럼 아주 근사한 곳이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빌라는 107호로 두 채의 빌라가 등을 마주대고 붙어있었지만, 비수기라 그런지 리조트 자체내 투숙객이 거의 없어서 당연 옆 빌라는 비어있었다. 우리 방 문을 열자마자 오오, 이런 리조트의 이런 방이 겨우 35불이라니,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야아~ 너무 좋구나 희희낙락해하다가 안성탕면 2개 후루룩 끓여먹고 리조트 구경에 나선다. 빠이가 치앙마이보다도 기온이 더 낮게 느껴지는 탓에 이런 수영장이 그림의 떡이로구나.

 

 

 

반 크라팅의 대부분이 만족스럽지만 굳이 이 곳의 단점을 꼽아보자면 우선 입지가 되겠다. 누구는 시내에서 2Km, 누구는 시내에서 3Km가량 떨어져 있다고 하는, 그 걷기에도 차를 타기에도 어정쩡한 입지가 일단 문제시 될 수 있고(홈페이지상에서는 시내 중심부까지 걸어서 20분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숏다리 부부라서 그런지 그보다는 더 걸린다), 두번째는 이런 그럴싸한 리조트에서 인터넷이나 국제 전화(엄마랑 통화할 일이 있는데)가 모두 안 된다는 것(말로는 국제 전화의 경우 얼마전까지 가능한 서비스였는데 빠이에 뭔 문제가 생겨 현재 불가능하다고 했다만), 마지막으로 치앙마이에서 묵었던 숙소들 모두에서 아리랑 채널이 잡혔는데 이 곳은 안 잡힌다는 정도랄까. 

 

  

 

 

뭐랄까. 리조트 정자에 앉아 만나는 빠이는... 어딘지 모르게 아주 익숙한, 즉 한국의 여느 시골 풍경과 흡사하면서, 지극히 한가로운(아니 그렇게 보이는거겠지) 시골 뷰를 선사해 준다는 의미에서 발리 우붓의 외곽 지역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태국의 여느 도시나 바다를 낀 휴양지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색다르다거나 이국적이라거나 참신하지도 않다고나 할까. 며칠 더 지내보면 많은 여행자들이 열광하는, 이 곳 빠이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겠지. 그래,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지도를 보고 시내로 걸어나가 국제 전화가 가능한 PC방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고 이미 어두워진 밤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온다.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 방문 틈으로 귀여운 게코 도마뱀들이 먹이를 찾아 들락날락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점만큼은 확실히 이국적이군. 게코가 울어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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