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기차는 은하를 999Km 가로 질러(실제 거리는 751Km) 우리를 방콕의 저녁에서 치앙마이(Chiang Mai)의 아침으로 뚝딱하고 옮겨 놓는다. 치앙마이, 태국 북부 제 1의 도시이자, 태국 통틀어서는 제 2의 도시.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자면 바다 없는 부산이랄까. 그런데 아침 일찍이라서 그런가, 역 안팎이 생각보다 차분하고 조용하네.  

 

 

밤새 달려오기도 했고 배낭도 있고 하니 이미 예약해 둔 숙소 "티 바나(http://www.tea-vana.com/)"까지는 역 앞에서 한창 호객 중인 툭툭을 한 대 골라타기로 한다. 치앙마이에 대한 동서남북 개념이 전혀 없으니 숙소까지 얼마가 적당한 가격인지 잘 모르겠다. 준비해 온 약도를 보여줘가며 툭툭 아저씨에게 숙소 위치며 숙소 가까이의 랜드마크스러운 건물 이름들을 들먹이니 이 아저씨 얼른 끄덕끄덕, 어딘지 알겠다며 60밧을 내라네. 이럴 땐 우리도 무조건 아는 척 해야한다. 무슨 말이냐, 역이랑 가까운데! 40밧만 받으셔~ 그러나 시차 적응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이미 13시간 이상을 기차에서 보낸 우리, 어찌 평소 네고 실력과 같을 수 있으랴. 결국 50밧으로 합의를 본다. 잘 하고 있는건가.

 

 

툭툭은 어리버리한 티를 최대한 숨기고 있는 우리를 태우고 4차원 뒷골목길을 꼬불꼬불 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큰 재래시장이 나타났는데, 역시 이른 시간에 가장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듯 싶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대충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꼭 구경 와야지. 곧 치앙마이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핑 강(Ping River)이 나타나더니 엇, 아저씨, 잠깐만요, 방금 티 바나를 지나친 것 같아요. 역시나 아저씨, 어딘 줄 아신다더니 알긴 개뿔.

 

<티 바나 입구>

 

티 바나는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였는데 첫 눈에 들어오는 깨끗한 외관이나 독특한 중국식(?) 디자인이 지어진지 얼마 안 된 듯 보였다(디자인이 얼마나 독특했는지 로비로 들어가는 통유리 문을 도통 못 열 정도였다 -_-;). 체크인하기엔 이른 시각이었지만, 기쁘게도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다네. 우리가 안내를 받은 (가장 낮은 등급의) 방은 Lychee Rose Tea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티 바나는 그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모든 방에 각종 차(tea) 이름을 붙여 놓고 각 방마다 그 이름에 어울리게 인테리어를 달리 했더라(숙소 부지에서 대로에 면한 쪽으로는 차 전문 샵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방의 경우에는 분홍/연지색이 메인 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썩 좋아하는 색이 아니었지만, 보다 여성스러운 분들께는 맘에 들지도 모르겠다(홈페이지를 통해 각 방의 인테리어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마음에 쏙 드는 방이 있다면 미리 지정 예약할 수도 있겠다). 

 

 

 

 

 

체크인을 하긴 했지만 지불한 방 값에는 내일 아침 식사부터 포함되어 있어서 오늘은 아쿠아(www.aq.co.kr)에서 얻어온 정보를 토대로 아침 식사용으로 추천된 식당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상기 첨부한 지도상 우리 숙소가 강변 오른쪽 끝의 빨강점 쯤에 위치해 있었고, 아쿠아 추천 식당은 치앙마이 성곽 바로 안쪽(의 빨강점 쯤)이었는데, 이 두 곳을 잇는 도로가 바로 치앙마이의 메인 도로라 할 수 있는 타논 타패(=Tha Phae road)였다. 비록 타패 로드가 차가 많이 다니는 메인 도로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8차선 대로급과는 거리가 멀었고 지도상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지름길이었던데다가 그 두 점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게 보이지도 않아 김원장을 그 길로 안내했는데 아아, 그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이야. 시차 적응도 덜 된데다가 지난 밤 기차 안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잔데다가 차들은 내내 시끄럽게 빵빵거리며 달려대고 아직 이른 오전인데도 날은 덥고 마지막으로 가도 가도 멀게만 느껴지는 초행길을 걸으며 우리의 김원장이 화를 안 낼리 만무했다. 그 화는 고스란히 옆에서 걷고 있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 즉 투덜거리는 한국말이 참으로 잘 먹히는 내게로 돌아왔고 결국 식당을 찾아 들어갔을 때에는 둘 다 입이 댓발은 나와 있었다는. 

 

 

 

꿋꿋하게 추천 메뉴들을 주문하긴 했지만, 맛이 있어도 맛있다 느끼기 어려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 식당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추를 날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성곽 근처에 묵는다면 모를까, 티 바나에서 걸어오기에는 다소 무리였기 때문(물론 이후 툭툭을 이용한다거나 해 저문 뒤 걷는다거나 했을 때는 별 문제 없는 거리였다). 그래도 뭔가를 먹고 땀을 식히고 난 뒤에는 김원장이 다소 누그러져서 매번 그렇듯 다시 먼저 사과했고 -_-; 나 역시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 기분을 풀(고싶)었다. 그럼 대신 나 아이스 커피 사 줘! 하고 이 틈을 타 외치는 것을 잊지 않았고. ㅋㅋ

 

1박에 42불에 달하는(?) 티 바나는 사실 달랑 이틀만 예약해 온 터였고, 정확히 얼마간이 될지 모르지만 치앙마이에 제법 있을 것 같아 아침 식사 뒤에는 성곽내 숙소 구경들을 다녔다. 태사랑(www.thailove.net)을 통해 알게 된 나이스 아파트먼트와 근처 몇 곳을 찾아갔는데, 그나마 상태가 나았던 나이스 아파트먼트의 경우 에어컨과 냉장고가 딸린 방이 300밧/박이며 일주일 이상 묵으면 박당 280밧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위치도 좋고 가격도 참 착한데 방 자체만 놓고 보면 티 바나의 그 컨디션 좋은 방과 너무 비교가 되서 선뜻 결정을 못 내리겠더라.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타패 로드 변에서 Tapae Place Hotel이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는 선전물을 보고 구경을 갔다(www.tapaeplacehotel.com). 앞서 살펴본 아파트먼트들과는 달리 타패 플레이스 호텔은 구식이어서 그렇지 말 그대로 호텔은 호텔이었던지라 오히려 프라이버시 중요시여기는 김원장에겐 이 곳이 더욱 좋아보였다. 에어컨 딸린 방의 비수기 가격이 평소 650밧/박이라는데 지금은 590밧에 행사 중이라고(다만 조식은 별도로 프론트 데스크에서 60밧/인 쿠폰 판매). 흠, 여기 괜찮은데? 아무리 수영장이 없는 낡은 건물이라도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데 590밧이면 매력적인 가격이다. 일단 기억해 두고. 

 

 

티 바나로 돌아와 근처 수퍼마켓 위치를 물어보니 마침 가까운 거리에 림핑 수퍼마켓(www.rimping.com)이 있다고 한다(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21시). 알려준 방향으로 얼마 걸어가지 않아 정말 그럴싸한 대형 수퍼마켓을 발견한다. 어디 구경이나 좀 해볼까? 오오, 이런, 여기가 정녕 태국 치앙마이란 말이냐. 다음은 우리가 사 온 쇼핑 목록이다.

 

파인애플 : 무게에 따라 12.75~14.75밧.

사과 : 종류에 따라 개당 15~17밧

: 일본쌀 2Kg 142밧  

우동 : 놀랍게도 한국 제품 60밧

김치 : 배추 김치만 있는게 아니다. 자그마치 깍두기까지. 180g당 각 30밧

 

<내 마음에 쏙들었던 귀여운 오뎅. 김원장이 말리지 않았으면 얼른 구입했을>

 

김치에 깍두기까지 잔뜩 사가지고 룰루랄라 숙소로 돌아온다. 방콕만 인프라가 훌륭한 줄 알았는데 치앙마이 또한 놀랍도록 Korea friendly 하구나. 대체 치앙마이에 얼마나 많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살고 있길래? 어쨌거나 이런 수퍼마켓이 가까이 있다면 치앙마이에서의 장기 체류 결정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흠... 그렇담 치앙마이를 단순히 태국 북부 여행의 경유지로만 여길게 아니라 좀 차분히 즐겨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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